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9 신과 같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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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악무양의 온 몸은 수도 없이 부러졌다. 다리뼈가 부러지고, 팔뼈가 부러지고, 손목뼈가 부러지고, 성한 데가 단 한 곳도 없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악무양의 몸은 더욱 더 강해져만 갔던 것이다.
한번 부러진 뼈는 일단 붙으면 더욱 더 강해진다. 붙은 뼈의 조직이 좀 더 치밀하고 촘촘하며 두껍게 이어지는 것인데, 상처로부터 회복하기 위한 인체의 프로그램이었다.
근육 같은 것도 기본적으로는 단순히 커지는 것이 아니라 일단 근섬유가 손상돼야 그 부분이 성장하는 것이다.
멀쩡한 근섬유를 손상시킨 후, 충분한 휴식과 영양공급을 통해 재생시키는 것이 근육 성장의 기본이었는데, 뼈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뼈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그렇게까지 해서 단련하지는 않지만, 그 이론은 같다.
그리고 근육이든 뼈든 모든 부분이라고 해서 다 그렇게 성장시킬 수 있는 게 아니고, 성장하지 못하거나 성장시키면 안 되는 부분도 있다.
그런 근육들은 생존에 관련이 있는 내장 관련 근육들이기 때문에 함부로 건드리면 생명에 지장이 오는 것이다.
손상된다고 해도 재생이 쉽게 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원륭은 그러한 점들을 고려하며 치밀하게 악무양의 온 몸을 부서트렸다. 그리고 다시 재생. 그 결과 악무양은 화경에 이르렀다.
드디어 다른 이들과 같은 출발점에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콰아앙!!!
악무양의 온 몸을 뒤덮은 공력이 사라져갔다. 대련을 하던 중 악무양은 갑자기 뭔가 깨달음을 얻었는지 말도 없이 다짜고짜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빠져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상황을 깨달은 다른 이들도 수련을 멈추고 악무양을 지켜보며 숨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악무양의 온 몸이 옷과 함께 시꺼멓게 타들어가더니 순식간에 허물이 벗겨지고 새하얀 새살이 돋아났다. 무공에서 말하는 환골탈태가 일어난 것이다.
뼈와 근육, 피부가 새 삶을 얻는 것처럼 완전히 재생이 되는데, 만약 사지육신 중 잘린 부위가 없다면 그 힘줄이나 신경이 절단된 상태라도 복구가 되는 어마어마한 치유행위였다.
본래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대라신선이 와도 다친 지 오래된 신경이나 힘줄의 손상은 고치기가 어렵고, 당연히 평생 불구로 사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런데 환골탈태는 이러한 손상마저 자연스럽게 고쳐버리는 것이다.
물론 화경에 이르러야만 이러한 변화가 일어났지만, 그런 조건을 감수하더라도 너무나도 엄청난 혜택이었다. 무림인이 화경에 이르기 위해서는 온갖 고난을 다 거쳐야 한다.
거의 죽었다 깨어나야 가능하다고 봐야했는데, 이러한 일이 악무양에게도 일어났던 것이다.
악무양은 조용하게 두 눈을 떴다. 그의 두 눈엔 전의 것과 완전히 다른 것들이 비치고 있었다.
똑같은 현상이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서 그 관점은 달라진다. 화경에 이른 악무양은 이젠 전과는 완전히 다른 정기가 넘치는 눈으로 온 사물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고개를 돌리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원륭과 눈을 마주쳤다. 악무양이 물었다.
“내가 화경의 경지에 든 것이오??”
“그렇네. 축하하네.”
드물게도 원륭은 웃으며 박수를 짝짝짝 쳐주었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웃으며 함께 박수를 쳐준 것이다.
“축하하네!!”
“축하해!”
“축하한다.”
껄껄껄 웃는 헐크G를 비롯해서, 일지흔은 물론이고 그 말없는 궁요마저도 나지막하게 축하한다고 말을 건넸다. 이는 세 총수들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이야~ 한 때는 이놈은 절대 화경의 경지에 오를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용케 화경에 올랐군.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원륭??”
진흑창이 싱글벙글 웃으며 물었다. 그러자 원륭은 피식 웃으며 대답한 것이다.
“무얼, 대단한 것도 없어. 이 놈은 멍청한 주제에 몸을 쓰는 것만이 그나마 특기인 바보이니까 말이다. 그럼 강제로라도 몸이 기억하도록 억지로 때려 넣는 수밖에 없지.”
“과연, 그런 수가 있었군···.”
진흑창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흔히 화경에 이르는 방법이 크게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아주 고도의 정신적인 행위를 통하여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치열하기 짝이 없는 실전을 반복하여 그 속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인데, 사실 둘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두 가지 행위를 모두 행해야 화경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화경뿐만이 아니라 모든 무공의 경지에 공통되는 행위였는데, 삼류 무림인에서 이류로 넘어갈 때도 마찬가지고, 이류에서 일류나 일류에서 절정으로 넘어갈 때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 필요한 ‘경험치’가 다를 뿐이었는데, 마치 게임에서 경험치를 쌓으면 레벨 업을 하듯 무림인들도 이런 경험치와 수련을 쌓으면 결국 레벨 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악무양은 정말로 바보라서 원륭은 죽어라고 육체적인 수련을 시킨 것이었다.
그 결과 정신적인 깨달음은 부족했지만 악무양의 육체는 살아남기 위해 고도의 진화를 거친 결과 드디어 화경의 벽을 돌파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원륭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축하한다, 악무양!! 너는 내가 본 화경에 이른 자들 중에서 최고로 바보 같은 자이다!!”
“아니, 그거 칭찬이요, 욕이요???”
악무양의 표정이 묘해졌다. 축하한다고 하니 기분은 나쁘지 않았는데, 화경에 이른 자들 중에서 최고로 멍청한 자라고 하니 과연 기분이 묘해졌던 것이다.
이게 칭찬인지 욕인지, 순간 악무양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원륭은 악무양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무얼, 칭찬이지 당연히!! 너처럼 멍청하고도 명상수련을 제대로 하지 못해 깨달음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도 육체가 진화를 통해 화경의 경지를 이르렀으니, 이는 대서특필할 만한 사건이다!! 이건 무림사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일인 것이야!!!”
“크흐음······.”
악무양도 이젠 자신을 놀린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러나 이는 완전히 욕 뿐만은 아니었다.
정말 악무양의 무공에 대한 깨달음은 부족한 상태였는데, 치열하기 짝이 없는 훈련의 성과를 통해 그는 화경의 경지에 이르렀던 것이다.
사실 악무양도 다른 이들에 비해선 못하지만, 최근 치열한 수련을 통해 어느 정도 무의식적인 수준으로는 다른 이들과 비슷한 무학적 깨달음을 얻은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단순히 훈련을 때려 박았다고 해도 무식하게 그것만으로 화경에 이를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악무양이 논리적인 사고가 부족하고 말을 잘 못해서 자신의 깨달음을 언어로 완전히 표현을 할 수가 없는 상태였는데, 그러한 점도 점점 나아질 거라고 원륭은 보았다.
‘그럼 이제······. 당면한 과제는 거의 다 끝냈군······.’
자신들의 그룹 무림인들 중에 가장 성과가 뒤떨어지는 것이 바로 악무양이었다.
사실 악무양 이외에도 세명 총수의 그룹 조직원들 중에선 무림인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악무양보다도 더욱 자질이 떨어지는 자들이었다.
과거 홍콩비무대회에서 원륭에게 설치다 순식간에 당한 MC쌍칼이라든지, 쌍두사와 같은 존재였는데, 그런 이들을 아무리 가르쳐봤자 답이 안 나오는 것이다.
‘차라리 악무양을 가르치는 게 낫지······.’
그것이 바로 원륭의 생각이었다. 결국 이들의 싸움은 공안 무림맹이나 인민해방군과의 싸움이 아닌, 그 위에 있는 절대적인 존재인 파천황과의 싸움이다.
어중이떠중이들을 아무리 많이 데려 가봐야 소용이 없는 것이다.
의화단 운동 때도 무공이 강한 수뇌부들은 그런 파천황에 대항하다 죽거나 도망쳐버렸고, 그런 자질도 없는 어중이떠중이들은 도망도 못치고 그대로 죽어버렸다.
사방을 순식간에 얼려버리는 대빙하시대 앞에서는 도망칠 틈도 없는 것이다.
과거 원륭과 쪽방촌 무림인들도 가까스로 대빙하시대에서 도망친 적이 있지만, 그건 한빙신공에 어느 정도 대항할 수 있는 혈마 불사왕이 안간힘을 다 쓴 결과이기 때문이었다.
불사왕은 자신의 독문무공인 혈사마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리며 한빙신공의 대절기, 대빙하시대로부터 다른 이들을 지켰는데 그로인해 가까스로 원륭 등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륭은 결국 파천황에게 잡혀 한빙신공의 음기가 그 몸에 주입되는 바람에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혈귀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불사왕에게 물려 혈귀가 되었는데, 원륭은 그런 사실을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어중이떠중이들은 아무리 많아봐야 소용이 없어!! 결국은 소수정예가 이 전쟁의 판국을 좌우한다!!’
그것은 원륭의 착각이 아니라 실제 역사가 증명한 것이었다. 사례가 증명하는 것이다.
파천황을 상대하며 쪽방촌 무림인들이 몸으로 깨달은 것인데, 원륭은 입을 열었다.
“자아, 그럼 악무양의 화경을 축하하며 다음 수련의 경지로 넘어가보자구.”
“에엑? 오늘 같은 자리는 축하를 해줘야 하는 게 아니오?!?”
악무양이 움찔하자 원륭은 매서운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그럴 시간이 어디 있나. 화경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서 적들이 이제 네 앞에 죽어 나자빠져 주나?? 너는 이제 시작의 단계에서 들어선 것이다. 이제 시작의 단계에 들어선 것이란 말이다. 파천황과 공안 무림맹에 대항하고 현경으로 향하는 경지의 초입에.”
“히잉······.”
놀랍게도 악무양은 마치 어린애 같은 목소리를 내었다. 오늘 같은 날은 그래도 잠시 한숨 돌리는 시간도 필요하고, 축하의 자리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는데 원륭은 일체 자비가 없는 것이다.
그는 얄짤이 없었다. 악무양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이 자는 귀신이다. 악귀다. 악마다.’
악무양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외쳐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이 이 정도 경사가 있으면 한 숨 돌리는 자리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오?!? 기계도 쉬어가며 굴리는데 이렇게 굴리면 기계도 고장 나겠소!! 나도 사람이오 사람!! 나도 사람이라고!!!”
절규하며 외치는 악무양이었으나, 원륭의 귀에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는 악무양의 목덜미를 붙잡고 성큼 붙들고 걸어갔다.
“그래, 그래. 소리치는 걸 보니 아직 힘이 넘치는가 보구만. 하긴 그럴 만도 하지. 방금 환골탈태를 이루었으니 그 얼마나 힘이 넘치겠는가?? 좋다, 악무양!! 내 오늘은 밤새도록 네 상대를 해주마!!!”
“히이익!!!”
악무양은 공포 섞인 비명을 지르며 원륭에게 질질 끌려 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당화가 한 마디 한 것이다.
“원륭, 아무리 그래도 옷은 제대로 입히라고!!”
“그래. 이 상태로 놔두면 내가 다 불쾌하니까 말이야, 하하.”
그제서야 악무양은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렸다. 환골탈태의 과정에서 일어난 초고열의 발화로 인해, 그의 온 몸은 벌거숭이 상태였다. 옷이 다 타버려 알몸뚱이 상태인 것이다.
그렇게 초고열의 발화를 일으키며 세포분열을 촉진시켜 온 몸의 재생을 꾀하는 것이 환골탈태의 원리였는데, 그런 발화가 일어나니 한낱 옷가지들이 버틸 도리가 없었다.
악무양은 미처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왠지 다른 이들의 시선이 그러고 보니 그의 아랫도리에 가득 쏠려있었던 것이다.
다른 이들이 화경을 이루는 장면을 목격했더라면 악무양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가 없었다.
다른 이들은 모두 혼자 있을 때 명상을 하다 화경의 경지를 이룬 것이다.
그들도 모두 악무양처럼 낮엔 수련을 하고 밤엔 명상을 하였지만, 육체적 수련과 정신적 명상의 경지가 조화를 이루어 자연스럽게 밤에 명상을 하다 화경의 경지를 이룰 수 있었다.
그래서 다행히도 남들 앞에서 발가벗는 대참사를 피할 수가 있었는데, 악무양은 그게 안 되니 무식하게 수련을 하다가 남들 앞에서 나체가 되는 일이 생겨나고 말았던 것이다.
악무양은 수치심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크흑, 이 나이 먹고 이런······.”
그때 악무양에게 들리지 않게 당화는 혼자 조용히 생각했다.
‘악무양 녀석, 혈기왕성하던 것치곤 어째 물건이 너무 작군.(?) 역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당화였는데, 한편 악무양은 결국 원륭의 손에 끌려가 다시 한 번 옷만 입고 지옥 같은 훈련에 돌입해야 했다. 그리고 악무양은 깨달았던 것이다.
‘젠장!! 이 자는 지금까지 나를 봐주고 있었구나!!’
사실 악무양도 원륭이 어느 정도 자신을 봐주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기껏해야 어느 정도겠거니 하고 추측할 뿐이었는데, 화경의 경지에 이르고 나니 그 차이는 더욱 극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공이든 학문이든 수준이 낮으면 그 위 단계의 지식이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인다.
조금만 노력하면 얻을 수 있을 것 같고, 완벽하게 터득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실제로 보면 아닌 것이다. 거대한 산을 먼 곳에서 보면 작아 보이지만,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산은 더욱 더 거대해진다. 그리고 그런 험준한 산을 실제로 올라보면 욕지기가 치미는 것이다.
그 산의 거대함에. 그리고 모자랐던 자신의 과거 수준에. 그렇게 자신의 수준에 부끄러워하게 되는데, 그런 과정을 거쳐서 사람은 성장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악무양도 그 점을 깨달았지만 생각보다 너무나 거대한 원륭이라는 산에, 그리고 그 산을 뛰어넘는 파천황이라는 거대한 산맥에 엄청나게 주눅이 들고 만 것이다.
‘하늘 위에 다른 하늘이 또다시 있다더니, 그 말이 정녕 사실이로구나!! 이러다가 평생 무공만 익히다 죽는 것 아닐까?!?’
악무양은 그런 고민에 빠졌으나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렇게 무공을 익혀도 파천황에게는 순식간에 당할 수 있다는 게 문제인 것이다. 파천황은 신과 같은 존재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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