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티끄 (43)
흰 까운을 입은 병준이,
애써 덤덤히 대답한다.
"잘 못 보신 겁니다.
우린 오늘,
처음 만났어요."
"그렇군요.
미안해요."
병준의 옆을 지나,
아리안이 등을 보이며,
멀어진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병준에게,
닥터의 목소리가 울린다.
"기억해.
기억을 떠올릴 수록,
그녀를 괴롭히는 것일 뿐이야."
125.
병준의 연구실,
문이 반쯤 열려있다.
병준이 문을 마저 열고,
연구실 안으로 들어오려다,
멈칫한다.
아리안이,
방안에 있다.
병준의 책상 위,
한 여성과 병준이 함께한,
사진을 보고 있다.
사진 속 여성의 얼굴이,
아리안의 얼굴과,
같다.
병준에게 고개를 돌리면,
병준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아리안이 물었다.
"말해줘요.
당신은 누구죠?"
한참의 정적 뒤에,
병준이 말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모든 게 내 욕심이었어.
어리석은 내 욕심이었어.
모두 . . .
나 때문이야."
고개 숙인 병준에게,
아리안이 다가와,
선다.
"나는 . . .
돌아올 수 밖에 없었어요."
아리안이,
손을 뻗어,
병준의 고개를,
든다.
"모든 것이,
기억나지는 않아요.
하지만,
한 가지만은,
너무 강하게 남아 있어서."
병준의 두 눈을 바라보는,
아리안의 두 눈동자가,
그건,
당신,
이라 말한다.
126.
빗줄기는 더욱 굵고,
세차게,
땅을 때린다.
자정을 훌쩍 넘긴 어둠 속,
어느 지하철역,
직원이 지하 입구의,
셔터를 내린다.
지하 역사 안의,
불이 모두 꺼진다.
마무리를 마친 직원이,
지상으로 떠나면,
새까만 역사 안,
저 깊숙한 곳,
어디선가,
거친 숨소리들이 들린다.
벽에 기대어 선 아수라의 품안으로,
병준이 거칠게 파고든다.
둘의 젖은 몸이,
흘러내리는,
옷의 물줄기를 열어젖히고,
하나로 섞인,
머리카락 사이로,
두 혀가,
거칠게 엮이며,
소용돌이친다.
벽에 기대어 선 채로,
병준은,
아수라의 두 다리를 들어,
그녀를 열어젖힌다.
역사 안 전체에,
짐승의 거친 숨소리들이,
더 크게,
울려퍼진다.
Myst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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