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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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
강순은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확실히 그의 뇌리 저편, 혈마라는 이름은 분명이 각인돼있었다.
“혈마라···, 그래 들어본 적 있지. 피를 이용하는 요상한 무공을 쓰는 무림인이라고 하던데.”
“그 정도인가? 사마외도의 종주라는 말은 들리지 않고?”
“그런 말은 못 들어보았네. 좀 더 열심히 이름을 알렸어야지. 아, 물론, 이제 더 이상은 그러지 못할 테지만.”
“날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얼마든지.”
슈욱. 그 순간 강순은 자리에서 사라져, 혈마의 뒤로 돌아들어갔다.
‘이형환위!!!’
혈마는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몸을 돌려 장법을 날렸다.
쾅!!
“!, !! 제법이군. 내가 뒤로 돌아들어갈 걸 어떻게 알았지??”
“보통 이형환위를 쓰는 자들은 뒤로 돌아들어가는 게 상식이지. 그런 걸 모르나? 아무래도 황궁에만 처박혀 있느라 무림 경험이 부족한 것 같군.”
“헛소리!!!”
슈웅!!!
강순이 주먹을 날렸지만 혈마는 가볍게 피했다.
“이봐, 이봐, 주먹이 너무 느려서 날아오는 게 다 보이잖아? 온다고 광고하고 있나?”
“개자식!!!”
강순은 미친 듯이 주먹을 날렸다.
“그러니까 안맞는대두!! 커헉!!!”
쾅!!!
갑작스레 맞은 강순의 주먹에, 혈마는 손도 쓰지 못하고 뒤로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부르르 떨더니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좀 하는군.”
“내 말이. 내 주먹을 맞고 지금까지 일어난 자는 없었는데 네가 처음이다. 보기보다 무척 단단하군.”
“······.”
강순은 입을 다물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혈마라는 자를 쳐다보았다.
그 자는 화려한 치장이라곤 없는 간소한 옷을 입고, 매우 날카로운 인상에 마른 몸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딘가 신경질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었는데 전형적인 사파 인물의 관상이었던 것이다.
“왜 사파 놈들은 너처럼 항상 마르고 못 먹은 것 같은 인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덤으로 감히 황궁을 습격하는 간이 배밖에 나온 짓까지······. 죽음이 두렵지 않나?”
“죽음은 항상 내 곁에 있지. 자, 그럼 이 초식을 받아봐라!”
혈마가 공격하기 시작했다. 혈마의 공격을 손발을 이용해서 막던 강순은, 뭔가 이상한 것을 눈치챘다.
‘공격이 아까보다 무거워졌다? 이런!!’
쾅!!
강순은 혈마의 발차기를 맞고 나가떨어졌다. 혈마는 그런 강순을 보면서, 유유히 다리를 내렸다.
“황궁무사치고 무공이 약하군. 그래 가지고 황제를 지킬 수 있겠나?”
“이 자식······. 대체 무슨 무공을 쓴 거냐??”
“혈사마각. 내 독문무공이다. 이 발차기를 맞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자가 드문데 용케도 버텼구나. 과연 한수 믿는 게 있군.”
강순을 칭찬하는 혈마였으나, 강순은 툭툭 털고 일어나더니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게 네 전력인가?”
“뭐??”
“이게 네 전력이냐고 물었다.”
“방금 전에 나가떨어진 자 치고는 아주 담담하게 말하는군.”
“아, 그건 일부로 맞아준 거다. 네 실력을 시험해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여기까진가보군. 그럼 내 실력을 발휘해도 될까?”
“얼마든지. 헛!!”
갑자기 올라가는 강순의 기세에, 혈마는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1성, 2성, 강순이 내공을 끌어올릴 때마다 기세가 급증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순은 내공을 모아 손을 뻗으며 외쳤던 것이다.
“암열파(唵熱波)!!!”
콰앙!!!
강순의 손 안에서 강렬한 기세의 내공이 뿜어져 나갔다. 그 공격에 혈마는 미처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직격당했던 것이다.
“크아아아아악!!!”
쿵!! 혈마가 그 자리에 쓰러졌다.
“얼마 전 완성한 초식인데, 네가 그 첫 번째 실험대가 돼주었군.”
담담한 얼굴로 강순이 말했다.
암열파는 말 그대로 열을 머금은 장법이었는데, 일반적인 장법이 그저 강력한 내공의 기세만을 담고 있는 것과는 달리, 매우 강력한 열기를 내뿜는 것이 특징이었다.
열양진경을 익힌 강씨 세가의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무공인 것이다.
지금까지 강순은 황궁을 습격한 자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본신의 무공을 사용하지 않고 적당히 상대해주었지만, 상대가 혈마라는 것도 알아냈고 더 이상 얘기해봐야 얻을 것이 없을 것 같아 슬슬 처리하려던 작정이었다.
상대는 딱 봐도 그저 미친 쾌락범죄자 같았던 것이다.
시체를 확인하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강순이었는데, 혈마가 꿈틀거리며 일어났다.
“큭큭, 매우 강력한 무공이군. 내가 아니라 아마 사파의 4마제 정도면 단번에 골로 갔을지도 모르겠어.”
“?! 죽지 않았나!!”
“자신의 무공을 너무 과신하는군. 너, 마무리가 어설프다는 얘기 많이 듣지 않았나? 독학으로 무공을 익힌 것이 아니라면 가르치는 자가 분명히 그 소리를 했을 법한데.”
“······.”
확실히 그랬다. 그의 부친도, 그의 조부도 매번 그런 소리를 계속했던 것이다.
그러나 강순은 개의치 않았다.
“흥, 그래서 달라질 것이 뭐지?? 어차피 네놈은 치명상을 입었고 도주하기도 힘들다. 여기서 더 달라질 것이 있을까?”
“있지. 흡혈대법!!”
슈우욱. 어디선가 비릿한 혈향과 함께 진짜로 피가 공중을 따라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솟구치더니 혈마의 몸 속으로 흡수되어 버린 것이다.
슈르륵!!
혈마는 날아오른 피를 흡수하더니 점차 안색이 변해갔다.
좀 전까지만 해도 강순의 암열파를 맞고 안색이 창백해져 있었는데, 마치 거짓말처럼 안색이 밝아지더니 어느새 다시 원래대로의 모습을 회복한 것이다.
안색 뿐만 아니라 온 몸에 생겼던 상처도 말끔히 사라지고 없었다.
“피를 이용하는 무공이라······. 과연 혈마라 할 만하군. 하지만 그게 다인가! 네놈은 얼마든지 다시 죽일 수 있다!!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금 암열파의 내공을 손안에 모으는 강순이었으나, 혈마는 두 손을 들더니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항복이야.”
“응?”
“항복이라고. 그러니 이쯤에서 그만두지 않겠나?”
“허튼소리! 황실을 능멸한 죄를 여기 이 자리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군.”
“뭐?”
“네 놈의 얼굴은 황실을 위해 싸우는 자가 아냐. 그저 자신의 무공과 넘치는 혈기를 분출하기 위해 안달이 난 강호의 애송이의 모습이다. 그런 모습을 난 많이 봐왔지. 넌 황궁에만 있느라 보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
“하늘을 찌르는 무공을 갖고 있지만, 강호 경험은 아직 애송이나 다름없군. 그러니 날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주제 파악을 잘 못하는 것 아닌가? 네가 나에게 이긴 건 아닐 텐데??”
“이기지 못하지만 지지도 않지. 그러니 네가 날 잡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정말로······?”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 번 암열파의 초식을 사용하려는 강순이었으나, 그 순간 혈마의 기세가 변했다.
온 몸이 흐릿하게 변하며 검붉은 색을 띠더니, 어느새 한 줄기 연기가 되어 허공에서 사라졌던 것이다.
“다음에 보자꾸나 애송아! 인생은 기니 언젠가 다시 만날 일이 있을 것이다!”
“거기섯!!!”
쾅!!!
서둘러 강순이 암열파의 내공을 발사했으나, 혈마는 이미 거의 사라진 뒤였다.
“혈마, 혈마라고 했나? 네 놈을 쫓으려면 혈마라는 이름을 찾으면 되는 것이냐??”
강순의 물음에 허공에서 비웃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억해라! 내 이름은 혈마 불사왕이다!”
그 목소리를 끝으로 혈마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것이 저와 혈마라는 자가 나눈 대화의 전부입니다.”
“······.”
강순은 혈마를 놓치고 거처로 돌아와 조부와 부친에게 혼나는 중이었다.
부친이 말했다.
“그러게 누누이 네놈은 방심을 너무 많이 한다고 그렇게 일렀거늘······. 지난 번 강호행에서도 그렇게 이르지 않았느냐? 아무리 열양진경을 익힌 자가 성급한 판단을 하기가 쉽다지만, 넌 아직 멀었구나.”
“······.”
부친의 말에 강순은 할 말이 없었다. 열양진경은 천하에서 첫째, 둘째를 다투는 가장 강력한 무공이지만, 문제는 부작용도 있었다.
열양진경이란 말 그대로 이 무공은 매우 강력한 양기를 온 몸에 부여하는데, 그러다보니 머리에 열이 올라 성급한 판단을 하기가 쉬워지는 것이다.
더불어 성취가 올라갈수록 판단력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 오히려 좋아지지만, 그와 반대로 대머리가 된다는 부작용도 있었다.
지나친 양기(남성 호르몬)의 분비로 인한 부작용이었는데······. 뭐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치고 부친에게 혼나면서도 강순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어찌됐든 그는 황궁 무사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던 것이다.
황실의 수호자로서 황실을 위협하는 간악한 적도들은 모조리 뿌리 뽑아야 하는 것이 황궁 무사의 책무였는데, 그는 그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
평소대로라면 기를 쓰며 부친과 조부에게 바락바락 대들 그였지만, 이렇게 실수를 하자 송구스러워서 할 말이 없었다. 강순은 조용히 말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한동안 폐관수련에 들어가겠습니다.”
“네가 폐관수련에 들어가면 황궁은 누가 지키느냐?”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있으시니······.”
“네가 못 치운 똥을 우리더러 치우란 말이냐??”
“······.”
서릿발 같은 부친의 태도에, 강순은 더욱 할 말을 잃었다. 그때 조부가 말했다.
“됐다, 그만하거라.”
“하지만!”
“그만하래도.”
“······.”
조부의 말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매우 위엄이 있어 부친은 더 이상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입을 닫았다. 그 모습을 보니 강순은 왠지 쌤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자신이 부친에게 함부로 대하기 힘들 듯이, 부친도 조부에게 함부로 대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건 당연한 것이었다.
단순히 부모자식관계라는 예의를 떠나, 자신들은 상고시대부터 내려오는 유서 깊은 강씨 가문의 후예이자 열양진경의 계승자이기에 기본적으로 무림인이다.
그리고 나이가 먹었다고 해서 열양진경의 계승자는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150세 정도까지는 현역인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200살까지는 제 실력과 수명을 유지하기는 힘들었지만, 일반인들도 잘 먹고 큰 근심 없이 살면 100살을 너끈히 사는 경우도 많은데 열양진경이라는 초절정 무공을 익힌 이들이 고작 100살 먹었다고 그렇게 빌빌거릴 리가 없었다.
열양진경의 후계자는 죽기 전까지 현역인 것이다.
그러니 나이가 먹은 노인이라고 해서 우습게 볼 수 없었고, 아버지와 자식이라는 관계를 떠나 선배 무림인으로서 매우 강력한 존재였기에 강씨 가문의 사람들은 부친이나 조부를 매우 경애했다. 실력으로 보나 연륜으로 보나 절대 이길 수 없는 것이다.
부친을 조용히 시킨 후, 조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어린 나이에 황궁 무사가 되어, 네가 많이 심심한가 보구나. 나 역시 네 나이 때 황궁무사의 책무가 지겨워 부모님께 반항하고 황궁을 뛰쳐나갔지. 네 아버지 역시 그랬다.”
“아버지!!”
당황한 부친이 급하게 말했으나, 조부는 개의치 않고 말했다.
“떠나거라, 순아. 가서 세상을 둘러보고 오너라. 그리고나서 황실수호무사의 책무를 다해도 늦지 않으리라.”
조부는 근엄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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