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무림기

14-12 경기(經氣)의 소용돌이

이 소식은 곧바로 원륭 일행의 귀에 들어갔다.

“원륭!! 방금 막 천안문 광장에서 시위를 하던 법륜공 수련자들이 잡혀갔다는 소식이 들어왔소!!”

슥. 원륭은 공중에 떠오른 채로 좌선을 하던 것을 멈추고 일지흔을 바라보았다.

일지흔은 헐레벌떡 원륭을 비롯해 다른 이들에게 소식을 알리고 있었다.

원륭 일행은 각자 조직에서 맡은 역할이 있었고, 그 외에도 돌아가며 매일 일정 시간 당직 비슷한 것을 서야했다.

이 홍콩 지하에 있는 비밀 경기장에서는 온 중국 대륙 및 전 세계의 정보가 지금 이 순간에도 물밀 듯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세계 각지에 있는 정보원들이 정보를 보내주면, 3대 그룹의 정보실에 속한 자들이 그 정보의 경중을 분류해 간추려 윗선에 보내주고, 그것을 윗선인 원륭 등 아홉 명의 최고 수뇌부가 판단하는 것이다.

사실 악무양은 그럴 능력까지는 되지 않고 자기 수련을 하기에 만도 모자라 정보관련 업무는 하지 않았지만, 매일 당직을 서며 정보실에서 처리되는 정보들 중 긴급 정보가 있으면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마침 일지흔의 차례였던 것이다.

일지흔의 말을 듣고, 원륭은 일어섰다.

탁. 공중에 부양한 채로 좌선을 하던 원륭이 다리로 땅을 밟았다. 손도 대지 않고 가부좌하던 자세에서 그대로 일어선 것이다. 일지흔은 그것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또 한 번 경지가 오른 것 같구려.”

“이 경지에 오른 지는 이미 좀 되었어. 그보다 이만 가자구.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

일지흔은 속으로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의 수준은 단순히 그 파괴력이라든가 속도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태양혈이 볼록해진다든가, 안광이 형형해지고 한눈에 보아도 정기가 넘쳐흐르는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는데 이처럼 좌선을 하는 중에 신체가 부양하는 것도 그 모습 중 하나인 것이다.

딱히 의식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몸이 떠오르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면 머리 위로 칠색 무지개가 뜬다든지, 오색찬란한 연꽃이 떠올랐다가 도로 사라지는 등 다양한 현상이 있었는데 아무튼 두 사람은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에는 이미 대부분의 일행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명의 총수가 회의실로 들어오며 모두 모인 것이다.

“미안하군. 신년 첫날이라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잠시 경기장을 떠났네.”

진흑창의 말에 원륭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기업 총수면 당연한 일이겠지. 미안할 것은 없어. 그보다 소식은 들었나??”

“그래. 천안문 광장에서 법륜공 수련자들이 잡혀갔다며??”

“······.”

원륭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법륜공 수련자들이 탄압받기 시작한 지는 이미 몇 해 되었다.

과거 국가주석인 장쩌민은 자신이 법륜공으로 인한 효과를 보았다고 주장하고 법륜공의 창시자인 이홍지를 대사라 부르며 대외적으로 공경하는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데 돌연 2년 전인 1999년부터 본격적으로 탄압을 시작한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법륜공이 사교단체이며 법륜공 수련자들이 사이비라는 이유라고 주장했지만, 그런 논리를 펼치기에는 장쩌민 본인의 잘못도 있었다.

만일 사교단체에 사이비라면 왜 국가주석인 본인이 스스로 그 효과를 널리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이홍지를 대사라 불렀단 말인가??

설령 정말로 사이비라고 해도 그러면 그럴수록 더더욱 장쩌민 본인의 잘못도 커지는 것이다.

법륜공 수련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데에는 법륜공 수련자들이 스스로 전파하고 법륜공에서 일체의 금품을 요구하지 않은 덕분도 있었지만, 그 이유 중에는 장쩌민의 선전 덕분도 있었다.

실제 중국에서는 법륜공 외에도 기타 기수련 단체들이 이 시기 상당수 출현했는데, 그들중 가장 커진 단체는 법륜공이었다.

그 이유가 장쩌민의 홍보덕분임은 부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 정말로 법륜공이 사이비라고 하더라도 그런 사이비 단체를 섣불리 국가적 차원에서 표창을 주고 장려, 지원한 장쩌민 역시 그런 논리로 따지면 사이비라고 할 수 있었는데, 내로남불이 일상인 중국 정부와 공산당 수뇌부답게 그런 책임을 따지는 것은 일체 없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악무양도 이 점을 지적했다.

“쳇!! 장쩌민 이 개새끼!! 그렇게 따지면 결국 법륜공을 가장 많이 홍보한 것은 본인이 아닌가!! 표창을 주고 국가적 차원에서 장려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사이비 단체라니!! 그렇게 따지면 그놈도 사이비인거야!! 제 얼굴에 침 뱉기이지!!”

퉷!! 하고 악무양이 땅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러자 진흑창의 얼굴이 굳어진 것이다.

“악무양. 회의가 끝나고 네 침은 네가 스스로 닦아라.”

“아, 알겠소······.”

진흑창의 한 마디에 악무양은 곧바로 기가 죽어버렸다. 진흑창 역시 원륭과 동급의 고수였는데, 비록 지난 대회에서는 원륭에게 아슬아슬하게 지기는 했지만 그 강함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의 강함에 원륭은 혈귀로서의 진면목까지 일부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헐크G와 싸울 때라든가, 태사향의 창에 심장을 관통 당했을 때도 원륭은 혈귀의 재생력을 극도로 운용하여 망가진 신체를 수복했는데, 진흑창 뿐만이 아니라 이들 중에 약한 이는 하나도 없었다.

물론 줄을 세운다면 강약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 중 어느 누구 하나 지금 당장 무림에 나서도 약한 모습을 보일 자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무려 악무양도 마찬가지였다.

때는 2001년. 1989년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 뒤로부터 무려 10년이 넘게 흘렀는데, 그렇게 오랜 기간 수련한 이상 제아무리 미숙했던 악무양이라도 일류고수로 탈바꿈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어느새 악무양은 절정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다른 이들에 비해서는 부족하고 다른 이들은 이미 절정을 넘어 초절정으로 가는 길에 막혀있었는데, 진룡 등이 과거 모두 이 벽에 막혀 초절정의 벽을 뚫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사실상 그들의 한계는 여기까지라고 봐야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화경의 경지는 달성했지만 신화경, 현경이라고 불리우는 경지는 달성하지 못하는 것인데, 물론 같은 화경이라고 해도 그 수준 차이는 상당히 크지만 일단은 무려 아홉 명 중 여덟 명이 화경의 경지를 달성한 것이다.

원륭이나 진흑창, 천만홍, 당화의 경우는 이미 10년 전 화경의 경지를 달성한지 오래였고, 태사향이나 헐크G, 궁요, 일지흔 등도 각각 달성한 시기는 다르지만 작년을 계기로 모두 화경의 경지를 달성했다. 아무튼 유일하게 아직 화경에 들지 못한 일류 고수, 악무양이 입을 열었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갑시다. 중국 정부에서 법륜공 수련자들을 탄압한지는 이미 2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우리는 이제까지 아무런 간섭을 보인 적이 없소. 이제는 뭔가 행동을 해야 할 것이 아니겠소?? 지난 2년 동안에도 엄청난 수의 법륜공 수련자들이 잡혀 들어가 버렸고, 그들의 행방을 알 수가 없소. 가족들의 면회는 금지되었고 석방도 되지 않은 채 도저히 생사의 유무도 알 수 없는데 본격적으로 조사를 해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소??”

“조사는 지금도 이미 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전역의 교도소 등 주요 시설에는 이미 공안 무림맹의 특수요원이 잠복하고 있지. 그것은 이미 듣지 않았나??”

“······.”

그것은 이미 악무양도 들은 사실이었다. 원륭 일행은 최근 세 총수의 기업들의 정보망을 통해 조사한 결과, 중국 전역의 주요 시설에 공안 무림맹 특수요원이 파견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철저하기 짝이 없는 공안 무림맹이나 그 수장인 파천황의 특성상 이미 원륭의 생존을 눈치 채고 있거나 혹은 살아있다고 가정하고 있을 것이다.

원륭이 살아있기 때문에 천안문 광장에서는 89년 당시 원륭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아온 전차의 포격으로 인한 충격 때문에 원륭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는데, 눈을 떠보니 북경 뒷골목 어느 쓰레기장에 버려져 있었다.

그 경위는 원륭 스스로도 아직까지 이해가 되지 않는 미스테리였는데, 아무튼 파천황이 이를 놓칠 리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원륭은 반쯤 죽었다고 가정해도 팔배란 조직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었고 신강 위구르 자치구에서도 명교의 잔당이 나타났다는 등 기상천외한 소식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원륭은 새로운 테러조직이라는 팔배라면 몰라도 명교의 잔당 쪽은 그냥 헛소문이거나 독립을 바라는 위구르인들의 열망이 낳아낸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무튼 그러한 공안 무림맹 파견부대의 등장으로 인해 원륭 일행의 운신의 행보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었다.

전부터 암암리에 존재했던 홍콩 내 중국 정부나 공안 무림맹 쪽 첩보요원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정보도 들어온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섣불리 발을 내딛을 수는 없었다.

섣불리 발을 내딛으면 파멸이다. 과거 쪽방촌의 무림인들은 소수 정예의 형태로 중국 전역을 도망 다니며 저항운동을 벌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천안문 사태 때 시민들이 학살되는 것을 참지 못하고 나섰다가 전멸하고 말았다.

지금 그러한 행위를 해봤자 같은 꼴이 나는 것이다. 원륭은 이 점을 언급했다.

“참고 있어라, 악무양.”

“대체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 것이오!! 우리가 힘을 기른 것은 이때를 위해서가 아니오?! 무려 10년을 힘을 길렀소, 10년을!! 정확하게 따져보면 10년도 더 넘어!! 폐관수련도 이 정도면 정도가 있지 대체 언제까지 참아야 한단 말이오!!!”

콰아앙!!!

악무양의 몸에서 맹렬한 기파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의외의 시선을 보인 것이다.

‘호오, 악무양 녀석 이렇게까지 실력을 길렀나.’

‘수련의 성과가 헛된 것은 아니었군.’

처음 만났을 당시 그저 기세와 의기만으로 달려들던 악무양은 이미 사라졌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명실공이 무림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일류 무인 악무양인 것이다. 그의 온 몸을 통해 거센 기파가 용솟음치고 있었는데, 그때 갑자기 이변이 일어났다.

회의실 천장의 전등이 꺼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맹렬한 속도로 깜박거리다 갑자기 터져버렸다. 그리고 연달아 회의실 내의 모든 전등이 터져버린 것이다.

파파팍!!!

“!!!”

모두가 움찔했는데 어두컴컴한 지하 경기장 회의실 안에서 한 쌍의 눈만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그 눈의 주인은 원륭이었다.

“언제부터 네가 그렇게 커졌지, 악무양???”

“크윽!!!”

악무양은 자신의 온 몸을 조이는 압력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쿵!!

그대로 머리부터 처박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는데, 그것은 악무양의 일류 무인으로서의 성장을 보이는 것이자 그의 의지이기도 했다.

온 몸을 조이는 경기(經氣)의 소용돌이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그 정도뿐이었던 것이다.

악무양이 새파래진 얼굴로 파들파들 떨고 있는데, 원륭은 한 손으로 턱을 괸 채로 태연하게 말했다.

“너는 말이야. 뭔가 착각하고 있군. 내가 나서고 싶지 않아서 나서지 않는 것으로 보이나?? 문화대혁명 때부터 무려 35년을 넘게 투쟁한 내가!!!”

꽈아앙!!!

손도 대지 않았는데 회의실 중앙에 있는 대리석 탁자가 터져나갔다. 그리고 일행 중 일부도 악무양과 같은 압박감을 느낀 것이다.

“우웩!!”

악무양이 입에서 피를 뿜었다. 강대한 경기의 소용돌이를 견디지 못하고 토혈을 하고 만 것인데, 일지흔도 같은 현상으로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려는 것을 느꼈다.

‘안 돼! 참아야 해!! 모두의 앞에서 그런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

아직 초입이었지만 명색이 일지흔도 화경에 든 몸이었다. 그런데 그런 화경의 고수인 자신이 토혈의 충동을 느꼈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몸속의 뿜어져 나오는 피를 토하고 편해지고 싶었는데, 일지흔은 두 눈을 감고 필사적으로 명상했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해!!’

일지흔은 필사적으로 참고 명상에 들어갔다. 그리고 운공을 하자 가까스로 토혈의 충동이 멈춘 것이다.

‘휴우······.’

일지흔이 한숨을 돌리고 주변을 돌아보자, 진흑창이나 천만홍, 당화는 담담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헐크G나 태사향은 살짝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지만 그런대로 참을만해 보였던 것이다.

그때 일지흔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내공을 돌리다 눈을 뜬 궁요를 발견했다.

‘자네도??’

‘······.’

궁요는 일지흔의 시선에 쓴웃음을 지었다. 화경에 이른 궁요와 일지흔으로서도 원륭의 의기상인의 수준에 가까운 경기의 소용돌이에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