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1 역류
그때 일지흔이 물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있소. 당신은 진흑창에게 관자놀이를 얻어맞았을 뿐만 아니라 두개골도 쪼개졌는데 어떻게 진흑창의 절기인 회선무류창을 파훼한 거요?? 나의 눈에는 초식을 펼치던 그가 도리어 거꾸러진 것으로 보였는데.”
그러자 모두가 원륭을 쳐다보았다. 사실은 그들도 궁금했던 것이다.
대충 어느 정도는 짐작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도 사실 자신의 판단에 확신을 가지기 어려웠다.
그 정도로 원륭의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치명적인 타격을 두 번이나 입은 상태에서 날아오는 절기. 그것은 다른 이들이라고 해서 쉽게 받아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그건 나도 좀 궁금하군. 내가 어떤 경위로 해서 당했는지 말이야.”
“진흑창!!”
모두가 놀랐다. 특히 악무양은 대경실색을 한 것이다.
“당신 분명 기절하지 않았소?? 게다가 크고 작은 상처와 기력 소모가 장난이 아닐 텐데?!”
“뭐, 보시다시피 잘 일어났지. 물론 타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야.”
‘괴물······.’이라는 표정으로 악무양이 진흑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원륭이 반갑게 인사를 한 것이다.
“여!! 몸은 좀 어떤가?? 일어서서 돌아다닐 만한가??”
“그건 내가 할 말이지. 자네 역시 보통 몸 상태는 아닐 텐데?? 두개골이 쪼개진 상태로 멀쩡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야.”
그러자 모두는 원륭의 두개골이 아까 진흑창의 공격으로 쪼개진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원륭은 손을 머리 앞뒤로 붙이더니 침착히 말한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까먹고 있었군. 이대로 놔두면 잘못 붙을 수도 있으니 지금 바로 붙여야겠지.”
그리고 힘을 주자 우두둑!!! 소리가 나면서 전후로 쪼개졌던 전두골과 두정골이 붙어버렸다.
그 모습을 본 악무양은 이제 뭐라고 할 기운도 없어서 그저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어 댔던 것이다.
“뭐야, 다들 왜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거냐고. 이거 생각보다 꽤 쉬워. 그저 앞뒤로 분리된 뼈를 붙이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야.”
“······.”
그러나 모두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령 턱뼈나 어깨뼈와 같은 경우 습관성 탈골이 일어나는 경우 그냥 약간의 통증은 있지만 본인이 스스로 끼울 수도 있다.
그러나 두개골은 전혀 다른 것이다. 뇌가 관련돼있기 때문에 잘 쪼개지지도 않지만 쪼개졌다고 해서 본인이 함부로 끼우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척추교정술인 카이로프랙틱에도 두개골 교정요법이 있지만 전문가가 아니면 감히 해서는 안 되는 일.
전문가들은 아마추어들의 경추나 요추의 자가 교정도 추천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두개골 교정을 권장할리 만무했다.
아무튼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원륭의 두개골은 원래 자리로 돌아갔고, 그걸 원륭은 몇 번 톡톡 두드려보고 만져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잘 붙었군.”
“당신 두개골은 무슨 레고요?!? 말이 안 되지 않소!!”
“말이 왜 안 돼. 말이 되니까 이렇게 멀쩡하지.”
“하지만!!”
“악무양. 네 상식으로 안 된다고 해서 남들에게도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무술이든 의술이든 그 최고의 경지에 다다르면 반드시 해부학에 직면하게 된다. 전통 무술을 익히든, 최신식 종합 격투기를 익히든 양의학을 익히든 한의학을 익히든 그것은 마찬가지란 말이다. 그렇게 알도록. 나도 의사였던 분에게서 직접 다 배운 것이다.”
“······.”
의사가 가르쳤다는데 딱히 할 말은 없었다. 그렇게 제갈의에게서 배웠던 해부학을 거론하여 악무양을 침묵시킨 뒤, 원륭은 입을 열었다.
“그래, 자네가 왜 쓰러졌는지 알려달라고 했던가?? 음······. 자네와 나는 호각이었지. 아주 치열한 승부를 펼쳤어. 그것만은 확실하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말자고. 싸우면서 느꼈다. 네가 얼마나 많은 비기들과 잠재력을 숨기고 있는지는 말이야. 거의 반도 안 보여준 느낌이더군,”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의 단합과 서열 정리를 위한 대결에서 지나친 피를 뿌릴 수 없어 극단적으로 자제한 느낌이었는데??”
‘반의 실력을 숨겨?’
‘극단적으로 자제해??’
그 말엔 헐크G나 태사향 등도 어처구니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태사향은 물론이고 특히 진흑창과 원륭을 모두 상대해본 헐크G의 경우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낸 상태였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하고도 진 것이다. 그렇기에 미련도 없고, 후회도 없었는데 정작 그를 이긴 자들의 실력이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니 허탈감만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헐크G는 웃었다.
‘그래? 그게 전부가 아니란 말이지?? 내가 쫓아야 하는 녀석들의 실력은 그 정도로 대단하다는 말이지?? 하하하하하하!!!’
헐크G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 모습을 원륭과 진흑창은 곧바로 눈치챈 것이다.
‘헐크G녀석, 낙담할 줄 알았는데 도리어 신났군.’
‘그래, 이게 무림인이다. 헐크G. 너는 분명 더욱 더 강한 무림인이 되겠지······.’
그렇게 원륭과 진흑창이 싱긋 웃는데, 다른 이들도 각자 저마다의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나는 진흑창에게 압도적으로 패했다. 그나마 거기까지 끈 것은 진흑창이 손속에 사정을 두어서였겠지. 아, 강호의 하늘이란 참으로 높구나!! 이렇게 높고 강력한 자들이 있을 줄이야!!’
낙심하는 가운데서도 악무양 역시 각오를 다졌고, 그건 태사향이나 궁요, 일지흔 등도 마찬가지였다. 자고로 목표란 높으면 높을수록 이룰 가치가 있는 법.
그들이 평생을 다해 이룬 영역보다 아득하게 높은 단계에 있는 자들을 보고 그들은 의욕을 불태웠던 것이다. 아무튼 원륭은 이야기했다.
“분명 첫 번째 관자놀이 치기는 날카로웠다. 다들 보아서 알겠지만 그때 나는 진흑창의 회선무류창을 막느라 오른손이 봉인된 상태였고, 왼팔도 관절이 베여 쓰기가 어려운 상태였지. 자신의 오른팔로 나의 오른팔을 막은 채 남은 왼팔로 몸을 틀어 그 팔꿈치로 관자놀이를 가격한 진흑창 너의 공격은 탁월한 시도였다. 설마 나도 거기서 그런 체술이 나올 줄은 몰랐지. 진흑창, 어디서 그런 발상을 한 거지??”
그때 헐크G가 입을 열었다.
“그건 내가 추측 해봐도 될까?? 진흑창, 너는 무에타이의 기술을 쓴 거지?? 팔꿈치 치기와 무릎 치기는 무에타이의 절기. 맞추기는 어렵지만 일단 한번 들어가기만 하면 단숨에 턱뼈나 안면을 함몰시킬 수도 있을 정도의 강력한 기술들이다. 전 세계 무술 중에서 팔꿈치를 그렇게 잘 사용하는 것은 무에타이 정도밖에 없어. 그렇지 않나, 진흑창.”
“과연 헐크G. 견문이 넓군. 그 말대로다. 나의 창술에 무에타이 기술이 결합돼있는 것은 모두들 눈치 챘을 것이다. 아무리 맨손을 이용하여 단창술 비슷하게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그 나름의 약점은 있지. 나는 그걸 무에타이 기술로 보완한 것이다. 처음엔 무릎차기를 몇 번 시도해보았지만 이놈이 너무 빨라서 직선적인 궤도의 무릎차기는 거의 먹혀들지 않았어. 하지만 무에타이에는 인체의 단단한 부위를 이용한 기술들이 아주 많지. 그 대표적인 것들이 바로 무릎치기와 팔꿈치치기이다. 다만 인체에서 가장 단단한 부위인 두개골을 이용한 박치기는 규정으로 금지돼있지만······.”
진흑창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진흑창이 말하지 않아도 다른 이들은 대체 왜 타이에서 무에타이의 룰에 박치기를 금지해놨는지 알아차렸다. 너무나도 위험한 것이다.
결국 물체의 파괴력이란 그 중량과 강도, 속도와 비례하는데 인체에서 가장 단단한 부위인 두개골을 전력으로 이용해 강타하면 무릎치기나 팔꿈치치기를 능가하는 대참사를 낳을 수 있었다.
상대의 안면에 정통으로 적중한 두개골은 단숨에 코뼈를 비롯해 모든 것을 함몰시켜 버리겠지. 턱뼈가 부서지고, 이가 뽑힌 뒤 안와마저 골절이 생길 것이다.
그러니 지극히 상식적인 현대인들의 세계에서는 그런 박치기 공격을 허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초실전주의 지향적 공수도 계열에서는 상대방의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정권을 이마를 이용해 받아내라고 가르치는 곳도 있지만, 그것도 극히 한정된 상황에 불과할 뿐이지 하이킥을 비롯해 모든 기술을 그렇게 다 받아내라고 하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인체내에서 가장 단단한 두개골을 이용한 공격과 방어의 제한적인 사용법일 뿐.
정권 정도라면 손뼈보다 단단한 두개골을 이용해 받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제대로 체중이 실린 하이킥을 무식하게 머리로 받아 내려다간 관자놀이에 맞고 뇌사상태에 걸리기 딱 좋은 것이다. 아무튼 진흑창에 이어 원륭은 말을 계속했다.
“그렇게 무에타이의 비기 중의 하나인 관자놀이 팔꿈치 타격을 받곤 제아무리 나라도 정신이 혼미해졌다. 솔직히 그 순간 질 뻔했지. 그때 의외의 공격이 날아왔다. 바로 진흑창의 두개골 쪼개기였지. 높이 들어 올린 발뒤꿈치로 내 두개골을 강타해 전후로 쪼개버렸는데 근데 이거 무에타이에 있는 기술 맞나?? 나도 얼핏 무에타이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팔꿈치나 무릎이라면 몰라도 발뒤꿈치를 사용하는 기술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원륭의 말에 진흑창은 답했다.
“아, 그건 내 개인적인 기술이다. 분명히 무에타이에서는 발뒤꿈치는 공격에 쓰지 않지. 발뒤꿈치를 항상 들고 어떻게 보면 약간 애매한 듯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무에타이의 핵심이다.”
“그런데 당신은 발뒤꿈치를 들고 있지 않던데??”
악무양의 갑작스런 질문에, 진흑창은 피식 웃었다.
“그야 내가 전문적인 낙무아이가 아니니까. 나는 프로 무에타이 선수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창술에 더해 내가 익힌 중국 무술에다 무에타이의 기술을 더했을 뿐이지. 무에타이에선 발뒤꿈치를 들지 않고 대기하는 자세는 초보도 하지 않는 말이 안 되는 자세이지만, 나는 온전한 낙무아이가 아니다.”
“그렇군······.”
악무양이 수긍하자, 진흑창은 덧붙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발뒤꿈치 공격이 무에타이에서는 절대 없을 거란 생각은 하지 말라고. 무에타이엔 금지된 규칙이 몇 개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게 물기, 박치기, 침 뱉기, 눈 찌르기, 마우스피스 뱉기, 낭심 공격, 쓰러진 상대를 공격하기 뭐 이런 것뿐이고 사실 발뒤꿈치 공격은 엄밀히 말하면 금지기술이 아니야. 다만 발뒤꿈치 공격은 보통 쓰러진 상대를 공격할 때 자주 쓰므로 그것이 금지되면서 자연스럽게 쓰기 힘들어진 것뿐이지. 즉, 아까 내가 한 것처럼 내려찍는 기술은 엄밀히 말하면 상단차기의 일종으로 포함 되서 허용된다.”
“잠깐, 다른 기술들은 그렇다 치고 물기나 침 뱉기는 왜 금지돼있는 거야?? 마우스피스 뱉기는 왜 금지돼있고??”
“누군가 했으니까 그렇지. 지금이야 금지돼있지만 과거에는 그런 일들이 잦았다는군.”
“무에타이, 정말 무서운 무술이구만······.”
악무양이 혀를 내두르는데 진흑창이 추가로 설명해줬다.
“무에타이에서 타격금지부위는 후두부와 낭심, 척추 부분뿐이고 그에 따라 내가 가한 내려찍기는 무에타이 규정으로 따져 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씀.”
“뭐, 그건 됐고 이제 원륭의 얘기를 들어보지. 과연 그 상황에서 어떻게 당신의 절기를 파훼했는지 말이야.”
그러자 진흑창을 비롯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가장 궁금한 것은 이 부분 인 것이다. 원륭이 입을 열었다.
“관자놀이를 맞고 정신이 혼미해진 나였는데, 그 순간 정수리에 두개골을 반으로 쪼개는 일격이 들어왔다.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매우 충격적인 일격이었지. 그러나 나는 그 순간 가해진 충격을 흘려내, 그와 동시에 진흑창이 붙잡은 오른손에 가하고 있던 회선무류창의 강기를 파훼하는데 그 힘을 쏟아 부었지. 왼팔을 쓰지 못하고 관자놀이에 타격을 입은 상태에서 내가 쓸 수 있는 힘은 한정돼있었다. 그때 진흑창이 내려찍기를 가해준 덕분에 나는 그 힘을 더해 진흑창이 가하고 있던 힘의 흐름을 가속화시켰다. 그 결과 진흑창은 땅바닥에 내리꽂힌 거지.”
“그럼 결국 자네 말은······. 진흑창이 자기 힘에 의해 자기가 당했다는 건가??”
“뭐, 말해보자면 그렇게 되겠지.”
“······.”
잠시 좌중에 침묵이 어렸다. 결국 원륭의 말대로라면 진흑창은 끝장을 내기 위해 가한 자신의 힘에 의해 자신이 먹혀버렸단 소리가 되었단 것이다. 그러자 악무양이 입을 열었다.
“잠깐!! 이해가 안 되는데?? 어떻게 정수리에 가한 내려찍기의 힘이 도로 되돌아가 진흑창 본인을 타격한다는 거요?? 그게 말이나 돼??”
이해하지 못하는 악무양이었으나, 진흑창이 곧바로 보여주었다.
“악무양, 지금 나를 한번 쳐보게.”
“뭐라고???”
“전력으로 한번 쳐보라는 말일세. 권법을 배우지 않았어도 주먹질 정도는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부상자를······.”
“후후, 부상자라고 해도 나와 너의 전력은 하늘과 땅 차이를 초월한다. 비겁하다는 소리를 하지 않을 테니 한번 쳐보게. 아니면, 설마 부상자 하나도 쓰러트릴 자신이 없나??”
“이 자식!!!”
단순한 악무양은 바로 분개해 곧바로 주먹을 날려버렸다. 그러자 진흑창은 가볍게 그 오른손을 내밀어 날아오는 악무양의 주먹을 감싸 쥐었던 것이다.
그런데 주먹을 내지른 악무양이 도리어 어처구니가 없게 바닥에 처박혀버렸다.
쾅!!!
“컥!!”
미처 채 낙법도 취하지 못하고 바닥에 처박힌 터라 악무양은 예상외의 크나큰 충격을 받아서 꿈틀꿈틀 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진흑창은 차갑게 내뱉은 것이다.
“그 몸으로 배운 강의는 잘 깨달았나?? 이것이 바로 힘의 흐름. 즉 ‘역류’다.”
역류.(力流) 그 말 그대로 힘의 흐름에 의해 악무양은 미처 손도 쓰지 못하고 처참하게 당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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