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1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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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력보다는 정교하게 계산된 기술로 승부하는 일지흔이나 태사향, 당화와 같은 이들에게는 헐크G같은 저런 무인이 제일 까다롭다.
물론 기술로 승부하면 상대 못할 것만도 아니지만······. 문제는 기술로 승부하는 것보다 완력으로 승부하는 것이 훨씬 쉽다는 것이다.
완력으로 승부하는 쪽은 몇 번을 실패해도 체력을 바탕으로 단 한번이라도 치명적인 공격을 성공시키면 전세를 뒤집을 수 있지만, 기술로 승부하는 쪽은 열 번 잘 막아도 한번 공격을 허용하면 패배를 면키 어려웠다.
실제 천만홍이 그래서 지난 대회에서 진흑창에게 깨졌다.
처음에는 압도했으나 결국 천만홍의 기술의 빈틈을 찾아낸 진흑창에게 공략 당했는데, 결국 완력파는 축구로 치면 공격수고 기술파는 수비수나 골키퍼라고 할 수 있었다.
완력파는 완력만으로 자신의 공격을 선공시키기는 어렵지만 한번이라도 성공시키면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고, 기술파는 잘 막다가도 한번이라도 공격을 허용하면 그냥 무너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력파가 무조건 우월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 그만큼 공격을 성공시키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런 사실을 충분하게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지흔 등 기술파는 방금 헐크G의 살짝 진심을 드러낸 공격에 자기라면 어떻게 막을 것인가 내심 고심했다.
‘나라면 음······.’
기술파 세 명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진흑창이 원륭에게 물었다.
“그래, 계획은 네 의도대로 돌아간 것 같나??”
“어느 정도······.”
원륭이 씩 웃고 있는데 갑자기 의무실 문이 열리고 헐크G가 나왔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군.”
원륭이 웃으며 말하니까 헐크G도 웃으며 답했다.
“난 레슬러다. 레슬러의 내구력은 다른 무술가들과도 비교할 바가 못 되지.”
“······.”
원륭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다. 다른 무술에서는 막기나 피하기가 기본이 되지만, 레슬러의 세계에서는 거의 그런 것이 없다.
아무리 강한 기술이라도, 아무리 공포스러운 기술이라도 대부분 받아내야 했기에 그들의 담력과 내구성은 엄청난 수준이었다. 그리고 쇼처럼 보이지만 실제 전투력도 전혀 낮지 않다.
종합격투기 무대에서 제일 강한 격투기 선수들 중 하나가 바로 레슬링에 타격기를 하나 더 익힌 선수들이니까. 퍼포먼스쪽을 강조해서 그렇지, 절대 그 전투력은 범상치 않았다.
태사향이 물었다.
“헐크G, 악무양의 주먹은 어떻던가?? 이제 꽤 맞아줄 만하던가??”
“······.”
헐크G는 잠시 묵묵히 있더니 이내 복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프더군······. 놈도 이젠 꽤나 강한 무림인이 되었어.”
“······.”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다. 이젠 화경이라는 경지에 올랐는데 강해지지 않으면 오히려 더욱 곤란하다. 모두가 힘들여 수련시켜줬는데 그 정도 몫은 해야지.
일지흔도 물었다.
“헐크G, 아까 그 악무양의 마지막 공격에는 실제로 쓰러진 것이오?? 아님 지금까지 쓰러진 척을 하고 있던 것이오?? 쓰러졌다기엔 너무 빨리 일어났는데······.”
“뭐, 나는 회복이 빠르니까 말이야. 꽤나 매서운 일격이었어. 그리고 너희들도 다들 겪어봐서 알지만 깨달음을 얻는 순간의 공격력은 무엇보다 강하지 않나??”
“······.”
그 말에 또한 모두가 납득했다.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일인데, 같은 기술이라도 처음 익혔을 때가 왠지 가장 셀 때가 있다..
그리고 한동안은 그 위력이 안 나오다가, 수련이 어느 정도 경지에 쌓이면 다시 그 위력을 찾아가는데 무조건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종종 그런 경우가 있다.
주로 정상적인 수련에서 얻은 깨달음이 아니라 위기의 상황에서 얻은 기술일 경우 이런 일들이 많은데, 급박하니까 신체의 모든 잠력을 다 동원해서 어마어마한 위력이 나오지만 한동안 그 위력을 내기 힘들어지는 경우다. 하지만 결국 열심히 수련하기만 하면 전부 제 위력은 다 나온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단 한 번의 기적이 아니라 그걸 일상화하는 부단한 수련이랄까.
단 한 번의 기적이라면 누구든 한번쯤 해낼 수가 있지만, 그걸 연속화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기적이란 것은 매번 일어나는 것이 아니니까.
결국 무림인들이란 기적을 일상화하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도 있었는데, 아무튼 원륭은 헐크G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어때, 헐크G. 오늘은 수련도 끝났으니 술이라도 한잔 할 텐가??”
그러자 헐크G는 피식 웃었다.
“오늘은 그러지 않을래. 내가 술을 무척 좋아하기는 하지만 오늘 같은 몸 상태로도 술을 마실 정도의 술고래는 아니야. 사람이란 모두 정도가 있어야지.”
“그래? 자네 몸이라면 그저 가능할 줄만 알았더니.”
“띄워주기인지 도발인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안 통해. 정 마시려면 다른 사람들하고 마시라구.”
헐크G는 뒤돈 채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오늘 쓰러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키 2미터 몸무게 150kg임에도 불구하고 군살 하나 없는 헐크G의 뒷모습은 너무나도 강대해보였다.
그야말로 인간흉기다. 절대 악무양에게 쓰러졌다고 해서 약해진 것이 아니다.
오늘은 그저 악무양이 잘 싸웠을 뿐. 원륭은 다른 이들에게도 물었다.
“어떤가?? 다들 오늘 한 잔 하겠나??”
“난 됐소. 오늘은 왠지 피곤하군.”
“나도······.”
일지흔과 태사향을 비롯해서 궁요도 말없이 사라지고, 다른 이들도 저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사라졌다. 그걸 보고 원륭은 깨달았다.
‘다들 다시 수련을 하러 가는군. 하긴······. 다들 무리도 아니겠지······.’
언제까지나 약해빠질 줄 알았던 악무양도 화경에 오르고 나날이 발전을 거듭해가고 있다.
이렇게 된 이상 오히려 조바심이 나는 건 다른 무리들이다. 본래 쫓는 자보다는 쫓기는 자가 더욱 급한 법. 게다가 일단 화경에 오르면 사실상 현경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열양진경이나 한빙신공, 하다못해 암살공 같은 신공들이 있어야 가능했는데, 이들에게는 그중 하나도 없다.
이들이 익힌 무공도 죄다 일류, 절정의 무공들이나 그것만으로는 현경의 벽을 뛰어넘기가 매우 어려운 법······.
결국 싸움은 얼마나 현경 직전까지 극한 수련을 하여 실전에서 선보일 것이냐 하는 것인데, 몇 십 년을 넘게 수련한 진룡 등 쪽방촌의 무림인들도 결국 현경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을 보았기 때문에 원륭도 딱히 현경의 경지를 돌파하는 것은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주어진 제한 안에서 최대한 강해지느냐. 그리고 화경의 동료들을 가지고 현경의 파천황이나 강호육 등을 잡을 수 있느냐이다.
지금은 잠잠하지만 분명 강호육 역시 언젠가 기어 나올 테니.
중국은 대만을 내버려두려고 하지 않고 대만은 중국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들의 사이에서는 반드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로 인한 피해를 막고 그 갈등을 종식시킬 자들은 바로 자신들밖에 없다.
원륭은 그렇게 생각했다.
‘휴우······. 오늘은 술 한 잔 마시고 대마초나 빤 다음 나도 수련에 들어가야겠군. 이러다 악무양에게 따라잡힐 지도 모르니 말이야······.’
물론 그것은 아마 머나먼 뒤의 일이었다. 그들의 실력 차이는 실제 어마어마하니까.
하지만 원륭은 방심하지 않고 있었다. 중국 정부와 싸우기 시작하면서 방심이란 것을 일체 해본 적이 없는 원륭이었다. 결국 원륭의 적은 악무양 등 이곳의 무림인이 아니라 중국 정부다.
그들에게는 일말의 방심조차 치명적인 것을 원륭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수련을 하러 가기 전 원륭은 의무실에 도로 들어갔다. 의사가 누가 들어오나 보더니 목례를 하고 다시 자기 할 일로 돌아갔다. 원륭도 고개를 까딱하고 악무양에게로 곧장 향했다.
예상대로 악무양은 깨어있었다.
“일어났나??”
“그렇소.”
“언제부터 일어나 있었지??”
“······.”
“아까 우리 얘기를 다 들었군.”
“······거짓말을 못하겠군.”
“넌 어느 거나 서투르니까.”
“그건 맞는 말이오.”
“······.”
두 사람 사이에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원륭이 입을 열었다.
“잘해줬다.”
“뭐??”
“잘해줬다고 말했다.”
“당신······.”
“나는 지금까지 너를 몰아세우기만 했지. 단 한 번도 잘한다고 칭찬한 적이 없었어.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건 너무 잔인한 짓이었다. 솔직하게 말해주지, 악무양. 너는 매우 강해졌다.”
“!!, !!!”
악무양의 눈가에 눈물이 어렸다. 그리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악무양은 목이 잠긴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다.
“나는······. 때론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소.”
“이해한다.”
“당신을 원망하기도 했지.”
“그것 또한 이해한다.”
“하지만 오늘만 참자, 오늘만 참자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텼소. 그러다가 오늘까지 온 것이오······.”
“잘해냈다. 참으로 아주 잘해냈다.”
“으아아아아아!!!”
악무양은 울었다. 미친 듯이 울었다. 이토록 운 것이 언제였던가.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였을까. 아님 대약진운동으로 온 산의 나무가 다 벌채되고 벌거숭이가 되었을 때일까.
아무튼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너무나 오래된 일이었단 것이다.
그로부터 기나긴 세월들이 지났지만 악무양은 울지 않았다. 아니, 우는 법을 까먹고 있었다.
나무가 거의 없는 산을 돌보고 홀로 그 큰 산에서 나무꾼이자 숲지기로 살아갈 때도, 산에 나무가 돌아오고 산적들이 다시 생겨 생사의 전투를 벌이다 치명상을 입었을 때도 그는 운 적이 없었다. 눈물은 사치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세상은 남자에게 우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남자가 울면 약하고, 바보라고 생각한다.
어린 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자도 울 줄 알고 상처 받을 줄 알고 한낱 인간일 뿐이다.
그동안 쌓인 눈물을 모두 쏟으며, 악무양은 대성통곡했다. 원륭은 거기에 대고 한마디를 던졌다.
“내일부터 다시 가혹한 수련이 시작될 것이다. 다시 괜찮겠나??”
악무양은 눈물을 닦고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오. 나는 오늘 하루만 산다는 목표로 생활하고 있소. 결국 죽으면 모든 게 끝나는 거요. 오늘 하루만 죽지 않으면 나는 다시 얼마든지 회복하여 내일 하루를 버틸 수 있소. 사람은 오늘 하루만 버티면 되오. 잠드는 게 죽음의 일종이라고 본다면 잠들기 전까지는 미친 듯이 살아갈 수 있기에.”
“좋은 자세다. 앞으로도 그렇게 생활하기를 바란다.”
원륭은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고 뒤돌아섰다. 그때 악무양이 머뭇거리다 말했다.
“원륭, 궁금한 게 있소. 어째서 새벽마다 연공실이 터져 나갈 정도로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을 치는 것이오?? 다른 이들은 당신이 새로운 무공을 수련하는 거라며 방해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궁금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소. 그건 어떤 무공이오? 그리고 당신은 괜찮은 것이오??”
“······.”
원륭은 뒤돌아선 채로 씨익 웃었다. 그러다 전혀 티내지 않고 엄숙하게 말했다.
“바보 녀석. 그 정도 이상은 수련을 하다보면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너는 남의 수련을 걱정하지 말고 너의 수련이나 열심히 하도록 해라. 네가 나의 경지까지 쫓아오기에는 아직까지 한참 멀었다. 그리고 파천황은 그 위에 있다. 네가 파천황의 옷소매라도 잡으려면 지금보다 더 한 피나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명심하겠소······.”
다시 한 번 풀이 죽은 것 같은 어투로 악무양이 말하자, 원륭은 뒤로 돌아 악무양의 머리카락을 엉망진창으로 휘젓고 나서는 웃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죄다 어떻게든 되겠지.”
“!!, !!!”
그 순간 악무양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았다. 그건 죽은 아버지가 자주 하던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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