14-17 지옥의 사신
일지흔은 입을 열었다.
“아무튼, 아까 당신이 배신 얘기를 꺼냈을 때는 가슴이 철렁했소. 설마 원륭이 없는 틈을 타서 우리를 모두 정리하려는 것이 아닌가 심장이 덜컹했지.”
“하하하하하하!!”
헐크G 등 다수가 그 말에 웃었다. 그러나 웃지 않는 네 명이 있었다.
바로 궁요와, 진흑창, 천만홍과, 당화다. 그러자 다시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궁요가 웃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원래 궁요는 잘 웃지도 않고 말을 하지도 않으니까.
그런데 이 세 총수는 왜 웃지 않는단 말인가?? 그렇게 긴장감이 극도로 고조되어갈 때, 진흑창이 입을 연 것이다.
“애초에 우리는 중국 정부와 홍콩의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해온 사람들이야. 그런 우리들이 잠깐 행동을 같이했다고 영원히 그 행동을 같이 할 것만 같나?? 천만의 말씀이야. 만만의 콩떡이지.”
“잠깐, 우리가 같이 행동을 한지는 이제 10년이 넘었소!! 무려 10년이!! 그런데 당신들이 우리를 배신해?! 설마, 농담이겠지!!”
일지흔은 다시 한 번 애써 웃어넘기려 했다. 그러다 세 명 총수는 여전히 웃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일지흔, 세상에 영원이라는 것은 없어. 절대라는 것도 없지. 배신할 것 같은 자가 배신을 하든, 배신할 것 같지 않은 자가 배신을 하든 배신은 언제나 일어날 수가 있는 일이다. 경계하라는 거지. 그만큼 치명적인 행위니 말이야.”
“하지만 그런 말을 일부러 한다는 것은 당신들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뜻···!!”
“배신자는 결국 무얼 해도 배신하게 돼있어. 배신자가 사정 보고 배신하나?? 그냥 배신하고 싶으니 배신하는 거야.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든, 목적을 위해서든. 배신은 언제나 항상 일어만 나지. 그러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일지흔. 그리고 모두. 우리 세 명이 배신하면 원륭 없이도 너희들이 우리를 막을 수 있을 거라고 보나??”
콰아아!!
그 순간 세 명의 총수들의 몸에서 일제히 기운들이 치솟았다. 그러자 다른 다섯 명은 일제히 당황한 것이다.
‘크윽, 이런 기운이라니!!’
‘화경에 닿았다고 해서 어느 정도 그 차가 좁혀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멀었어!!’
헐크G와 태사향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들은 지금 세 명 총수들의 몸에서 치솟아 오르는 공력들에 대항하느라, 안간힘을 다 쓰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고도 막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전에는 실제로 대결에서 패한 적이 있고, 그 후에도 수많은 대련들을 거치며 그래도 이제는 어느 정도 해볼 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붙었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다른 다섯 명들이 발전한 것처럼, 세 명 총수도 다시금 발전을 이루었던 것이다.
상식적으로 세 명의 무공이 그 경지의 끝에 달한 것도 아닌데, 발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인간 무공의 그 끝을 초월한 것처럼 보이는 파천황이나 강호육도 아직까지 발전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진보는 무척이나 더디고 느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진보는 확실하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보이지만 차근차근 쌓이는 그런 차이가 다시금 후발주자들인 이들과의 차이를 벌리는 것이었다.
파천황과 강호육 등이 정상에서 도망간다면, 원륭과 세 총수가 그 뒤를 쫓고 다시 그 뒤를 다른 다섯 명들이 뒤쫓는다.
물고 물리는 관계였는데 추월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력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아까 원륭이 악무양에게 보여준 것과 같은 엄청난 경기의 소용돌이를 세 명의 총수는 보여주더니, 그들은 일제히 일어났다. 그리고 한 마디를 남기고 회의실을 나간 것이다.
“알겠나?? 절대로 방심하지 마라. 절대는 없는 것이다. 절대로.”
공공연히 배신과 더불어 자신들이 중국 정부와 홍콩의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할지도 모른다는 언급을 해버린 세 명의 총수들에 의해, 다른 이들은 혼란에 빠졌다.
과연 그들은 진심인 것이었던 것일까??
스윽. 의무실 문이 열리고 세 명의 총수들이 들어왔다. 진흑창은 기절한 악무양을 지켜보고 있는 원륭에게 물었다.
“그놈은 좀 어때??”
“생각보다 괜찮아. 이놈도 괜히 일류 무림인은 아니니까.”
“흐음······.”
진흑창은 악무양의 몸에 손을 대보았다. 그러자 확실히 온 몸 안의 공력이 느껴졌다.
심맥 군데군데는 치열하기 짝이 없는 경기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그에 대항하느라 찢어지고 파열됐으나, 계속해서 재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치명적이지 않은 요혈과 심맥만을 노린 공격이라 가능한 것이었다. 만약 노리고 들었다면 악무양은 이미 죽었을 테니까.
“악무양에게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니오?? 그러다 정말 죽으면 안 될 텐데.”
웃으며 천만홍이 묻자, 원륭은 고개를 저었다.
“이놈은 죽여도 내가 죽인다. 다른 놈들이 죽이는 것은 용납을 못해.”
“흐음······.”
천만홍은 어깨를 으쓱으쓱하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원륭이 악무양에게 보이는 집착은 그 정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대체 왜 그러는지 다른 이들이 궁금해질 정도였던 것이다.
“왜 그러는 거요?? 다른 이들에겐 그렇게 혹독하게 단련을 안 시키면서. 악무양에게만 유독 특별하잖소.”
“다른 이들은 알아서 다들 잘 하잖아. 실제로 화경의 경지에 다들 도달했고.”
“그건 그렇지만······.”
천만홍이 다시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원륭이 슬쩍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어쩌면 나는 악무양에 내 자신을 투영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투영??”
천만홍의 말에, 원륭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내가 쪽방촌의 무림인이라 불리었던 우리 조직에서, 악무양 같은 존재였었지. 무공은 일천하고, 그에 비해 의기만 높아서 아주 애물단지 같은 존재였어. 하지만 나의 동료이자 스승이었던 분들은 나에게 화 한번 안내고 나를 지극정성으로 단련시켜주었지. 고작 육합권과 삼재검 같은 것들을 가르치면서 말이야.”
원륭의 의도는 그들이 삼류무공을 가르쳐주었다가 아니라, 그런 무공을 가르쳐주면서도 매우 지극정성으로 가르쳐주었다는 의미였다.
처음 원륭이 무공을 배울 때만 해도 그는 뒤늦게 무공을 배운데다 온 몸엔 내공 한줌이라곤 없어서 그야말로 무공을 배우기에 부적절한 체질이었다. 사실상 무림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냥 무림인이랍시고 칼 한 자루 차고 다니며 아무 무공도 할 줄 모르는 삼류 저잣거리 자칭 무림인과 다를 바가 없었는데, 그런 그를 쪽방촌의 무림인들은 열심히 가르쳐주었다.
자신들의 수련시간을 줄이면서까지.
“사실 그분들의 입장에서는 나를 가르친다고 해서 도움이 될 것은 없었어. 전력으로 삼기에는 너무나 부족하고, 그렇다고 무슨 발전 가능성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
“하지만 너는 이제와 절정의 고수가 되었지 않는가. 그렇게만 보면 결과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었지.”
당화의 말에 원륭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결과적인’ 부분이니까 말이야. 그 당시에는 나도 누구도 내가 이렇게까지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 가장 약했던 내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을지도 몰랐지.”
“하지만 그것이 인생이오, 원륭. 그것이 진정한 인생······.”
“그래, 천만홍. 네 말이 맞아. 인생이란 한치 앞을 알 수가 없고, 순간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알 수가 없지. 이 선택이 옳은지, 저 선택이 옳은지, 혹은 지금은 좋아보였던 이 선택이 후에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도 모르니 말이야.”
그래. 확실히 그랬다. 원륭은 북경에 올라오자마자 불량배들에게 습격을 당해 온 몸의 혈도가 파괴됐지만, 그로 인해 점혈을 당하지 않는 체질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 습격을 당한 것으로 인해 쪽방촌의 무림인들에게 도움 받고, 그 이후에 무공을 익히는 기회를 얻게도 되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도 기연을 얻어 중독이 되었다가 도리어 내공이 늘어난다든가, 한빙신공의 한기에 목숨을 잃을 뻔했지만 다시 혈귀가 되어 되살아난다든지 하는 기가 막힌 사건들로 원륭의 인생은 가득 차 있었는데, 단순히 그렇다고 해서 감당할 수 있는 슬픔만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중국 정부의 만행에 대항해 일어난 것은 좋지만, 그 과정에서 형과 부모님이 모두 죽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새옹지마 그 자체나 다름없는 인생이었는데, 그 옛날 만리장성의 변방에 살았던 새옹이라는 한 노인의 말이 오랑캐들의 땅으로 도망쳤다고 한다.
이웃 사람들이 위로의 말을 전하자 새옹은 ‘이 일이 복이 될지 누가 압니까.’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 몇 달 뒤 도망친 말이 암말 한 필과 돌아와 이웃 주민들이 다시 축하하니, ‘이 일이 화가 될지 누가 압니까.’라며 기쁜 내색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며칠 후 새옹의 아들이 말을 타다가 낙마하여 다리가 부러지자 다시 한 번 위로의 말들이 들어왔는데, 새옹은 이번에도 이게 복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라며 태연자약하였다.
그리고 이후 북방의 오랑캐들이 쳐들어와 징집령으로 인해 마을의 젊은이들이 모두 전장에 나가야했는데, 다리가 부러진 새옹의 아들은 전장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생겼던 것이다. 인생사 길흉화복은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다는 뜻이었는데, 한낱 인간의 힘으로는 휘몰아치는 복잡한 인생사의 전말을 그 누구도 알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카오스인 것이다. 미스테리. 불가사의. 언제 어떻게 인생사에서 한 번도 겪지 못했던 미증유의 대재난이 일어날지도 몰랐는데, 그러니 인생이란 참으로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원륭도 그 점을 들어 말했다.
“무얼, 어찌 알겠나. 내가 이렇게 혹독히 단련시킨 덕분에 악무양이 살아남을지도 모르니 말이야. 적어도 훈련에서 철저하게 해야 실전에서 살아남지 않겠나??”
“그건 맞는 소리긴 하지······.”
진흑창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훈련은 실전 같이, 실전은 훈련 같이. 훈련은 실전 같이 치열하게 죽을 것처럼 단련하고, 실전은 훈련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진행한다.
그래야 제 실력이 나오는 것이다. 실전이라고 너무 긴장해서는 오히려 온 몸의 근육이 딱딱하게 굳고 판단력이 경색되기 때문에 대응능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과거로부터 훈련을 실전 같이 지독하게 하고, 실전은 그런 훈련에서 쌓은 경험을 통해 편안하게 해야한다는 말이 많았던 것이다.
뭘, 이건 원륭만의 주장은 아니고 보편적인 사실이다. 그야말로 진리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때 원륭의 철저하게 단련시킨다는 말에 누워있던 악무양의 몸이 갑자기 꿈틀거렸다.
실로 미세한 움직임이었지만, 예리하기 짝이 없는 세 총수와 원륭은 그 점을 동시에 목격했다. 그리고 원륭은 지체 없이 악무양을 깨우기 시작한 것이다.
“어이, 일어나. 정신이 든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으, 으음······. 마파두부······.”
악무양은 어처구니가 없게도 잠꼬대를 하는 척하며 이 힘든 상황을 모면하려고 했다.
그러나 원륭에게는 통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 마파두부가 먹고 싶었나보군. 안 그래도 나도 마파두부가 요즘 왠지 땡기고 있었다. 좋아, 훈련을 마친 후에 얼마든지 실컷 먹여주도록 하마.”
“새우볶음밥······.”
악무양은 지금 딱히 마파두부나 새우볶음밥을 먹고 싶어서 이런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끝까지 철저하게 잠꼬대를 하는 듯 가장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원륭에겐 통하지 않았다. 원륭은 곧바로 악무양의 눈꺼풀을 뒤집고 동공의 반응을 살폈다.
“뭐야, 이미 깨어 있잖아. 더 이상 연기를 하지는 말고 곧바로 일어나라. 안 그러면 코에 마파두부를 쑤셔 박아줄 테니.”
“허억!!!”
악무양은 기겁하며 단번에 일어났다. 원륭은 한번 한다고 한 것은 반드시 하는 남자였다. 기필코 지키고 마는 것이다.
이대로 일어나지 않으면 정말로 코에 마파두부가 쑤셔 박혀질 것이었는데, 그러니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잘못하면 새우볶음밥까지 박힐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악무양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일어났는데, 그런 악무양을 보며 원륭은 껄껄 웃으며 등짝을 두드렸다.
“그래, 그래, 마파두부랑 새우볶음밥이 먹고 싶었나보구나!! 좋다, 오늘은 미친 듯이 단련을 하고 그 이후에 식사로 두 가지를 먹자구나!!”
“워, 원륭, 살려주시오!! 아까 당신에게 당한 경혈의 상처로 인해 온 몸의 상태가 좋지를 않소!! 평소에도 못 당하는데 이대로 당신을 상대하면 죽음이오!!”
“무얼, 알아서 잘 상대해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언제는 내가 잘해주지 않았는가?? 하하하!!!”
원륭은 평소에 쓰지 않던 말투까지 써가며 친절하게 악무양을 병실 밖으로 내몰았다.
그러자 악무양은 끌려가며 세 총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여, 여러분!! 도와주시오!! 오늘은 정말이지 힘들어서, 아아악!!!”
그러다 결국 원륭에게 요혈을 제압당해 끌려가는 악무양을 보고, 세 총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다 진흑창이 입을 연 것이다.
“뭘, 그게 다 네 업보다, 악무양. 탓할려면 원륭이라는 악마를 만난 너의 운명을 저주하려무나. 다 인생의 좋은 경험이다 생각하고 해야지, 어쩔 수가 없다.(?)”
“······.”
다른 두 총수도 입을 다물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거나, 반대로 고개를 저었다.
두 총수의 제스처는 각각 달랐지만 그 의미는 똑같은 것이었다. 다시 한 번 지옥훈련에 돌입한 악무양을 추모하는 의미에서였던 것이다.
‘악무양 녀석, 이대로 가면 진짜로 죽을지도······.’
당화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원륭의 말대로 저 정도 지옥훈련도 버티지 못해서는 파천황을 상대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실제로 눈앞에서 파천황을 목격한 당화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의화단을 학살한 파천황은 당화의 눈에는 지옥의 사신보다도 더욱 두려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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