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티끄 (5)
18.
입가에 토를 닦으며 주저앉는 병준에게 반장이 다가온다.
"아저씨들, 여기 관리인들이에요?"
병준 옆의 아저씨는 반장에게 몸을 연신 굽신거린다.
"예, 예 . . ."
반장은 관리부의 맨션사람들 이름을 아저씨에게 보여준다.
"여기 맨션에 사는 사람들 얼굴이나 다 알아요?"
"아니 그게 저,
워낙 바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니까 . . .
또 나갔다 들어왔다 수시로 바뀌니까 . . .
저희도 얼굴들 제대로 보기 힘들죠."
"체, 여기는 우리 아파트보다 더하구만."
반장은 수첩을 꺼내 근무처와 전화번호를 적어서 쪽지를 뜯어 아저씨에게 건넨다.
"일단 저기 발견한 아줌마 진술서 쓴 다음에,
아저씨나 저 친구나 한 번 와야 될테니까,
이거 갖고 있어요."
"아, 예, 예."
반장은 아저씨와 병준에게 등을 돌리고는,
다시 소란한 국회의원집 현관으로 걸어간다.
"자, 시체 들어내자구!"
집안에서는 형사들이 시체에 달라붙어 있다.
형사 한 명이 칼을 들고 올라가 시체 목에 걸린 로프를 자른다.
시체는 육중하게 밑으로 떨어진다.
형사들은 무거운 시체를 들어 운반대에 놓는다.
땀을 닦는 형사들.
"아, 이 새끼, 더럽게 무겁네!"
19.
완전히 해가 진 저녁,
관리실 안에 병준과 아저씨가 교대를 준비 중이다.
병준을 바라보는 아저씨의 눈매가 안스럽다.
"병준아, 괜찮겠냐?"
"예에 . . . 괜찮아요."
아저씨는 주머니에서 반장에게 받은 쪽지를 병준에게 넘겨준다.
"혹시 연락올 지 모르니까,
이거 갖고 있어라."
"예."
아저씨는 병준의 어깨를 한 번 탁 쳐주고는 관리실을 나간다.
홀로 남은 쓸쓸한 관리실 안에서,
병준의 초점풀린 눈이 자그만 브라운관 TV 화면으로 향한다.
저녁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병준의 귀에서 헛돈다.
TV 화면 속 앵커의 얼굴이,
썩어 떨어지는 국회의원의 죽은 얼굴과 겹친다.
놀란 병준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다.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났다.
걱정스런 얼굴로,
병준의 두 눈이 맨션의 현관을 향한다.
20.
병준이 태영의 집 문앞에 서있다.
태영의 옆집인 국회의원집의 현관에는 노란색의 폴리스라인이 쳐져있다.
더 걱정스런 얼굴로,
병준이 태영집 벨을 누른다.
'딩동'
대답이 없다.
다시 한 번 더 누른다.
'딩동'
대답이 없다.
병준은 이제 초조한 표정으로 노크한다.
"태영씨!
저, 병준인데요!
저기, 문 좀 열어주세요!
알려줄 게 있어서요!"
대답이 없다.
문 건너에서 사람의 인기척이 들린다.
무언가 이상하다.
"괜찮아요, 태영씨!"
병준이 태영집 현관의 손잡이를 돌린다.
잠겨 있다.
"태영씨!!"
다시 손잡이를 돌린다.
그리고 이번엔 . . .
문이 열렸다!
놀란 얼굴로,
병준이 조심스레 문을 열고는 집안으로 들어온다.
21.
집안은 어둠에 쌓여 조용하다.
병준의 목소리도 조용해진다.
"태영 . . . 씨 . . . ?"
병준이 집안으로 좀 더 걸어가면,
창가쪽의 블라인드 너머로 들어오는 약한 불빛에,
방안의 모습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죽은 국회의원의 원룸과 같은 구조.
화분들,
인형들,
TV와 오디오 세트,
그리고 중앙의 소파위에,
베이지색 양복의 남자가 태영의 나체를 안고 앉아,
태영의 긴 목에 식칼을 겨누고 있다.
놀란 병준이 현관쪽으로 뒷걸음치면,
문은 스스로 '쾅' 하며 요란스럽게 닫혀 버린다.
당황한 병준이 현관문의 손잡이를 이리저리 급하게 비틀어 보지만,
베이지색 양복의 남자가 피식 웃으며 말한다.
"문은 열리지 않아."
Myst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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