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2)
2.
육중히 돌아가는 '콜로니 ONE'의 모습이 저만치 무겁게 떠있으면 곧 돌핀호가 천천히 '콜로니 ONE'을 향해 나아간다.
돌핀호의 조종실.
3인조가 조종석에 앉아 '콜로니 ONE'과 교신을 기다리며 들뜬 얼굴로 대화 중이다.
아저씨가 가장 흥분했다.
"이번에 건진게 40갤런이거든, 저번의 20갤런때 410만 크레딧을 받았으니까, 이번에는 못해도 800만 크레딧이다. 그러면 이주권 살 돈 3000만 크레딧을 넘기고도 500만 정도가 남는거야."
진과 아저씨에게 낡은 잡지의 스크랩을 보여주며 말하는 단.
잡지의 스크랩에는 푸른 바닷가 옆에 세워진 오두막 별장의 그림이 찍혀있다.
반으로 찢긴 스크랩의 중간부분은 비닐테입으로 엉성하게 붙여져 있다.
"난 말이야, 이번에 지구로 가게 되면 남는 돈으로 이런 오두막집을 살거야. 어때, 우리 돈이면 살 수 있겠지?"
"그럼 살 수 있어, 걱정하지마."
"자식, 고작 사고 싶은게 통나무집이냐? 이것 봐라."
아저씨가 진과 단에게 내미는 건 '소피 마르소', '비비안 리', '마릴린 몬로'와 같은 아아주 예전 시대의 유명한 고전 미인들의 사진이다.
"난 말야, 남는 돈으로 이런 '여자'들을 12명 세트로 만들어서 가지고 놀거다. 저번에 술 마시다 안 생명회사 직원이 그러는데 한 1200크레딧만 주면 내가 원하는 데로 야들야들한 여자들을 만들어 준다는 거야."
3인조가 유쾌하게 웃는 가운데 통신채널의 램프에 불이 들어온다.
갑자기 진지하게 변하는 3인조.
통신채널이 들어오면 전면의 스크린에 파란 눈과 금발의 서양인이 등장하더니 거만한 태도로 입을 연다.
"돌핀호! 오랜만에 보는군. 잘 지냈나? 이번 물건은 얼마야, 평소랑 같은가?"
자신만만한 진.
"아니. 평소랑은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지."
여유만만한 3인조의 미소.
"얼마나 많길래 그래?"
조금 뜸들이며 선체와 연결된 디지털숫자의 중량계를 들어보이는 진.
"42갤런!"
"42갤런이라. 그러면 얼마를 주면 되나. 응, 이 정도."
모니터 앞에 같은 디지털 숫자판을 들이미는 서양인.
최고로 커지는 3명의 기대에 찬 눈빛.
하지만 모니터에 비치는 숫자판에 적힌 숫자는 고작 220만.
쇼크먹는 3명.
아저씨는 광분한다.
"220..220만?! 2200도 아니고 220?! 이 빌어먹을 코쟁이 새끼들이 누굴 호구로 아나!!!"
진도 따라서 돌아버리기 시작.
"이것 봐, 지금 무슨 소리야. 여기 숫자 읽을 줄 몰라? 42갤런이야! 4.2리터가 아니라구! 지금 시세라면 못해도 800만은 줘야지!!"
여전히 거만한 서양인의 설명.
"자네들이 나가있는 사이에, 지름 4키로 짜리 물운석 4개가 발견되서 물값이 폭락했네. 게다가 . . . (한번 뜸들인 후) SS호에서 너네랑 같은 양으로 200만에 덤핑제의가 들어왔어. 이거라도 받기 싫으면 그냥 가라구."
아저씨 스팀 받기 시작한다.
"젠장 . . . 젠장, 젠장, 젠장!!"
"발견된 물운석이 굴착에 들어가면 물값은 더 떨어질거야."
고개를 푹 숙여버리는 진과 단.
아저씨의 분노가 폭발한다.
"안돼!! 절대로 인정 못 해!! 차라리 안 팔고 말어!!"
3.
돌핀호의 풀실에서 완전히 풀이 죽은 아저씨.
"치사하게 . . . 30이나 더 깎을 건 또 뭐냐 . . ."
3인조가 분주하게 물탱크의 여기저기를 다니며 채취한 물을 정제하고 있다.
탱크의 온도가 올라가자 뿌려놓은 화학약품과 반응을 일으키며 거무틔틔한 색깔에서 염소로 범벅이 된 듯한 걸죽한 우주세대의 '물'로 변해간다.
공정을 모두 끝내고 허무한 얼굴로 힘들게 불법채취한 물을 바라보는 3인조.
"이렇게 그냥 주기는 아깝지?"
장난끼가 발동한 아저씨가 바지 앞 자크를 내려 정제해 놓은 물에 오줌을 갈긴다.
"자식들 너네도 함 당해봐라"
덩달아 장난끼가 발동한 진과 단도 아저씨의 옆에서 자크를 내리고 함께 오줌을 갈긴다.
4.
아저씨가 우주복 입고 돌핀호의 몸체에 붙어 '콜로니 ONE'에서 이어지는 파이프로 정제된 물을 막 다 보내고 이제 쉬어야지 하고 있는데 일본계 불법 채취선 SS호가 콜로니 ONE에 입항하는 것이 보인다.
SS호 선두의 사무라이 마크와 'SAMURAI SPIRITS'라는 함선의 이름이 보인다.
"SS호다!! 젠장~~ 내 저 새끼들 다 죽여버린다!!"
열 받은 아저씨는 한 판 붙으러 돌핀호를 박차고 SS호를 향해 바로 날아가 버린다.
아저씨의 위험한 행동에 잔소리 하는 진.
"제발 그렇게 날아다니지 말아요!!"
라고 외쳐보지만 아저씨는 이미 SS호 표면에 도착해 있다.
진이 아저씨가 도착한 SS호의 통신채널을 열어보니 한국어와 일본어간의 질퍽한 욕들이 오가고 있다.
"빠가야로!!"
"야, 이, 좃까고 있네 스벌넘들아!! 니들만 살아보자 이거지!!"
시끄럽다는 듯 채널을 꺼버리는 진.
단은 조금 신경 쓰인다.
"오늘은 느낌이 안 좋은데?"
평소와 같은 진은 덤덤하다.
"5분만 기다려봐 . . . (시간 확인하더니) 응, 됐어.. 이제 연락이 올걸?"
말 끝나자마자 채널 열리며 들리는 아저씨의 술취한 목소리.
"어이, 얘들아~~~ 니들도 와서 한 잔 같이 안 할래?"
진은 사무적으로 답한다.
"20시간 뒤에 출항입니다~~ 그때까지 돌아오세요."
바쁜 일과를 마치고 돌핀호에서 취침을 준비하며 담요를 까는 진과 단.
5.
돌핀호 안은 내부등이 꺼져 어두운 가운데 필요한 최소한의 디스플레이들만이 반짝이고 있다.
점멸하는 타이머는 앞으로 출발까지 남은 시간 9Hr 8Min.
곧 이어 9Hr 7Min.으로 바뀌면, 단은 곤히 자고 있고 진은 잠이 오지 않는 듯 헤드폰을 끼고는 무릎에 놓아둔 자그만 액정화면의 <불법전파수신기>에서 나오는 TV화면을 보고있다.
마치 익숙한 CNN의 화면이 생각나는 와이드비율의 TV화면에서는 '콜로니14'에 내려진 소거명령에 관한 뉴스가 나오고 있다.
"한편 콜로니 14가 더 이상 거주하지 못할 한계상황에 이르러 정부는 콜로니 14 이주민들의 완전철수를 결정했습니다. 철수된 콜로니 14의 자재와 자원회수는 늦어도 17시간 내에 시작될 예정입니다."
이어지는 정부의 <지구이주광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지구의 모습들 중 익숙한 '멋진 경치'들이 화면에 펼쳐진다.
"그곳은 산소통도 필요없습니다. 우주복도 필요없습니다. 내리쬐는 따뜻한 햇살, 상쾌한 바람 속에 옷을 벗고 물결치는 파도에 발을 담가보십시오. 성공한 우주인들만의 천국! 지구(구구구구~~~~~!!)"
대빵만한 자막으로 보여지는 지구이주권의 어마어마한 가격!!
1인당 1000만크레딧!!
스페이스 콜로니의 벽에 붙어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가 나타나 카메라를 향해 씨익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외친다.
광고의 우주인이 입고있는 우주복은 실제의 초라한 우주복이 아닌 마치 새 것처럼 삐까번쩍한, 묘한 괴리감을 가진 모습이다.
"무리라구요? 천만에!! 우리 모두 열심히 더 열심히 일합시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우주정부'의 근엄한 마크.
진은 TV화면 속 노동자의 모습에서 무언가가 생각난 듯 고개를 돌려 창 밖의 콜로니 ONE을 바라보면 콜로니 외벽에 달라붙어 망치질 하고 있는 우주노동자들의 모습이다.
앞서 본 광고와는 달리 현실 속에서는 그저 초라하게 낡아버린 콜로니 ONE의 모습.
이 모습을 바라보는 진의 눈동자 속에서 진의 과거 기억이 흐른다.
어두침침한 어느 낡은 콜로니의 쾌쾌한 방.
꾀죄죄한 옷의 어린 진이 쭈구리고 앉아있으면 진의 아버지는 양철 세숫대야에 물을 담는다.
진의 아버지가 입고있는 더러운 우주복은 진이 바라보고 있던 콜로니 ONE의 노동자들의 우주복과 같다.
주름살 투성이로 이리저리 갈라져 있는 노동자 아버지의 손이다.
이민세대의 '더러운 물'이 담긴 대야.
아버지의 표정은 다정한 아버지의 얼굴도, 엄한 아버지의 얼굴도 아닌 '공허하다'.
군데군데 부서진 <돌고래 장난감>을 물 위에 띄우면 <돌고래 장난감>은 힘들게 삐걱거리며 헤엄을 친다.
어린 진이 묻는다.
"그건 뭐죠...?"
"돌고래 . . ."
"어디 살아요?"
"바다."
"나도... <바다>에 갈 수 있나요?"
진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공허한 웃음.
진의 머리를 허탈하게 쓰다듬는다.
바로 이어지는 기억 속에서 우주복을 입은 아버지가 그 '공허한 눈'을 멍하게 뜨고 죽어있는 얼굴이 헬멧 뒤에 숨은 채 먼 우주공간을 향해 사라져 간다.
아버지의 살아생전 마지막 대사가 다시 들린다.
"너는 꼭 <바다>를 보게될 거야 . . ."
이 때 죽은 아버지의 우주복 뒤 산소통에는 마치 부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부서진 <돌고래 장난감>이 매달려 있다.
진의 죽은 아버지가 저 멀리로 사라진 텅 빈 우주공간을 진이 창밖으로 바라보고 있다.
Myst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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