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티끄 (35)
94.
병원의 긴 복도에서,
넝마가 된 병준을,
거구의 간호사가 무심히 끌고간다.
땅바닥 위에 질질 끌려가는 병준의 몸은,
거친 숨만 내쉰다.
95.
불꺼진 독방 안에,
아수라가 철제침대 위에 앉아있다.
전처럼 시선은 한쪽 벽을,
뚫어져라 노려본다.
시선은 그대로,
팔만 움직여,
침대 옆에 놓인,
갈색 곰인형 하나를 들어올려,
품에 안는다.
군데군데 속이 터지고,
때가 낀,
매우 오래된 인형이다.
96.
노스가 아수라에게 주사를 놓던 방이다.
[드루이드 사우스이스트]가,
검은 자켓을 벗어던지고,
침대 위에 앉는다.
자켓 안주머니 속,
PCS가 검게 한 번 빛난다.
이니셜 'M'의 하얀가루를 물에 희석시킨 후,
왼팔에 스스로 주사를 놓는다.
바늘이 몸을 찌르고,
주사액을 사정하면,
사우스이스트는 두 눈을 감고,
깊은 신음을 내지른다.
오른손으로,
딱딱한 자기 왼쪽 가슴을,
애무한다.
손놀림이 애타지는데,
갑자기 멈춘다.
사우스이스트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간다.
97.
처음 보는 환자 독방 안에서,
[백발의 남자]의 죽음을 병준에게 알려준,
환자가 누워 자고 있다.
그의 귓가에,
기괴한 소음소리가 와닿는다.
눈을 번쩍 뜬 환자가,
멍한 표정으로 일어나,
쇠창살 달린 작은 창문으로 향한다.
창살 사이에,
여윈 얼굴이 찌그러져 멍들 때까지,
바짝 끼워넣는다.
창밖의 저 먼 하늘을 바라보는,
환자의 멍한 눈이,
점점 매서워진다.
귓가에서는,
기괴한 소음소리가,
더욱 커져간다.
환자가 말한다.
"온다!!!"
98.
[미스티끄]가,
서울의 밤하늘 저 꼭대기에서,
활강을 시작한다.
다이빙 괘도의 저 끝에,
정신병원이 있다.
99.
철제침대 위에,
아수라가 곰인형을 안고,
앉아있다.
문이 열리고,
사우스이스트가 들어온다.
익숙한 몸짓으로,
아수라의 옆에 풀석 주저앉는다.
앞을 노려보는 아수라의 시선은,
그를 무시한다.
사우스이스트가 말한다.
"쓰레기를 안고 뭐하는 거야?"
아수라는 대답이 없다.
사우스이스트는,
아수라의 뒷통수를 갈긴다.
충격으로 앞으로 떨어진 고개를,
다시 들어올리면,
헝크러진 머리칼들이,
아수라의 얼굴에 흘러내린다.
사우스이스트가 말한다.
"내가 물었잖아.
쓰레기를 안고 뭐하는 거야?"
. . .
. . .
"이건 쓰레기가 아니야."
"쓰레기가 아니면 뭐야?"
"이 애 이름은,
'패티'야.
쓰레기가 아냐.
내 친구 '패티'야."
"인형이 인형을 가지고 노는 거야?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자신을 무시하며,
앞으로 향한,
아수라의 옆얼굴을,
바라보는 사우스이스트의 숨소리가,
슬슬 헐떡거린다.
[도르제]를 낀 손으로,
아수라의 얼굴을 만진다.
손은 턱을 따라,
목을 타고,
가슴까지 내려온다.
감촉에 방해되는 도르제를,
거칠게 벗어던지고,
아수라의 품안,
곰인형도 뺏어,
거칠게 던져버린다.
한 번에 아수라의 셔츠를 찢어 벗겨버릴 충동을 간신히 참으며,
셔츠의 단추를 맨 위에서부터,
하나씩 벗기기 시작한다.
100.
[미스티끄]의 바로 앞에서,
정신병원이,
기괴한 하얀색을 뿜어낸다.
그 하얀색을 뚫고,
[미스티끄]는,
병준의 독방을 덮친다.
Mystique
Commen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