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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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
임상진은 양조위의 집 앞으로 찾아가 벨을 눌렀다. 곧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시죠??”
“홍콩 경찰입니다.”
“돌아가 주시면 안 될까요?? 지금은 그녀가 너무 지쳐있습니다.”
“저도 가능하면 그러고 싶지만······그분의 체력이 언제 회복될지 모르겠군요. 특히나 정신이. 납치사건이 일어난 이상 경찰은 수사를 해야만 합니다. 협력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잠시 망설이는 기척이 나더니, 이내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달칵.
“감사합니다.”
“······.”
‘이게 영화 황제 양조위인가······.’
임상진은 양조위의 얼굴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남자인 자신이 보기에도 양조위의 얼굴은 더할 나위 없이 잘생겨보였다. 남자가 보기에도 이 정도이니, 여자들은 정말로 껌뻑 죽어나갈 것이다.
게다가 연기도 잘하고, 단순히 얼굴만으로 먹고 사는 게 아니니 그야말로 영화 황제라 불릴 만 했다. 임상진은 신분증을 꺼내 보여주며 입을 열었다.
“협력에 감사드립니다. 그녀는 어디 있죠?”
“안방에······.”
“······.”
양조위의 안내를 따라 임상진은 그를 따라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있는 유가령은, 눈을 감고 있었다.
“자고 있나요? 그럼 깨우기가 좀 그런데······.”
“저는 일어나있어요.”
부스럭, 하며 유가령이 일어났다. 납치로 인해 받은 충격 때문에, 그녀의 얼굴은 수척해져있었다. 사실 그런 건 양조위 역시 마찬가지다.
양조위는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이라는 영화를 찍다가 유가령의 납치소식이 들리는 바람에 영화도 제대로 찍지 못할 정도였는데, 그러니 정상일 리가 없는 게 당연하다.
“힘드실 것 같으니 최대한 빨리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유가령 씨, 당신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정확히 아십니까??”
“예, 어느 날 일을 끝내고 길거리를 걷다가 정신을 잃었는데, 깨어나 보니 어떤 창고 같은 곳에 감금돼있었어요. 그곳에 감금돼 있다가 다시 정신을 잃었는데 깨어나 보니 여기로 와있더군요.”
“흐음······.”
임상진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왜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십니까?? 평소에 어떤 원한 관계 같은 게 있었나요??”
“딱히 그런 건 없어요······. 아, 유일하게 짚이는 게 있긴 한데······.”
“뭐죠??”
“황룡영화사의 신작 영화의 섭외를 거절한 적이 있어요. 감독도 신인이고, 무엇보다 각본이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거절했는데 그게 좀 걸리는군요.”
“과연······. 혹시 납치됐을 때 범인들이 자신들의 정체를 밝히던가요?? 아님 자기들 요구를 뭔가 말하던가.”
“아뇨. 전혀 그런 건 없었어요. 그들은 절 납치하고 그저······.”
“······그저??”
“······여기서부턴 둘이서만 말하면 안 될까요??”
“가령, 어째서??”
“당신에게는 말할 수 없어.”
“······.”
유가령의 말에 양조위는 잠시 입을 닫았다. 그러나 그는 이내 입을 열었다.
“가령,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해도 나는 이해할거야. 내가 당신을 떠날 거라곤 생각하지도 마.”
“이건 당신의 문제가 아냐. 내가 부끄러워서 말할 수가 없어.”
“······.”
양조위는 한참을 말이 없더니, 이내 일어섰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당신이 원하는 대로 난 잠시 나가있겠어.”
끼이익.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가려는 양조위였는데, 유가령은 갑자기 그의 옷을 잡았다.
“아니야, 조위. 그냥 사실을 다 말할게. 사실은······.”
“아니야, 됐어. 그게 당신에게 상처라면.”
“그렇다 해도 어차피 당신은 알게 되겠지. 평생 숨기고 살 수도 없어. 왜냐하면······.”
“!!”
유가령이 밝힌 사실을 듣고 임상진과 양조위는 경악했다.
“이런 사실이!!”
“그럴 수가······.”
임상진은 경악할 수 밖에 없었으나 양조위가 느낀 충격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것이리라.
그리고 당사자인 유가령이 느꼈을 충격에 비하면. 세 사람은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다 유가령이 입을 열었다.
“저기······. 뭐라고 부르면 되죠?? 경찰관님??”
“그냥 형사라고 부르세요.”
“형사님, 이 일은 죽어도 끝까지 비밀로······.”
“염려하지 마십시오. 원래 피해자의 사정은 철저하게 비밀로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네, 뉴스나 신문에 나오는 것 까진 어쩔 수 없겠죠. 그냥 형사님이 개인적으로 말하고 다니시지만 않으면 괜찮습니다. 일 때문에 그런 건 어쩔 수 없으니까요.”
“······.”
유가령은 의외로 담담했다. 울지도 않았고, 침착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 속 구석에 어떠한 폭풍이 불고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오랜 형사경험 상 보통 이런 침착한 피해자들은 의외로 그 속이 썩어문드러져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차라리 울며 난동이라도 부린다면 그 스트레스를 외부로 표출할 수 있는데, 그러지 않으면 그 속이 썩어문드러졌다. 임상진도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저기······. 힘들다면 힘들다고 표출하는 게 낫습니다. 제 경험 상 그러지 않으면 결국 본인만 힘들어져요.”
“전 괜찮아요. 그저 자연스럽게 있는 것뿐이니까.”
“······.”
본인이 괜찮다는데 뭐라 할 말은 없었다. 그런데 임상진은 문득 궁금한 게 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유가령 씨를 납치한 자들이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 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철저한 보복을 하기 위해서 납치한 것이군요. 그게 더 무서운데······. 유가령 씨. 당신은 그들이 정체도 밝히지 않았고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았다고 하셨죠??”
“네······.”
“실은······ 경찰서에 익명의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당신을 납치한 자들이 바로 주식회사 황룡이라고 말이죠.”
“역시······.”
“그 자식들이!!”
유가령과 양조위의 반응은 상반되었다.
유가령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사실이 실제로 드러나자 그저 담담한 반응을 보일 뿐이었고, 양조위는 연인을 해코지한 자들의 정체를 알게 되자 분개한 것이다.
“솔직히 사실인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들이 제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만 유가령 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자신들의 작품에 출연하지 않았다고 해코지를 했다는 게 가장 신빙성이 있어 보이네요. 그리고 그들의 행동도 납득이 되구요.”
“······.”
임상진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그들이 범죄조직 삼합회의 위장회사란 것은 알고 계십니까??”
“정말이에요? 몰랐어요!! 하지만 전부터 주식회사 황룡에 대한 뒤숭숭한 소문은 영화계 전체에 퍼져 있었어요. 사실 황룡 말고도 그런 회사가 몇 개 더 있죠. 그러나 그런 회사들로부터는 우연인지 작품 제의가 하나도 오지 않았는데 마침 황룡에서 온 제의를 하나 거절했더니 그렇게 된 거에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알려드릴게 있습니다. 실은, 당신이 납치돼있던 걸로 추정되는 그 주식회사 황룡 건물에서 대량의 실종 사건이 발생했어요.”
“예?? 그게 언제인가요??”
“당신이 구출된 것과 거의 동일한 시간대라고 추측됩니다.”
“······관련이 있다는 뜻이군요······.”
“그렇죠.”
“실종된 사람이 대략 몇 명이나 되죠??”
“무려 90여 명입니다.”
“90명!!!”
그 말에 유가령은 물론이고 양조위도 깜짝 놀랐다. 그 정도면 어지간한 영화사 한 개의 스태프가 거의 다 사라졌다고 볼 수 있었다. 영화사 한 개가 괴멸한 것이다.
“그 사실은 어떻게 알게 됐죠?? 물론 대량실종 사건이라 숨길 수는 없었겠지만.”
“그 점이 저희들이 어처구니가 없는 점입니다. 주식회사 황룡, 아니 그 뒤에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삼합회는 저희들에게 정식으로 수사를 의뢰했어요. 마치 자신들이 선량한 영화사 직원들인 것처럼 연기하면서 말이죠.”
“참으로 가증스럽군요.”
“······.”
그 순간 처음으로 임상진은 유가령의 분노를 보았다. 담담한 척 하던 그녀도 납치를 저질러놓고 도리어 피해자 행세를 하는 주식회사 황룡,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삼합회에 분노한 것이다.
“형사님, 부탁드릴게 있어요.”
“뭐죠??”
“저를 그 황룡 영화사 건물로 데려가주세요.”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범죄 현장일 수도 있는 곳에 도로 들어가는 거잖아요?! 안됩니다!! 불가능해요!!”
“들어보세요, 형사님. 황룡 영화사 건물에서 일어난 대량의 실종사건이라는 기묘한 사태, 그리고 마침 제가 유일하게 거부했던 황룡의 각본. 매우 수상하긴 해요. 하지만 지금 직접적인 증거는 없죠. 단서라고 있는 것은 그 익명의 제보밖에 없지 않나요??”
“그건 그렇죠······.”
“그래서 가겠다는 거예요. 만약 그들이 진짜 범인이라면, 저는 그들이 어떤 연기를 해도 모두 꿰뚫어 볼 수가 있어요. 그나마 저도 배우이기 때문에.”
‘과연!! 그렇군!! 그런 수단이 있었구나!!’
임상진은 감탄했다. 사안의 위험성은 둘째치고서라도, 한번쯤 시도해보고 싶은 방법이기는 했다. 납치범들의 소굴에 납치되었던 인질을 데리고 가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매우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유가령은 한마디 더 내뱉었다.
“게다가 건물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각 층의 인테리어가 동일해요. 만약 개별적인 점포들이 들어선 건물이라면 각 점포의 인테리어는 별개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다 해도 공통적인 건물의 특징은 완전히 바꿀 수 없죠. 만약 주식회사 황룡의 건물에 가본다면 그 특유의 분위기라든지 천장, 벽을 보고 어쩌면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요. 형사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해도······.”
난처한 기색을 보이는 임상진에게, 유가령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형사님, 전 복수하고 싶어요. 제 삶을 망가트린 그들에게. 어차피 망가진 제 인생에 이제 별다른 의미는 없어요. 그렇다면 적어도 제2의 피해자들이 나오지 않도록 제 한 몸 바쳐 조사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할 뿐······.”
“······.”
임상진은 한참동안이나 고민했다. 직업윤리와 사명감, 인간의 양심과 괜찮을까 하는 마음이 그를 사정없이 흔들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고민을 끝냈다. 현재로서는 그 방법 말고 돌파구가 없었다.
“좋소. 갑시다. 하지만 이후로 당신의 신변은 다시 위험해질지도 몰라요.”
“그건 어쩔 수 없어요.”
“······.”
“아뇨, 그녀는 위험해지지 않을 거요. 내가 같이 갈 거니까.”
“!!”
임상진은 동요했다. 영화 황제라 불리는 양조위가 직접 그녀와 함께 주식회사 황룡의 건물에 찾아갈 것이라 얘기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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