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1 그의 그림자
똑똑.
“응?”
자신의 방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원륭은 물었다.
“누구지??”
“나 헐크G다. 원륭, 아직 안자나.”
“아, 헐크G. 들어오게.”
뚜벅뚜벅. 헐크G가 들어왔다. 그 뒤에는 태사향도 같이 있었다.
“태사향도 같이 있었군. 그래, 무슨 일이지??”
“뭐긴, 내일이 결승전이니 격려라도 하러왔지.”
“격려라, 후후. 그런 건 난생 또 처음이군. 아무튼 고맙네. 앉게, 거기.”
“그래.”
헐크G와 태사향이 앉았다. 원륭 또한 침대에 누워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에 앉았다.
“상태는 괜찮은가?”
“뭐 나쁠 거야 있겠나. 지난 번 시합에서 그리 소모도 없었고.”
“······.”
태사향이 잠시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나마 다행이긴 하군. 그래도 진흑창은 정말 만만치 않은 존재일세. 천만홍에게 상당히 밀리다가 절기 한방으로 역전했는데, 그렇게 그의 파괴력은 만만치 않다고 봐야할 거야. 결국 두 사람의 대결은 절기로 끝이 난다고 봐야겠지. 뭔가 대책은 있나??”
“흐음······.”
원륭은 생각하다 말했다.
“딱히 없어.”
“뭐라고???”
“그런 건 딱히 고민해봤자 답이 나오는 게 아닌 법이지.”
“하지만 아무리 그대로 어느 정도는 궁리를 해야······.”
“결국 탁상공론이란 말일세. 아무리 고민을 하고 예상을 해봤자, 실제로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지. 결국 대응은 그 순간에 해야 하는 거니까 말이야.”
“음······.”
태사향도 원륭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말하자면 이거다. 눈앞에서 어떤 절기를 보았다고 해서 그 절기를 완벽하게 분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본디 사람이란 자신의 기술조차 완벽하게 이해하고, 구사하는 게 아니다. 그저 수련을 통해 그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 뿐이란 말이다.
그리고 진흑창의 기술이 강한 회전력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파괴력을 바탕으로 밀어붙이는 기술이란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힘의 흐름이란 엄청나게 복잡해서 같은 기술이라고 해서 항상 같은 힘의 흐름만 발생하는 게 아니라 어떨 때는 어느 방향으로 돌아갔다면 다음에는 전혀 반대의 방향으로 돌아갈 때도 있고, 또 어떨 때는 여러 개의 힘의 흐름이 동시에 발생할 수도 있었다.
원륭도 그 점을 지적한 것이다.
“결국 무림인의 싸움이란 힘의 흐름을 지배하는 싸움이야. 숟가락 하나 못들 것같이 빈약한 체구의 노인이 근육이 가득한 젊은 청년을 이기는 비결이 무엇이겠는가?? 다 ‘합기’에 의한 것이지. 힘의 흐름을 완벽히 파악하면, 완력의 격차는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어. 그 완력이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힘의 흐름이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기술이 뛰어난 자의 먹잇감이 되지.”
“그럼 네 말은 힘이란 기술 앞에 무용하다는 것인가??”
헐크G가 물었다. 그는 자신의 힘에 상당한 자부심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원륭의 말에 의문을 품은 것이다. 그러나 원륭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다, 헐크G. 전에도 말했지만 힘과 기술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야. 빛과 어둠과 같은 것이지. 어느 쪽도 반대편 없이 단독으로 존재할 순 없어. 반대의 개념이 있기 때문에 서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지. 그리고 힘과 기술이란 뛰어날 경우 상대 개념에 대해 상위호환의 존재가 될 수도 있지만 상호보완의 관계도 가능하다. 힘만 뛰어나거나 기술만 뛰어나도 무림에서 먹고 사는 데는 어지간하면 지장이 없지만, 둘 다 뛰어나면 더 좋은 건 당연한 일이지. 그렇지 않겠나??”
“으음······.”
헐크G가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원륭의 말이 맞았다. 절대적인 힘, 절대적인 기술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둘 중의 하나만 선택하라면 기술을 고르는 편이 더 나았지만, 현실적으로 힘을 포기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힘은 떨어지는 반면 기술이 증가하기에 노고수들은 기술 위주로 갈뿐. 반대로 젊으면 젊을수록 경험부족에 의해 기술은 부족하지만 힘은 절정에 이른다.
그래서 힘과 기술이 조화를 이루는 40에서 50살 사이에 최고 전성기가 오는 경우가 많은 것이었다. 물론 무조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뭐 아무튼 진흑창의 기술에 대한 대비법은 나도 생각하고 있어.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자세한 건 결국 붙어봐야 아니까 말이야.”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럼 한시름 덜었군. 우리는 이만 가보겠네.”
“잠깐, 어딜 가??”
“응??”
“이렇게 오밤중에 날 찾아온 건 한잔 마시겠다는 거 아니었나??”
어느새 원륭의 손에는 술병이 하나 들려있었다. 원륭이 허공섭물의 수법으로 방구석에 있던 술병 하나를 날아오게 만든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두 사람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내일이 시합 날인데 술을 마신다니 제정신인가??”
“자네 완전히 미쳤군!!”
그렇게 반응하는 두 사람이었는데, 원륭은 이미 술병을 따고 있었다.
“아~ 괜찮아, 괜찮아!!! 다 모든 것은 수가 있으니까!!”
“자네, 이미 진흑창과 밀약을 맺은 건 아니겠지?? 져주기로 하고서 말이야.”
묘한 표정을 하는 태사향이었으나, 원륭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냐.”
“그럼 왜??”
“다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그렇다 해도······.”
결승전 전날 술을 마시는데 거리낌을 보이는 태사향이었으나, 헐크G가 화통하게 웃으며 잔을 내밀었다.
“됐어, 본인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어차피 져도 다 본인 책임 아니겠나.”
“역시 헐크G!! 말이 통하는군!!”
“이봐, 그만 둬 헐크G!! 그러다 정말로 지면 어떡하려고 그러나?!”
“지면 지는 거지 뭐.”
“뭐라고??”
“이렇게 마시는 걸로 봐서 정말로 그 생각이 있을 거다. 이래놓고 지면 그때 가서 비웃어도 돼. 실력도 없으면서 허세나 부리는 멍청이라고 말이야.”
“헐크G······.”
태사향이 잠시 헐크G를 쳐다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자신도 술잔을 내민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그래, 어차피 네놈이 지지 내가 지나?? 네 맘대로 하라구!! 그래놓고 지면 나도 비웃어주겠어!!”
“고맙다.”
“뭐가 고마워??”
퉁명스런 어조로 술을 한잔 받아 마시는 태사향을 보고, 원륭은 웃음 지었다.
그렇게 세 사람이 화기애애하게 술을 마시려는 찰나, 다시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똑똑똑.
“저건 또 뭐야?? 어이, 누구슈??”
헐크G가 묻는데,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악무양이요. 들어가도 되겠소??”
“아, 술맛 떨어지게 하는 작자들이 왔군. 이봐, 그냥 꺼져. 너희들은 내 수하로 받지 않는다고 말했을 텐데.”
“그러지 말고 한번 들어가게 해주시오.”
“하아······.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일행을 원륭은 싸늘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거기엔 악무양 뿐만 아니라 일지흔이랑 궁요도 있었다.
“그래, 무슨 일이지??”
“······.”
악무양은 아무 말 없더니 이내 무릎을 꿇었다.
쿵!!
“사부님! 절 받으시오!!”
“갑자기 뭔 개소리야??”
“난 오늘부터 당신을 내 사부님으로 모시기로 결정했소!!”
“어이어이, 개소리 하지 말라구. 애초에 나와 행동을 같이하지 않겠냐고 물었을 때는 안한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 무슨 바람이 분 거야?? 일없으니 가봐.”
“우리가 당신 수준을 잘못 보았소!! 당신이라면 필히 진흑창도 이기고 홍콩 최고 고수로 등극할 터!! 그 전에 미리 제자가 되고 싶은 것이오!!”
“그건 오해야. 상대인 일화가 무지하게 약했을 뿐이니.”
“사부!!”
“허허, 이것들이······.”
원륭의 살기가 급속도로 치솟았다. 원륭은 중국에 맞서 싸울 동료가 하나라도 더 필요한 상태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애걸복걸해서 동료들을 모으고 싶진 않았다.
정말로 자신이 중국에 원한이 있고 평소부터 불만이 있어 잘못된 점을 고치고 싶은 자라면 모르겠지만, 이렇게 사정사정해서 동료로 모셔오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그렇게 모셔온다고 해서 그들에게 싸울 동기가 생길 리는 없었다. 원륭도 그 점을 지적했다.
“이봐, 난 중국 정부와 공산당에게 대항할 정예를 모집하는 거야, ‘정예’를. 너희들 같은 어중이떠중이들 받아줄 마음은 없어. 중국 정부에 뿌리 깊은 원한과 절정의 실력을 가진 자들도 그에 대항하다 무수히 많은 자가 죽었다. 죽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자들도 있지. 너희들은 소림칠승을 아나??”
“소림칠승??”
“그 소림사 최후의 고수라던 일곱 명??”
악무양과 일지흔이 반응했다. 궁요도 눈썹을 꿈틀거린 걸로 봐서는 당연히 알고 있는 듯 싶었다. 그야 그럴만했다.
소림칠승은 당대 뿐만 아니라 소림 역사를 통틀어서도 역대급 강자들의 모임이라 평가받았던 것이다.
“그래, 소림칠승은 소림 역사상 가장 강한 고수들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그 행방조차 알 수가 없다. 그들은 중국 정부에 대항하는 우리를 제압하지 않으면 소림사를 부숴버리겠다는 중국 정부와 파천황의 협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우리와 싸웠지만, 결국 마음을 돌려 먹고 그 적대적인 행위를 그만뒀지. 당시 방장이었던 목령이 자진(自盡)하면서까지 파천황에게 목숨을 건 부탁을 했지만, 파천황은 무시하고 소림사를 깡그리 박살내버렸다. 소림사를 불태우고, 승려들을 학살해버렸지. 지금의 소림사는 껍데기에 지나지 않아. 불타다 남은 전각에, 어중이떠중이 땡중들만 가득할 뿐이지. 아무튼 그렇게 소림 역사상 최고의 기재들이라던 소림칠승도 한 명이 죽고, 나머지는 추적을 당하다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당한 것으로 의심되고 있다. 너희는 어떻지? 이 말을 듣고도 중국 정부에 대항할 자신이 있나?”
“······.”
“·········.”
악무양과 일지흔이 모두 조용해졌다. 그리고 궁요는 계속해서 말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줄곧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원륭은 계속해서 말했다.
“죽은 소림 방장 목령은 소림사 전설의 무공인 역근경과 달마지 등을 사용하고 있었지. 모두 달마가 만들었다고 알려진 소림 최고의 절기다. 심지어 금강불괴를 익힌 금령이란 자가 있었는데, 그런 그도 당시 방장을 하지 못하고 목령에게 미루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어설픈 무공으로 중국 정부에 대항하겠다니······. 부끄러운 줄을 알아라!!!”
“······.”
“······.”
“·········.”
세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그 중에 일지흔이 입을 열었다.
“원륭, 난 이렇게 생각하오. 정녕 부끄러운 것은 그 무공이 아니라, 중국 정부에 대항하지 않는 거라는 걸 말이오.”
“뭣이??”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는 딱히 당신에게 무공을 배우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오. 그저 함께 싸우고 싶어서 온 것이오. 나 혼자 만의 힘으로는 중국 정부를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지.”
“넌 뭐지?? 어째서 중국 정부에 대항하려고 하는 것이냐.”
“본디 나의 가문은 무관(武官)이었소. 거기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무공을 가르쳤지. 하지만 파천황이 나타남으로 인해서 모든 것은 무너졌소.”
콰릉!! 일지흔의 두 눈에 폭풍이 스쳐지나갔다. 여기서 대체 파천황의 이름이 왜 나온단 말인가???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