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평화로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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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신?? 그는 누구지??”
원륭의 물음에 궁요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글쎄······. 나도 그 분 밑에서 몇 년간을 배웠지만 그 분에 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가 없소. 단지 그분은, 바람과도 같은 분이셨지.”
“바람??”
“그래. 바람과도 같고, 화살과도 같으셨소. 화살 그 자체였지. 그 분은 그저 한 가지 목적을 위해 활을 쏘는 것 말고는 아무 관심이 없는 분이셨소.”
“그 목적이 뭐지??”
“화살로 태양을 떨구는 것······.”
“뭐??”
그러자 모두들 의아해졌다. 태양이란 것은 화살 같은 것으로 떨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 아무리 강한 화살이든, 무려 핵미사일을 쏘아 부어도 태양을 폭발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어째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원륭은 궁금해졌다.
“대체 왜 그런 발상을 한 거지??”
“사일궁(射日弓)의 전설을 아시오???”
“사일궁의 전설??”
모두는 의아해했다. 그러자 그 중 오직 단 한명, 태사향만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일궁의 전설. 태초에 태양을 쏘아 떨어트렸다고 하는 활과 화살, 또는 그 화살을 쏜 궁수를 말하는 거로군.”
“바로 그렇소. 용케도 알고 계시는군.”
“어디서 주워들었을 뿐이야.”
그렇게 태사향이 어깨를 으쓱하자, 궁요는 말을 계속했다.
“솔직히 그런 활과 화살이 있는지는 모르오. 그런 기적을 보인 궁사가 있었는지도 모르오. 전설은 전설일 뿐일지도 모르오. 하지만 그 분은 사일궁의 전설에 다가가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고 계시었소.”
“만약 이루면 어떻게 되는데??”
“그야말로 태양은 꺼지겠지. 온 사방이 암흑천지가 될 것이오.”
“그건 그것대로 곤란한데······.”
원륭을 포함한 모두는 묘한 쓴웃음을 지었다. 태양이 꺼지면 우주는 암흑천지가 될 것이고 지구엔 빛이 닿지 않아 식물이 자라지 않고 얼어붙은 행성이 될 것이다.
순식간에 꽁꽁 얼어붙어 죽음의 별이 되겠지. 원륭은 어깨를 으쓱했다.
“설마 그런 것이 가능할거라고 보지는 않는데. 한빙신공과 열양진경 본래의 모습인 음양혼돈공이라도 과연 그러한 기적이 가능할지······. 태양을 쏘아 떨어트린다는 건 어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닐까?? 어떤 대단한 존재를 쓰러트린다거나, 목표를 이룬다거나.”
“그분도 그렇게 생각하셨소. 그래서 그 분 나름대로 목표를 잡고 수련을 하고 계시었지.”
그 말에 원륭 등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럴 것이다. 아무리 목표를 높게 잡고 수련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는 하나, 너무 높은 목표는 오르지 못할 나무의 열매나 다름없다.
그야말로 그림의 떡인데 그런 목표는 잡지 아니하느니만 못하다. 거기다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만용을 하늘은 용서하지 않겠지.
밀랍 날개로 하늘을 날다 너무 자만해 태양에 가까이 가 날개가 녹아내려 추락해 죽어버린 이카로스처럼, 그런 꼴을 당할지도 모른다. 세상의 섭리란 그런 오만한 자에게 있어선 절대 용서가 없으니까. 어찌됐든 원륭은 물었다.
“그래. 그래서 지금 그 분은 무얼 하시지??”
“나도 모르겠소. 어느 날 나의 성취가 내 한 몸 지키기에 부족함은 없을 거라고 하시며, 수행을 시키는 굴레에서 벗어나 다시 자신만의 무공을 수련하겠다며 떠나셨지. 아마 지금쯤 그분은 다시 사일궁의 전설을 떠올리며 그를 위해 화살을 날리고 계실지도 모르오.”
“어디로 가셨는지도 모른단 말인가??”
“내 존재가 그분에게 방해가 되었음을 깨닫고 나는 향후 그분의 거취를 묻지 않았었소. 그리고 그 분도 그걸 원치 않으셨지.”
“······.”
아무래도 그 궁신이란 인물은 우연히 떠돌고 있는 궁요, 아니 진요를 발견해 동정심에 그에게 궁술을 가르쳐준 듯 싶었다.
“궁요. 이건 전에 일지흔에게도 물어본 것인데······. 너를 궁요라고 불러야 하나?? 아님, 진요라고 불러야 하나??”
그런 원륭의 물음에 궁요는 답했다. 그는 잠시 일지흔의 눈을 쳐다본 다음 천천히 말했다.
“궁요면 되오. 인간 진요는 죽었소. 인간 일지강, 혹은 척지강이 죽었듯 말이오. 여기 있는 건, 복수귀 일지흔과 궁요일 뿐이오. 그렇지 않나, 일지흔??”
“맞는 말이다.”
끄덕. 일지흔이 고개를 끄덕이며 궁요의 손을 꽈악 붙잡았다.
척계광의 후손인 일지흔 역시 본래 이름은 척지강이 되어야겠지만, 과거 척계광이 모함을 받고 좌천되어 사임한 뒤 그 후손들은 숨어 살고 있었다.
심지어 성마저 바꾼 상태였는데 그로 인해 척지강이어야 했던 그는 일지강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었고, 그 마저도 파천황의 마수에 의해 무관이었던 집이 풍비박산 나며 옛 이름을 버렸다.
가슴에 한 줄기 상처만이 남은 복수귀, 일지흔. 그런 존재만이 남아있었는데, 그런 일지흔이니 궁요에게 느끼는 동질감은 더욱 컸다. 일지흔은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며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궁요. 너에게도 그런 과거가 존재했었군. 설마 그럴 줄은 몰랐다.”
“무얼. 여기 있는 자들 모두가 비슷할 것이다. 말을 안한 자들도 있지만 모두의 과거는 비슷하겠지. 파천황이나 공안 무림맹에 당한 자. 인민해방군에 당한 자. 중국 공산당이나 그런 고위 공무원에게 당한 자. 홍위병들에게 당한 자 등 말이야.”
“······.”
일지흔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공산주의의 마수로 인해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전 세계에 뿜은 독소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는데, 그로인한 피해자가 다수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야말로 업보. 죄악이다.
궁요는 말했다.
“우리 모두가 상처받고, 시름하는 자들이오. 그리고 또한 그러한 자들로서 다른 시름하는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겠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오,”
“궁요, 자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나름 말을 하니 잘하는군. 앞으로는 종종 말을 하는 게 어떻겠는가??”
“필요하다면 그러겠소.”
그 말을 끝으로 궁요는 입을 닫아버렸다. 이후에도 그가 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이날만은 그는 꽤나 많이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다만 이번 요리대결에 대한 승부는 끝을 내야겠소. 누구 마파두부가 더욱 맛있는지, 누구 마파두부가 더욱 향이 좋은지 가려주시오.”
“그렇게 말해도 말이야······.”
헐크G가 고개를 긁적거렸다. 그러나 궁요는 승부를 피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진마파두부점의 마지막 생존자로서, 다른 건 몰라도 마파두부에 대한 자존심만은 궁요는 진짜였다.
그건 놀랍게도 그의 궁술에 대한 자부심과 동일했다. 궁술이 무인 궁요로서의 자존심이 달린 문제라면, 그의 마파두부 만드는 실력은 인간 진요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비록 어린 시절 가문이 화를 당하여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되었다지만, 어깨 너머로 배운 마파두부 실력은 어디가질 않는다. 그는 장래 진마파두부점의 후계자였기에.
아마 홍위병들의 폭거가 아니었다면 그는 지금쯤 궁술 따위를 익히느라 손에 알이 배기는 것이 아니라 그저 평화롭게 웍과 국자를 들고 마파두부만을 볶고 있을지도 모른다.
향기로운 마파두부 냄새에,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홀린 듯 이성을 잃고 가게로 들어오겠지.
그리고 궁요, 아니 진요는 구슬땀을 흘리며 자신이 자신 있게 볶은 마파두부를 내놓았을 테고, 손님들은 모두 만족했을 것이다.
‘역시 마파두부는 200년 역사의 진마파두부점이야!!’하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을 터인데, 그런 만약은 없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현실뿐. 그것도 아주 잔혹한 현실뿐이었다.
궁요는 재촉했다.
“자아, 선택하시오! 누구 마파두부가 더 맛있소?!”
“······.”
모두는 고민하다 선택을 했다.
“나는 이쪽.”
“나는 이쪽일세.”
놀랍게도 승부는 원륭의 승리로 끝났다. 아홉 명 중 원륭과 궁요를 제외하고 원륭의 마파두부에 손을 들어준 사람은 천만홍과 당화, 태사향과 일지흔이었다.
반대로 궁요의 마파두부에 손을 들어준 사람은 진흑창과 헐크G, 악무양이다.
묘하게도 기술파와 완력파로 나뉘었는데, 기술파가 기교적인 무공을 중점으로 상대방의 무공을 철저하게 해체 분석하여 파괴한다면 완력파는 그런 기술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본질적으로는 힘과 완력으로 찍어 누르는 파들이었다.
그렇게 4대 3으로 원륭의 승리로 끝이 나자, 궁요는 허무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어린 시절 어깨 너머로 배운 마파두부로는 이길 수가 없었나보군. 내가 졌소, 원륭. 무공에서도 지고, 요리에서도 졌군.”
왠지 궁요의 표정은 매우 서글퍼 보였다. 무공으로 지는 것은 숱하게 당해 와서 이젠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오히려 요리로 지니 더욱 자긍심이 상했던 것이다.
무공은 무림인으로서의 그의 자부심이었지만, 요리는 인간 진요로서의 자부심이었으니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모든 무림인은 무림인 이전에 먼저 인간이니. 그러자 원륭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 승부는 너의 승리다, 궁요.”
“어째서??”
“내가 너에게 한 표를 주지. 그럼으로써 너의 승리야 궁요.”
“그래봤자 4대 4가 아니오??”
“나는 이들 중의 지도자니까 내 한 표는 두 표 이상의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네 승리다, 궁요.”
“그런 억지가······.”
피식. 궁요는 웃었다. 원륭의 말도 안 되는 억지에 평소 거의 웃지 않는 궁요가 피식하고 웃고 말았던 것이다.
“하하!!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
궁요는 미친 듯이 웃었다. 한번 터진 웃음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이런 대폭소를 해본 적이 언제라는 말인가??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주던 마파두부를 보고 함박웃음을 지었을 때??
처음 성공적으로 마파두부를 만들고 자신도 뒤를 이어 진마파두부점의 후계자가 될 거라고 정해놨을 때??
그 때 이후로 웃은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뜻밖에도 원륭 이 자가 자신을 웃겻던 것이다.
정작 원륭은 묘한 미소만을 짓고 그저 자신만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원륭 본인도 사실 그리 잘 웃는 자가 아는데, 그런 자신을 배려해서 왠지 모르게 웃겨줬다고 생각하니 궁요는 고마움이 먼저 들었다. 궁요는 포권을 취했다.
“고맙소, 원륭. 이젠 당신을 믿고 따를 결심이 생겼소. 정말 고맙소, 원륭.”
“아니, 지금까진 그런 결심이 들지 않았나??”
“솔직히 말하면 그렇소, 원륭. 당신은 당신 무공의 내력이나 사문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으니까.”
“······.”
뜻밖의 궁요의 말에 원륭은 할 말을 잃었다. 그것은 사실이다. 일침이었다.
말로는 쪽방촌 무림인들에게서 육합권이나 삼재검을 배워 익혀 써먹고 있다고는 하는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그의 무공은 너무 이질적이었다. 파괴적이었다.
매일 새벽 연공실을 뚫고 전해져 오는 원륭의 고성이나 충격을 통해 모두 원륭의 신체 상태나 익힌 무공이 비범하다는 사실은 깨닫고 있었다.
그런 모두의 걱정과 불안 속에서, 원륭은 절대 자신의 혈귀로서의 진신 무공의 내력이나 신체 상태를 밝히지 않고 그저 자신만이 끙끙 않고 가져가고 있었다. 원륭은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나의 신체 상태나 무공 내력은 조만간 곧 밝히도록 하지. 그때까지 기다리도록.”
“사실 굳이 말을 안 해줘도 상관없소. 당신에게는 당신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테니까.”
“고맙네, 궁요. 하지만 때가 되면 언젠간 밝힐 날이 올 거야······. 내가 원든 원하지 않든.”
“······.”
원륭의 그 말에 궁요는 무언가 눈치를 챘다. 그러나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만을 끄덕였다.
“알겠소.”
“눈치 빠르게 대응해줘서 고맙네, 궁요. 그건 그렇고 자네 마파두부는 정말 놀라웠어. 역시 본고장의 마파두부는 다르구만. 거기다가 이건, 모두부 대신에 연두부를 사용했잖아.”
“엇, 진짜다?!? 먹느라고 몰랐었는데?!?”
“쯧쯧, 악무양. 그러니까 네가 아직 멀은 거다. 온갖 사물에 대한 관찰력을 키우고 예의주시하는 걸 잊지 말아야지······.”
원륭은 악무양을 타박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마파두부의 두부를 원륭과 달리 궁요는 모두부 대신 연두부를 사용했는데, 이건 어지간해선 눈치못채기가 더욱 힘들다.
그러자 악무양은 물었다.
“정말 나만 몰랐소?! 나만?!?”
그러자 진흑창이 말했다.
“그래, 이 멍청한 녀석. 보아하니 산초의 향에 정신이 팔려서 모두부인지 연두부인지 분간도 못했구나. 그래 가지고 똥과 된장을 구분이나 하겠느냐??”
“똥과 된장을 어떻게 구분 못한단 말이오?! 찍어보면 될 것 아니오!!”
“찍어 보는 게 아니라 딱 보기만 해도 구별을 할 수가 있어야지!!”
“와하하하하하!!!”
진흑창의 구박에 모두들 왁자지껄 웃음을 터트렸다. 오늘도 악무양은 어설픈 태도로 모두에게 구박을 받고 말았는데, 그로 인해 그의 입만 댓 발이 나와 있었던 것이다.
“씨잉!! 나만 가지고 그래!!”
항상 불만이 많은 악무양이었다.
- 작가의말
우리나라의 마파두부는 대부분 모두부로 만들고, 저 원조 마파두부 가게인 진마파두부점도 모두부로 마파두부를 만들지만 연두부로 마파두부를 만들어도 맛있다고 합니다.
실제 이연복 쉐프도 연두부로 마파두부를 만들어서 방송에서 선보인 적이 있죠.
인터넷에 쳐봐도 레시피가 전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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