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1 문제의 그 술
그러나 실제로는 원륭과 그들의 차이는 그리 나지 않는다.
다만 원륭이 우위인 것은, 재생력이 탁월한 그 혈귀의 신체뿐이고 무공의 고하로 보면 셋은 비슷했다.
헐크G의 엄청난 내구력과 육탄전 공격력, 그리고 태사향의 초식의 날카로움은 결코 원륭에 뒤처지지 않는 것이다.
‘결국 공격의 기본은 방어라는 거지······. 수비고.’
아무리 강력한 초식을 쓸 수 있어도 맞출 수 없거나 맞춰도 상대가 그것을 버틴다면 답이 없다.
보통 인체는 단순한 공격에도 치명상을 입기 쉽고, 그래서 방어초식이 더욱 중요한 것이었다.
실력이 비슷한 두 사람이 서로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그저 상대를 죽이는 데만 집착한다면 승부는 빨리 끝이 나리라.
하지만 자신은 살면서 상대를 죽여야 하기 때문에 승부가 그리 길어지는 것이다.
보통 비무나 대결에서 몇 십 합, 몇 백 합이 넘게 칼부림이 이어지는 이유였다.
아무튼 그렇게 세 사람은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을 마셨다.
“이 다음은 공부가주(孔府家酒)인가.”
“공부가주. 공자의 제사를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고향인 곡부(曲阜. 취푸)에서 처음으로 만든 술이지. 2천년 역사의 유서 깊은 술이다.”
“무척 잘 아는군, 태사향.”
“공자도 오늘날로 치면 산동성 곡부에서 태어난 사람이니까 말이야. 같은 고향 출신이니 나는 잘 알지.”
“그렇군.”
헐크G는 태사향의 말에 납득하며 공부가주를 한잔 마셨다.
“으음······. 이거야말로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배 향기가 물씬 풍기는군. 게다가 목 넘김도 아주 좋아.”
“그래. 공부가주는 도수가 39도 정도로 제법 높은 편이지만 이상할 정도로 목 넘김이 매우 좋지. 게다가 아주 순해. 그리고 그 특유의 배 향기는 수정방보다는 명백하게 공부가주가 더 짙지. 수정방은 사람에 따라 배 향기가 난다, 사과 향기가 난다, 심지어 자두나 꽃 향기가 난다고 하지만 공부가주의 배 향기는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야.”
“원륭, 자네도 마음에 드나?”
“배 향기가 무척 좋군.”
원륭은 그 한마디만 하고 계속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실 때마다 왠지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어서 말을 아끼고 있었다.
“이번에는 연태고량주(烟壶高粱酒)인가.”
“연태고량주. 중국 10대 명주 안에 들어가는 공부가주 등과 달리 모르는 사람도 있지만 의심할 여지없이 좋은 술이다. 이 술도 약간 향기의 정체에 대해서 추측이 엇갈리는데 무슨 향기가 나는가??”
“음······. 내가 느끼기에는 귤 향? 복숭아 향? 희한하군. 새콤한 귤 향이랑 달콤한 복숭아 향은 보통 같이 나는 경우가 드문데 이 술은 그 두 가지 성질을 동시에 갖고 있어.”
“놀랍군. 자네의 그 평은 보통 연태고량주를 마셔본 사람들의 평과 거의 동일해. 결국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다 비슷하다는 말이군. 보통은 귤 향이 난다고 하지만, 사람들 중에는 복숭아 향도 난다는 사람도 있지. 아주 정확하군.”
“후후, 내가 좀 개코라서 말이야. 코가 아주 좋지.”
그렇게 세 명은 처음에 마시기로 했던 술 세 병을 모두 마셨다. 원륭이 말없이 홀짝홀짝 술을 마시고 있는 가운데 헐크G는 물었다.
“주인장, 여기 마실만한 술 더 있나?”
“검남춘이 있습니다.”
“검남춘(劍南春)!! 왜 이제 말하나!! 빨리 갖다 주게!!”
헐크G의 성화에 주인이 술 한 병을 갖다 주었다.
“이게 바로 그 검남춘이군.”
“검남춘을 아나??”
“후후, 미국에 있으면서도 검남춘의 명성을 들었지. 듣자하니 중국 17대 명주 중 하나라면서.”
“프로레슬링만 하는 줄 알았더니 술도 잘 아나보군. 검남춘이란 사천 지방의 명주 중 하나다. 중국 17대 명주 중 무려 여섯 가지가 사천 땅에서 생산되는데, 검남춘은 그 중에서도 보통 으뜸으로 불리는 것이지. 검남춘의 역사는 4천년으로 중국 역사와 그 전통을 같이 하네. 지금과 이름은 다르겠지만 무려 선사시대 적부터 만들어졌다고 하지. 검남춘은 사천성 금죽시(錦竹市)에서 생산되는데, 그 금죽시가 청나라 시절 검남도(劍南道)에 속해있어서 그때부터 검남춘이라 불리게 된 것이야. 사천성에는 민강과 창강, 타강, 자린강이라는 4개의 큰 강이 지나가는데, 이러한 지리적 환경 때문에 사천성은 선사시대 적부터 술을 만드는 고장이 되었지. 그 중에서도 검남춘이 만들어지는 사천성 덕양(德陽) 금죽(錦竹)시는 타강의 한 줄기가 지나가고, 이 지방은 수정방이 만들어지는 성도(成都), 오량액이 만들어지는 이빈(宜賓), 타패주가 만들어지는 사흥현, 그리고 꿔쟈오1573이 만들어지는 노주(瀘州)와 모두 붙어있네. 강줄기를 타고 명주가 만들어지는 고장이 붙어있는 거지.”
“결국 술을 빚는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좋은 물이란 말인가.”
“그렇네. 검남춘을 빚는 용수는 옥비천과 가까운 물줄기를 사용하는데, 이 옥비천은 산동 노산 광천수와 함께 중국 명천으로 손꼽히는 곳이지. 면죽시 서북부 용문산에 위치해있는데, 그렇게 수수와 찹쌀, 쌀, 옥수수, 밀을 밀로 만든 누룩으로 발효시킨다. 그리고 발효에는 구덩이가 필요한데 천익노호(天益老号)라는 천연의 구덩이가 있어, 천년이상 독특한 미생물들이 번식한 이 구덩이가 누룩을 발효시켜 검남춘만의 독특한 맛과 향기를 자아낸다.”
“그야말로 자연이 만든 천하의 명주로군.”
“그 덕분에 당 덕종(德宗) 시절에는 사천지방의 기라성 같은 명주들 가운데 유일하게 황제의 어주(御酒)가 되었지.”
“못 참겠군.”
“빨리 한번 마셔보게나.”
태사향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헐크G는 이미 술을 따라 붓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입에 한 모금 투척!! 헐크G는 눈을 감았다.
“으음······.”
“어떤가?”
“과연 천하 17대 명주 중 하나이자 당 덕종의 어주가 될 만한 맛이로군. 그런데 이건 어라? 앞의 술에서 느껴졌던 배 향기, 귤 향기, 꽃 향기가 모두 나는군. 허허허, 신기하도다!! 그리고 모든 향이 혀에서 목으로 넘어가면 느껴지는 살짝 매운 향기!! 이것은 중국 백주에서 흔히 느껴지는 매운 느낌과 비슷하지만 그 격이 다르군. 마치 선녀의 우아한 옷자락이 혀를 살짝 스치고 가는 느낌이야!!”
“후후, 괜히 사천 명주들 가운데 유일하게 덕종 시절 어주가 된 것이 아닐세. 사람이 만들 수 없는 그 천연의 천익노호라는 구덩이는 절묘한 맛과 향기를 선사하지. 그리고 검남춘을 만들 때 사용하는 옥비천 물에는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네.”
“뭐지??”
“옥비천 가까이에 제갈정이라는 우물이 있네.”
“제갈정?? 설마 내가 아는 그 제갈 세가와 관련이 있는 것인가?”
“그렇네.”
제갈 세가라는 얘기가 나오자 옆에서 묵묵히 듣고만 있던 원륭이 움찔했다.
“삼국시대 말 위의 장수 등애가 이끄는 군대가 촉으로 쳐들어왔을 때 제갈첨과 제갈상이 면양 동쪽에 주둔하고 있었네. 참고로 제갈첨은 제갈량이 47세 때 낳은 늦둥이 아들이고, 제갈상은 또 그의 아들이자 제갈량의 손자이지. 제갈첨과 제갈상 부자는 분전했지만 군사경험이 많은 인물들이 아니었던 데다 황숭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해 결국 제갈첨은 싸우다 잡혀 참수 당했고, 그 아들 제갈상 역시 끝까지 싸우다 전사했네. 그때 그들의 나이 각각 37세, 17세였지.”
“저런······.”
“아무튼 그들이 등애의 대군에 저항하며 성을 지킬 때 어떤 우물을 사용했는데 그 후로 그 이름에 제갈이라는 글자가 붙어 제갈정(諸葛井)이 되었다고 하지. 그 우물물은 맑고 깨끗하기로 유명했는데 알고 보니 그 우물물이 검남춘을 만드는데도 사용되는 용문산 옥비천 가까이 있단 말이야. 그리고 왜 이곳이 또 옥비천(玉妃泉)인고 하니, 어떤 소녀가 이곳에 버려졌는데 한 어미 사슴이 그 소녀를 길렀고, 그 자란 소녀가 후에 촉왕 개명의 왕비가 되었다 하여 옥비천이 된 것이지.”
“알면 알수록 참 이야기라는 것은 끝이 없군. 질 좋은 술을 만드는 물이 나는 곳에 그런 고사가 얽혀있다니.”
“이후에 중국 정부가 이 옥비천의 물을 검사해보았는데, 기분 탓이 아니라 실제로 몸에 유용한 물질들이 많이 검출되었다고 하지. 과연 검남춘의 그 명성은 우연이 아니라고 해야 하나.”
“그렇군. 덕분에 좋은 얘기 많이 알게 되었네.”
“별 말을. 술을 좋아하면 오다가다 듣게 되는 이야기이지.”
그런데 묵묵히 술을 마시고 있던 원륭은 무언가 새로운 변화를 느꼈다.
‘호오? 체내의 잡스러운 공력이 안정되어간다??’
원륭은 혈귀라 그동안 많은 무림인들의 피를 빨아들이면서 그들의 온갖 공력도 흡수한 상태였다. 그러나 사실 이건 위험한 상태인 것이다.
본래 공력이란 한 가지만 가지는 것이 가장 좋고, 두 가지 이상을 가진다해도 불가나 도가와 같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공력을 가지는 것이 한계였다.
사마(邪魔)의 잡배들은 온갖 괴상한 공력들을 끌어 모아 이상한 내공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상태로는 언제 몸이 주화입마가 걸려 뻥 터질지 모르는 것이다.
체내에서 내공끼리 거부반응을 일으켜 과장이 아니라 폭발을 일으켜 혈맥을 다 터트리는데 운이 좋다고 해도 심맥에 영향을 미쳐 광인이 되기 딱 좋았다.
사파에서 특히 이상한 자들이 많은 건 다 그런 이유인데, 원륭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인 것이다.
다만 혈귀의 재생력이 손상되는 혈맥을 계속 재생하고 있어서 그 정도까지는 가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도 바람직한 건 아니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다름없으니.
혈마 불사왕은 이 문제를 마약을 하는 것으로 해결했는데, 마약 역시 부작용이 있고 나름 구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은 편이라 원륭은 거리낌이 있었다.
그런데 술을 마시자 체내에서 충돌하던 내공들이 융합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완전히 내공들이 진정된 것은 아니지만, 날뛰던 내공들이 상당히 진정된 것만으로도 원륭은 큰 수확이라고 느꼈다.
‘흐음, 그렇군······. 이거 다른 술을 더 마셔봐야겠어.’
원륭도 가끔 술을 마셨지만 싸구려 잡주 같은 걸 마실 때는 이러한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수정방을 시작으로 공부가주, 연태고량주, 그리고 검남춘을 마시자 결정적으로 반응이 왔던 것이다. 과연 당나라 황제의 어주였다. 원륭의 저주받은 몸도 치유해줄 정도니.
그 사실을 알아차린 원륭은 이제 자신이 술을 주문했다.
“이봐, 주인장. 우리가 마시지 않은 술중에 최고로 좋은 게 있다면 한번 가져와봐. 얼마짜리라도 사주지.”
“알겠습니다요.”
“어이, 원륭! 돈 있어?? 너무 비싼 거는 감당하지 못한다고.”
“괜찮아, 내게도 돈이 있으니까.”
“진짠가?? 하지만 정말 명주는 가격이 얼마나 나갈지 모를······.”
“후후, 괜찮대도. 내게는 이 카드가 있지.”
원륭은 당화에게서 빼앗아온 다이아몬드 등급 카드를 내보였다. 돌려주려고 했지만 깜박하고(?) 아직 돌려주지 않은 것이다.
“오오, 이 카드는 뭔가? 딱 봐도 뭔가 비범해 보이는군.”
“후후, 막대한 가입비와 연회비, 그리고 자격을 갖춘 자만이 갖출 수 있는 환상의 카드지.”
“그런 카드를 어떻게 자네가??”
헐크G의 물음에 원륭은 대답했다.
“빌렸네.”
“빌리다니?! 훔친 건 아니고??”
“빌렸다니까.”
“크흠,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만······. 근데 그런 귀한 카드를 과연 누가 빌려줬는지 의문이군.”
“후후, 다 좋은 지원가가 있지.”
그렇게 그들이 히히덕거리고 있는데, 문제의 그 술이 왔다.
“주문하신 술 나왔습니다. 이 술이 우리 가게에서는 제일 좋은 술입니다.”
“오오!!”
“이 술은······.”
반색하는 헐크G와 태사향과는 반대로, 원륭은 얼굴을 찡그렸다. 그 술은 모대주(茅臺酒)였다.
모택동이 즐겨마셨다고 해서 더욱 유명해진 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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