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0 족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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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말이 좀 섭섭하네요. 우리는 ‘우리’ 아니었나요??”
“아니 좀 거기까지는······.”
“······.”
다시 한 번 선을 긋는 원륭의 말에, 임소교는 작전을 바꿨다. 눈시울이 붉어진 채,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눈이 그렁그렁해진 것이다.
“내가 얼마나 집안 청소를 해주고 밥을 차려줬는데······. 그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대신 나는 너에게 집을 제공해주었지.”
뜨끔!! 임소교가 움찔했다.
“너의 그 노동력을 금전으로 환산한다면 내가 제공한 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 네가 해준 것들에 대해선 알고 있지만 딱히 내가 시킨 것도 아냐. 공짜로 집을 받는 대가에 의해 마음이 불편해진 네가 자발적으로 한 거겠지. 내가 단 한번이라도 너에게 청소와 식사 준비를 시킨 적이 있나?? 없잖아.”
사실은 그랬다. 그리고 원륭이 청소를 시킨 적이 한번 있긴 했지만, 그것은 임소교가 원륭이 준 돈을 빼돌리고 싸구려 가구를 사놓는 바람에 가구가 다 부서져서 집안이 엉망이 되었길래 시킨 일이었다. 자업자득인 것이다. 아무튼 원륭의 말에 임소교는 반박했다.
“시키지 않았다고 해서 해준 사람에 대해 감사를 안 할 필요는 없잖아요!!”
“하지만 그건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지. 만약 어떤 사람이 네 옆을 지나가면서 막무가내로 호주머니에 돈을 꽂고 엎드려 절을 하라고 하면 할 거냐??”
“······.”
임소교는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서있었다. 그러다 연기가 아니라 진짜로 울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제 집은 어떡하지······. 굳이 저 집이 아니더라도 구룡성채가 아니면 바깥의 집은 훨씬 더 비싼데······.”
홍콩의 주택 문제는 딱히 구룡성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애초에 주택사정이 열악하고 돈이 극도로 없는 빈곤한 자들이 구룡성채로 특히 모여든 것이지, 바깥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똑같이 더럽고 햇볕이 들지 않는 좁디좁은 집들이 홍콩에는 가득했었는데, 그런 방에 들어가는 것은 둘째 치고 문제는 지금 그런 방에라도 들어갈 돈이 임소교에게는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자 원륭은 물어본 것이다.
“그동안 돈은 다 어떻게 한 거야?? 내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열심히 청소를 하길래 내가 매달 생활비를 꾸준히 줬잖아??”
“그 돈은 다 구세군 학교에 기부했죠.”
“하아······.”
원륭은 골치가 아파져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전에도 이 임소교란 여자애는 원륭이 가구를 사놓으라고 한 돈을 삥땅쳐서 싸구려 가구로 채워놓고 나머지 돈을 구세군 학교에 기부한 적이 있는데, 그와 비슷한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보통 사람은 먼저 자신의 몫을 챙기고 나머지 여유가 되면 그 돈을 기부하는데, 이 임소교는 무조건 기부부터 하는 것이다. 원륭은 그 점을 지적했다.
“대체 왜 그리 기부를 하는 거야?? 먼저 너부터 살아야 다른 사람도 챙길 수 있는 것 아니야??”
“하지만 나도 그 학교의 혜택을 입었으니 되갚는 건 당연하죠.”
“흐음······.”
그러고 보니 임소교는 고아라 아주 어렸을 적에는 고아원을 전전했고, 그 후로는 원륭을 만나기 전까지 구걸을 한다든가, 시장에서 잡일을 한다든가 이후에는 구세군 학교에서 봉사를 하며 살아왔던 것 같았다. 말하자면 봉사가 일상인 것이다.
그것 외에 다른 사는 방법을 찾지 못했는데, 원륭은 타일렀다.
“물론 봉사하는 것도 좋지만 넌 너의 행복을 찾을 생각은 없어?? 봉사만이 네 삶의 전부는 아닐 거잖아.”
“딱히 생색낼려고 하는 건 아니에요. 그것 말고는 무얼 할지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뭘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
원륭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이대로 평생을 봉사에 매진하며 사는 것도 거룩한 인생일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하지 못하는 아주 숭고한 업적이겠지.
사후 그녀에게 봉사를 받았던 인간들은 그녀를 기억하며, 그녀를 성녀로 추모할 것이다.
하지만······. 뭔가 다른 인생도 있지 않을까??
“뭔가 꿈이 없나? 예를 들어 네 나이 또래 때 흔히 가지는 연예인이 되고 싶다거나, 가수가 되고 싶다거나. 아님 요리사가 되고 싶다거나 주부가 되고 싶다거나 뭐 많잖아.”
“요리사나 주부는 봉사를 하면서도 할 수가 있어요. 연예인은 딱히 모르겠네요. 제가 무슨 끼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하긴······.”
이연걸이나 주성치, 양조위 같은 액션 스타들도 대부분 연기 학원이나 학교를 들어가 데뷔한 경우이고, 이연걸 같은 경우는 무려 여덟 살 때부터 체육학교에 입학해 무술을 배운 상태였다
그리고 이연걸 같이 성공한 자들 뒷면에는 그러지 못한 자들이 수없이 있는 것이다.
똑같이 스타가 되길 바라면서 같은 경로를 탔지만, 역사에 남지 못하고 그저 사라져간 자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 학교, 학생이 중국 전역에 수도 없이 많은 상태였는데, 이미 성인이 된 임소교가 별다른 노력이나 끼도 없이 갑자기 연예인이 된다는 건 불가능했다.
진짜 무공을 배우면 몰라도 말이다.
‘잠깐, 임소교가 무공을 좀 더 익히면 가능하지 않을까??’
원륭은 그 순간 지난 번 임소교에게 벌모세수를 해주었던 것을 떠올렸다.
돈을 빼돌려 학교에 기부한 임소교에게 비록 좋은 기부라도 그 과정이 잘못되었으므로 원륭은 벌을 주는 차원에서 벌모세수를 하였는데, 비록 몸에는 좋다 하더라도 그 고통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야말로 체벌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결국 임소교는 단전에 내공을 만드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와아, 원륭!! 배 안에 뭔가 따스한 기운이 느껴져요!!”
“그게 내공이라는 것이다. 매일 단련하면 앞으로 넌 감기나 어지간한 질병에는 걸릴 일이 없겠지.”
“와아!!!”
그렇게 임소교는 신기해하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했는데, 까다로운 그녀의 성격치고는 매일 매일 잘 수련하고 있는 것 같았다.
원륭이 살펴보자 매일 쥐꼬리 만큼이기는 하지만 내공이 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참에 임소교를 수련시켜 진짜 액션 스타로 만들어봐??’
어지간한 액션 학원에서 어설프게 무술을 배운 여배우들보다는 나을 텐데, 물론 연기와 무공은 또 다른 문제였지만 원륭은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사람인 이상 기본적인 연기는 할 테고 그녀의 실감나는 무술 시연은 뭇 관객들을 매료시키겠지.
비록 연기가 부족하더라도 그녀의 무공은 ‘진짜’이기 때문에 가짜 무공을 시연하는 어설픈 여배우들은 압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륭은 생각했다.
‘아니, 이건 임소교의 말을 들어봐야 한다. 이 애가 납득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
“······.”
원륭은 잠시 침묵하다 물어봤다.
“너 혹시, 연예인이 되고 싶지 않나??”
“연예인이요?? 아까도 말했듯이······.”
“될 수 있냐 없느냐는 둘째 치고 될 수 있다면 하고 싶냐고 묻는 거다.”
“······.”
임소교는 원륭의 눈을 빤히 바라봤다. 원륭이 생각보다 비범한 남자라는 사실은 임소교도 잘 알고 있었다.
어디서 마련해오는진 모르겠지만 매달 막대한 돈을 마련해 구세군 학교에 전달하고 있고, 그 무술 실력도 강하며 아무튼 수수께끼의 남자다.
안면을 튼 지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원륭은 자신의 속내를 거의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임소교도 원륭이 마음만 먹으면 어지간한 일은 다 할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이 왠지 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몇 년을 옆에서 보아온 여자의 감이자 촉이었는데, 아무튼 임소교는 말했다.
“굳이 그런 걸 묻는 걸 보니 될 수 있는 방법이 있나보네요.”
“있다.”
“······.”
사실이었다. 원륭은 홍콩의 영화계를 지배하고 있는 지평선 그룹의 총수 당화와 가까우므로, 그녀의 영화사에서 제작하는 영화에 임소교를 추천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당화는 언짢을지 몰라도 처음엔 단역 정도로 넣어주는 건 절대 거절하지 않겠지.
그러다 그 무공실력이 입증되면 조연, 주연으로 올라가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는데, 비록 초보라지만 실제 내공이 있는 그녀와 원륭과 당화의 인맥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임소교는 말한 것이다.
“안할래요.”
“뭐??”
“안한다구요.”
“넌 배우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나?? 유명한 배우가 되어서 뭇 사람들의 선망을 받고, 호화로운 집에서 사는······. 그래, 그럼 이런 홍콩 빈민촌 같은 데에서 싸구려 집을 구하니 못 구하니 하는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다!!”
“그건 제 삶이 아닌 것 같아요.”
“!!”
“제가 정말로 되고 싶어서 노력하고 연예인이 된다면 저는 그 자리에 만족하겠죠. 하지만 어느 순간 그렇게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이 권리가 주어진다면, 저는 허무할 것 같네요.”
“······막상 지금이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지, 돈과 명예의 단물을 먹어본다면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러니 전 처음부터 그렇게 되는 걸 포기하겠어요.”
“······좋다······.”
원륭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내가 네 집도 안 구해줘도 되는 거지??”
“예??”
“아니 사실이 그렇잖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권리처럼 내가 단번에 너의 집을 구해준다면 얼마나 보람이 없겠느냐. 다 네가 고생해서 구해야 가치가 있지. 그렇지 않은가??”
“아, 아!!”
이제야 임소교는 울상이 되어 안절부절 했다. 그동안 원륭이 생활비를 쥐어주며 아껴 쓰라고 잔소리를 할 때는 좋은 일에 쓰는 건데 뭐 어때 하며 다 기부를 해버렸다.
그런데 막상 일이 터지니 난감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설마하니 저 구룡성채가 철거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남의 집에 불구경하러 갔더니 정작 자신의 집이 다 타버린 상황이었는데, 그러자 임소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리고 원륭은 손을 흔들며 사라진 것이다.
“뭐 네 집은 네가 알아서 하겠지. 그럼 난 간다. 안녕~~”
“잠깐만요!!!”
그러나 원륭은 어느새 사라진 후였다. 돌아보니 그와 그녀가 실랑이를 하는 동안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삼 패거리도 사라진 후였다.
처음에 원륭은 자신의 집도 사라졌으니 같이 임소교의 집도 구할까 해서 아삼 패거리를 불러왔는데, 그녀가 그렇게 자신의 권리는 자신이 취득 하겠다 하니 아 그래?? 하고 아삼 패거리를 손짓으로 돌려보냈던 것이다.
임소교는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챘는데, 뱉어놓은 말이 있으니 어쩌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잠시 우두커니 서서 생각한 것이다.
‘이젠 어떡하지······.’
애초에 검소하게 살았던 그녀라서 집이 철거 되도 딱히 빼올 가구도 없었다.
그나마 혼자 옮길 수 있는 도구 같은 것은 모두 구세군 학교에 잠시 옮겨 놓았는데, 그녀는 결국 터덜터덜 구세군 학교로 향했다. 문제는 그곳에서도 철거가 진행되고 있었다.
철컹철컹. 중장비가 학교를 부수는 것을 보며, 임소교는 한 편에 서있는 사령관을 찾았다.
“사령관님······.”
“아, 소교. 왔습니까.”
사령관이 반갑게 그녀를 맞았다. 안경을 쓴 사람 좋아 보이는 이 사령관은, 희끗희끗한 머리를 햇살에 비추며 그녀를 맞이했다. 사령관은 물었다.
“오늘은 어쩐 일입니까?? 철거 때문에 봉사활동도 없는데.”
“아······. 사령관님은 괜찮나 싶어서요······.”
“저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당신은······흐음······.”
사령관은 묘한 눈으로 임소교를 쳐다보았다. 무릇 종파를 막론하고 종교에 몸을 담은 지 오래된 이들에게서는 가끔 통찰력이 발생한다.
무조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불교든 기독교든 다른 종교든 평생을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고 그 삶을 바친 이들에게는 그런 통찰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것은 영적인 깨달음 외에도 오랜 기간 인간관계를 관찰하고 또한 고찰, 사고한 결과였는데, 그런 시선에서 사령관은 임소교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입을 연 것이다.
“집을 잃어버린 것이죠?? 그리고 그것 때문에 고민이 되어 날 찾아온 것이고.”
“어떻게 아셨어요, 사령관님?!”
임소교는 깜짝 놀랐다. 사령관은 마치 족집게처럼 그녀의 고민을 알아맞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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