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2 환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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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리할까??”
“아니, 됐어. 그냥 내가 마무리하는 게 낫겠지.”
원륭의 말에 헐크G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그로서는 오랜만에 근육 자랑을 좀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원륭이 물러나라 하니 시무룩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사정을 눈치 챈 원륭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렇게 심란해하지 말라고. 나중에 내가 상대해줄 테니.”
“그래?? 그럼 내가 너에게 이기면 이 녀석들은 전부 내 수하라고 봐도 되는 건가?!”
“······.”
원륭 뿐만 아니라 모두가 어이없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넌 이미 떨어졌잖아, 헐크G. 정 그러면 나중에 감투라도 하나 쥐어줄 테니 그걸로 만족하라고. 뭐 그것도 이 녀석들을 이겼을 때의 얘기지만.”
“좋아!!!!”
흐뭇한 표정을 짓는 헐크G를 놔두고, 원륭은 말했다.
“좋다. 이 대회의 우승을 차지하고 너희들을 수하로 받아들여주지.”
“누구 맘대로!!”
“생각해보겠다는 거지 어디까지나 무조건 들어가겠다는 게 아냐!!”
반발하는 악무양과 일지흔이었으나, 원륭은 전에 없이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건가??”
“!!”
“중국 편도 들지 않고, 그에 맞서는 홍콩 편도 들지 않고. 그저 자유롭게 무림을 누빌 뿐······. 참으로 한가한 녀석들이로군. 힘을 가진 자에겐 그 힘을 이용해서 약자를 위해 싸워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게 정의다. 차라리 중국 편을 들어 대중을 탄압하는 녀석들은 그런 이유라도 알겠지만······. 네놈들은 정말로 한심한 놈들이로군. 이것도 저것도 하지 않고, 너희들은 그저 회색분자야.”
“무공을 가지고 있으면 무조건 봉사해야하나!!”
“그것은 우리의 자유다!!”
마찬가지로 항변하는 두 사람이었으나, 원륭의 대답은 싸늘했다.
“그럼 이 대회는 뭐 하러 참가한 거지?? 그저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한 몫 잡으려 왔나?? 그렇다면 너희들은 속물들이다. 좋아, 내가 우승하든 말든 너희들은 수하로 받지 않겠다. 너희들 맘대로 해라. 말을 듣지 않는 소의 고삐를 붙잡고 억지로 끌고 갈 순 없지. 하지만 내 밑으로 들어오지 않겠다면 두 번 다시 내 앞에 나타나지 마라. 구역질나니까. 그리고 홍콩을 위해서 싸우진 않더라도, 중국 공안 무림맹 밑에 들어가는 건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네놈들이 눈에 띄는 순간 단번에 쳐죽여버릴 테니까 말이다.”
“······.”
강압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원륭의 말이었으나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궁요는 그저 가만히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괜찮아? 모처럼 귀중한 전력이 될 수 있는 놈들인데. 상당히 완성된 궁요란 놈을 제외해도, 일지흔이나 악무양 역시 단련하면 꽤 괜찮은 소재일걸.”
“흥, 아무리 무공이 강해도 정신상태가 썩어빠졌으면 소용없어. 중국에 대항하는 것은 정말로 올곧은 정신을 가진 자들뿐이어야 한다. 무공이 고강해도 정신이 썩어빠지면 답이 없지. 지금 공안 무림맹 밑에 들어가 있는 놈들도 그런 놈들이야. 예전부터 그 놈들과 오랜 세월동안 싸워왔는데, 강제로 공안 무림맹 밑에서 일하는 놈들은 단 하나도 없더군. 다들 그 대가로 파천황으로부터 무공이라든가 뭐 하나씩은 다 받아먹었어.”
“무림지존 파천황이 가르쳐주는 무공이라, 후후. 한번쯤 배워보고 싶기는 하군.”
“탐나나, 태사향??”
“······.”
묘한 원륭의 눈초리에 태사향은 잠시 침묵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분명 파천황이 가르쳐준 무공은 대단하겠지. 하지만 그 무공은 아마 절대로 파천황을 초월하진 못할 거야. 맞나?”
“그래. 놈은 대범해 보이지만 의외로 의심이 많고 아주 주도면밀해.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는 무공을 공안 무림맹 요원들에게 가르쳐줄 리가 없지. 사실 파천황의 무공은 두 가지야. 하나는 살문의 무공이고, 하나는 훔친 한빙신공이지.”
“훔쳤다고? 그리고 살문의 무공? 파천황은 본래 살문의 인물이었나?!”
“그래. 네가 아는 그 살문이다.”
“맙소사······. 살문은 어느 틈엔가 무림에서 완전히 그 자취를 감추었다고 알고 있는데.”
태사향의 말에 원륭은 고개를 끄덕였다.
“술뿐만이 아니라 역시 무림사에도 박식하군. 나는 그 살문의 소멸이 파천황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지 않고서야 기나긴 세월 무림에 군림해왔던 최고의 암살자 집단인 그들이 사라진 것은 좀 의문이 있지. 다른 문파도 아니고 살문인데 말이야. 아무튼 파천황이 한빙신공을 대만 강씨 세가에서 훔치고, 그때쯤 살문이 무림사에 나타나지 않은 것은 확실해. 청나라가 무너지고 시대가 격변하는 와중에 우연히 영향을 받은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왠지 좀 석연치 않군.”
“무림에서 우연은 없다. 필시 관련이 있겠지.”
“역시 그럴까.”
말을 마치고 원륭은 술을 한잔 따라 마셨다. 술을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하는 것은 이들의 습관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헐크G가 물은 것이다.
“그런데 그 강씨 세가는 뭐지?? 살문 같은 비밀 집단인가??”
“비슷하기는 한데······. 고대로부터 내려온 무공의 수호자들이다. 상고시대 이후 음양혼돈공에서 쪼개진 한빙신공과 열양진경을 그들이 수호했는데, 그들은 그러며 덤으로 역대 왕조들도 지켜왔지. 암살 같은 것들로부터는 막았지만, 그러다 도저히 그들로서도 막을 수 없는 역사의 흐름 같은 것이 와 왕조의 교체 시기가 되면 새로운 왕조에 자신들의 정체를 밝히고 서로 상부상조의 관계를 이뤄왔다. 그러다 국민당과 공산당이 내전을 일으키자 국민당 쪽이었던 그들은 황궁무고의 수많은 비급들을 옮기다 그만 파천황에게 그것을 포착당해 한빙신공을 잃어버린 것이야.”
“저런······. 그런데 너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지??”
“대만 강씨 세가 본거지에 초대받았다. 그때는 한창 공산당과 공안 무림맹에 대항해 우리들 여덟 쪽방촌의 무림인이 날뛰고 있을 때라 그 대표로 나를 불러 자신들과 힘을 합치자 제안한 것이지. 그러나 그들도 공산당처럼 음양당이라는 비밀조직을 만들어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을 탄압하고 학살하고 있었어. 그래서 나는 그들과의 협동을 거부하고 중국으로 되돌아온 것이지.”
“실로 용감한 결정이군. 그들의 본거지에 들어갔다면 상당히 위험했을 텐데.”
“정말로 위험했지······. 아마 내 인생 최고로 위험한 순간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곳에는 강호육과 더불어 강순이라는 자가 있었으니.”
“강호육? 강순?”
“강호육은 당대 열양진경의 소유자이고, 강순은 전전대 열양진경의 소유자다. 그러나 그 실력은 현역이야. 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보였다.”
“나이가 몇 살인데??”
“아마 150살······. 혹은 그 이상??”
“히이익······.”
헐크G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무림인들은 대부분 알지만 아무리 무공이 고강해도 현역으로 있을 수 있는 것은 100살 정도다.
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 무술인이나 외가기공만 불균형적으로 익힌 자의 전성기가 40에서 50, 그리고 내공을 익히면 100살 정도인데 강순은 그 이상을 초월한 것이다.
단순히 50살의 벽이라 하기엔 그 차이는 너무나 컸다. 내공을 익힘으로 인해서 늘어난 50년의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100살은 일반인도 잘하면 살아서 도달할 수 있는 나이이지만, 150살은 무공을 익힌 사람이든 익히지 않은 사람이든 도달하기 힘든 초월자의 나이였다.
“노인네 참으로 대단하군. 그래, 정정하든가??”
“아주 정정하더군. 벽에 똥칠을 할 일은 없어보였다.”
“허허······.”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헐크G. 내공의 본질은 파괴가 아니라 치유이기 때문에 이론상 그 무공이 높으면 높을수록 노화가 극도로 억제되어 치매가 오지 않는 것은 가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150살 넘게 먹고 천하제일의 무공인 열양진경을 다루는 이라······. 상대하기도 싫은 괴물이로군.”
“그렇다. 그래서 난 그만 붙지도 않고 빠져나왔지. 아마 몸을 빼지 않았으면 단번에 잡혀 인질이 되었을 거야.”
“그런데서 도망친 너도 참 대단한 놈이다.”
“······.”
묘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헐크G에게, 원륭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런 괴물들 얘기를 해봤자 뭐하겠나. 오늘은 그만 마시고 죽자구. 오늘 마셔야하는 술은 내일 오지 않는다네. 안마시면 손해지.”
“하핫, 동감이다!!”
헐크G가 호탕하게 술을 마시고, 태사향도 말없이 술잔을 들이켰다. 그렇게 또 하나의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자, 오늘은 준결승 제1경기가 열리는 날입니다!! 상대는 갑 조의 승자 진흑창!! 그리고 을 조의 승자 천만홍!! 처음으로 홍콩 4대 재벌 총수들 중 둘이 붙는 날입니다!! 과연 누가 이 대결에서 승리 할까요!!”
“화구는 오늘도 시끄럽구만.”
“그러게 말이다.”
헐크G의 말에 원륭이 답하며 둘은 관중석에 앉는데 그 옆에 태사향이 앉더니 말했다.
“그 세 명이 안 보이는군.”
“그놈들 말인가?? 뭐 냅두라구. 지들이 알아서 먹고 살겠지. 대중은 예정된 파멸을 기다리고 있는데, 본인들 갈고 닦은 무공으로 자기 보신만 한다는 놈들이니 그냥 내버려두라구.”
“······.”
원륭의 말에 태사향은 어깨를 으쓱했다. 확실히 자신과 상관없는 자들이니 그냥 놔둬도 무관했던 것이다.
경기장을 좀 둘러보다가 맞은 편 관중석에서 각자 경기를 보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그 세 명의 모습을 발견한 태사향이었지만, 원륭이 그렇게 말하자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다.
확실히 원륭의 말대로다. 자기보신만 하려는 놈들, 어디서 뭘 하든 알반가.
곧이어 선수들이 들어왔다.
“자, 지금 진흑창 선수가 들어옵니다!! 맞은편에선 천만홍 선수도 들어오는군요!! 이거 경기 결과가 어떻게 될지!! 그럼 경기 시작!!!”
콰앙!!!
시작을 알리는 큰 징 소리와 함께, 곧바로 두 사람이 뛰쳐나갔다.
채앵!!!
“맨손과 검이 맞붙었는데 저 소리!!”
“엄청난 외공이군!!!”
태사향과 헐크G가 소리 질렀다. 흔히 외공과 내공을 따로 구분하는 자들이 있지만, 실제로는 그다지 차이가 없다.
내공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근육의 단련을 주로 하여 타고난 근골의 힘을 살리는 것이 외공, 그리고 내공이라고 해도 외공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마치 태극의 음양처럼 내공과 외공은 상호보완적이며 필수불가결한 존재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잘 단련된 내공의 사용자는 외공도 상당하고,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내공이 강한데 외공이 터무니없이 약하다든가, 외공이 강한데 내공이 말도 안 되게 약한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두 사람도 그걸 지적했다.
“으음, 타격음만으로도 그 내공의 깊이가 충분히 느껴지는군!! 진흑창의 공력은 절정의 경지에 이르렀어!! 그 태산과 같은 내공은 맨손으로 검을 튕겨내고, 상대에게 치명타를 입히기에 충분하다. 과연 홍콩 4대 고수······.”
“천만홍은 또 어떤가?? 완력으로는 진흑창에게 밀리는 듯 하지만, 눈부신 속도와 기술로 그걸 만회하고 있다. 이 대결, 막상막하야!!!”
채채챙!!!
다시 한 번 불꽃이 허공을 갈랐다. 섬전이 대기를 가로지른다. 불꽃같은, 번개와도 같은 공격들이 서로를 향해 노렸다.
천만홍의 눈부신 공격들이, 그리고 강대한 진흑창의 주먹들이 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다.
꽈꽈꽝!!!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진흑창이 천만홍의 검을 강타한다. 천만홍은 그걸 잘 받아내면서 반대로 번개 같은 중단 베기를 날렸다. 진흑창은 곧바로 뛰어 피한 후 그대로 발차기를 날렸다.
퍽!!
그걸 천만홍은 다시 검으로 받아내며 도로 검격을 날린 것이다.
써걱!!
소름끼치는 소리가 대회장 공기를 갈랐다. 가만히 살펴보니, 진흑창의 옷은 다리부분이 베여있고 그 사이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던 관중들이 일제히 소리지른 것이다.
“와, 최고다, 진흑창!!!”
“천만홍, 당신의 검술이 최고야!!!”
원륭을 비롯해 세 사람도 뚫어져라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화구가 크게 소리 지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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