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2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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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겠습니까?? 당신마저 가면······.”
“그녀가 가지 않으면 모를까, 가는데 내가 빠질 순 없소. 가령, 이것만큼은 나도 양보하지 않겠소. 간다면 나도 무조건 따라갈 거요.”
“조위······.”
“······.”
임상진은 잠시 생각해보다가 그게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 만약 간다면 그가 가는 게 낫겠지. 그게 어쩌면 유가령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상대는 유가령이 이름 있는 영화배우이자 양조위의 애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납치해버렸다. 그럴 바에는 그냥 정면으로 돌파해버리자는 게 임상진과 이들의 생각이었다.
상대가 유가령이나 양조위의 이름값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 이쪽도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정면으로 나가서, 적들의 반응을 살펴본다. 어차피 유가령은 한번 납치되었고, 그녀에게 당한 일을 들어보니 이미 그들은 더 잃을 게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유명 영화배우라고 해서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군. 일개 소시민보다 더욱 위험하고 불행한 삶이라고 할 수도 있으니······.’
임상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세상에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란 건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들은 어느새 주식회사 황룡의 건물 앞에 다다랐다.
“도착했습니다. 황룡에는 와보신 적들이 있습니까?”
“나는 와본 적 없소. 이번이 처음이오.”
“저는 아마도······두 번째일 것 같군요.”
“······.”
유가령의 그 말에, 임상진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다 그는 이내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는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부디 마음 꾹 다지시길 바랍니다.”
“알겠어요.”
“그리하겠소.”
그리고 그들은 주식회사 황룡의 건물로 들어갔다.
“누구시죠??”
새롭게 투입된 직원, 아니 조직원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입구에서 그들을 막았다.
“경찰이오.”
임상진은 신분증을 보여주고 그대로 들어가려했다. 그러나 조직원은 계속해서 막았다.
“옆의 분들은 누구시죠? 경찰이 아니면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경찰이 사건현장에 들어간다는데 무슨······. 당신이 황룡의 대표요?? 잔소리 말고 꺼지시오.”
탁!!
임상진은 자신을 막는 조직원의 어깨를 밀고 지나가려했다. 그때 그는 상당한 충격을 어깨에 받고 뒤로 튕겨져 나왔다.
‘헉?! 무슨??’
“못 지나간다면 못 지나갑니다. 그리 아시죠.”
“······.”
조직원은 담담한 말투였지만, 그 눈은 임상진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마치 산문을 수호하는 사대천왕처럼 당당히 입구를 가로막고 있었다.
‘역시 이 자식들······. 소문이 사실이었나??’
영화사인 주식회사 황룡의 실체는 삼합회인데, 그것도 삼합회는 여러 조직이 뭉친 것을 말하기 때문에 황룡은 정확히는 고대에서부터 내려온 전설적인 무림세가, 당문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일반인이라면 절대 알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보통 경찰조직 쯤 되면 각 범죄조직의 역사와 계파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이렇게 뜬소문이라도 듣는 것이 가능하다.
만약 이자가 삼합회의 일원인 당문의 조직원이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가 설명 가능한 것이다. 임상진도 현장에서 구르는 형사인지라 덩치도 좋고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었다.
하지만 전력을 기울인 것도 아닌 어깨질에 가볍게 튕겨나가다니. 이건 무림인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그때 그 모습을 보던 양조위가 나섰다.
“안녕하시오, 나는 양조위라고 하오.”
“영화 황제 양조위!!”
“영화 황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고, 아무튼 배우 양조위가 나요.”
“어쩌다 이런 곳에······.”
조직원은 태도가 다소 누그러졌다. 홍콩 시민들 중에 양조위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대만이든, 마카오든, 중국 본토든 그것을 넘어서 이미 아시아 전역에 양조위의 명성이 널리 퍼져있는 것이다. 그래서 별명이 영화 황제, 영제였다.
“영화배우가 영화일 말고 무슨 일로 영화사에 찾아왔겠소?? 그저 볼 일이 있어 왔는데 우연히 이분 형사님하고 마주친 것뿐이니 들여보내주시오. 아님 우리 둘만이라도 좋소.”
그리고 양조위는 유가령을 끌어당겼다.
“그 분은??”
“같은 배우인 유가령이라고 하오.”
‘유가령!!’
그제서야 조직원의 눈이 커졌다. 그 역시 당문의 일원인지라 자신의 조직이 유가령을 납치했던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피해자가 제 발로 납치현장에 돌아오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편 그 모습을 보던 세 사람의 눈이 가늘어졌다.
‘역시······.’
‘당문이 가령을 납치한 범인이었나??’
임상진과 양조위는 각각 생각했다. 방금 이 자의 반응은 단순히 영화배우를 본 영화사 직원의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영제라 불리는 양조위를 소개받았을 때보다 더욱 반응이 격했던 것이다.
세 사람이 심증을 굳히고 있는데, 조직원은 잠시 뭔가 생각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일단 출입허가를 받고 와야 될 것 같습니다. 기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유가령과 양조위의 말에, 조직원은 잠시 가만히 그들을 쳐다보더니 곧 안으로 들어갔다.
“형사님은 먼저 안으로 들어가셔도 괜찮습니다. 저희들끼리라도 이런 백주대낮에 무슨 일이 벌어지진 않을 테니까요.”
“······.”
임상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유가령 씨는 이미 한번 납치된 적이 있습니다. 정말로 이들이 범인이라면 솔직히 여기에 오는 것 자체가 위험합니다. 당신들의 요청으로 인해 오기는 했지만······. 가능한 한 최대한 옆에 붙어있겠습니다. 양해해주시죠.”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수긍했지만, 정작 그렇게 말한 임상진은 본인이 불안해졌다.
‘이들이 정말 당문의 일원들이라면, 나 같은 건 사실 도움이 안 돼. 내가 그들을 보호하는 게 아니다. 그들이 나를 보호하는 거야. 당문이라면 일개 형사의 목숨 따윈 파리 목숨에 불과하니까······.’
임상진은 형사답게 자신의 주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진짜 범죄조직에게 형사는 불가침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건드리면 귀찮아지는 존재에 불과하다.
정말로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고 성가시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형사도 파묻는 것이 홍콩 범죄조직들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영화 황제인 양조위나, 그의 여자 친구이자 같은 배우인 유가령의 이름값이 더 도움이 되리라.
그리고 만약 저들이 정말로 유가령을 납치한 존재라면······. 믿을 건 양조위 뿐이다.
‘배우의 이름값이 형사의 직책보다 더 도움이 되다니······.’
임상진은 순간 자조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생각해봐도 일개 형사인 그의 지위는 얼마든지 대체제가 있는데 반해, 영화 황제 양조위는 그 누구도 대체할 수가 없다.
사람의 생명 값은 다 똑같다고 하지만, 실제론 그 영향력이 분명히 다른 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뭐 어쩔 수 없나······. 꼬우면 다시 태어나야지······.’
임상진은 무심코 담배를 꺼내 한 대 태우려다, 옆에 두 사람이 있는 걸 보고 흠칫했다.
“아, 우리는 신경 쓰지 말고 피우시오. 한숨 돌릴 시간도 필요하시겠지.”
“······.”
임상진은 그런 말을 하는 양조위를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같이 피우시겠습니까?? 영화상에서 자주 피우시던데.”
“아, 난 촬영할 때는 담배 피우는 장면이 곧잘 나오지만 실제론 거의 피지 않소.”
“그렇습니까??”
임상진은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된 것에 내심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영화 황제 양조위의 담배 피는 모습은 멋들어져서 그를 상징하는 유명한 장면들 중 하나였다.
그런데 실제론 거의 피질 않는다니. 이 사실은 그리 잘 알려진 사실이 아니라 정말 친한 지인들이 아니면 모를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임상진은 의의로 남들은 잘 모르는 비밀스러운 사실을 알게 됐다고 여겨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그럼 저 혼자 저 구석에서 피우고 오죠.”
“그리해준다면 고맙겠습니다.”
양조위가 고개를 끄덕이자, 임상진은 재빠르게 그들이 시야에 들어오는 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왔다.
실은 좀 더 느긋하게 피우고 싶었지만, 적진에서 잠시라도 그들의 옆을 비우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담배를 피우고 싶다니, 상진아, 임상진아, 이 구제불능인 흡연자놈아······.’
임상진은 스스로를 탓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오랜 시간 담배를 참고 있으면 금단증상이 와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피지 않았으면 모를까.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손도 안대는 건데, 쯧······.’
그나마 마약에 손을 안 댄 것이 다행이라고 할 것이다. 그것 말고 술이고 담배고 몸에 안 좋은 건 다 하지만.
그렇게 임상진이 후다닥 담배를 피우고 오는데, 마침 그 조직원이 건물 안에서 나왔다.
“허가가 나왔습니다. 들어가시죠.”
“셋 다 들어가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
세 사람은 말없이 조직원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건물 1층 로비로 들어가자마자, 누군가 나와 그들을 맞이했다.
“안녕하십니까. 나는 이 영화사의 대표를 맡고 있는 당령입니다.”
‘당령이라······.’
임상진이 하필 신경 쓰이는 당씨라는 성씨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양조위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시오. 나는 양조위라 하오.”
‘영제 양조위!!’
당령의 눈이 묘하게 커졌다. 범죄조직의 수뇌부인 그도 영제 양조위를 눈앞에서 만나자 동공이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은 실제론 당문의 인물이라도 겉으론 명색이 영화인으로 위장하고 있는 그였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 역시 영화에 대해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영화사업을 시작한 것이고, 주윤발이나 장국영을 비롯해 양조위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들 중 하나였다.
당령은 반기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양조위의 내미는 손을 잡아 악수했다.
“반갑습니다. 전 당신의 열렬한 팬 중 한사람입니다. 이렇게 만나보니 영광스럽군요.”
“하하, 그렇다면 각본을 보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영제에게 어울리는 각본을 찾지 못해서······.”
“그 별명은 그만둡시다. 난 그저 양조위니까.”
“그렇습니까······.”
당령은 양조위가 더욱 좋아졌다. 이러한 점들이 양조위의 인기가 높은 이유 중 하나였다. 탑스타 중 한명이면서도 매우 소탈하고 가식이 없는 것이다.
특권의식이 없고 진정성어린 그의 태도는 많은 팬들을 불러 모았다. 게다가 절정의 외모와 연기력까지.
‘새삼 보니 정말 사기적인 인물이로군. 세상에 이런 인물이 존재한단 말인가??’
당문의 인물로서 수많은 걸물들을 만나본 당령조차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조위는 무공은 전혀 익힌 흔적이 보이지 않았지만, 단순히 무공을 모른다 뿐이지 자신의 영역에서 20대에 이미 최정상에 오른 인물이었다. 그러니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무림인으로 치면 20대에 무림지존에 오른 거나 마찬가지니까. 자기 영역에서 대성한 자는 그 누구든 존경받아 마땅하다.
한편 그런 반기는 표정의 당령을 보고, 임상진을 비롯한 세 사람은 의심했다.
‘이 자의 표정은 가식이 아니라 정말로 반기는 듯하다. 이런 자가 대표를 맡고 있는데 유가령을 납치했단 말인가?? 믿을 수가 없군······.’
세 사람은 혼란에 빠졌다. 의심 가는 용의자들의 표정을 살펴보면 단서가 나올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혼란에 빠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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