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티끄 (1)
1.
어느 국회의원의 방.
저녁.
다른 가구들은 없이 책상 하나와 의자 하나가 놓여있다.
방안의 불은 모두 꺼져 있다.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 컴퓨터의 인터넷 화면이 방안에 있는 유일한 빛이다.
컴퓨터 화면의 빛에 책상 위 비닐 속 하얀 가루가 빛난다.
그리고 그 옆의 주사기.
또 한편에 방금 쓰기를 마친 그의 유서가 펜과 함께 놓여 있다.
[나는 이제 천국으로 간다]
국회의원은 머리가 벗어진 50대 후반의 남자다.
주사를 맞은 뒤인지 소매를 내린다.
멍청한 눈빛을 한 채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넥타이도 다시 맨다.
그러다 너무 꽉 매었는지 다시 느슨하게 풀어버린다.
의자 위에 올라가 로프를 천정에 묶는다.
표정 없는 웃음을 지으며 로프를 자신의 목에다 건다.
그의 귀에는 그를 유혹하는 끔찍한 톤의 낮은 속삭임이 들린다.
"그래. . .
어서. . .
빨리. . .
이제 우리는 하나가 되는 거야."
국회의원의 마지막 표정 없는 웃음.
의자를 스스로 발로 차버린다.
아무도 없는 방에 걸려 있는 이제는 싸늘하게 식어버린 시체.
책상 위의 인터넷 화면과 그 불빛에 비치는 비닐봉지의 백색가루.
그리고 주사기 하나.
2.
검은 우주 속에서 푸른 별 지구가 조용히 자전하고 있다.
3.
국회의원의 죽음과 함께 PCS 전화기의 호출 소리가 울린다.
같은 시간 어느 으슥한 뒷골목.
어둠 속에 숨긴 몸의 실루엣만이,
검은 양복에 검은 장갑에 검은 구두의 한 남자가 그의 품 안에 손을 넣어 울리는 PCS 기를 들곤 조용히 듣는다.
그의 옆으로 몇 명의 같은 차림의 남자들이 서 있는 것이 보인다.
듣기를 마치고는,
PCS를 다시 품 안에 넣으며 다른 일행들에게 조용히 말한다.
"[미카엘]이다. . .
[미스티끄] 발견."
[MYSTIQUE]
4.
[병준]이 인파로 북적이는 거리를 걷고 있다.
멋지게 꾸미고 나온 사람들과 달리 병준의 차림새는 평상시의 편한 옷차림이다.
거리의 색상이 뒤틀린다.
'누군가' 병준을 보고 있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들과 함께 형형색색 편물의 머리장식이 함께 너울 덴다.
시선을 느낀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많은 사람들의 얼굴.
누구인지 찾을 수 없다.
잔뜩 힘을 주는 병준의 두 눈.
인파가 병준의 시선이 향한 쪽으로 길을 비키면,
티베트 전통의상풍의 색깔 화려한 옷을 입은 여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표정 없는 얼굴.
싸늘한 눈으로 병준을 노려본다.
다른 사람들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병준의 눈에만 보인다.
이상한 기분에 다른 거리로 도망치는 병준.
쇼윈도 앞에서 헐떡이며 숨을 가다듬는데,
또 그 시선을 느낀다.
고개 돌린 병준의 눈앞에,
다시 인파들 저편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있다!
나이는 스무 살 초반의 병준과 같아 보이는.
너무나 완벽해 보이는 얼굴이 도리어 차가운 공포심을 준다.
병준은 그녀와 시선을 맞추길 두려워하며 앞의 쇼윈도로 고개를 돌린다.
그 쇼윈도의 유리창 너머 병준의 바로 앞에 그녀가 서있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뚜렷하다.
무언가 말하지만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빨간 입술이 분명히 말하고 있다.
"기억나?
우리가 무얼 보았는지?"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그녀의 모습에 놀라 뒷걸음치는 병준의 놀란 얼굴로,
요란한 차임벨 소리가 울린다.
5.
한 명이 간신히 잘 정도의 누추한 숙직실.
병준이 속옷 차림으로 이불을 반쯤 덮고는 피곤한 기색으로 누워있다.
가구들은 없이 한쪽 벽에 박혀 있는 못에는 병준의 관리복만 걸려있다.
병준의 머리 쪽으로 나있는 창문에서는 정오의 햇살이 내리쬔다.
땀 흘리며 차임벨 소리에 놀라 일어나는 병준.
한동안 멍하고 놀란 표정으로.
시계를 들어 시간을 본다.
[오전 11시 50분]
시계를 놓고는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싸내린다.
피곤한 몸짓으로 이불을 걷고 자그마한 화장실로 가 물을 튼다.
찬물을 받아놓고는 잠을 깨기 위해 머리를 물속에 담근다.
얼굴을 들고 머리카락들을 뒤로 젖히며 세수를 하고는,
세면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IN MEMORY OF SEOUL, 1997]
Myst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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