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홍콩의 맹주
![DUMMY](http://cdn1.munpia.com/blank.png)
“베었나!!”
보고 있던 이들은 일동 주목했으나, 물러선 원륭의 팔이 떨어지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잠시 관절을 붙잡고 있다가 손을 놓고 보니 그곳엔 아무런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괴물······. 어마어마한 재생력이군······.”
진흑창이 질렸다는 듯이 혀를 내둘렀다. 방금 전 그 일격은 진흑창으로서도 회심의 일격이라 상당히 잘 들어갔다는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분명히 깊이 베고 들어간 촉감이 있는데, 원륭은 아무렇지도 않게 멀쩡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원륭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니. 상당히 깊이 베였다. 하지만 진흑창, 내 팔을 떨어트리고 싶었다면 베기가 아니라 찌르기를 했어야지. 창술의 최고 장점을 살리지 않은 너의 실수다. 이제 두 번 다시 그러한 기회는 없겠지.”
“창술의 최고 장점이라. 그런가. 과연 그렇군······.”
두 사람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태사향이나 악무양 등 이 5인의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악무양이 물었다.
“창술의 최고 장점이 뭐요??”
“창술로 할 수 있는 게 뭐겠나??”
“그야 찌르기, 베기······. 그렇군. 원륭은 지금 진흑창보고 왜 찌르기가 아니라 베기를 하지 않았냐고 묻는 것이군!!”
“그렇다. 창이나 검이나 둘 다 찌르고 베기를 할 수 있지만 찌르기는 창이 더 강하고 베기는 검이 더 강한 게 상식. 그래서 원륭은 좀 더 깊은 상처를 내고 싶었으면 찌르기를 하는 게 낫지 않았냐고 묻는 것이야.”
태사향의 말에, 악무양은 고개를 갸웃 저었다.
“흐음, 그런데 과연 찌르기를 했어도 효과적인 상처를 줄 수 있었을까?? 나도 산에서 나무꾼 노릇하며 야생 닭 수도 없이 잡아보고 손질도 해보았는데, 한낱 닭고기도 관절부분은 그리 쉽게 끊기지 않소. 칼이든 창이든 찌르기보다 베기가 관절을 더욱 쉽게 해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전혀 틀린 말은 아니군.”
“그리고 방금 전 진흑창은 먼 거리에서 돌진해서 찌르기를 날릴 공간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초근접거리에서 원륭의 팔을 타고 수도를 날린 것이라 찌르기를 하기가 애매했을 것 같소. 나 같으면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을 것 같소.”
그 말을 마치고 악무양이 두 손을 들어 시험을 해보았다. 초근접거리에서 하는 찌르기와 베기. 실제로 해봐도 베기가 그나마 수월한 것이다. 헐크G도 그에 동의했다.
“그래. 실제로 서구 유럽에서는 중세 기마전에서 돌진 후 창을 찌르는 것이 주 전법이었지. 그것이 창술의 돌진력과 파괴력을 살리는 주 묘미인데, 창이란 기본적으로 확실히 찌르는 무기이지 베는 무기가 아냐. 어디까지나 부차적으로 ‘벨 수 있다.’ 이 정도이고 찌르기가 가능하다면 찌르기를 하는 게 낫지. 찌르기를 할 공간이 나오지 않았다는 자네의 말에는 나도 동의하네. 아마 순간적으로 그러한 시간과 공간을 만드는 것도 그리 쉽지 않았겠지. 하지만 찌르기가 더욱 효과적이었을 거라는 원륭의 말에 진흑창은 동의했어. 아마 그들만이 아는 뭔가의 타이밍이 있었겠지.”
“과연······.”
악무양도 이에 납득했다. 악무양은 이들 중 최약체이긴 하지만, 그래도 분명히 아는 것이 있다. 무공이란 어느 단계를 넘어갈수록 전의 단계와는 차원이 다른 강함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비단 무공뿐만이 아니라 학문 같은 것도 어느 경지를 넘으면 전의 경지는 더욱 쉽게 느껴지고, 전에 자신이 세운 이론을 스스로 뒤집거나 쓰레기 보듯 보게 되는 경우도 흔했다.
즉 그는 어렵다고 판단해도 절정 무인인 저 둘이라면 자신들만이 납득할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그는 창술의 고수도 아니고 정작 창술을 쓰는 진흑창이 납득했다면 분명히 뭔가가 있는 것이다.
괜시리 진흑창이 원륭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그러한 불필요한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때 진흑창이 입을 열었다.
“그렇군. 그럼 보여줄 만한 것들은 모두 다 보여줬으니 정말 그 창술의 진수인 찌르기를 보여줄까??”
콰아아!!!
진흑창의 오른손에 맹렬한 강기가 돌기 시작했다. 진흑창의 절기인 회선무류창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회선무류창!!!”
태사향이 소리치자 헐크G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슬슬 끝을 내려는 것 같군. 보여줄 만한 것들은 모두 보여줬으니 말이야. 아직 숨겨둔 비기가 몇 개 더 있을 것도 같지만 비기란 무림인의 재산. 여기서 생사의 승부를 가릴 것도 아닌데 어차피 앞으로 서로 같이 싸울 상대를 대상으로 자신의 모든 절기를 다 꺼낼 필요는 없겠지. 불구대천의 원수도 아니고 말이야. 이 한 초식으로 승부는 날 것 같다. 그리고 그때 홍콩의 새로운 맹주는 탄생하겠지.”
홍콩의 새로운 맹주!! 얼핏 보면 대단하지 않은 것 같기도 했지만 홍콩의 절대적인 지배자는 지금까지 단 한명도 탄생한 적 없었다.
무림사에서 보면 홍콩은 비교적 최근에 주목받기 시작한 무공의 불모지이고, 영국의 지배 아래 홍콩이 발전하면서 그러한 무공이라든가 어둠, 뒷세계 또한 발전했던 것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그저 사람 없는 섬들의 무리, 즉 열도나 다름없었는데 그런 변방의 오지에서 드디어 처음으로 통일된 맹주가 탄생한다는 것은 무림사에 있어서도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조금 전 진흑창의 오른손이 벤 것은 왼팔의 관절이었기에 원륭은 내색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속으론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제길. 이거 생각보다 너무 깊이 베였군. 정말로 찌르기에 당했으면 끊어졌을지도······.’
팔이 떨어진다고 해서 혈귀인 원륭이 붙일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혈귀라도 그 정도 상처를 입으면 수복에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겉으론 멀쩡히 붙어있는 듯 하지만 지금 사실은 끊어지기 직전인 원륭의 왼팔도 그 자체만으로 상당한 짐이 되는 것이다.
‘한 팔로 회선무류창을 상대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어쩔 수 없지······. 일단 해본다!!’
원륭은 다친 왼팔을 늘어트리고 오른팔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일단 막고 나서 반격을 가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때 진흑창이 단번에 달려들었다.
“회선! 무류창!!!”
콰아아!!!
막대한 경력이 쏟아져 나왔다. 어지간한 무림인들이라면 휘말리는 것만으로도 단번에 즉사할 어마어마한 경기의 소용돌이.
창술의 본질인 찌르기에 거기다 회전의 이치를 가미함으로써 지금 진흑창의 회선무류창은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게다가 돌진 거리도 충분해서 원륭의 몸에 타격할 때에는 가장 최적의 위력을 내는 것이다.
원륭은 다친 왼팔을 놔두고 오른손으로 다가오는 진흑창의 오른팔을 막았다.
콰직!!
“엇, 저러면!!”
“한손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텐데!!”
악무양과 일지흔이 소리 질렀다. 양손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손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만약 한손만으로 방어를 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한손은 무의식적으로 균형을 잡는데 사용되고 혹시라도 방어에 성공한다면 그 즉시 반격을 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원륭의 부상은 생각보다 심해서 축 늘어진 원륭의 왼팔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때 원륭이 진흑창의 오른팔을 붙잡자, 진흑창은 순간적으로 왼팔을 들어 몸을 회전하며 팔꿈치로 원륭의 관자놀이를 때렸다.
콱!!
“앗, 안 좋아!! 저러면 기절한다!!!”
헐크G의 말대로 저런 와중에 관자놀이를 타격당하면 정신을 잃거나 최소한 정신이 혼미해져 그 순간 방어에 취약해질 수 있었다.
과연 천하의 원륭도 관자놀이를 강타 당하자 그 순간 비틀, 하며 상체가 흔들렸다.
그리고 진흑창은 다시 왼발을 들어 발뒤꿈치로 원륭의 두개골을 내려친 것이다.
쩌억!!
누구라도 알 수 있을 만큼 큰 소리가 들려왔다.
‘두개골이 쪼개졌군······.’
‘이래서는 승패의 문제가 아니라 재활을 해야 할지도······.’
상황을 파악한 자들은 모두 인상을 찌푸렸다.
두개골은 분류방법에 따라 다르지만 크게 모두 18개의 뼈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들이 한 개의 통짜가 아니라 결합된 형태인데, 인체에서 가장 단단한 부위인 두개골이었지만 그 틈의 취약한 부위에 충분한 타격이 들어가면 의외로 쉽게 분해되거나 부서졌다.
방금 전 진흑창은 두개골의 앞을 크게 차지하고 있는 전두골과 뒤를 크게 차지하고 있는 두정골의 정중앙을 강하게 내리쳐 그 연결지점을 박살낸 것이다.
그 정도면 뇌에도 충분한 타격이 갈 정도였는데, 그러니 그 사실을 알아챈 자들이 인상을 찌푸리는 게 당연했다. 생사를 건 대전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하는 건 잔혹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진흑창에겐 그러한 이유가 있었다.
‘안 돌아가!!!’
본래 진흑창은 그저 회선무류창의 회전력과 돌파력으로 원륭을 꿰뚫으며 동시에 땅바닥에 처박을 생각이었다.
어지간한 상대는 그것만으로도 창의 위력을 감당 못하고 쓰러질 뿐이었는데, 놀랍게도 한손만을 사용해 그의 팔을 잡은 원륭에 의해 회전이 멈췄던 것이다.
그러자 진흑창은 왼팔을 사용할 수 있다는 자신의 이점을 이용해 원륭의 관자놀이를 팔꿈치로 쳐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발뒤꿈치로 내리쳐 원륭의 두개골을 쪼개버렸다.
그런데 그 순간 기묘한 일이 일어났다. 관자놀이를 맞았을 때까지만 해도 비틀거리던 원륭이 두개골이 쪼개지고 나서 갑자기 자세를 잡았던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진흑창의 시야가 돌아갔다.
‘어, 왜 내가?!?’
본래대로라면 관자놀이와 두개골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원륭은 더 이상 회선무류창을 멈추지 못하고 그 회전력에 휩쓸려 쓰러졌어야 했다.
그런데 반대로 타격을 입힌 자신이 돌아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진흑창의 사고는 거기까지였다.
자신의 회선무류창의 회전력에 의해 돌아간 진흑창의 시야에, 다가오는 원륭의 발길질이 보였던 것이다.
‘제길······.’
콰직!!
거기서 진흑창의 시야는 끊겼다.
“승부결착! 승부결차악!!! 아, 참으로 치열하고도 위험한 대결이었습니다!!! 설마 우승자를 가리는 결승전이긴 했지만 이 정도의 대결일 줄이야!!! 하지만 그 우승을 차지한 것은 원륭!! 원륭 선수입니다!!!”
“와아아!!!”
“대단하다, 원륭!!!”
“네 덕에 열 배는 벌었어!!!”
“개소리하지마라, 화구!!”
“이게 무슨 일이냐, 이건 사기야, 사기!!!”
순식간에 장내는 혼돈의 도가니로 변했다.
순수하게 원륭의 우승을 축하하는 자들과 당초 우승후보와는 거리가 있었던 원륭에게 걸었다 떼돈을 번 자들, 그리고 반대로 돈을 잃거나 진흑창의 수하라 원륭에게 감정을 가진 자들의 환호, 비난, 야유가 섞여 장내는 아수라장이 되었던 것이다.
“아, 화내지 마세요! 화내지 마세요!!! 적어도 물건은 던지지 마세요!!!”
돈을 잃거나 성난 군중들이 온갖 물건을 던지기 시작했는데 원륭은 개의치도 않고 있었다.
애초에 그 정도 투척력을 가진 물건들로는 원륭이 평소에 쳐놓는 기파를 뚫고 그의 몸에 닿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광범위 호신강기인가.’
‘과연 대단하군.’
헐크G와 태사향은 바로 알아차렸다.
무림인들은 보통 어느 수준에 이르러 호신강기를 익히게 되면 몸 바로 표면에 쳐놓지만, 그보다 더 수준이 높은 무림인들은 몸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호신강기를 쳐놓는다.
물론 그 차이라 해봤자 불과 수 cm. 그러나 그 정도 미세한 차이가 커다란 결과를 낳는 것이다.
몸 바로 근처에 호신강기를 쳐놓으면 대부분의 충격을 흡수하더라도 몸에 어느 정도 완전히 흡수하지 못한 충격이 전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어떤 자들은 호신강기의 펼치는 지점을 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일부러 약간 거리를 두고 펼쳐놓기도 한 것이다.
그렇게 하면 화살이라든지 암기 같은 것도 좀 더 먼 거리에서 막을 수 있고, 그런 호신강기가 레이더와 같은 역할을 하므로 좀 더 수월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펼쳐진 호신강기가 일차로 감지를 한다면 비록 그 방어막이 뚫려도 날아온 암기나 화살이 닿기 전에 곧바로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무림인들도 비록 호신강기를 사용하지는 못해도 기파를 널리 퍼트려 놓아서 그런 식으로 감지를 하기는 하는데, 원륭처럼 실제 투척을 막을 정도로 저렇게 범위가 넓은 광범위 호신강기를 펼쳐놓은 자는 그들로선 처음 보는 것이었다.
실제 지금 원륭의 호신강기는 수 미터에 이르러 자신은 물론이고 쓰러진 진흑창, 그리고 무대 전체를 투척물로부터 보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대단하군. 확실히 우승할 만한 이유가 있다.’
- 작가의말
본문에 진흑창이 원륭의 두개골을 쪼갠 방법은 첨부한 이미지와 같이 앞의 전두골과 후의 두정골을 쪼갠 것입니다.
두개골이 쪼개진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죽는 것은 아니고, 고대로부터 무술인들 역시 인체의 구조에 대해 해박했기 때문에 일부러 상대의 두개골이라든가 각종 뼈를 쪼개는 방법 역시 무술의 유파에 따라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두개골은 아니지만 턱을 빠지게 한다든가, 어깨를 뽑아서 탈골시킨다든가하는 것도 모두 같은 원리라 볼 수 있겠지요.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