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콰직
![DUMMY](http://cdn1.munpia.com/blank.png)
“아, 안되지. 하마터면 죽일 뻔했군. 이봐, 유가령은 어디에 있지??”
“······.”
피를 빨려 혼미한 상태로 당건이 입을 열었다.
“5층······. 창고······.”
‘과연, 중간에다 감금해놨나······.’
원륭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아마 만약 습격이 있다면 경찰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보통 이런 납치사태를 해결할 때는 인질이 건물 안에 잡혀있다면 헬기 등을 통해 건물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치고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중간층에 놔두면 당연히 옥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자나 1층부터 침입하는 자들로부터 대항하며 시간을 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인질을 구출하러 온 게 홍콩 경찰이 아니라 일개 주먹패일줄은 몰랐겠지.
상대가 경찰이면 몰라도 같은 무림인이면 인질을 감금하는 층 따윈 의미가 없다.
그저 상대보다 강하냐, 약하냐가 중요할 뿐. 제일 중요한 정보를 들었으므로 원륭은 다음 정보를 물었다.
“왜 당문이 삼합회로 위장하고 있지?? 아님 내가 정보를 잘못 안 건가??”
“당문은 삼합회의 일부분······명칭은 위장에 불과하다······.”
“······.”
원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렇게 된 거였군······.’
무림사는 크게 정, 사, 마의 대결로 요약된다.
구파일방을 중심으로 한 정파, 마교라 불리는 명교, 그 외 온갖 사파들이 무림을 크게 삼등분하고 있었는데, 지난 25년 동안 공안과 쪽방촌 무림인들의 대결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문파들이 많았다.
무당, 아미와 같은 도가, 불가 계열의 문파, 당문과 같은 사실상 정, 사 중간지대에 속하는 문파, 그리고 아예 사파로 유명한 문파들이 아예 그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는데, 단순히 중국 공산당의 지배 아래 몸을 사리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어딘가에서 힘을 기르고 있었겠지. 그리고 그 중 하나가 뒷세계다.’
홍콩과 대만, 중국, 마카오와 같은 중화권 영역에서는 각각 구 사파라 불리던 문파들이 범죄조직으로 탈바꿈해 암약하고 있었다.
그 중 청방이란 조직은 아예 대만 정부와 결탁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때려잡고 마약을 팔고 다녔으며, 중국 같은 경우엔 공안 내에 무림맹이라는 무림인 조직이 생겨 화산파 같은 구 구파일방의 문파들도 거기에 합류하고 있었다.
물론 대만 역시 강씨세가가 중심이 되어 음양당이라는 무림인 조직을 갖추고 있었고.
그리고 대만이나 중국에 비해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곳 홍콩에도 과거 당문, 사천당가라 불렸던 세력이 삼합회 조직 중 하나로 변신해 그 세력을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독과 암기의 명수라 불렸던 사천당가답게, 청나라의 멸망 후 그 혼란을 틈타 암흑계에 녹아드는 건 일도 아니었으리라. 하물며 중국 정부의 손길이 미치기 힘든 홍콩에서야.
원륭은 추가 정보를 캐내보았다.
“당문이 가지고 있는 암흑계의 세력은 삼합회뿐인가?? 또 다른 거점은 없고??”
“삼합회는 그리 단순한 조직이 아니다. 당문 외에도 죽련방, 청방, 홍화회 등 다양한 문파들이 모여 있고, 그 중 가장 강한 홍화회와 천지회, 청방을 합쳐 삼합회라고도 하지. 진정한 의미의 삼합회는 그들 셋뿐이라는 자들도 있다. 하지만 청방이 대만으로 빠져나가면서 빈자리를 노리고 현재 죽련방과 우리 당문 등이 다투고 있는 것이야.”
당건은 아까까지 목숨을 걸고 서로 싸우던 사이라는 게 무색하게 모든 걸 다 불어버렸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다. 이것은 혈귀의 권능 중 하나로, 한번 피를 빤 자의 자유의지를 봉쇄해버린다.
남은 건 그의 꼭두각시가 되어 시키는 대로 다 하는 것밖에 없었는데, 제아무리 무림인이라도 버티기 힘든 것이었다. 그때 당건이 정신을 차렸다.
“헛, 대체 무슨?!”
“정신을 차렸나?? 네가 제공한 정보는 잘 들었다. 앞으로 요긴하게 써주지.”
“이런 빌어먹을!!”
당건이 욕지기를 내뱉었다. 정신제압에 빠져 혼미한 상태에서 정보를 불긴 했지만 그는 순식간에 사정을 알아차렸다.
수법은 모르겠지만 원륭이 최면이나 세뇌 등의 비슷한 방법으로 자신에게서 정보를 빼내간 것을 알아챈 것이다.
마지막에 정신을 차린 것도, 그나마 무림인이라 그가 가진 단전의 내공이 사이한 기운에 저항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마지막 발버둥. 원륭은 다시 한 번 최면을 걸었다.
“네가 알고 있는 정보를 더 불어라. 그러면 최소한 고통 없는 죽음을 약속해주지.”
“크윽, 죽어도 그럴 순 없다!! 차라리 죽더라도 가문의 배신자가 되느니!!”
당문의 소속감은 여타 문파와 남다르다. 일반적으로 문파원을 받아 그 성세를 이어나가는 기본적인 문파와는 달리, 가족 구성원들만으로 이어지므로 그것은 세가다.
일반 문파와는 구성원들 간의 소속감이 달랐는데, 그런 문파에서도 재능이 없다고 하여 축출된 당갈과 같은 자도 있지만, 추방당하지 않으면 그 구성원에 대한 당문의 신뢰와 지원은 절대적이다.
그런 당문인데 비록 죽어도 문파의 비밀을 말하고 배신자로서 죽는 사실은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사명감이 원륭의 정신지배로부터 깨어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으리라.
하지만 원륭은 가만두지 않았다.
콰직!!
“으아악!!!”
당건은 비명을 질렀다. 원륭이 당건의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박아 넣고 그 안을 헤집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피를 빨지 않아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지. 네놈에게 고통을 주고 직접 연결되어 있으면 있을수록 전해져오는 정보의 질은 더욱 구체화된다. 그리 쉽게 저항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정신지배는 풀렸지만 원륭은 더욱 직접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혈귀는 피를 굳이 입으로 섭취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피부, 신체 말단, 그 모든 체표면을 통해서 피를 흡수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말해서 혈귀란 사실상 커다란 피의 덩어리나 다름없다. 피를 통해 정보를 얻고, 피를 통해 생명을 얻는다. 오로지 피에 의해서만 돌아가는 고도의 정보 생명체였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악독한 짓을 할 수가 있는 거냐!!”
마지막 남은 의식을 통해 저항하는 당건에게, 원륭은 태연히 말했다.
“뭘? 지금 이게 악독하다고 말하는 건가??”
푹!!
그리고 원륭은 자신의 관자놀이에도 스스로 손가락을 박아넣었다.
“무, 무슨?!”
“크하하!! 최고로 좋은 기분이다!! 넘치는 힘과 내공이 상처를 치유해준다!! 이게 보이나??”
“!!!!!!”
당건은 대경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원륭이 스스로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박아 자신에게 가한 것과 마찬가지로 헤집었던 것이다.
“미, 미친······. 그런 짓을 했다간 속이 남아날 리가 없는데!!”
“너와 같은 인간들에겐 불가능하지.”
“인간들?? 그럼 넌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냐?!”
“나는 이미 예전에 그런 것을 뛰어넘었다.”
“!!!”
흘러나온 피가 되돌아간다. 찢어진 상처가 아물어간다. 원륭이 자신의 관자놀이를 후벼 파는 동안에도 초고속으로 상처의 지혈과 재생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러다 손가락을 빼니 어느새 상처라는 게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말끔히 사라졌던 것이다.
“괴, 괴물······.”
“크하하, 독과 암기를 사용하는 당문의 일원이 그게 할 말인가?? 듣자하니 당문에서는 무공을 발전시키기 위해 인체실험 역시 시도한다던데??”
“······.”
당건은 반박하지 못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무림사에 정통한 진룡이 과거에 말해준 적이 있는데, 당문은 무공을 발전시키기 위해 인체실험 역시 시도한다고 했다.
수천 년 역사동안 의학과 무학은 이미 인체실험을 통해 발전해왔지만, 어느 정도 발전이 이루어지고 나서는 인체실험은 금기로 몰려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서양의학들이 도입되고 나서 정체돼있던 의학은 계속해서 발전을 거듭해, 당문 역시 한 번 그만두었던 인체실험을 재개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성과도 얻었던 것이다.
뒷세계에 자리 잡고 나서 이젠 더 이상 관의 눈치도 보지 않고 같은 뒷세계의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인체실험을 하고 있었는데, 그로 인한 성과가 어떤 것일지는 곧 원륭도 알게 될 것이다.
당건의 관자놀이로부터 얻은 정보를 모두 흡수한 후, 원륭은 짤막히 내뱉었다.
“보아하니 정보는 이 정도로군. 네놈이 당문에서도 별다른 가치가 없는 쓰레기여서 그런 건가?? 당문의 인물치고는 가지고 있는 정보가 제한돼있어. 하지만 정보는 고맙다. 요긴하게 쓰도록 하지.”
“이 자식!!!”
자신을 제압하고 있던 관자놀이의 손가락이 빠지자마자 당건은 곧바로 총을 치켜들며 방아쇠를 당기려했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원륭이 손가락을 한번 튕기자마자, 그의 몸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딱!!
“어엇?!”
총을 들고 있던 손이 희미해진다. 어느새 사라져 총이 땅바닥에 떨어지더니, 자신의 다리 역시 사라졌다. 그리고 팔다리를 잃은 몸통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 역시 사라진 것이다.
스르륵.
혈귀의 권능 중 하나인 극도의 수분강탈이다. 이것은 혈귀의 혈액섭취능력을 응용한 것으로, 한번 피를 흡수한 대상이라면 언제든지 그 몸에서 모든 수분을 뺏어 먼지로 만들 수 있다.
그 결과 방금 전 당건이 있던 자리에는 한 자루 총과 수북한 먼지 더미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다.
원륭은 유가령을 구출해 모처에 숨겨놓고 다시 정보상 할멈을 찾았다.
유가령은 원륭을 보고 누구냐고 물었지만 원륭은 묻지도 않고 혈도를 제압해 유가령을 잠재워버렸다. 대답할 의무는 없다. 구해준 것도 그저 변덕에 불과하다.
유가령은 그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면 될 뿐이다. 그렇게 생각한 원륭은 뒷골목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유가령을 데려다주기 전에 해야 할 중요한 일이 두 가지 있다.
원륭은 정보상 할멈에게 말했다.
“양조위의 자택 주소를 말해.”
“호오, 유가령을 구하기라도 했나?? 그건 왜 물어보지??”
“쓸데없는 질문은 안 하는 게 좋을 텐데. 정보를 구하면 돈을 받고 팔기만 한다. 그게 바로 정보원의 미덕 아닌가?? 좋은 정보원이 되긴 글렀군.”
“······.”
정보상 할망구는 더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양조위의 주소를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원륭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저 돌아섰다. 그렇게 돌아가려는데 뒤에서 철컥 소리가 났다.
“정보료는 어쩔 생각이지?? 안 줄 생각인가??”
“정보료는 네 목숨이다!!!”
“커헉!!!”
원륭은 순식간에 되돌아와 정보상 할멈의 멱살을 쥐어버렸다. 방금 쓴 건 이형환위의 수법이다.
제 자리에 몸체가 남아있는 듯 하지만 잔상일 정도로 고속으로 이동하는 신법이었는데, 그것을 이용한 것이다.
당건의 내공을 흡수하기 전의 원륭이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그의 내공을 흡수해 단전을 회복한 원륭이라면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이제 어느 정도 잃어버린 무공을 되찾았다.
하지만 정보상 할망구는 원륭의 가공할만한 움직임보다 대체 어째서 자신을 핍박하는지 자체가 이해되지가 않았다.
“왜, 어째서 나의 목숨을!!!”
“내 정보 당건에게 판 거 네놈들이지??”
“!!”
“내가 모를 줄 알았나?? 아무리 정보가 빨리 도는 뒷세계라고 해도 그 즉시 나의 인상착의가 당문에 넘어간다고?? 누굴 호구로 보는 거냐!!”
“컥!!”
정보상 할망구는 이제 눈을 뒤집고 거의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렇게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 주변에 잠복하고 있던 경호원들이 일제히 총을 쏘았다.
타타탕!!!
“윽!”
“컥!”
“으아악!!!”
그러나 원륭은 멀쩡하고 곳곳의 어둠 속에서 비명만이 들려왔다. 원륭이 비어있는 손으로 날아오는 총알을 낚아채, 도로 발사된 곳으로 되돌린 것이다.
천안문 사태 당시 원륭은 호신강기를 응용해 총알을 막을 수 있는, 이른바 ‘의화권’을 완성했다.
하지만 굳이 받아내지 않고 낚아채 암기를 날리는 수법으로 되돌리는 것도 지금의 원륭이라면 가능하다. 심지어 무공을 완전히 회복한 상태도 아닌데.
과거에도 인민해방군 부대가 쏘는 대량의 총알은 한꺼번에 되돌려주기 힘들었지만, 고작 이렇게 몇 발의 총알이라면 얼마든지 되돌려줄 수 있는 것이다.
단번에 경호원들이 시체가 됐다는 사실을 깨달은 정보상 할멈은, 그때서야 진심으로 원륭의 무서움을 깨닫고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다.
‘대, 대체 어디서 이런 자가 나타난 거지?? 아니, 그보다 원래 이렇게 강한 자였나??’
정보상 할멈의 조직 역시 구룡성채 뒷골목을 휩쓸고 다니는 원륭을 예전부터 주시해왔다.
그러나 무공을 쓸 줄 모르는 단순한 주먹패라고 판정했고, 가끔 정보상을 찾아와 막대한 거금을 지불하고 정보를 사갔기에 조직에 별다른 해가 안 되는 자라고 생각하여 가만 놔뒀던 것이다. 그것이 이렇게 돌아오다니······.
자기 조직은 아니지만 유가령을 납치한 당문의 거점에 제 발로 쳐들어간다기에 어차피 죽은 목숨, 마지막까지 유용하게 써주려고 돈을 받고 정보를 팔아넘겼는데 아무래도 지뢰를 밟은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잘못됐다. 어서 이 사실을 조직에 알려야!!’
당문은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삼합회 소속 조직원 중 하나인 이 할멈은 최대한 빨리 어떻게 하면 이 궁지를 벗어날까 고민했다. 그러나 그런 고민을 할 필요는 없었다.
할멈의 관자놀이로 원륭의 가운데 손가락이 처박힌 것이다.
콰직!!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