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최종화)
86.
창밖의 우주를 바라보며, 상표도 없는 깡통 맥주를 홀짝거리고 있는 진과 단, 아저씨.
3명 모두 얼굴의 이곳저곳이 깨지고 터져있다.
아저씨가 말한다.
"니들 . . . 진짜로 지구로 가고 싶냐?"
진과 단은 여전히 꿍해서 맥주 벌컥거리며 고개로, 응!
아저씨가 계속 묻는다.
"이유가 뭔데? 거기가면 뭐 다를게 있다냐?"
진과 단이 꿍한 얼굴로 말없이 아저씨를 향해 스크랩을 들어보이면,
반조각난 스크랩의 중간이 비닐테이프로 엉성하게 붙여져 있다.
진과 단이 함께 외친다.
"우린 바다로 갈거라구!!"
진과 단을 노려보는 아저씨의 표정이 어이없다며
"미친 새끼들 . . ."
하는데,
87.
우주공간의 우주쓰레기 더미에 위험하게 매달려 못쓰는 부품을 건져내는 3인조.
다 찌그러진 깡통에서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꾸깃꾸깃 꺼내는 3인조.
부품들 쌓아놓은 창고에서 단이 희미한 전등 밑에 우주선의 설계에 여념이 없다.
88.
<알렉산더>가 스쳐지나가면, 그 중의 창 하나에 붙어 밖을 보고있는 어린 리더와 포니테일.
리더가 묻는다.
"우린 언제 지구에 도착하는 거야?"
포니테일이 답한다.
"이제 앞으로 세 밤만 더 자면 된대."
알렉산더의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는 둘을 바라보며 웃는 모습을 처음 보게되는,
참사 전 온화한 리더의 어머니의 모습.
알렉산더에서 숨바꼭질 놀이하는 리더.
리더가 숨는 곳은 리더의 기억 속에서 마지막에도 숨어들었던 작은 방이다.
방의 문을 열며 '잡았다!!'하는 포니테일.
그렇게 까르르르---거리다, 꼬마 신사가 꼬마 숙녀에게.
"우리 . . . 지구로 가게되면 나중에 커서 둘이 결혼하자."
포니테일은 기쁜 듯 "응"하며 둘은 새끼손가락을 마주 걸어 약속했다.
어린 리더가 행복해하며 물었다.
"넌 지구로 가면 뭐가 제일 보고 싶어?"
어린 포니테일 잠시 생각했다가.
"바.다.!!"
89.
오션호에서 펼쳐졌던 홀로그램의 VM이 아니라 실제 일어났던 그 장면의 소리와 색감으로,
메이와 아나가 함께했던 오션호의 기억이 다시 펼쳐진다.
메이가 말했다.
"메이가 어른이 되면, 바.다.로.가.는.거.예.요.!!"
90.
3인조가 작업하던 창고에 감격에 겨워 서있으면,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방금 완성한 중소형 화물수송선이다.
진이 머리를 긁으며.
"근데 . . . 이거 이름은 뭐라고 짓지?"
단과 아저씨가 대답없이 흐뭇하게 미소를 짓더니,
붓이 담긴 페인트통을 진에게 건네면,
진도 그제사 알겠다며 미소를.
페인트통을 들고 가서 우주선의 선두에 적는 이름은 바로,
<DOLPHINE>이다.
<돌핀호>의 선두 <DOLPHINE>함명과 돌고래 마크의 그림을 바라보는 3인조의 함박미소에서 이제 모든 기억의 회상이 멈추어 선다.
마지막으로 진이 말했다.
"우리 모두 . . . 함께 . . . <바다>로 가는 거야."
91.
다시 폭팔 중인 오션호, 풀실의 안.
푸른색 섬광이 막 사라지면, 방금 본 환상에 더욱 놀란 4인!!
주변의 느려졌던 시간들이 버퍼링에 걸린 듯 버벅거리다 재빨리 원래의 속도를 찾으면, 지금은 1초전 오션호 폭파의 현장!!
오션호의 폭파가 마무리된다!!
오션호 대폭파!!!
폭발이 풀실을 덮치면, 외곽의 풀부터 물보라를 일으키고 터져가며 충격을 완화시키다, 드디어 폭발의 충격이 <메이의 풀>을 집어삼키고!!
심연의 안에 떠 있는 4인의 주변 풀의 외벽이 충격파에 퍼퍼퍽!! 하고 오그라들기 시작하고!!
진동 진동!!
이제 막 <메이의 풀>까지 터져버리려는 순간!!
진이 메이를 지키기 위해 <배아>를 감싸안는데,
그 반대편의 포니테일도 동시에 <배아>를 감싸안고,
폭발의 심연 속에 <배아>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포옹하듯 껴안는 진과 포니테일!!
우주공간에 떠 있는 오션호 주변을 오션호 대폭파의 섬광이 덮쳐버리며,
온 우주가 하얘진다!!
92.
잠시의 정적 뒤.
질끈 감았던 진의 두 눈이 서서히 떠지면,
완전히 폭파되어 버린 오션호의 잔해들이 사방으로 부서져가는 와중에,
마지막으로 터진 오션호 풀실의 거대한 바닷물들이,
극냉의 우주공간에서 한 순간에 얼어버리며 흩뿌려지는 모습이,
마치 거대한 <대양>에서 흩뿌려지는 거대한 <파도>의 모습과 같다!!!
그 장엄한!
우주에서 넘실대는 푸른색 파도의 이미지!!
이를 바라보는, 역시 경이로운 눈빛의 다른 일행들.
이때 놀란 진의 귓가에 어릴 적 아버지의 말이 다시 울린다.
"너.는.꼭.바.다.를.보.게.될.거.야."
그리고 서로 껴안고 있는 모양의 진과 포니테일이,
서로를 바라보며 미묘한 시선을 교차할 때,
그들의 사이에서 다시 새어나오는 메이의 푸른색 광채!!
모두가 놀라 바라보는 가운데 <메이>,
바로 우주 속에 떠 있는 지구상 모든 생명체 시작의 씨앗,
<배아>가 마치 스스로 움직이는 듯 모두의 머리 위로 떠오르면,
<배아 메이>는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듯 4인을 떠나 <죽음의 별 지구>의 반대편 거대한 별의 바다를 향해 떠나가고,
그 우주를 나아가는 은은한 움직임이 풀실의 안 바닷물 속에서 헤엄치며 진에게 다가왔던 <15세 메이>의 모습과 겹친다.
그렇게 메이는 저 먼 우주 어딘가에 있을 <지구>를 닮은 어느 별의 <바다>에 도착해 새로운 생명의 <제네시스>를 시작하게 될까.
그렇게 메이는 사라져 버렸다.
93.
오션호의 잔해가 떠다니고,
<죽음의 별 지구>의 검은색 대기 밑에서는 번개들이 내뿜는 섬광이 번쩍이고,
이제 모든 사건이 <무>로 돌아가 버린 극냉의 우주공간에 우주복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버려진 4인.
이리저리 떠다니는 4인이 함께 모여있기 위해 서로서로의 몸을 잡아 당기면,
다시 서로 손을 맞잡고 한 곳에 모이는 4인.
정적의 우주 속의 절대절망의 순간.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장비요원은 우주복의 남은 산소를 체크하며 너털웃음.
"2시간쯤은 남은지 알았는데 . . . 1시간 정도 뿐이었네 . . ."
진과 단도 자신들의 우주복의 산소를 체크하자 허무한 웃음.
"우리쪽은 30분 정도 뿐이야 . . . 우리가 먼저 죽겠는 걸 . . ."
말마친 진은 포니테일을 바라보고, 그녀를 바라보는 진의 눈동자에는 말 못할 아쉬움이 남는다.
진을 바라보는 포니테일의 눈빛도 아쉬운 빛을 보내면,
단은 아저씨의 생전의 말투를 흉내내며.
"젠장 . . . 젠장, 젠장, 젠장 . . ."
아저씨를 생각하며 우수에 잠긴 진이 쓴 미소를 짓는데, 그의 헤드폰에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진이 나머지 3인에게.
"뭐라구?"
단이 톡 쏜다.
"뭔 소리야?"
진이 다시.
"나한테 뭐라고 안했어?"
장비요원을 바라보면 고개를 젓고, 포니테일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헤드폰에 귀를 쫑긋 세우더니 두 눈이 동그래진다.
"이건 . . ."
헤드폰에서 들리는 소리가 점점 <볼륨 업>되면 그건 일본어다!!
바로 왁자지껄 요란한 SS호 승무원들의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다!
등 뒤로 고개를 돌리는 4인의 얼굴에 믿을 수 없다는 미소가 떠오른다!!
저 멀리서 SS호가 다가오고 있다!!
손을 흔드는 4인에게 SS호가 천천히 다가와 구조를 시작한다.
94.
SS호 선내에서 난파선의 구조객들처럼 모포를 걸치고 몸을 녹이고 있는 4인의 표정은 망연자실.
SS호의 선장이 4인에게 머그컵에 담긴 뜨거운 수프를 건네주면, 진과 단에게.
"너희들이 경찰에 끌려갈 때 부터 뒤를 쫓았어. 단번에 물수송선으로 간다는 걸 알고 따라갔지. 중간에 산소다 식량이다 보급받느라 늦어졌던 거야 . . ."
진이 묻는다.
"우리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
선장은 미소를 쪼개며 콕핏의 항해사에게 고개짓하면, 항해사가 녹음된 전파를 튼다.
그건 바로 오션호에서 한 동안 계속되던 장비요원의 조난 메세지.
"메이데이, 메이데이, 여기는 RSL-003 오션, 본부 나오라 오버!!"
그러다 아저씨가 없는 걸 알아차린 선장.
"근데 . . . '선'은 어디 갔어?"
잠시 뜸을 들인 진이 말한다.
". . . <은퇴>했어 . . . 출발하기 바로 전에 . . . 어디로 갔는지는 우리도 몰라 . . ."
아저씨 얘기에 다시 슬픔이 북받쳐 오르는지 단이 고개를 떨구어 버린다.
창밖의 <지구>를 바라보며, 선장의 마지막 질문.
"근데 . . . 저 별은 뭐야?"
4인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자, '설마!!'라는 표정으로 진을 바라보는 포니테일.
점점 멀어져가는 <지구>를 바라보며 진.
"<수성>이야 . . . 옛날에 잊혀진 별이지 . . ."
선장, 그렇군, 하며 일행들이 있는 콕핏으로 자리를 옮기면, 고개 숙인 단의 어깨가 다시 들썩이며.
"이제 . . . 이제 우린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진아 . . . "
장비요원이 훌쩍이는 단의 어깨를 감싸주면, 마주보는 진과 포니테일의 시선의 교차는 비운 속에 탄생된 새로운 연인의 감정.
그런 포니테일에게서 시선을 돌려 <메이>가 떠나간 창밖의 광활한 우주를 바라보며, 진이 뜻밖의 미소를 짓는다.
심상치 않은 빛을 발하는 아이러니한 희망의 미소와 함께.
"이곳이야 . . .
지금 이곳이 . . .
우.리.의.바.다.다."
95.
<죽음의 별 지구>를 배경으로 출발하는 SS호.
그 모습에서 서서히 뒤로 물러나면 화면의 앞으로 두둥 떠내려오는 것은 오션호의 잔해 속에 함께 묻힌 돌핀호의 잔해.
바로 돌핀호의 선두.
3인조가 함께 바라보았던 DOLPHINE이란 이름과 돌고래 마크.
그 잔해를 따라 저 앞에 펼쳐지는 것은 광활한 <대양>.
살아남은 인류가 살아나갈 <우주>다.
[DEDICATED TO OUR FUTURE CHILDREN]
[IN MEMORY of 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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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총수]님의 강평이 있겠습니다."
. . .
"시간대가 . . . 지금 우리 시간대랑은 다른 것 같은데?"
"맞습니다. 방금 보신 것은, 우리 [그룹]의 1대 [총수]께서 권력이양 없이 300년 동안 집권하신 경우의 시간대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우리 시간대에서는, 정부측에서 <오션호> 폭파 없이 무사히 <프로젝트 메이>를 회수. 지금 <메이>의 자손들은 외우주를 향하고 있는 우리 [그룹]의 6개 [방주]에 올라타 돌아오지 않을 여행 중에 있습니다."
"A.N.N.A.는?"
"A.N.N.A.는 지금 여기 HQ의 메모리블럭에서 증식하며 계속해서 새로운 프로젝트들을 진행 중입니다. 모두 아시는 것처럼, A.N.N.A.는 [AI]와는 다른 [인격체]라는 존재를 최초로 인정받게 만든 선구자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그 돌핀호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는 건가?"
"사실 . . . 그 뒤의 이야기도 [시간대 탐사]를 계속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 뒤틀려버린 다른 세상 이야기를 조금 더 보고싶군."
"네, [총수]님.
다음 번에 이들의 '기억'을 다시 상영하게 된다면 . . .
이번에는 '돌핀호 4인조'가 될 겁니다."
[오션 끝]
Myst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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