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티끄 (33)
87.
흰 까운을 입은 병준이,
어느 방안에서,
미친듯이 물건들을 집어던지고 있다.
방의 한 구석에서는,
아직 [하얀 여신]이 되기 전의 아수라,
아리안이 앉아있다.
병준이 소리지른다.
"내가 뭘 모른다는 거야!
왜 날 이해할 수 없는 거야!"
병준은 아리안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와,
어깨를 잡고 흔든다.
"나는 이 세계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그때까지만 기다려 달란 거야!
이건 부탁하는 거야 . . .
나도 힘들다고!"
분을 식히며 거친 숨을 쉬는 병준의 눈을,
아리안이 차갑게 바라본다.
아리안은 자신의 어깨를 잡은 병준의 손을 뿌리치고,
빠른 걸음으로 방을 나가려한다.
병준은 일어서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만,
따라갈 생각은 없다.
방문을 연 아리안의 앞에,
[노스]가 서있다.
그도 병준과 같이 흰 까운을 입은,
연구원인 듯 하다.
노스의 얼굴은,
지금과는 달리,
혈색 좋은 평범한 '인간'의 얼굴이다.
아리안은 노스의 시선을 피해,
방을 나가,
복도 저편으로 사라진다.
병준의 방안으로 고개를 돌리면,
난장판이 된 내부에,
병준이 홀로 서있다.
굳은 얼굴로,
병준도 노스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방을 나와 복도 저편으로 사라진다.
노스의 증오의 시선이,
병준의 뒷모습을 따라간다.
88.
연구실에서,
흰 까운의 병준이 바쁘다.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면,
흰 까운의 노스가 병준을 보며 서있다.
"닥터."
병준이 분주한 손놀림 그대로,
노스에게 대답한다.
"왜 그러지?
무슨 질문있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손을 멈추고,
궁금한 표정으로,
병준이 고개를 다시 든다.
노스가 말을 잇는다.
"이번 프로젝트,
[프로젝트 포와]에 자원하기로 했습니다."
굳은 표정으로 잠시,
병준은 씁슬하게 웃는다.
"자네의 탐구심에 경의를 표하네만 . . .
이번 프로젝트는 위험한 프로젝트야 . . .
자네도 알잖나.
우리가 연구하는 [프로그램]도,
이곳 윤회계에 한정되어 있을 뿐이야.
자네가 지금 가려는 곳은,
아무도 모르는 죽음 너머야 . . .
예측할 수 없는 위험한 프로젝트야 . . ."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입니다."
병준의 얼굴이 괴롭다.
"모르겠네 . . .
[시스템]의 프로젝트들을 책임지는 나도 . . .
이번 프로젝트는 내키지 않아 . . ."
"닥터께서는 . . .
다른 닥터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시는군요."
"글쎄 . . .
우리가 연구하는 [프로그램]의 끝은 무엇일까 . . .
어쩌면 아무도 모르는 죽음이란 것이,
[프로그램]의 끝일지도 몰라 . . .
순리에 따라 가야할 곳에 닿은 영혼을,
다시 불러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어쨌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스를 바라보는 병준의 얼굴은,
계속 괴롭다.
병준에게 등을 돌리고,
방을 나가는 노스가,
다시 멈추어서,
병준을 향한다.
"마지막으로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닥터께선,
아리안을 사랑했습니까?
정말 사랑했다고 자신하십니까?"
잠시 주저하지만,
병준이 단호하게 대답한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 . .
그리고 지금도,
사랑하네."
"그렇군요.
그 대답을 듣고 싶었습니다."
다시 등돌려 연구실을 나가는 노스의 입가가,
냉소하고 있다.
Myst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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