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이글거리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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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이 자식??’
원륭은 의외의 모습에 눈을 크게 떴다. 진흑창의 눈에는 순수한 투쟁심밖에 보이지 않았다.
의아함이 담긴 천만홍의 눈이나, 적개심이 가득한 일화와는 달리 순수하게 한판 붙어보자는 의지밖에 없었던 것이다. 원륭은 직설적으로 나아갔다.
“한판 해보겠나?”
“응?”
“한판 해보겠냐고 말하는 거다.”
“이 자리는 회합의 자리가 아닌가? 너도 우리를 모았다면 뭔가 말하고자 하는 뜻이 있어서 불렀을 텐데. 우리를 모은 건 사실 당화가 아니라 당신이지?? 누가 봐도 당신이 이 모임의 주인인 것 같은데.”
“그딴 건 상관없고 한판 해보겠냐고 묻는 거야!”
“!!”
“!!!”
순식간에 주변의 공기가 가라앉았다. 시간이 멈추고, 오직 둘만이 이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인물들은 상관없이, 오직 이 공간은 순식간에 진흑창과 원륭만의 공간이 되었던 것이다.
그때 당화가 손뼉을 마주쳤다.
짝!!
“그쯤하지. 흑사의 말대로 이 자리는 붙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지금 당장은 말이야.”
“흥, 도발하길래 진짜로 해볼 거냐고 물었을 뿐이야. 진흑창이라고 했나? 붙고 싶다면 언제든지 상대해주지. 나는 그런 걸 거절하지 않아. 언제든 말이야.”
“······.”
진흑창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언제나 주변 사람들과의 모임에서 싸움을 거는 타입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음습하게 시비를 거는 건 아니고 이렇게 기운만으로 상대를 도발해 결국 대결을 이끌어내는 타입인 것이다.
그를 비롯해 그의 조직인 흑사회는 무투파로 유명했는데, 이건 당대 흑사인 진흑창 뿐만 아니라 그의 선대의 선선대 시절부터 내려온 분위기다.
하지만 그런 자신에게 이렇게 당당하게 나오다니. 진흑창은 입가에 고소를 머금었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고 하면 곧 붙을 기회가 있다는 거겠지?? 일단 용건부터 들어보지. 싸우는 건 그 다음에 언제든지 하면 되니까.”
“좋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나에 대해서는 잘 아는 사람도 있고 잘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건 중요치 않지. 중요한 건, 홍콩 4대 재벌 간의 비무대회를 제안한다는 것이다.”
“비무대회???”
천만홍과 일화의 눈이 커졌다. 비무대회라. 이 얼마 만에 들어본 말인가.
무림의 최전성기 때는 분명 비무라든지 대회 같은 것이 숱하게 있었지만, 청나라 시대만 되도 무림이 탄압당하기 시작해서 공개적인 비무대회는 싹 사라졌다.
이들도 청나라 시절의 인물들은 아니지만 워낙 상식적인 일이라 비무대회가 사라진 것은 모두들 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비무대회라니?? 일화가 물었다.
“그딴 건 뭐 하러 여는 거지?? 열어서 득 될 게 있느냐?”
“멍청한 것. 너희 홍콩 4대 재벌이 한 짓을 봐라. 너희는 중국 본토가 공산당에 유린당하는 동안 상대적으로 안전한 홍콩에서 온갖 짓을 다해왔지. 거기에는 합법, 불법적인 일을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너희들의 경쟁이 극심해진 결과 홍콩의 부동산 매물은 씨가 말라 부동산 가격이 하늘로 치솟고, 서민들은 살 곳이 없어 급기야 구룡성채 같은 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외에도 온갖 분야에서 너희 투쟁으로 인한 부작용은 결국 서민들이 지고 있어. 그렇게 경쟁해서 대체 뭘 얻으려는 거지?? 홍콩의 주인이라도 될 건가?? 안타깝지만 너희 지위는 모래위의 누각에 불과하다. 언젠가 공산당이 들어와 입김이라도 한번 훅 불면 너희는 모두 쓰러지겠지. 그것이 홍콩 4대 재벌의 실체다. 이해가 가나??”
“······.”
네 명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당화야 이미 한번 들어서 비교적 무덤덤한 모습들이었지만, 다른 세 명은 내심 침착한 척 하면서도 속으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에게 이렇게 대놓고 뭐라 하는 사람이 누가 있었던가. 심지어 현재 중국의 주석인 등소평조차도 그리 하지 못했다.
아직 홍콩이 중국에 완전히 반환되지는 않았지만, 홍콩반환협정을 통해 홍콩을 중국과 영국이 홍콩이 완전히 반환되는 2047년까지 공동으로 통치하기로 합의하였으므로 중국 역시 점점 그 영향력을 넓히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 네 재벌이 재벌로 우뚝 서는 데는 이미 중국 정부의 승인과 편의제공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밀월 관계가 있었는데 대뜸 공산당이 본격적으로 개입하면 자신들의 위치는 사상누각과 마찬가지라니. 일화는 반박했다.
“흥, 누가 멍청한 것이냐!! 그런 생각쯤은 여기 있는 모두가 다 해보았다! 하지만 중국과 우리들의 관계는 명확하다! 우리가 먼저 배신하지 않으면 그들도 먼저······!”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건가? 안타깝지만 이미 중국 사기업들의 총수가 바뀌고 있다. 그들 역시 지금까지 적지 않은 뇌물을 바쳐 고위 공직자들의 비위를 맞췄을 텐데, 그런 것이 무색하게 바뀌고 있다는 거지. 그들 중 자수성가한 자들도 한둘이 아닌데, 그런 자들의 기업을 빼앗아 총수를 공산당은 자기 사람으로 채워 넣고 있다. 공산당 수뇌부의 가족, 친척, 지인들로 말이야. 그리고 순순히 은퇴하지 않으면 곧장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으로 끌려가고 있지. 그곳은 어딜까? 강제 노역소? 장기적출 공장? 어디를 상상하든 만만치 않겠지.”
“흥, 우리들은 단순한 일개 재벌이 아니다. 우리들은 홍콩의 빛과 어둠을 모두······.”
“갖춘 무력조직이라고?? 너희들, 공안 무림맹이 투입되면 당해낼 수 있나?”
“공안 무림맹······.”
“으음······.”
천만홍과 일화가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진흑창 역시 다시 눈을 감고 팔짱을 낀 채였지만 그의 미간이 순간 꿈틀거렸다. 공안 무림맹.
그 압도적인 전력의 앞에서는 자신들의 사조직은 무력한 것이다.
“너희들 중 공안 무림맹과 대적한 자들이 있나? 난 이미 대적해왔다. 그것도 무려 25년 간 말이지. 1966년 문화대혁명 때부터 대적해왔는데 그들의 행사는 철저하다. 총기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여차하면 인민해방군과 연계하여 학살을 저질렀지. 작년 천안문 사태 역시 그들이 개입했다. 그건 알고 있나??”
“소문으로는······.”
“그것이 너희들 땅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적당히 공산당 고위직에게 뇌물을 찔러주고 사업이 번창할 때는 일의 심각성을 모르겠지. 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대책을 강구할 것이냐? 4대 재벌의 식견이 이것밖에 안되는가?!”
“······.”
4대 재벌들은 입을 닫았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이것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오.”
“좋다. 그리 간단하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겠지. 너희들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하겠다.”
슈욱!!
천만홍의 말에 원륭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때 눈을 감고 있던 진흑창은 원륭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깨닫고 당화에게 물었다.
“이봐, 저런 자를 대체 어디서 초빙한 거지?? 너무도 압도적인 전력이로군.”
“훗, 천하의 진흑창도 오늘은 말이 많군. 그렇게 저 자의 실력에 탄복했나?”
“두 말하면 잔소리. 나 역시 평생을 싸움터에서 살았지만 저런 자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진흑창은 별로 말을 하지도 않았지만, 당화는 그가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평소의 진흑창은 정말로 거의 말없이 언제나 목적만을 위해 행동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싸우고 싶으면 붙고, 마음에 안 들면 붙고, 할 말이 없으면 절대 말이 없고 가끔씩 이렇게 4대 재벌 간의 회합이 일어나도 계속 눈을 감고 팔짱을 낀 채 남들의 이야기만 듣다가 돌아가는 것이 보통 진흑창이었다. 그런데 이 정도로 말을 많이 하다니. 하지만 그럴만했다.
“뭘, 그가 갑자기 날 찾아왔을 때는 나도 놀랐다. 그리고 한판 붙었지.”
“호오, 한판 붙었다는 건가?? 결과는??”
“비밀로 해두지. 하지만 내가 살아서 이 자리에 왔다는 것을 보면 대충 짐작이 가지 않나??”
“과연······.”
진흑창은 납득했다. 만약 원륭의 실력이 당화보다 약했다면 당화는 그의 말 따윈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부터 원륭이 하려는 계획은 어지간한 무력으론 불가능하니까.
그리고 절대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닌 당화가 그의 말에 이끌려서 왔다는 말은 최소한 원륭이 당화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무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진흑창은 씨익 웃었다.
‘조만간 한판 붙을 일이 있을 거라는 말투던데. 과연 일이 재밌어지겠어.’
한편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다른 이들은 움찔했다.
진흑창은 말도 거의 하지 않지만 웃는 일이 거의 없어, 무면(無面)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하도 웃는 일이 없어 사람 얼굴같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였는데, 가끔씩 그가 웃을 일이 있었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거나 붙고 싶을 때, 그럴 때만 웃는 것이다.
그러니 그의 웃는 얼굴을 보는 자들은 꺼림칙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 미소를 보는 자가 죽거나, 조만간 누군가 죽어나간단 소리기 때문에.
그렇게 살인미소를 띄우며 진흑창이 흡족해하고 있는데, 당화가 재촉했다.
“대충 사태 파악은 됐겠지? 그는 수십 년 전부터 공안 무림맹과 맞서 싸운 인물이다. 그리고 작년 천안문 사태 이후 본거지를 홍콩으로 옮겨 다시 공안 무림맹과 싸우려 하고 있지. 그는 공안 무림맹과 맞서 싸울 힘으로 우리를 원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응하지 않으면 언젠가 중국 공산당에 의해 그 피를 볼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지. 자, 어쩔 텐가?? 그의 제안에 응할 것이냐? 응하지 않을 것이냐??”
“난 응하는 쪽을 택하겠다. 그 편이 더 재미있어 보이거든.”
“난 그의 방안을 좀 더 들어보겠어. 지금으로선 구체적으로 뭘 하려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그의 말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턱대로 새 배를 탈 수는 없지.”
“나도 그렇네. 일단 보류하겠어.”
“그런가······.”
진흑창이 동의한 반면, 일화와 천만홍은 좀 더 신중하게 얘기를 들어보겠다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의견이 반반으로 갈린 가운데, 잠시 후 원륭이 돌아왔다.
“얘기는 해봤나? 어떻게 하기로 했지?”
“나와 흑사는 너의 의견에 찬성하는 쪽이지만, 일화와 천만홍은 좀 더 얘기를 듣고 싶다고 한다. 무턱대고 모험을 할 수는 없다는군.”
“그런가······. 과연 그렇겠지. 좋아, 설명해주마. 내가 제안하는 것은 비무대회라고 아까 설명은 했지. 하지만 그 비무대회를 통해 구체적으로 뭘 하려고 하는 것인지는 아직까지 모를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마. 그 비무대회의 우승자 쪽이 홍콩 4대 재벌의 총수에 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결정은 무조건 그 총수의 그룹에 따르는 거지.”
“4대 재벌의 총수라고?!”
“미친, 난 그런 것 인정 못해!!”
천만홍과 일화가 당혹감을 표출하는 가운데, 진흑창이 갑자기 껄껄대며 웃었다.
“그런가! 난 이런 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 진흑창도 감히 생각해내지 못한 제안을 단번에 하다니 아주 머리가 좋군 그래, 껄껄!! 그래, 한번 해보자구!! 지금처럼 쥐새끼같이 찔끔찔끔 싸우지 말고 화끈하게 한번 해보는 거다, 껄껄!!”
“이래서 무식한 무투파들은!! 그런 건 네놈들 좋은 방식이잖아!! 차라리 그럴 거면 기업매출이나 다른 지표로 승부를 보자구!!”
“······.”
일화가 소리치는 가운데, 천만홍은 갑자기 생각에 잠겼다. 그때 원륭이 설명했다.
“그럴 줄 알고 미리 조사를 해봤다. 너희 4대 재벌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박빙이더군. 분면 매출로 따지면 1등은 있기야 하지. 하지만 기업의 순위는 그것만으로 가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순이익, 부채, 기타 수많은 지표들을 고려해야하지. 그리고 내가 이미 조사해온 바에 의하면 매출을 봐도 너희 순홍 그룹은 1등이 아니던데? 정말로 그렇게 결정해도 괜찮겠나??”
“익, 이익!! 말이 그렇다는 거야, 말이!! 진짜로 기준을 세우자면 다른 게 있겠지!! 좀 더 복잡한 걸로!!”
“아쉽지만 나는 그 의견을 그리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 내가 제안하는 조건은 이거다. 무차별 비무대회.”
“무차별 비무대회??”
“그래. 서양에서는 현재 무차별 격투대회의 개최가 이루어지려고 하고 있다. 사실 그런 건 고대 그리스, 로마의 판크라티온이 그 시초긴 하지. 그러나 그 잔인성과 기타 이유 등으로 인해 명맥이 끊겼는데, 이제 다시 부활하려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가 먼저 하자는 거지. 사실 따지고 보면 너희는 홍콩 4대 재벌 이전의 암흑계의 범죄조직들이 아닌가?? 각각 당가, 흑사회, 홍화회, 천지회의 수장을 맡고 있다. 너희들이 언제부터 기업가 나부랭이가 된 거지?? 정신 차려라, 이것들아!! 너희들은 암흑계의 인간이지 빛의 인간들이 아냐!!!”
“······.”
잠시 모두들 말이 없어졌다. 그러다 진흑창이 입을 열었다.
“오래 전부터 이런 걸 열망했지······. 적대 기업을 인수 합병하고, 음해공작을 펼쳐서 망하게 하는 건 이제 질렸어. 사나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지. 단순히 두 주먹으로 원하는 것을 얻는 것. 얼마나 단순하고 아름다운가. 나는 찬성하겠다. 이런 걸 기다려왔어.”
“나도 찬성하지. 애초에 내가 이 회합을 연 건 그의 제안에 찬성했기 때문이니까.”
진흑창과 당화가 찬성의 의사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일화가 입을 연 것이다.
“나, 나는, 그렇게 쉽게 격투대회 같은 것에 그룹의 명운을 걸 수는······.”
그때 원륭의 눈이 붉게 빛났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일화. 만약 여기서 거부한다면 네년은 단번에 죽여 버리고 그 시체는 갈기갈기 찢어버리겠다. 어이, 그쪽의 천만홍이라고 했나? 네놈도 마찬가지다.”
“우리 둘 다 거부한다고 하면 함부로는······!”
“설마 숫자에 기대어 너희들을 핍박할 것이라 생각했나? 웃기는 소리. 거절하면 너희 두 연놈을 당장에 죽여 버리겠다. 그것도 나 혼자서 말이야. 못할 것 같나? 나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
일화는 원륭의 이글거리는 눈을 보고 흠칫 눈을 돌렸다. 그 눈은 붉게 빛나서 마치 사람의 것이 아닌 것 같은 요사스러움이 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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