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첫인상
우당탕탕탕!!!
아침부터 일어난 소음에 옆집에 사는 임소교는 원륭의 집에 찾아왔다.
“원륭!! 모처럼 집에 들어왔다 싶었더니 대체 아침부터 뭔 소리에요 이게?? 어?!?”
문을 열고 들어선 임소교는 깜짝 놀랐다. 온 집안이 엉망진창이 돼있었던 것이다.
“이, 이게 뭐죠, 대체??”
임소교는 오들오들 떨었다. 침대는 박살나있고, 몇 안 되는 가구인 탁자도 부러져있었다.
의자는 이미 의자였던 것이 되어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던 것이다.
원륭은 담담하게 말했다.
“아, 인테리어를 새로 할까 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굳이 이렇게 할 것까지는······.”
주변을 둘러보며 당황할 정도였는데, 임소교가 딴 곳에 시선을 돌린 순간 어둠 속에서 한 줄기 송곳 같은 것이 삐져나와 원륭의 심장을 찔렀다.
‘흡!!’
그러나 원륭은 태연히 막고는 거기에 힘을 주어 진기로 어둠의 존재를 물리쳤던 것이다.
어둠의 존재는 바로 살문의 원혼이었다. 그러나 원륭이 스스로 습격을 하라고 요구하기는 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나올 줄이야······. 원혼은 정말 노골적이었다.
자는데 바닥에서 침대채로 심장을 꿰뚫으려고 하지 않나, 원륭이 피하자 그 과정에서 집안 가구들을 다 부숴버렸던 것이다.
그나마 몇 개 되지도 않는 집안의 가구였는데, 그것마저 다 부수니 솔직히 원륭은 짜증이 났다.
“이젠 완전히 집안을 쓰레기장으로 만들어놓는군요. 아아, 그래도 예전에는 집에 안 들어오는 만큼 어지르지도 않아서 좋았는데 이러면 치우는 나만 귀찮잖아······.”
궁시렁궁시렁 거리며 바닥의 파편들을 줍는 임소교였는데,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못 보는 동안 원륭은 원혼을 잡은 채로 전음으로 경고를 주었다.
‘야, 내가 사람들 눈 없는 곳에서 하라고 했지??’
‘큭, 크윽!! 나는 분명히 사람의 눈이 없는 곳에서 널 공격했다!!’
‘결과적으로 옆집 사는 애까지 소음에 눈치 채고 쳐들어왔잖아, 이 멍청한 영혼아!!! 아니면 뭐냐, 내가 자면서 습격 받는 동안 네가 들키지 않도록 차음막(遮音幕)이라도 쳐줘야하냐??’
‘크윽······.’
‘눈치껏 해라. 좀 눈치껏. 수틀리면 그냥 소멸시켜버린다??’
“으윽!!”
원륭이 손에 쥔 원혼에 힘을 주자 원혼은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바닥을 치우던 임소교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일어난 것이다.
“무슨 소리죠??”
“아니, 내가 기지개 켜는 소리인데.”
“그런 것 치곤 어째 조금······.”
임소교가 들은 소리는 고통에 못 이겨 지르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였다.
그러나 단순한 임소교는 원륭의 기지개 켜는 소리는 참으로 특이하구나 하고 그냥 넘어간 것이다.
임소교가 다시 바닥을 치우는 동안 원륭을 공력을 실어 원혼을 최대한의 힘으로 강타해버렸다.
쾅!!
‘언제든지 습격하라고 했지만 설마 집안 가구까지 다 부숴버릴 정도로 눈치가 없는 원혼이었을 줄이야······. 한번만 더 집에서 습격을 하면 두말할 것 없이 소멸시켜버리겠다. 오늘은 그만 꺼져!!’
‘큭······.’
원혼은 분한 듯한 기운을 내뿜으며 그대로 스르르 사라졌다.
한편 원륭이 강타한 마지막 가격 때문에 마치 가죽 북 터트리는 듯한 소리가 나자 임소교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어 원륭을 쳐다봤다.
“이건 또 무슨 소리에요??”
“아, 모기 잡는 소리.”
“이 계절에 모기가 있어요??”
“있지. 겨울 모기가 더 독한 것 모르나??”
“무슨 모기 잡는데 온 힘을 다 쏟는군요.”
“난 항상 최선을 다한다. 그건 그렇고 나갔다 올 테니 이 방 좀 다 치워놔.”
“아아!! 언제나 무심코 하던 것처럼 치우고 있긴 했는데 내가 왜 이 방을 다 치워놔야 하죠?! 언제나 청소는 내 몫이잖아요!!”
“잊었나?? 네가 지금 누구의 덕분에 이런 좋은 집에 살고 있는지??”
“큭······.”
이제는 임소교가 마치 살문의 원혼 같은 분한 표정을 지었다.
원륭의 말 대로 구룡성채에서는 있을 수 없는 크기의 초호화 맨션 같은 이곳은 원륭이 특별히 부동산업자인 아삼 등을 통해 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돈이 있는 사람은 구룡성채에 살지 않고, 돈이 없는 사람 밖에 없는 구룡성채에서는 이 같은 넓은 집이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초호화 호텔이나 다름없는 이 방은 구룡성채 내에 멀쩡히 존재하고 있었고 건물이 높아 그 전망도 아주 좋았다. 구룡성채에서는 극히 드문 햇빛이 비치는 집인 것이다.
이런 저런 기묘한 우연과 이유로 인해 원륭과 임소교는 나란히 이런 초호화 빌딩 옆집에 나란히 살게 되었고 원륭은 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부동산 업자인 아삼 등에게도 매달 꾸준히 돈을 주고, 집을 관리해주고 같이 구세군에서 자선 활동을 벌이는 임소교에게도 어느 정도 수고비를 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정도 주택과 수고비를 제공하는데도 불구하고 임소교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아무리 돈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맨날 집은 내가 치우잖아요!! 이것도 이젠 질렸어요, 정말!!”
탁!! 하고 임소교가 치우던 의자조각을 바닥에 내던지자, 원륭은 시큰둥하게 말했다.
“집에 자주 들어오지도 않아서 어지르지도 않는 방인데 치우는 게 뭐가 힘들어. 그렇게 힘들면 하지 말든가.”
“어??”
“오늘과 같은 일은 어쩌다 한두 번 있는 것이고 전부 다 사례를 하고 치우게 하는 것을······. 좋다. 그러면 오늘부터 치우지마라. 그리고 방도 빼! 부동산업자인 아삼 등에게 말해놓을 테니.”
“어, 어······.”
임소교는 당황했다. 한동안 코빼기도 비추지 않다가 이제 와서 집이나 어지르는 원륭에게 그저 심술이 나서 강짜를 부려본 것인데 의외로 원륭이 세게 나왔던 것이다.
그렇게 통보를 한 뒤 임소교가 당황하는 것 같자 원륭은 다시 회유에 나섰다.
원륭은 품에서 두툼한 봉투 하나를 꺼내며, 임소교에게 건넸다.
“자, 이걸로 부서진 침대랑 탁자, 의자 새로 하나 사오고, 힘들면 아삼 등에게 도와달라고 하든가. 쓰레기를 치우는 건 너 혼자서는 힘들 테니 그들에게 도와달라고 하고 수고비로 조금 나눠줘라. 나머지는 네 몫이다.”
“어? 어?!?”
봉투를 열어본 임소교는 깜짝 놀랐다. 거절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돈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임소교는 재빨리 한쪽 무릎을 꿇으며 포권을 했다.
“지금 바로 아삼 등을 불러 처리하겠습니다.”
“하아······.”
부리나케 오버까지 하며 일을 처리하러 나가는 임소교를 보며 원륭은 한탄을 금치 못했다.
원륭이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중국 여인들은 굉장히 드센 편이라, 중국 여자 하면 시장통에서 마치 싸우듯이 중국어를 난사하며 물건 값을 깎으려는 이미지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원륭의 생각에는 홍콩여자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이곳은 하층민 중에서도 하층민에다 독한 이들만 모여드는 구룡성채라 이런 곳에서도 버티고 사는 임소교가 특별히 더 저런 것인지, 아니면 고아로 자라서 더욱 드세게 자란 것인지 임소교 특유의 천성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좋게 말하면 생활력이 강하고 나쁘게 말하면 뻔뻔한 것이다. 호화 맨션까지 제공해주고 있는데 이렇게 돈을 뜯어내는 꼴이라니······.
물론 집을 치워주기도 하고 그 본성은 나쁘지 않아서 구세군 학교에서 가난한 자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아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는데, 어째서인지 깍쟁이 같은 그녀의 모습을 볼 때면 저절로 피곤해졌다.
‘쟤도 성인도 됐고 언젠가 결혼해야 되지 않나. 저런 걸 대체 누가 데려갈꼬, 하아······.’
악연도 연이라고, 우연히 홍콩에 찾아온 날 자신들에게 시비를 건 부동산업자 아삼을 손봐주다가 당시 옆집에 살던 임소교의 집 벽을 부숴 트리면서 그렇게 연이 시작되었다.
‘그때 집 벽을 부서트리는 것이 아니었는데, 씁.’
원륭은 그렇게 한숨을 내쉬며 창가에 걸터앉아 칙칙한 구린내가 올라오는 구룡성채의 향기(?)를 맡고 있었다.
다음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헐크G 등을 만나 수련을 하고 온 원륭은 집안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허허, 그래도 일은 잘 처리했잖아.”
돈을 많이 준만큼 아무래도 뺀질뺀질한 임소교라도 재빨리 일을 처리한 것 같았다.
원륭은 새로 들어온 침대 등에 만족하며 잠시 침대에 누워 쉬려고 했다. 그때였다.
우직!!
“······.”
원륭이 누운 순간 침대가 부서졌다. 그리고 의자도 마찬가지. 살짝 걸터앉았는데 다리가 부러지며 박살이 난 것이다. 원륭은 잠시 분노에 찬 표정으로 고뇌를 하다가 옆집을 찾아갔다.
“임소교!! 임소교 있나!!”
분노에 차 문을 두들겨 보았으나 인기척은 없었다. 원륭은 집안의 기척을 감지해보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그대로 아삼의 부동산으로 향했다.
“어이구! 이거, 어쩐 일이십니까?? 온다는 말씀도 안하시구요.”
“내가 뭐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행차한다고 미리 연락을 줄 필요가 있나. 그래, 혹시 이번에 임소교가 시켜서 우리 집을 좀 치운 일이 있나??”
“예. 쓰레기를 좀 치우고 새로 가구를 들여놨습니다.”
“잘했네. 그 과정에서 소교가 돈을 좀 주던가??”
“아뇨. 저희는 나리가 시키셨다고 해서 그냥 했을 뿐인데요. 다만 평소 자잘한 일이라도 시키면 수고비를 주시는 나리가 아무 말도 없었다고 해서 다소 의아한 점은 있었지만요.”
‘임소교 이 년이!!’
원륭은 부들부들 끓는 마음을 감추고 웃으며 품에서 봉투 하나를 더 꺼냈다.
“아, 내가 깜박하고 돈을 미처 안 건넸군. 여기 자네들 사례비가 있네. 그리고 미안하네만, 돈은 충분히 넣었으니 한 번 더 일해주지 않겠나?? 가구 좀 튼실한 걸로 사서 도로 넣어주게. 그 과정에서 쓰레기 좀 치워주고 말이야. 그래, 가능하면 단단한 백오동나무 같은 걸로 만들어진 게 좋겠군.”
“그리 하겠습니다.”
아삼이 고개를 꾸벅 수그리자 원륭은 말없이 나갔다. 그리고 아삼 등은 눈치 챈 것이다.
“소교, 그것이 먹고 튀었군.”
“튀었어.”
“그러게.”
마굴이라는 홍콩 구룡성채에서 닳고 닳은 업자들답게 세 사람은 곧바로 임소교의 만행을 깨달았다.
임소교가 돈을 먹고 튀지 않은 이상에야 원륭이 굳이 돈 얘기를 꺼낼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들이 파악하는 원륭이란 사람은 성격은 더럽지만 먼저 건들지 않으면 절대 건들지 않고 뭔가를 시켜도 반드시 일정한 보수를 지급하는 사람이었다.
사실 고객으로 상대하기에는 최고의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그들이 원래는 부동산업자가 하지 않는 자잘한 일들도 대신해주는 것이다.
구룡성채의 집이라 해봤자 대부분 한 평 남짓의 단칸방인데다 하층민들을 상대로 하는 거라 돈이 되지 않지만, 원륭은 일을 도와주면 상당한 보수를 주었다.
그리고 원륭의 그 돈은 당화의 카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구룡성채 내의 범죄자들이나 범죄조직을 소탕한 것에서 나오는 것인데, 따지고 보면 그런 범죄자들도 구룡성채 등의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해서 삥 뜯은 것이기 때문에 결국 삥 뜯은 돈이 같은 소시민인 이 부동산업자 아삼 등에게 돌아가는 것이었다.
돌고 도는 구룡성채의 돈. 이것이 바로 창조경제일까??(??)
아무튼 여러 가지 정황이나 거칠게 구겨진 원륭의 미간만 보고도 이 세 명은 임소교의 만행을 알아차릴 정도였는데, 그들은 임소교의 신변을 걱정했다.
“아무리 임소교라지만 원륭 나리의 돈을 뜯고 멀쩡할까······. 저 사람 평소엔 얌전하지만 한번 건들면 물불 없는데.”
“뭐, 그건 임소교가 알아서 하겠지. 우리는 평소 하던 것처럼 원륭 나리의 일이나 도우며 뽕이나 뽑자고.”
“그러게.”
원륭이 자리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절대로 원륭, 원륭하고 막 부르지 않고, 반드시 대협이나 나리 같은 표현을 써서 불렀다.
그들이 아는 원륭은 성격이 더러운데다 무공의 고수고, 무엇보다 처음 원륭을 만났을 때 시비를 걸다가 개 맞듯이 맞은 기억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몸에 남은 기억이 더 이상의 고통은 거부하고 있었는데, 이러니 첫인상이 중요한 것이었다.
- 작가의말
이번 화에 백오동나무가 언급되는데 실제론 백오동나무라는 것은 없고 벽오동나무가 있습니다.
오동나무는 벽오동나무와 다른데 오동나무는 빨리 자라는 속성수라 재질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벽오동나무는 재질이 좋아 가구에 주로 쓰입니다.
그리고 첨부한 이미지를 보면 아시겠지만 저 백오동나무 드립은 어떤 방송에서 무술수련한다는 분이 격파시범을 보인다고 해놓고 나무가 안부숴지니까 ‘아 이건 백오동나무라고 세상에서 제일 단단한 나무라서 안부서졌다.’라는 드립을 쳐서 그때부터 백오동나무 밈이 생겼습니다. 이점 참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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