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드래곤
제주도.
니아무라지라 화산에 전원 B등급 이상의 각성자로 7천 명을 모았다. 흡혈귀에게 일반인이 아무 저항도 없었던 것을 생각하여 커트 라인을 B등급으로 했다. 빠른 이동을 위해 일부 각성자들은 헬기 운전을 배워야 했다. 지프 운전은 대부분 할 줄 알아서 따로 교육하지는 않았다.
이 각성자들이 비운 소각장의 공백을 군인들과 저등급 각성자들이 메꿨다. 전 세계 각성자가 모두 한 파티에 가입되어 있어 그 부분은 무척 편리했다. 어디에 배치되든 곧바로 전력에 도움이 된다.
신기는 강 회장의 별장 지하에서 TV 화면을 통해 전투를 지켜보았다. 그나마 이젠 잠을 잘 수 있어 눈 밑의 색이 꽤 옅어졌다. 까마귀가 형님이라 부를 정도로 까맣게 변했었는데, 마음이 단단해졌는지 현실에 순응했는지 수면 시간이 늘어나며 안색이 좋아졌다.
갑자기 화면이 흔들렸다. 아프리카 쪽에서 땅이 흔들리며 카메라까지 흔들린 듯하다. 해골용이 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지진 혹은 화산 폭발을 걱정할 정도의 흔들림인 것 같다.
'제발 작은놈으로 나와라.'
괴물의 강함은 크기에 비례하지 않는다. 그러나 삼두사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괴물이 너무 크고 요해가 몸 안에 있다면 접근 방법이 제한된다. 요해를 가격한다고 반드시 죽는다는 법이 없지만, 덩치가 커서 요해가 숨겨져 있다면 요해를 가격할 기회조차 드물다.
'왜 이름이 드래곤이지?'
키가 20미터 정도로 걸어 다니는 인간형 괴물이 기어 나왔다. 팔이 짧고 가는 대신, 다리가 길고 발이 무척 크다. 발 하나에 발가락이 10개 정도인 듯 보였고, 발가락 사이에 막이 나 있다. 머리는 사람의 머리와 비슷한 형태지만, 얼굴은 두꺼비를 닮았다. 두꺼비랑 다른 점이라면 눈 여러 개가 불규칙하게 이마와 얼굴에 박혀있다는 것이다.
마법 각성자들이 다짜고짜 마법을 퍼부었다. 종류별로 한 번씩 두드려 반응을 살피며 어떤 마법에 약점을 보이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어디를 수비하는지 유심히 관찰했고, 탐구 각성자들이 저마다 기력을 최대한으로 소모하며 정보를 얻어내려 노력했다.
'이상하네. 간파 스킬은 왜 나밖에 얻지 못했지? 설마 간파도 성휘 덕분에 얻은 스킬인가?'
탐구나 연구 그리고 몇몇 스킬도 괴물의 약점을 알아낼 수 있다. 그러나 신기의 간파 스킬처럼 직관적이지 않고, 가끔 요해가 아닌 곳을 요해라고 알려줄 때도 있다.
괴물을 연구하는 전문가들도 신기와 같은 화면을 보며 열심히 분석하고 있을 것이다. 신기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눈을 부릅뜨고 살폈다. 그러나 마법사들의 어떠한 공격에도 괴물은 반응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신기가 보는 화면은 소리가 전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입을 커다랗게 벌린 괴물이 얼마나 큰 소리를 질렀는지 알 방법이 없다. 그러나 괴물의 정면에 있던 각성자들이 속속들이 기절하는 걸 보니, 소리가 엄청나게 큰 것 같다고 생각되었다.
전투복의 매듭에 갈고리를 걸고 기절한 각성자들을 뒤로 당겼다. 치유 각성자들이 달라붙어 기절한 자들에게 치유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에 의한 피해이기에 치유 스킬로 치료가 되었고, 기절했던 각성자들은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마력이 떨어진 마법 각성자들은 지프를 타고 철수했다.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며 상황에 따라 다시 전투에 투입할 예정이다. 에릭은 초월자 하나가 더 나온다는 말에 뱀파이어 드래곤이 화산구를 떠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고, 지금까지는 그 판단이 정확한 듯하다.
잠시 후 몇몇 각성자가 지프를 타고 떠났다. 중국 각성자의 얼굴 덕분에 신기는 저들이 봉인 각성자라는 것을 알아냈다. 봉인 스킬이 전혀 먹히지 않은 듯 봉인 각성자들도 전장을 떠났다.
"관종이 이렇게 위험한 직업일 줄이야."
불멸의 안개를 두르고 홀로 뱀파이어 드래곤 앞으로 뛰쳐나간 최영웅 때문에 신기는 속으로만 생각하던 걸 급기야 입으로 뱉어내게 되었다. 허공을 날다 파리채에 맞은 파리처럼, 최영웅은 괴물이 휘두른 상대적으로 짧고 가는 팔에 얻어맞고 수십 미터 날아갔다. 툭툭 털고 바로 복귀하는 걸 보면, 타격은 전혀 받지 않은 것 같았다.
'지켜만 보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구나.'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바로 요해를 찾는 것이다. 예전에는 신기의 고급 9레벨 간파 덕분에 쉽게 찾아냈지만, 지금은 여러 유형의 각성자가 번갈아 가면서 스킬을 사용해 요해의 위치를 찾아낼 수밖에 없다. 다만 요해가 겉에 없다면 그다음에는 경험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다. 흡혈귀의 요해가 좌우와 명치에 있는 세 심장이었던 걸 참조하여, 뱀파이어 드래곤의 요해도 세 곳이라 가정하고 전력을 다해 세 곳에 동시에 피해를 줘야 한다.
공격에 실패하면 뱀파이어 드래곤을 향해 무수한 포탄이 떨어질 것이다. 그 사이에 각성자들은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목을 벤다든가 머리를 부순다든가 등 방법을 하나하나 시도해야 한다.
'투창' 스킬을 얻은 각성자들이 길이가 5미터에서 7미터에 달하는 투창을 들고 대기했다. 비록 작전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신기는 박철이 괴물을 멈추고 투창 각성자들이 투창으로 요해로 추정하는 세 곳을 공격할 것임을 예상했다.
제이크가 소환한 흙 거인이 뱀파이어 드래곤의 다리를 잡고 흔들었다. 뱀파이어 드래곤은 키의 절반 이상이 다리여서 흙 거인이 공격할 수 있는 부위가 다리밖에 없다.
뱀파이어 드래곤이 짧고 가는 팔로 흙 거인을 공격하기 위해 허리를 앞으로 살짝 굽히다가 그대로 멈췄다. 소리는 전달되지 않지만, 신기는 마치 변성기가 지나 굵직해진 박철의 목소리로 '멈춰'를 외치는 게 들리는 듯했다.
스무 개에 가까운 투창이 날아가 뱀파이어 드래곤의 가슴에 꽂혔다. 금속으로 된 투창은 뒤에 금속으로 된 줄이 묶여있었다. 투창들이 꽂히자마자 꽤 강한 전류가 흘렀다. 피복을 입히지 않아 가끔 전기 불꽃이 튀기도 했다.
그리고 화면이 흔들리다가 갑자기 까맣게 변했다. 공격에 실패하자 각성자들이 물러서고 포격이 시작된 것이다. 파편들이 날리며 신기가 보는 화면을 비추던 카메라를 고장 낸 듯하다.
아직 기력이 남은 각성자가 꽤 있지만, 박철의 기력이 다하여 13분 정도 기다린 후에야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 박철처럼 괴물을 멈출 수 있는 미끼 각성자가 여럿 있지만, 고등급의 괴물에게까지 먹히는 건 박철밖에 없다.
몇 분이나 기다렸지만, 화면이 돌아오지 않았다. 정 안 되면 화질이 조금 부족한 위성으로 촬영한 영상이라도 보내줄 텐데, 왠지 화면은 계속 검은 채로 있었다.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지하실이라 유선 전화를 이용했다. 들기만 하면 고정된 번호로 전화가 가는 유선 전화인데, 통화 중이라고 알려왔다.
신기는 몸을 일으켜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컴퓨터로 위성에 접속해 영상을 찾아볼 생각이다. 컴퓨터로 직접 보려면 여러 영상 중 알아서 선택해야 한다. 귀찮은 작업이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보다는 낫다.
### DUAL SYSTEM ###
아프리카.
각성자들이 모두 물러섰지만, 두꺼비를 닮은 뱀파이어 드래곤은 움직이지 않았다. 툭 튀어나온 눈알들을 데룩데룩 굴리면서 상황 파악을 하려고 애쓰는 듯 보였다.
"다음에 역시 제이크가 주의를 끈 다음 박철이 멈추고 미스터 팍의 소환체가 목을 자르겠습니다."
신기의 부재로 부담감이 커지며 모두 노력하여 머리를 짰고, 괴물의 주의가 분산되면 명령이 더 잘 먹힌다는 것을 발견했다. 굳이 제이크의 흙 거인이 또 시선을 끄는 건, 괴물의 IQ를 알아보려는 목적도 있다. 같은 수에 또 당하면 멍청하다고 여겨도 된다.
"그런데 왜 뱀파이어라는 수식어가 붙었을까? 그리고 생긴 것도 드래곤이 아니고."
"괴물이 약해졌을 때 탐구 스킬을 전력으로 사용해 보겠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후 일행은 다시 괴물에게 접근했다. 제이크의 흙 거인이 등 뒤에서 솟아나 다리를 잡고 흔들자, 괴물은 또 주의력을 빼앗겼다. 박철이 지휘에 맞춰 괴물을 멈췄고, 박영광이 소환한 키 10미터의 이순신 장군님이 훌쩍 뛰면서 괴물의 목을 벴다.
예상과 달리 아무런 어려움 없이 괴물의 머리를 베어냈다. 최영웅의 팀원들이 잽싸게 밧줄을 던져 괴물의 머리를 걸어서 당겼다. 밧줄 자체가 어떠한 형태에도 잘 감기는 것도 있고, 최영웅의 팀원들이 연습을 많이 한 덕분에 괴물의 머리는 손쉽게 딸려왔다.
밧줄에 감겨 끌려온 머리는 점점 쪼그라들더니 액체로 변해 땅으로 스며들었다. 어어 하는 사이에 괴물의 목에서 머리 하나가 새로 솟아올랐다. 기존의 머리와 형태는 비슷하지만 눈의 위치가 달라졌다.
박영광 일행은 다시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일정 거리를 두고 멈추자, 에릭이 헐떡거리며 말했다.
"핵이 하나 있습니다. 그 핵을 파괴해야 저놈이 죽습니다."
"핵이 어디에 있나요?"
"미처 그것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다음에는 머리 외에 팔다리도 자를 수 있을 만큼 잘라보죠."
"소환체를 여럿 동원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신기가 있을 때는 모두 신기가 하자는 대로 따랐다. 그런데 신기가 없으니 직접 머리를 써야 했고, 얼마나 부담이 큰일인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박영광은 지금까지 어린 동생에게 의지해왔던 것이 무척 미안했다.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지금까지 얻은 정보를 정리해볼까 합니다."
"마법은 전혀 피해를 주지 못했고, 투창처럼 찌르는 공격도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몸이 쉽게 베어졌지만 재생이 너무 빠릅니다. 핵이 있다는 것만 알아냈고, 핵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고 있습니다."
"보충할 게 있어요. 제가 괴물을 멈추는 시간이 3초 정도입니다."
박영광과 마찬가지로 소환 스킬을 얻은 자들이 차출되었다. 박철의 기력이 전부 회복되자 일행은 다시 괴물에게 다가갔다. 괴물이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지만, 그게 오히려 일행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꼭 타이머가 다 돌아가기를 기다리는 시한폭탄을 보는 것처럼, 볼 때마다 불편한 느낌을 주었다.
"소환에 시간이 걸리는 분은 미리 소환해 놓으세요."
박영광도 예전에는 소환에 시간이 좀 걸렸다. 구슬을 먹고 나서 소환체가 더 커졌고 소환도 즉각 할 수 있게 되었다.
두꺼운 금속 갑옷으로 몸을 꽁꽁 감싸고 거대한 말을 탄 기사, 사자인지 멧돼지인지 애매한 입이 커다란 네발짐승, 뱀의 눈을 한 마녀로 추정하는 소환체가 나타났다. 소환체들은 괴물을 보자마자 참지 못하고 덤벼들었다.
전투 경험이 많은 제이크는 곧바로 흙 거인을 소환해 괴물의 다리를 흔들었다. 박철도 눈치 빠르게 괴물을 멈췄고, 박영광이 소환 스킬을 바로 사용했다.
기사는 창을 휘둘러 괴물의 머리를 뜯어냈고 짐승은 다리 한 짝을 무릎 아래로 끊어버렸다. 마녀는 나방을 닮은 곤충을 괴물의 목을 통해 몸 안으로 침투시켰고 장군님은 칼로 괴물의 배를 난도질했다.
괴물이 다시 움직이려 할 때 에릭이 탐구 스킬을 사용했다. 기력을 최대한 쏟아부은 에릭은 탐구 스킬로 얻은 정보에 절망했다.
"후퇴합시다."
멀리 떨어진 후 에릭은 바로 입을 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흙 거인이 강제로 역소환 당하며 작은 충격을 받은 제이크는 연신 물을 마시며 울렁이는 가슴을 달랬다. 지금까지 마법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맥이 에릭을 재촉했다.
"에릭, 어떠한 정보든 빨리 듣는 게 좋다고 난 생각해."
"저 괴물은 핵을 부숴야 소멸시킬 수 있어. 그리고 그 핵은 저 괴물에게 있지 않아. 저 괴물의 주인인 엘프 여왕에게 있어."
"빨리 예측 각성자에게 전력으로 스킬을 사용하라고 일러."
지시를 마친 제이크는 일행과 조금 떨어진 다음 위성 전화를 꺼냈다. 혹시 신기에게 어떤 해결책이 있을지 해서다. 그러나 신기가 있는 별장 지하의 유선 전화는 받는 사람이 없었다. 제이크는 전화를 끊은 다음 김 비서의 번호로 전화했다.
"등불 전화 안 받아요."
전화를 끊고 김 비서가 직접 별장 지하로 신기 찾으러 갔다. 반 시간이 훨씬 지난 후 김 비서가 제이크에게 전화했다.
"쓰러지셨습니다. 맥박이 무척 느리게 뛰고 숨도 1분에 몇 번만 쉽니다."
"의사에게 보였습니까?"
"별장에 웬만한 의료 기계는 다 있으니, 급하게 의사를 수배하고는 있습니다."
전화를 끊은 제이크는 일행에게 돌아왔다. 잠시 후 예측 각성자의 소식이 들려왔다. 사흘 후 엘프 여왕이 온다.
- 작가의말
주인공이 고난을 이겨내고 S급 되는 스토리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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