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6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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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중에는 재벌도 있고 일반 시민 수준의 재력을 가진 자도 있고 그보다 못한 자들도 있고 더한 자들도 있었지만 모두 원륭의 이런 말까지 듣고 아무런 감정도 안들 수는 없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가진 자가 아니다. 금수다. 짐승.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보면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의 처참한 생활이 구룡성채를 비롯한 홍콩, 그리고 중국 각지에서 펼쳐지고 있었는데 중국 정부의 수뇌부는 호화로운 생활을 떵떵거리며 누리고 있었다. 원륭은 덧붙였다.
“시골에서 올라와 턱도 없는 푼돈을 받고 하루 세끼 내용물도 없는 밀가루 빵에 파뿌리를 먹으며 버티는 농민들!!! 그런 이들의 인건비를 착취하여 해외에 생색을 내고 국가의 발전자금으로 이용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유지하는 중국 공산당 수뇌부들!! 그곳 어디에 모든 인민들을 이롭게 하고 평화롭게 한다는 공산주의의 이론이 들어 있는가!! 이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떠나서 어느 쪽으로 봐도 말도 안 되는 불합리한 체제가 아닌가?! 흑묘백묘론을 외치며 초실리적이고 합리적인 경제정책을 펼친다고 하면서 실제론 천안문 사태 등 자국민을 학살하며 농민공 제도를 용인하며 그 고혈을 빨아먹는 등소평과 그의 하수인들!! 나는 그런 자들이 싫어 중국 정부에 저항하는 것이다!! 과연 너희들은 진정으로 그만한 분노가 있는 것이냐!!!”
원륭의 25년 울분이 모두 터져 나왔다. 시간은 많이 지났지만 그는 25년 전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조금 더 잔인하고, 효율성을 추구하는 성격으로 바뀌긴 했지만 중국 정부에 대한 분노와 중국 국민들을 위한 마음은 진짜인 것이다.
그것은 그가 중국인이라서가 아니다. 비록 자란 곳은 중국이지만 그는 독립운동을 했다 망명한 그의 아버지의 자식으로서 그저 정의를 실현하고 싶을 뿐이었다.
마음은 한국인이었지만 그는 지금 한국에 갈 수가 없었다.
듣자하니 한국은 군사독재 등 중국과 비슷한 다양한 시련을 겪었지만 국민들의 끈질긴 시위와 투쟁에 의해 점차 계속해서 자유와 인권, 그리고 대통령직선제 등 국민들이 가져야 할 당연한 권리를 손에 넣고 있었다. 한국은 그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 중국은 달랐다. 정부와 군, 공안의 힘이 너무 막강하여 국민들의 힘으로는 정부를 뒤집어엎을 수가 없었다. 독재자가 비교적 무른 마음을 가지고 있거나 군과 경찰 같은 치안유지조직의 힘이 약하면 모를까, 현대사회에서 잘 정비된 치안유지조직을 붕괴시키고 일개 국민들이 정권을 붕괴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식으로 알려져 있었다.
정권을 뒤엎기 위해서는 수많은 국민들의 죽음이나 혹은 그들의 권리를 철저하게 탄압하는 불합리함이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아무튼 많은 수의 국민들의 희생, 노력, 고통, 그리고 그로인해 발생하는 분노가 없으면 정권의 교체는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중국은 너무나도 강해 어지간한 시도는 먹히지도 않았다. 실제 작년 천안문 사태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탱크에 깔려 죽어간 것이다.
총에 맞아 죽고, 탱크에 깔려죽고 수많은 희생자들이 속출한 것인데 원륭은 또다시 그런 참사를 반복할 생각이 없었다. 그곳에서 죽어간 자신들의 동료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원륭은 엄격한 표정으로 세 명의 총수들에게 직설했다.
“다른 건 몰라도 홍콩 집값만큼은 낮춰줘야겠다. 그것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어.”
“만약 거부한다면 어떻게 되지??”
“무력을 써서라도 내 의지를 관철하겠다. 그것도 지금 당장.”
진흑창의 발언에 원륭은 차가운 표정으로 답했다. 그러자 진흑창은 대답한 것이다.
“호오, 해볼까???”
화아악!!!
진흑창의 몸에서 기세가 피어올랐다. 그러자 원륭의 몸에서도 기세가 피어오른 것이다.
파직, 파직, 파지직!!!
둘 사이의 기파충돌로 인해 정전기마저 일어날 지경이었는데, 그런 모습을 보고 모두들 깜짝 놀라 일어섰다. 이것은 정말로 충돌직전의 모습으로 보였던 것이다.
“뭐하는 거요!! 오늘은 그저 앞으로의 방침을 정하는 토론의 자리가 아니오?! 이런 곳에서의 충돌은 해서는 안 돼!!!”
단순무식한 악무양치고는 지극히 상식적인 발언을 하고 있었는데, 정작 진흑창과 원륭은 그만둘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홍콩 집값은 당면한 가장 큰 문제이다. 이것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어.”
“양보하지 못하겠다면??”
“힘으로라도 굴복시켜야겠지.”
콰아앙!!!
아예 둘 사이의 기세에 의해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 기세에 주변 다른 사람들은 감히 간섭할 방법도 없어진 것이다.
원륭이나 진흑창 정도의 고수들이 충돌을 일으키면 그 사이의 기운은 의기상인의 공간이 되는지라 말 그대로 기운 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게다가 그것은 같은 수준의 고수라 해서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운의 충돌에 의해 그 기세는 점점 더 커져만 간다. 섣불리 개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진흑창 쪽에서 먼저 기운을 죽였다.
사아악.
그 사실을 깨달은 원륭은 자신도 기운을 죽였다. 팽팽하게 맞서고 있던 두 기운들 중 어느 한쪽만 갑자기 줄어들면, 다른 기운은 자연히 줄어든 기운을 침범하게 된다.
그러면 기운이 줄어든 쪽은 크나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싸울 땐 싸우더라도 일단 진흑창이 한발 먼저 숙이고 들어간 이상 그에게 불필요한 타격을 입히고 싶진 않았다. 만약 싸우더라도 그때는 그때다. 지금은 기운을 죽여도 늦지 않았다.
그렇게 기운이 다 거두어들여지고, 진흑창은 태연히 도로 자리에 앉아 말했다.
“솔직히 말해 홍콩의 집값은 나 역시 언젠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 혼자의 힘만으론 부족한 것이 사실이야. 이미 한번 산등성이에서 굴러 떨어진 돌은 힘으로 멈추는 것이 불가능한 법이야. 제 스스로 힘을 잃어 멈추거나, 그보다 비교도 되지 않는 더 어마어마한 장벽에 들이받아야 멈추는 법이지.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멀쩡히 멈추는 것도 아니야. 다 후폭풍이 있지. 홍콩의 집값은 그런 바위덩어리와 같았어. 미친 듯이 굴러가지만 더 이상 누구도 멈추기 힘든 바윗덩어리. 만약 우리 4대 총수 중 한명이 집값을 하락시킬 마음을 품어도 그 혼자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면 다른 세 명의 총수들은 얼씨구나 하고 낮은 가격에 나온 매물을 사버리겠지. 그러면 결국 소용이 없는 것이야. 그래서 우리들은 지금껏 제로섬게임을 해온 것이다. 영원히 끝이 없는 제로섬게임을 말이야. 그러나 당신이 그러한 계기를 준다면 내 생각엔 전혀 집값을 하락시키지 못할 것도 없지.”
“······.”
원륭은 가만히 진흑창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서 진실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사실인가??”
“내가 거짓말을 해서 얻을 이득은 없어. 오히려 당신 말대로 그러한 계기가 주어진다면 못할 것도 없지. 우리도 그동안 말도 안 되게 엄청난 부당한 이득을 얻은 것은 사실이니까 말이야. 그렇지 않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음······.”
당화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천만홍은 고민되는 듯 했지만 결국 수긍했다.
사실 홍콩의 부동산업은 그들이 진출한 여러 사업 중 하나가 아니라 그야말로 그들 그룹의 근본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 사업의 이윤을 포기하면 그야말로 그룹 전체의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는 것이다. 원륭도 그 점을 지적했다.
“물론 다짜고짜 경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가 이러쿵저러쿵 하면 너희들로서는 납득이 되지 않겠지. 그러나 그런 수준을 떠나서 봐도 너희들의 폭리는 도를 지나쳤어. 이젠 그 수익을 조금 포기해도 되겠지. 지금까지 챙긴 것도 많으니까 말이야. 모든 일은 급작스럽게 할 수가 없다. 나도 점진적인 부동산 가격의 완화를 원하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것만큼은 너무 지나친 상태이니까 말이야.”
“음······.”
그렇게 세 명의 총수들은 납득하고,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일화에게도 천만홍이 토론의 결과를 전달하겠다는 얘기를 끝으로 오늘의 자리는 이 정도로 마무리가 되었다.
처음부터 너무 많은 주제를 한꺼번에 다룰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곳에서 다루는 이 한건 한건의 사안이 모두 중대차한 것이라, 그렇게 가볍게 다룰 것도 아니었다.
이런 중요한 문제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접근했다간 죽도 밥도 안 되는 법.
일주일 후 다시 모인 자리에서 천만홍은 일화가 그들의 방침에 동의했으며, 이 자리에서 결정된 방침은 전면적으로 따르겠다고 했다는 말을 전해왔다.
그러나 일화는 그 이후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번 비무 대회를 끝으로 아예 홍콩의 공식석상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수년간 그녀를 본 사람은 없었다.
······.
“아흑!!”
쾅!!!
바닥에 부딪친 악무양이 신음을 지르며 낙법을 펼쳤다. 그러나 그를 메쳐 넘긴 건 다름 아닌 헐크G였다.
그래플링 기술의 고단자인 헐크G가 작정하고 넘기자 악무양은 도저히 버티지 못했던 것이다.
악무양은 바닥에 쓰러져 숨을 헐떡였다.
“헉, 헉!!”
“아직!!! 그 정도로 뻗어서 쓰나!! 빨리 일어나지 못할까!!!”
“헉, 헉!! 제발 봐주시오!! 이걸로 벌써 다섯 번째가 아니오??? 이러다 죽을 것만 같소!!!”
“꼴랑 다섯 번 가지고 징징거리기는. 그러고도 네놈 사내가 맞나???”
“크윽!!!”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긁는 헐크G의 발언에, 악무양은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음 순간 그는 도로 바닥에 처박혀 있었다.
“헉, 헉!!!”
“정말 약골이로군······. 잠시 그대로 쉬고 있어라. 난 다음 상대를 하고 있을 터이니.”
‘저 자는 정말로 괴물인가······.’
악무양은 누워 눈을 질끈 감은 채 혀를 내둘렀다. 그가 상대한 헐크G는 정말로 인간이 아니었다.
그나마 그의 애병인 쌍도끼를 들고 상대할 때는 날붙이의 이점을 이용해 어느 정도 견제가 가능한데, 맨손 대 맨손으로 상대를 하면 상대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헐크G의 손에 의해 당하는 것이 악무양 뿐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태사향, 일지흔, 궁요를 비롯해서, 심지어 진흑창이나 천만홍, 당화나 원륭마저 순수한 그래플링 기술로는 상대가 안 되는 것이다.
퍼억!!
“큭!!!”
원륭은 헐크G에 의해 넘어가며 신음을 질렀다. 그러나 아직 원륭은 완전히 내팽겨 쳐지지 않았다. 바닥에 닿는 순간 다리로 착지를 하며 되려 헐크G를 넘기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헐크G는 어림도 없었다. 그는 원륭이 메치기를 시도하자마자 되려 다시 한 번 멱살을 잡고 어깨를 축으로 삼아 바닥에 처박아버렸다.
쿵!!
“헉, 헉! 항복이야!! 항복할게!!”
“어딜 항복이야. 야생에서는 항복이란 단어가 없다는 것을 모르나??”
“여기가 야생이야??”
“세상은 언제나 전장이다!!!”
쾅!!!
그럴 듯 아닌 듯한 소리를 내뱉으며 헐크G는 원륭을 다시 처박았다.
그렇게 모든 이들은 몇 번씩 넘기고 나서야 헐크G는 선언했다.
“10분간 휴식!!!”
‘저 악마 놈······.’
‘이럴 줄 알았으면 교관을 맡기는 게 아니었는데······.’
모두의 원망의 눈초리가 헐크G에게 모였다. 그러나 헐크G는 웃으며 말했던 것이다.
“오후 연습은 개인당 20번씩 넘기기로 하자고. 내가 넘어가든 너희가 넘어가든 20번.”
“그만둬!!!”
“넌 악마냐!!!”
드디어 일지흔을 비롯해 악무양이 비명을 지르며 반항했다. 그러자 헐크G는 묘한 웃음을 지었던 것이다.
“호오, 과연 해볼 테냐?? 특별 강습을 받고 싶은 자들이 있는가보군.”
“자, 잠깐!! 난 그런 거 바란 적 없어!! 그래, 악무양! 이 녀석이 문제다! 이 녀석을 쓰러트려!!”
“아니, 일지흔 네가 문제야!!!”
그렇게 악무양과 일지흔은 아웅다웅하며 그들만의 개싸움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머지 사람들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은 것이다.
“저 녀석들 아직 힘이 남아도는가보군. 무림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우리들도 힘에 부치는데.”
그 말을 한 사람은 진흑창이었다. 헐크G를 그래플링 기술의 교관으로 삼은 것은 원륭의 방침이었다.
“앞으로는 병기 없이도 싸울 수 있는 단계에 모두들 들어서야 한다. 그러니 당분간 모두들 병기를 금지!! 헐크G를 교관으로 삼고 맨손 격투술을 체득한다!!”
맨손 격투술이라고 해도 헐크G가 가르치는 것은 유도 등 타격기가 아닌 관절기, 잡기 등의 기술들이었다.
원륭은 무기를 쓸 수 없는 상황에서야말로 그러한 기술들이 빛을 발휘할 것이라 생각하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래플링 기술들은 타고난 재능도 필요하지만 어떻게 보면 타격기보다 더욱 연습과 노력이 중요한 것들이었다. 타격기의 세계에서는 정식적인 교육을 받지 않고 타고난 재능만으로 왕좌에 오른 자들이 있지만, 그래플링의 세계에서는 그런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것이 지금 헐크G가 원륭 등은 물론 세 명의 재벌 총수 등 모두 여덟 명을 압도할 수 있는 이유였다.
내공을 쓰지 않고 타격기를 쓰지 않으며 순수한 그래플링 기술로만 싸운다면 헐크G가 이중에선 제일. 헐크G는 그래플링 기술의 왕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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