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사판) 마크로스 사가 I (7)
44.
릭 일행과 마론과 마야를 태운 차가 마크로스 섬의 [고가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마크로스 시티]와 해안가의 [원주민 부락]을 잇는,
마크로스 섬에서는 유일한 고가차도다.
45.
릭 일행의 차가 해안의 원주민 마을에 도착한다.
마야는 수줍게 릭 일행에게 "Thank you" 하고는 마을을 향해 도망치듯 달려간다.
마론은 릭과 맥스, 그리고 벤에게 정중하게 악수를 청하며 감사를 표한다.
"Thank you . . . the car . . . and . . . [Macrospeed]."
마론의 영어는 서툴지만 감사함은 진실하다.
이제 등을 돌려 마야를 따라 마을을 향하는 마론의 뒷모습과 함께 저녁 시간의 아름다운 섬의 해안가가 원주민들의 소박한 삶의 모습과 함께 펼쳐진다.
이 광경을 바라보는 릭의 옆으로 맥스가 다가와 마크로스 섬의 원주민들에 관한 배경지식을 알려준다.
마크로스 원주민들은 섬의 중앙에 위치한 정글에서는 살지 않았고,
그래서 정글을 개간하려 한 적도 없다.
덕분에,
지금은 [SDF-1]이라 불리는 외계의 거대 우주선이 섬 중앙의 정글지대에 충돌했을 때,
다행히도 원주민 사상자는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던 것.
이렇게 섬의 정글에 손을 대지도,
발을 들여놓지도 않고 보존해 왔던 이유는,
섬에서 오래전부터 전승되어온 원주민들의 창조신화 때문이라고 한다.
맥스는 릭을 가장 가까운 원주민 가옥으로 데려간다.
이미 오래된 원주민 가옥들의 벽에는 섬의 창조신화를 표현한 벽화가 형형색색으로 그려져 집들을 장식하고 있다.
이 벽화의 그림들의 내용을,
지금 맥스가 릭에게 설명해준다.
신화에 따르면,
마크로스 섬의 원주민들은 이 지구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인간들]로,
저 하늘에서 빛나는 별들 중 가장 멀리 떨어진 별에서 지구를 찾아온,
[아루스]라는 이름의 신이 창조했다고 한다.
[아루스]는 [최초의 인간들]을 만들어내는 고된 작업을 끝내고,
아주 아주 긴 잠에 빠져버렸는데, (지금까지도)
이 긴 수면에 빠지기 전 한 가지 예언을 남겼다고 한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저 하늘에서 [아루스의 열쇠]가 찾아와 섬 중앙의 정글에 도착할 것이고,
이 [열쇠]는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 뒤에야 비로소,
[거인]이 나타나 잠든 [아루스]를 깨울 것이니 . . .
이 전설 덕분에 UN은,
전쟁난민들을 마크로스 섬으로 옮겨 [SDF-1]의 수리를 시작하는 계획에 처음부터 전폭적인 원주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원주민들은 이미 [SDF-1]이 전설에서 예언한 [아루스의 열쇠]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
설명을 모두 들은 릭이 맥스에게 질문한다.
"그리고 . . . 아까 저 남자가 마지막에 했던 말은 무슨 뜻이지?
마크로 . . . 스피드?"
어느새 릭과 맥스의 옆으로 다가와 함께 서있던 벤이 끼어들며 대신 답한다.
"아, 그건 원주민들이 행운을 빌 때 쓰는 표현입니다.
안전한 여행을 바란다는 뜻인데,
우리가 쓰는 표현인 [Godspeed] (영어로 행운을 빈다는 표현)를 따라한 것 같습니다, 하하!"
릭은 원주민 가족들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며 시간을 좀 더 보낸다.
릭 일행은 다시 [마크로스 기지]를 향해 출발한다.
46.
릭이 꿈을 꾸고 있다.
릭과 릭의 아버지가 캔자스의 농장에서 식량을 훔치는 침입자들을 쫓아내고 있다.
그 중의 한 명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려던 릭의 아버지가 멈칫, 하며 멈추어 버린다.
표적이 된 침입자가 아직 10대 초반의 어린이다.
그렇게 주춤하는 사이에 다른 침입자가 먼저 릭의 아버지를 향한 총구에 방아쇠를 당긴다.
총알이 아버지의 복부를 뚫는다.
고향 캔자스 농장의 헛간 안에는 오래되어 녹슨 [경비행기] 한 대가 세워져 있다.
그 앞에서,
죽어가는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 서로를 부동켜 안고 있다.
온 세상이 전쟁에 휩쌓이기 훨씬 전,
캔자스 농장의 평화로웠던 시간들이 펼쳐진다.
아직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지금보다 훨씬 앳된 모습의 로이가,
방금 사서 가져온 듯한 번쩍번쩍 광택이 나는 바로 그 [경비행기]를 몰고,
드넓은 농장에 농약을 뿌리며 곡예비행을 하고 있다.
10대 초반의 어린 릭과,
훨씬 젊어 보이는 릭의 아버지가 이 모습을 함께 웃으며 지켜보고 있다.
그 때 세상은 . . .
너무나 평화로웠다.
릭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마크로스 섬에서 보내는 둘째날이 시작된다.
47.
이른 아침.
[마크로스 UN기지]는 벌써부터 온 영내가 북적인다.
세면을 마치고 복장도 가다듬은 1만5천명의 UN군인들이 점호를 준비하기 위해 [SDF-1]으로 향한다.
릭은 이 모습들을 [UN호텔] 객실의 창밖으로 보고있다.
전투기에서 가져왔던 몇 권의 책을 메신저 백에다 담는다.
48.
[UN호텔] 앞.
마크로스 섬의 공공 자전거 하나를 거치대에서 뽑아타고는 어딘가로 출발한다.
곧 마크로스 시티 안으로 들어와 페달을 밟는 릭의 주변으로,
UN군인들처럼 아침 일찍부터 바삐 하루를 준비하는 마크로스 주민들의 여러 모습들이 스쳐지나간다.
49.
릭이 자전거를 달려 도착한 곳은,
어제 로이와 함께 왔던,
마크로스 섬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를 향한,
초원이 펼쳐진 능선이다.
브레이크를 잡고 세운 자전거를 옆으로 눞히는 릭의 눈앞에,
일전에 본 것 같은 바이크 한 대가 이미 세워져 있다.
가방에서 책 하나를 골라 꺼내며,
릭이 능선의 정상을 향해 걸어 올라간다.
50.
초원의 꼭대기에 다다른 릭의 앞에는,
바쁜 아침을 맞는 마크로스 시티를 내려다 보며,
민메이가 풀밭 위에 두 다리를 앞으로 모아 웅크린 채 앉아있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그녀의 표정에서,
바로 어제까지 보았던 활발함은 모두 사라져 있다.
오래된 디지털 재생기에 낀 유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는 듯,
지금 이 세상에는 그녀 혼자만이 외롭게 앉아,
이 세상을 마주하고 있다.
릭이 몇 발자국 더 그녀에게 향한다.
민메이가 릭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릭과 눈이 마주치자 잠시 멍해 있다,
순식간에 평소의 미소를 지어보인다.
"헤이, 릭!
이리 와서 앉아요!"
릭은 민메이의 옆으로 다가와 앉는다.
민메이가 릭이 손에 들고 있는 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전쟁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대학을,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다가올 미래에 꼭 다니고 싶다고,
그래서 지금도 준비 중이라고 말해준다.
민메이는 릭의 대답에 고개를 갸우똥하더니,
왜 지금 당장 대학에 가지 않느냐고 묻는다.
"왜냐면 . . .
이 세상이 아직 평화롭지 않으니까.
바로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고개를 조금 갸우뚱하며,
잠시의 정적 뒤에 민메이가 말한다.
"세상이 먼저 정리될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이미 너무 늦어버릴 거란 생각은 안해요?
무언가 하고 싶은데,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바라는 시간은 영영 찾아오지 않을 지도 몰라요."
Myst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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