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8 예상실패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하홍휘는 그 앞에 있는 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숭산의 유현조라고 했나요??”
“그렇소. 당신은 누구요?”
“하홍휘라는 사람이에요.”
“아, 들었소. 당신들 무리의 홍일점이라지?”
“연기가 어색하군요. 우리들의 정보에 대해서는 낱낱이 파악하고 있을 텐데.”
“하하, 들켰다면 미안하오. 그 말대로 당신들의 정보에 대해서는 이미 예전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주입받아왔지. 우리 앞의 선배 모지리들이 당신들에게 깨지는 바람에 우리는 지옥 같은 단련을 해야 했거든.”
“······. 그래도 선배 무림인들인데 그런 말은 좀 아니지 않나요??”
“선배는 무슨. 그저 당신들 같은 반동분자들에게 죽은 덜떨어진 인간들일 뿐이오. 아니면 설마 형이상학적인 정신론 같은 걸 믿는 거요? 사람은 죽으면 한낱 고기 덩이일 뿐이오. 거기에 감상은 필요 없소.”
“그렇군요. 그럼 우리도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겠군요.”
“······.”
하홍휘의 말에 유현조는 입을 꾹 닫고 묵묵히 자세를 잡았다.
두 손을 앞으로 내미는 유현조를 보고, 하홍휘는 생각했다.
‘장법인가? 아닌 권법??’
언뜻 보기에는 장법의 기수식과 비슷해보였지만, 타격을 극대화하기 위해 주먹마저 쥐고 있지 않다가 충돌 그 직전에 주먹을 쥐는 권법도 있었다. 그야말로 탈력의 극한.
‘그런 권법의 고수라면 상대하기가 까다롭겠군.’
그러나 자신은 연검을 사용한다. 상대가 얼마나 대단한 고수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수준의 고수라면 병기를 든 자가 분명히 더 유리하다.
사거리와 강도에서 병기는 인간의 몸을 뛰어넘는 것이다.
자신은 공격받지 않는 거리에서 남을 공격할 수 있고, 피와 살로 된 인간의 몸은 날카로운 검신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까다롭다. 그런 근본적인 차이.
하홍휘는 그 때문에 승부를 낙관적으로 예상했지만, 방심하지는 않았다.
자신은 쪽방촌 무림인들 중 가장 무공이 떨어진다. 예전에는 원륭이 가장 밑이었으나 원륭이 혈귀가 되고 무공이 올라가면서 다시 자신이 가장 밑바닥이 된 것이다.
그런 걸 잘 알고 있기에 하홍휘에겐 일말의 방심도 없었다.
‘이쪽이 선공으로 나간다!!’
파팍!! 하홍휘는 손가락을 매의 발처럼 구부리고 조법을 펼쳐나갔다.
“선녀조법!!”
쐐애액!!!
하홍휘의 손가락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갔다. 이 선녀조법이라는 것은 자신을 배반한 남자에게 한 선녀가 마녀로 돌변해 징벌할 때 썼다는 무공이다.
사실상 마녀조법이라 해도 무리가 없었지만 어째서인지 계속 선녀조법이란 이름으로 불렸던 것이다.
선녀들이 쓰던 선계의 무공이란 말도 있었는데, 어찌됐든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 스산함마저 감도는 기세가 특징이었다.
그런데 하홍휘의 조법이 적중하려는 찰나, 유현조 역시 손톱을 내밀었다.
“현철조.”
캉!!! 놀랍게도 마주친 두 손가락에서 마치 쇳덩어리가 충돌하는 소리가 났다.
“조법?!”
“조법은 당신만의 전유물이 아니지.”
휙!! 한바탕 격돌한 이후, 두 사람은 잠시 거리를 확보하더니 다시 돌진했다.
이후로는 치열한 난타전이 벌어졌다. 쇳덩어리와 같은 강도를 가진 두 사람의 손가락이 충돌하자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가 일어났던 것이다.
카캉! 카카캉!!!
하홍휘는 손톱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어째서 조법을 익히고 있는 거죠? 숭산파는 검으로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후후, 무슨 소리하시오, 소저?? 지금 검을 쓰고 있지 않소?”
“뭐라고??”
“경지에 이르면 검이든 손톱이든 손이든 아무 의미가 없는 것······. 설마하니 그 정도 경지에 도달하진 못했나?”
카캉!!
다시 한 번 둘의 손톱이 교차하며 흩어졌다.
“잘 단련된 손톱은 검이 되고, 손은 도가 되오. 신검합일, 검신일체. 그것을 깨달은 순간 난 검을 내 손에서 놓았지. 더 이상 검을 쥐고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야. 뭐 하러 내 몸을 놔두고 부자연스런 검을 쥐겠소? 그야말로 허튼소리!!”
쾅!!
강렬하게 내려찍히는 유현조의 손톱을 막으며, 하홍휘는 신음했다.
‘악력이······밀려!!’
장법을 사용할 때는 악력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만, 권법을 사용할 때는 악력이 강할수록 좋고 조법을 사용할 때는 악력이 필수다.
본래 조법은 힘없는 여인이나 아이들이 상대를 할퀴는 행동을 야생동물의 움직임을 보고 보완한 것인데, 아무래도 참고가 된 그 동물들의 완력을 그대로 재현하기는 힘들기에 사실 완벽한 재현은 어려웠다.
따라서 조법은 본래 남자가 사용할 때 더욱 강력해지는 것이다.
강한 완력을 바탕으로 더욱 맹수같이 손톱을 휘둘러대는데, 겉모습은 2. 30대의 소저였지만 사실상 이제 나이가 먹을 만큼 먹은 하홍휘로서는 단순히 내공만으로는 버텨내기 힘들었다.
게다가 상대는 젊은 나이를 내공을 늘려주는 마약성 단약으로 보완한 상태인 것이다.
따라서 내공을 연마할 필요 없이 무공에만 집중하면 되므로 그 효율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뛰어났다. 하홍휘는 밀리다 생각했다.
‘아냐. 조법의 강함이 완력에만 달린 건 아닐 거야!! 유연성이란 무기도 있어!!’
휘리릭!!! 하홍휘는 전략을 바꿔 오히려 힘을 빼고 속도와 부드러움으로 승부하기로 했다.
예로부터 부드러움은 강함을 제압한다고 하여, 오히려 적은 힘으로 더 큰 힘을 가진 상대를 쓰러트리는 방법도 있었다. 사량발천근이라는 말도 이와 비슷한 것이다.
넉 량의 힘으로 천근을 들듯이, 하홍휘는 휘적휘적 날아다니는 나비처럼 우아함을 과시했다.
그러자 유현조는 작전을 바꿨다.
“유능제강,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하겠다 이거요? 하지만 이건 어떨까??”
쐐애액!!! 유현조의 손가락이 쏜살같은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하홍휘의 손가락을 마치 그물처럼 얽어맨 것이다.
‘어느 틈에!!’
“현철조법의 무서움을 보여드리지.”
우직. 유현조의 손가락 사이에 낀 하홍휘의 손가락에서 불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부러진다!!!’
놀랍게도 유현조는 하홍휘의 손가락을 자신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끼고 악력만으로 그대로 부러뜨리려 한 것이다.
조법을 수련한 만큼 하홍휘 역시 일반 여성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악력이 높고 거기다 내공마저 뒷받침되어 어지간한 성인남성의 팔목을 가볍게 으스러뜨릴만한 힘이 있었지만, 남성인 유현조의 악력을 당해내지는 못했다. 게다가 상대는 아직 한창때인 젊은 나이니······.
하홍휘는 일그러지는 얼굴을 참고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올해 나이가 얼마죠?”
“왜 그런 걸 묻소? 올해로 서른다섯이오.”
“······이 어린놈이!!!”
쾅!!! 유현조는 갑자기 천지가 뒤집어지는 것을 느꼈다. 분명히 하홍휘의 손가락을 잡고 있었는데 어느새 자신의 시야가 뒤집어지더니, 돌아왔을 때는 자신이 땅에 처박혀있었던 것이다.
“컥!!”
“어린놈이 어디서 지랄이야 지랄은!! 감히 분수도 모르고!!”
“······.”
유현조는 갑자기 변한 하홍휘의 성격에, 당황을 금치 못하고 결국 물었다.
“······그게 당신의 본모습이오??”
“뭐가 어째?!”
째릿!! 노려보는 하홍휘의 눈빛에, 유현조는 순간 기선을 제압당했다. 그러나 그도 무림인이다.
쪽방촌 무림인들과는 처음 싸워보지만, 유현조를 비롯한 공안 무림맹 요원들은 그동안 이곳저곳에서 실전을 겪어왔다.
특히 신강 위구르 자치구에서는 저항하는 반란분자들이 끊임없이 나왔는데 그곳은 본래 마교의 본거지라 마공을 익힌 마도인들을 상대로 그들은 실력을 단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본인들은 마교가 아니라 명교인이라고 하지만 뭐······.
아무튼 그렇게 젊은 나이에 비해서는 실전에서 닳고 닳은 유현조였는데, 그런 그가 순간 흠칫할 정도니 하홍휘의 기세가 어땠는지는 알 수 있었다. 유현조는 입을 열었다.
“듣자하니 선녀조법은 언뜻 고상해보이지만 그 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악독함을 숨기고 있다고 하더군. 당신의 성격은 그런 조법과 아주 딱 맞는 것 같소. 본디 무공은 그 사용자와 성질이 맞아야 대성하기 쉽다고 하지. 당신의 조법이 강한 이유를 알 것 같구려.”
“개소리하지 말고 승부나 하거라, 애송아. 내 손톱이 피를 부르는구나.”
“······.”
유현조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손가락을 곧추세웠다.
까깡!! 다시 한 번 손가락이 충돌하며 금속음을 발생시켰다. 유현조는 한 번 더 하홍휘의 손가락을 잡아내 얽어매려고 했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제법이군!!”
“똑같은 수법에 한번 더 당할 줄 알았느냐!!”
쐐애액!!! 마치 마녀와 같은 기세로 핏발선 두 눈을 한 채, 하홍휘가 조법을 날려 왔다.
그것을 피하며 유현조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괜히 여자들이 조법을 익히는 것이 아니군. 파괴력은 부족하지만 날카롭기만큼은 비수와 다름없다. 역시 20년 동안 공안 무림맹을 괴롭힌 자들이라고 해야 하나!!’
어느덧 쪽방촌 무림인들과 파천황의 공안 무림맹이 충돌한지도 20년이 지났다.
1966년 문화대혁명의 시작과 함께 처음 충돌하여, 지금이 1989년이니 무려 23년이나 지난 것이다.
그제야 유현조는 어째서 이들이 지난 20년 동안이나 잡히지 않고 공안 무림맹을 귀찮게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들의 강함이 장난이 아니군. 듣기로 이 여자는 무리 중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편이라 들었는데······. 이 정도면 충분히 절정고수가 아닌가?? 이 자가 이러면 가장 강한 자는 실력이 대체 어떻다는 말이지??’
신강의 마교인들을 상대로 닳고 닳은 유현조도 그렇게 생각할 정도니, 쪽방촌 무림인 중에서 가장 강한 진룡이나 불사왕은 어떨지 감히 상상도 가지 않았다.
유현조는 어째서 파천황같은 초절정고수가 이들을 상대로 애먹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쯤 되면 1기 공안 무림맹 요원들도 허접한 자들이 아니었군. 정정한다. 내 안의 평가를 바꾸어주지. 하지만 이기는 건 나다!! 최고의 힘으로 빨리 끝내고 부부장을 도우러 가주마!!!’
콰앙!!! 유현재의 몸에서 기세가 솟구치며 강렬한 내공의 발동이 느껴졌다.
하홍휘는 이제 상대가 전력을 다하기로 결심한 것을 깨달았다.
‘그래, 역시 전력을 다하지 않았군. 와라, 애송아!! 네 놈이 태어나기도 전에 무림을 휩쓴 내 힘을 보여주마!! 여자라고 해서 무시하지 마라!!’
하홍휘는 마찬가지로 10성 공력을 이용하여 유현재에게 맞섰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주위로 일진광풍이 불고 그로 인해 주변의 사람들은 가까이 가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
대결하는 두 무림인의 내공과 실력이 비등비등하면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데, 거기에 휩쓸렸다간 금강불괴를 익힌 자가 아닌 이상 도륙이 나서 죽는 것이다.
의기상인의 경지가 한 공간에 구현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이 충돌하면서 그 힘이 더욱 강해져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버틸 수 없었다.
불사왕과 원륭을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여유가 남아 장내의 상황을 모조리 파악하고 있던 파천황은 힐끗 두 사람을 보고 생각했다.
‘곧이어 결판이 나겠군. 하지만 둘의 실력이 워낙 비등비등해 나로서도 결과를 예측하기가 힘들다.’
파천황 정도쯤 되면 무림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자들의 실력을 대충 알 수 있다.
심지어 사용하는 무공, 권을 사용하는지, 검을 사용하는지, 장을 사용하는지도 말이다.
각 사용하는 무공에 따라 미세한 자세, 신체적 특징, 버릇 등이 나타나 파천황의 눈은 속일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천황은 두 사람의 승부를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짝이 잘 맞아떨어졌군. 공교롭게도 매우 흥미 있는 대결들이 되었어.’
진룡을 상대하는 장문환은 화산파의 천재다. 예전의 자효진도 화산파의 촉망받는 후기지수이긴 했지만, 그가 기재라면 장문환은 천재인 것이다.
장문환의 자하신공은 자효진의 수준을 아득하게 능가했다. 아마 좋은 싸움이 될 것이다.
그때 승부가 났다. 파천황이 다시 한 번 장내를 살피니 하홍휘와 유현조 중 일어선 사람은 단 한명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른 한명은 자신이 흘린 피 속에 이미 절명해있었다.
‘흐음, 결과가 났나. 그래도 이건 내 예상 밖인데······.’
비등비등하다고는 했지만 파천황도 좀 더 승기가 있다고 생각한 쪽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나왔다. 파천황이 틀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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