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8 뜻밖의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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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중국과 베트남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은 불과 한 달 만에 끝이 났지만, 이 사건이 전쟁으로 불린 이유는 그 규모가 상당히 컸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3월 17일 이후, 쪽방촌의 무림인들은 거실에서 차를 마시며 상인관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결국 전쟁은 베트남의 승리로 끝났소. 베트남은 참으로 무서운 나라지······. 베트남은 20세기에만 자신들을 식민지로 만든 프랑스를 물리치고, 일본을 물리치고, 미국을 물리쳤소. 이번에 중국을 물리친 것 까지 합하면 4개나 되는 강대국을 물리친 것이오. 무서운 나라야······.”
그 말에 모두는 동의했다.
베트남 같이 병력이 엄청나게 많은 것도 아니고 장비가 최첨단인 것도 아닌 나라가 자신들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조건이 훨씬 뛰어난 국가들을 이기는 것이 두려울 정도였던 것이다.
이들 쪽방촌의 무림인들은 대부분 중국인이었으므로, 어디까지나 중국이 바른 방향으로 가길 바라는 것이지 멸망하길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벌써 외세와 손을 잡아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다녔을 것이다.
이들에게는 어느 정도 ‘선’이 있었던 것이다. 한편 하홍휘 역시 입을 열었다.
“우리 소속의 아이들로부터 들어온 정본데, 중국 장교들이 전쟁에 지고 귀국한 이후 거나하게 술을 마시며 한풀이를 했다나 봐요. 듣자하니 중국군은 베트남보다 그 수도 많았고 사실 베트남군은 정규군만이 참전한 게 아니라 민병대마저 참전했다고 하더군요. 결국 병력은 5만 전후 차이였지만 전차 등 병기에서는 2배 이상의 차이가 났고, 무엇보다 중국이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군의 현대화를 하지 못하고 장비가 노후화 된데다 지휘를 내려야할 고급 장교들이 많이 숙청되어 지휘체계가 엉망이었나 봐요.”
중국군의 지휘체계가 엉망이었던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인민해방군은 본래 국민당과 싸우던 홍군 시절 계급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으나,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고 정규군인 인민해방군이 되면서 당시 총사령관이자 국방부장인 팽덕회가 계급 체계를 도입했다.
그러나 팽덕회가 숙청된 후 1964년 그의 지시로 만들어진 계급제가 폐지되었고, 이후 인민해방군은 무려 1987년이 될 때까지 계급이 아닌 보직과 직급으로 돌아갔다.
그러니 제대로 군기가 설 리가 없는 것이다.
장비도 노후화됐고, 장교의 수도 부족하며 계급제의 부재로 군기도 서지 않는 인민해방군이 악독할 정도로 집요한 베트남인들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들은 세계 최강국인 미국을 이긴 자들인 것이다. 훗날 수십만의 대병력을 갖춘 이라크마저도 걸프전에서 속수무책으로 박살이 났는데, 단순히 무성한 정글 하나만을 가지고 그런 미국에게 이겼다고 하기엔 베트남인들의 집념과 전투력이 너무나 강력했다.
정보통인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 들은 진룡이 무심히 말했다.
“결국 등소평은 실수를 하고 말았군. 그는 모택동이나 임표 등과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개의 새끼는 개가 나오고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지는 게 아니겠소? 등소평이 원래부터 그런 자이든, 아니든 공산당과 중국 정부의 수뇌부에 있으면 어쩔 수 없이 그리 되는 것 같소.”
“그럴지도······.”
제갈의의 말에 진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두 사람은 뭘 한답니까?”
사휘령의 말에 상인관이 말했다.
“여전히 수련에 힘쓰고 있는 것 같네.”
“같네······라구요?”
“우리 방도들이 모르는 척 하며 그들의 행적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방도들을 따돌리고 그들은 홀연히 사라졌어. 그러다 다시 돌아오길 반복하길래 감시의 눈길도 끊어버렸네. 어차피 감시도 되지 않는데 공연히 반감을 살 필요는 없겠지.”
“옳으신 판단입니다.”
“······.”
소형승의 말에 상인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제갈의가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최근 불안해지고 있소. 우리들은 점점 나이를 먹어 가는데, 공산당은 약해질 생각을 안 하고 도리어 성하고 있소. 그리고 지금까지의 사건 같은 것이면 모를까, 이번 베트남과의 전쟁은 사실 타국과의 분쟁이라 우리가 끼어들 여지도 없소. 끼어들 명분도 없는데다가 끼어들어가 봤자 전장의 포탄 한발에 먼지가 되겠지.”
“······.”
제갈의의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었다.
안 그래도 거슬리는 공산당이 베트남과의 전쟁을 시작한 것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들이 베트남인도 아니고 참전할만한 명분이 없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이 베트남의 편을 들어 인민해방군을 공격해도, 어차피 그들은 명령에 따라 위에서 시키는 대로 전쟁에 참가한 병사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을 아무리 해치워봐야 뭘 하겠는가? 인민해방군을 아무리 죽여도 중국에 사람은 많고, 무엇보다 그러한 지시를 내린 중국 공산당 수뇌부를 치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이다.
확실히 제갈의의 그 말에 모두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러나 진룡은 여기서 입을 열었다.
“난 우리가 압정 같은 존재라 생각하오.”
“압정?”
“압정을 밟는다고 해서 치명적인 부상을 입는 건 아니오. 영구적인 후유증이 남는 것도 아니고, 고통은 잠시 뿐이지. 하지만 압정을 한번 밟으면, 그 통증은 순간적이지만 엄청 나오.”
“······.”
“우리는 압정이오. 중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마다 한번 씩 나타나 경각심을 주는 압정. 만약 우리 같은 존재라도 없다면, 중국은 언제까지고 반성하지 않겠지. 우리는 존재하는데 의미가 있는 거요. 그리고 언젠가 때가 되면, 다시 한 번 따끔한 맛을 보여줄 수 있겠지.”
“따끔한 맛이라······.”
일동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들이 최대한 목숨을 부지하며 조심스럽게 일을 진행해서 그렇지, 만약에 작정하고 전투를 한다면 한 명당 최소한 몇 백 명은 저승길 동무로 데려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최소한의 수치고, 정말로 목적만을 위해 폭탄 같은 것을 사용한다면 몇 천, 그 이상의 숫자도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무림인으로서의 자존심을 가지고 있고, 폭탄 같은 것을 사용한다면 그들 스스로 추적 망을 좁히게 될 것이며 반쯤 방관하고 있는 중국 정부도 결코 그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파천황이든 공안 무림맹이든 모두 동원하여 은신처를 샅샅이 수색하고 몇 겹이나 되는 천라지망을 형성하여 그들을 말살하겠지.
아마 어쩌면 중국 정부도 지금 이들의 은신처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실패한 전적이 몇 번이나 있고 최근 이들이 조용히 지내고 있는데다 몇 년 전 4인방을 축출하는데 빚을 졌으므로 가만히 있는 것이다.
쪽방촌의 무림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최근 중국 정부의 움직임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등소평이 집권하고 한동안 개혁, 개방 정책과 경제를 살리는데 주력했지만, 이제 다시 슬슬 그와 중국 정부도 패권지향적인 예전의 중국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건 막아야 하는 것이다. 만약에 중국 정부가 용납되지 않는 행동을 한다면, 이들은 다시 ‘압정’이 되어 중국 정부에 따끔한 한방을 날릴 것이다. 비록 그 효과가 미미하다고 할지라도.
다시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 베트남과의 전쟁이 끝난 지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1983년 5월 5일. 중국소속 트라이던트 여객기 한대는 요녕성 심양 공항에서 상해 홍교 공항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이런 여객기가 고공납치 당했다. 여섯 명의 납치범들은 대만으로 망명을 할 작정이기에 기장을 협박하여 기수를 돌리게 했다.
하지만 기장은 어째서인지 평양으로 기수를 돌렸고, 이를 눈치 챈 납치범들이 다시 한 번 협박하자 이번엔 엉뚱하게도 대한민국으로 기수를 돌렸다.
납치범들이 소리를 질렀다.
“이 미친 자식!! 대체 어디로 기수를 돌리는 거야?! 어서 대만으로 기수를 돌리지 못해?”
“이미 무리요. 연료를 상당부분 다 써버린 데다 남은 연료량을 보면 한국으로 갈 연료량밖에 없소!”
“어째서 그 방향으로 가는 거야!”
“그렇게 따지면 애초에 비행기를 납치한 당신들이 잘못했지 않소!!”
“뭐라고?! 말다했냐, 이 자식!! 머리에 바람구멍을 내주마!!”
“해보시오, 할 수 있다면!! 당신들은 엉뚱한 곳을 날다가 추락해서 모조리 고깃덩어리가 될 걸!!”
“······.”
납치범들은 모두 말을 잃었다. 확실히 기장의 말 대로였다. 그들이 할 줄 아는 건 오직 조종실에 침입해서 총을 겨누는 것뿐이지, 항공 지식이라곤 일체 없는 것이다.
그런 그들이 조종간을 잡아봤자 기장의 말대로 얼마 못가 한줌 핏물이 될 게 뻔했다.
주도권이 자신에게로 온 것을 알아챈 기장은 더욱 성을 내며 일부러 몰아붙였다.
“알겠으면 자기 자리로 돌아가시오! 당신들 때문에 나는 그렇다 치고 승객들은 대체 무슨 죄요? 멍청한 인간들!!”
“······.”
이제 납치범들은 아예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대화를 천리지청술로 자리에서 듣고 있는 자가 있었다.
뜻밖에도 그는 원륭이었다.
“이거이거, 뜻밖에 대한민국을 가게 생겼군.”
“······이거 당신이 의도한 건가요?”
“응??”
“애초에 알고 있었던 거냐고 묻고 있어요.”
“알고 있었던 것은 저들이 대만으로 간다는 것 정도였잖아. 설마 평양으로 향하다 다시 대한민국으로 향할 줄 누가 알았겠어?”
“······.”
옆에 앉아있던 여자, 홍청서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원륭을 바라보았다.
뜻밖에 이 비행기에는 원륭은 물론, 대만 음양당의 요원 홍청서도 타고 있었다.
홍청서는 17년 전 문화대혁명이 시작될 때 우연히 원륭과 만난 여자인데, 원륭이 홍위병들에게 시달리던 그녀를 구해주면서 그 인연이 시작되었다.
물론 홍청서는 대만 음양당 요원답게 혼자서도 홍위병들을 처리할 실력이 있었지만 첩자의 신분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신중히 대응하고 있었고, 그걸 모르고 원륭이 도와주었는데 하필 대만 음양당 요원이었던 것이다.
실로 기막힌 우연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둘이 17년 만에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가는 이유는 며칠 전 있었던 홍청서의 제안 때문이었다.
“살아있었군요?”
“누구냐, 너. 홍청서랬던가? 오랜만이군.”
“나를 기억하고 있군요?”
“너 같은 여자를 만난 적은 별로 없어서 말이지······. 그래, 무슨 일이지?”
“오랜만에 만났는데 반갑다는 말은 없나요?”
“당신이 나타났는데 우연일 리가 있나. 처음 한 번은 몰라도 두 번은 우연이 아니지. 다시 한 번 묻겠다. 무슨 일이지?”
그리고 원륭이 두 손에 공력을 끌어올리는 것을 느끼자 홍청서는 깜짝 놀랐다.
원륭은 여차하면 바로 공격할 태세를 취했던 것이다. 설마하니 원륭이 그 정도 기세로 나올 줄은 몰랐던 홍청서는 동요를 숨기지도 못하고 곧바로 물었다.
“너무 성급한 거 아니에요? 우리 사이에 그 정도로 악연이 있었던가요?”
“선자불래 내자불선.(善者不来来者不善) 좋은 자는 오지 않고 온 자는 선하지 않다 이거지. 당신 같은 자가 갑자기 나타났는데 좋은 일일 리가 있나. 세 번째 묻고 있다. 무슨 일이지?”
“······.”
홍청서는 잠시 묘한 눈으로 원륭을 바라보았다. 17년 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파릇파릇한 애송이나 다름없었다.
어설픈 정의감으로 그때부터 음양당 요원이던 자신을 도와줬는데, 너무나도 기막힌 우연이라 한때 홍청서는 원륭이 일부러 자신에게 접근했나 의심할 정도였다.
후에 지속적으로 감시를 하면서 원륭을 비롯한 쪽방촌의 무림인들에게 그럴 의도나 여력이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무튼 자신을 도와준데 대한 감사와 호감의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소년은 온데간데 없었다. 18살의 순수한 소년은 문화대혁명의 폭풍을 맞고 노회한 무림인이 되었으며, 그 정신 상태나 자신을 대하고 곧바로 공격 태세를 갖추는 모습 모두 부족함이 없었다.
무림인으로서는 그런 성장을 축하할 만 했으나, 아직까지 그들 간의 피아가 확실하지 않은데다 순수했던 소년의 모습이 사라진 원륭을 보고 홍청서는 왜인지 실망감이 들 정도였다.
왜일까? 사실 그 정도 실망이 들 이유도 없는 것이었다. 원륭은 어디까지나 스쳐간 사이인데다 잠재적인 적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음양당의 수장인 강호육이 직접 원륭과 그들 쪽방촌의 무림인들에게 합류를 권유했으나, 그들은 거절했다.
음양당이나 국민당의 행보가 공산당과 다르지 않고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였다.
원륭의 행보를 내내 은근히 신경 쓰고 있던 홍청서는 대륙에서 돌아온 강호육의 말을 듣고 내색하진 않았지만 상당히 실망했다.
그리고 계속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이번에 원륭이나 그들 쪽방촌의 무림인들에게 다시 제안할 것이 있어서 직접 찾아온 것이다. 홍청서는 조용히 말했다.
“제안할 것이 있어요. 대만여행을 하러 오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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