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재진출
한국.
"등대는 38선 근처까지 운용합니다. 그 이상은 보급의 효율이 너무 떨어져서 오히려 손해라는 판단입니다. 내륙 수비선은 총 세 겹으로 구성하여 민간인 거주 지역에서 각각 10킬로미터, 20킬로미터, 40킬로미터의 거리를 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일본 연해의 등대를 다시 가동하겠습니다."
그때 누군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박영광의 허락을 받은 자가 유창한 영어로 질문했다.
"백두산은 지키지 않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백두산 봉인은 한국의 수비선을 정비할 시간을 벌기 위한 것뿐입니다. 괴물들이 다시 봉인을 풀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백두산의 봉인이 다시 풀린다면 그때 등대를 좀 더 운영하고 수비선을 강화하면 됩니다. 계획에 지장 주지 않습니다."
박영광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질문했던 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다물었다.
"소각장은 화산이 밀집한 지역에서 괴물을 대량으로 처리할 목적으로 지은 것이고, 등대는 화산이 적거나 없는 지역을 지키는 목적으로 지은 겁니다. 각각의 목적을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 이름을 다르게 지었습니다. 일본은 모든 화산을 봉인할 생각이기에 소각장이 아닌 등대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러시아는 이번 계획에서 빠졌다. 미국과 중국이 가장 적극적이고 동남아의 국가들도 각성자의 지원을 약속했다. 한국이 일본 연해에 등대를 세우고 운영하고 중국은 예전에 세운 소각장을 다시 살리기로 했다.
중국은 군인과 각성자가 꽤 죽은 것을 제외하면 다른 손해를 보지 않았다. 봉인했던 화산들이 다시 터지면서 그저 원래 상태로 돌아간 것뿐이다. 봉인 전과 달라진 것은 정부의 신용도가 바닥의 바닥을 쳤고 각 파벌이 서로 의심하고 감시하며 분열이 심해진 것뿐이다.
신기의 계획에 동참하여 이미지를 쇄신하고 국민의 불신을 해소하려는 목적으로 중국은 무척이나 적극적으로 나섰다. 거기에 동남아 국가들도 중국의 봉인에 따른 폐해를 제대로 맛보았기에 소각장의 중요성을 뼛속 깊이 각인하게 되었다.
"만약 일본의 화산을 봉인한 후 다른 지역의 괴물이 일본으로 몰려오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면 지구에 침공한 여덟 종류의 괴물이 같은 편이 아니라는 뜻이 되겠죠. 우리는 하나씩 각개격파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팰러딘의 특별팀이 일본에 묶이지 않고 더욱 넓은 활동 범위를 가질 수 있어 우선 언데드가 기어 나오는 화산을 모두 봉인하고 그 결과를 지켜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한국과 가까운 일본의 해안에 등대를 운영한다. 보급 문제로 더 넓은 지역에 등대를 운영할 능력이 없다. 화산을 다 봉인한 후 변화한 괴물들의 이동 패턴을 확인하고 적절한 곳에 보급기지를 세우고 수비선을 운영할 계획이다.
"일본의 화산을 전부 봉인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린다고 예측합니까?"
"특별팀이 해저 화산 봉인하러 출발했습니다. 어느 정도 진행되면 특별팀이 대략적인 일정을 알려올 겁니다."
### DUAL SYSTEM ###
일본.
신기와 제이크 그리고 박철이 미군 잠수함에 탔다. 특별팀의 남은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 배웅했다. 최영웅과 가가와 그리고 효주를 제외하고도 새로운 얼굴이 더 보였다.
바람의 마도사 김태풍이 특별팀에 합류했다. 칼바람 마법의 위력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지만, 풍압 마법은 웬만한 괴물이 꼼짝달싹 못 하게 눌러둘 정도로 발전했다. 애초에 살상보다는 보조에 어울리는 각성자였다.
불의 마술사 공우진은 불바다 마법 외에 쥐불놀이 마법을 얻었다. 예전에 일본인 각성자가 보여주었던 마법으로 불덩이가 빙빙 돌면서 알아서 공격하는 마법이다. 위력도 보잘것없고 상대가 시체 조종사여서 더욱 초라해 보였던 그 마법은 공우진이 펼치자 무척이나 위력이 강했다.
그리고 아즈미가 특별팀에 합류했다. 예전에 최영웅을 특별팀에 넣은 것과 마찬가지로 보여주기 위한 이유가 컸다. 구슬을 먹고 각성자가 된 자 중에서 가장 세력이 강한 일본 생존자들을 다독이려는 조치다. 요코는 거제도에서 효주의 곰과 개들을 훈련하는 일을 하느라 특별팀과 함께하지 못했지만, 소속은 특별팀으로 되어 있다.
박영광 역시 소속은 특별팀으로 되었지만, 전체적인 지휘를 해야 하고 보급까지 책임져야 하기에 따라오지 못했다. 한국의 수비가 안정된 후 각성자들을 인솔하여 홋카이도에서 특별팀에 합류할 예정이다. 해저 화산을 봉인한 후 홋카이도와 혼슈를 먼저 방문하고 마지막에 규슈를 봉인할 계획이다.
세상에서 더없이 귀한 세 각성자를 실은 잠수함이 밑으로 서서히 가라앉았다. 잠수함의 함장이라는 작자가 셋의 사인을 받아가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함장실에 소중히 모신 특별팀의 피규어들을 보니 팬이라는 말이 입에 발린 소리는 아닌 것 같다.
"괴물이 없어요. 바로 봉인 시작해도 될 거 같아요."
화산구에 가까워지자 박철이 말했다. 이미 오전에 해상에서 미끼 스킬로 괴물을 뽑아낼 만큼 뽑았다. 다행인 점은 구슬이 바닷물에 떠서 쉽게 회수했다. 만약 수천 개의 구슬이 바다에 가라앉았다면 자본가 출신 미국 공민 제이크의 마음이 무척 아팠을 것이다.
"팰러딘, 왠지 요즘 구슬이 예전처럼 많이 나오지 않는 느낌이야."
"옛날에는 많아 보였겠지. 지금은 구슬이 넘쳐나니까 수천 개도 적어 보이는 것이고."
신기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어차피 처음부터 구슬이 떨어지는 숫자가 들쑥날쑥했다. 그러나 제이크는 다르게 생각하는 듯했다.
"미국의 통계에 의하면 구슬의 드랍 확률이 전 세계적으로 줄어들었다고 해."
"고민해 봐야겠어. 최근 세우고 있는 가설에 조금 도움이 되는 정보였다. 고마워."
바다 밑의 세계는 무척 아름다웠다. 물에 의해 모든 빛이 부드럽게 보여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자주 보는 풍경이 아니어서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고, 그냥 바다 밑이 원래부터 아름다웠을 수도 있다. 신기가 처음 직접 보는 경치에 빠져있을 때 제이크가 투덜거렸다.
"셋밖에 없으니 스킬 위력이 너무 떨어지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릴 것 같아."
"어차피 화산 하나 봉인할 때마다 안정화가 필요하니까 너무 급해 하지 마. 그리고 중국 소각장의 군인과 각성자들도 경험을 쌓을 시간이 필요해."
"이대로라면 일본의 화산만 다 봉인하는 데 일 년이 걸릴 것 같은데."
"육지로 가면 수만 명의 각성자가 함께 할 거야. 그때는 며칠에 하나씩 봉인하는 것도 가능해. 그리고 화산은 봉인하면서 계속 줄어들지만, 각성자는 점점 늘게 되어 있어."
이미 죽은 화산은 봉인이 쉽고 휴화산이나 활화산은 시간이 좀 더 걸린다. 아직 확실한 결론을 얻을만한 데이터가 없어서 확신하지 못하지만, 백두산을 봉인할 때 하나로 여겼던 화산이 사실상 세 개로 나뉘어 있었고 유독 휴화산인 천지를 봉인할 때 시간이 걸렸던 것을 생각하면 거의 사실이라고 여겨도 된다.
지구에 화산이 많다고 하지만 활화산은 수백 개밖에 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사화산은 사흘 안으로 봉인할 수 있고 활화산은 열흘 정도로 치면 일 년에 수십 개 화산을 봉인할 수 있다. 물론 제이크의 마력이 많아지고 스킬 등급이 오르면 훨씬 빨라질 것이고, 파티원이 주변에 많을수록 봉인이 쉬워질 것이기에 신기는 이십 년 안에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팰러딘, 신에게 청원해서 봉인 능력자 몇 명을 더 내려달라고 해. 판다를 능가하는 귀한 몸이 되었다는 게 좋은 일만은 아니야."
"마력 각성자들을 귀하게 대접하며 모으고 있으니 조만간 나올 것 같아."
각성자들의 지위가 무척 높아졌고 그중에서 마력 각성자의 대우가 가장 좋아졌다. 누구라도 봉인 스킬을 각성하는 순간 세상 부러운 게 없는 삶을 살 수 있다. 섬이나 별장 그리고 호화 요트 따위는 물론 수많은 미녀가 함께 식사 한 끼라도 하려고 안달을 낼 것이다. 물론 자유를 갈망하는 반항 청년 제이크는 미국 정부와 가문의 과보호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체 조종사보다 더 강한 괴물이 나오지 않을까? 시체 조종사야 정말 운 좋게 약점도 발견하고 대처법도 금세 찾아냈지만, 더 강한 괴물이 갑자기 나타나면 해결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그래서 김태풍과 공우진을 팀에 넣은 거야. 같은 힘이라도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효과가 달라져. 다른 마력 사용자들의 마법은 전혀 효과가 없지만 네 봉인은 시체 조종사에게 효과를 보이잖아. 어느 정도 검증되었거나 장래성이 보이는 각성자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해야 해."
밤늦게까지 마력이 생기는 대로 봉인 마법을 펼친 후 다시 배로 복귀했다. 폐소 공포증이라는 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 정도가 다를 뿐이다. 정도를 넘으면 병이고 정도를 넘지 않으면 그저 두려운 감정이다. 잠수함은 바다 밑에서 며칠 있어도 괜찮지만, 셋의 정신 건강을 고려해 잠은 항공모함에서 자는 것으로 했다.
### DUAL SYSTEM ###
영국 노팅엄.
다크 써클이 짙게 낀 에릭이 땅을 조심스럽게 파내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고고학자들로 이루어진 이들은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치운 땅을 조심스럽게 발굴하고 있다.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수습하고 확인하느라 발굴 진도는 몹시 느렸지만, 에릭은 고집스럽게 이상한 점을 하나도 놓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조심. 뭔가 있다."
발굴하는 학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에릭은 전혀 동요도 없이 조용히 지켜보았다. 저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듣고 매번 실망한다면 피곤하고 지치지 않았다고 해도 심드렁할 수밖에 없다.
"주변부터 조심히 파내. 탐지기는 뭐 하는 거야? 빨리 크기와 윤곽을 알아내지 않고."
"탐지기에 인식되지 않는 물체입니다."
정신을 번쩍 차린 에릭이 발굴현장으로 다가갔으나 곧 보안 요원에게 제지되었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상관없는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라고 직접 지시했기에 에릭은 조바심을 누르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정신은 흐리멍덩하지만 수면 욕구는 전혀 없는 미묘한 상태에서 에릭은 하염없이 발굴단의 소식을 기다렸다.
"먼저 재질부터 알아내고, 종교 학자와 역사 학자들을 빨리 불러와."
내로라하는 석학들이 모여서 발굴해낸 물건에 대해 상의했다. 그러나 아무런 결론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들끼리 다툼이 벌어졌다.
"이 조각상에는 열여섯 가지 동물이 숨겨져 있어."
"분명 열둘이야."
"무슨 소리. 구별할 수 있는 동물이 여섯에 뭔지 모를 동물이 스물이나 있어."
"왼쪽 위는 원숭이가 분명해."
"원숭이를 본 적이 없다면 내가 동물원 입장권 끊어줄게. 어떻게 저 동물을 원숭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에릭의 얼굴에 생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 멍청이들은 분명 D를 만나러 갈 때 손을 올려놓았던 그 장식품을 찾아낸 것이 분명하다. 자신도 처음에는 수많은 동물이 보였지만, A급 각성자가 된 후 사실 하나의 동물임을 알아차렸다.
"거기, 내가 찾던 물건 같으니 사진만 찍어두고 빨리 넘겨."
학자들이 불만을 토했지만 에릭의 지시를 받은 자들이 강하게 나오자 어쩔 수 없이 사진을 찍어두고 물건은 에릭에게 넘겼다.
"누구라도 이 장식품에 대한 단서를 가져오면 백만 파운드의 상금을 받을 수 있을 거야. 다들 열심히 노력하기 바란다."
에릭은 장식품을 들고 자기 사무실로 간 후 문을 닫아걸었다. 탁자 위에 장식품을 올려놓은 후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문이 생기는 대신 에릭의 눈이 저절로 감겼다.
'어디지?'
물 속인 것 같다. 시야가 흐릿하고 가끔 흔들리기까지 한다. 고개를 돌려 수면이 어디인지 찾아보고 싶었는데 고개가 돌려지지 않았다.
"봉인 제지."
숨이 턱 막혔다. 예전에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존재감만 느꼈는데, 눈앞에 작은 산 크기의 무언가가 웅크리고 있다. 너무 커서 그 윤곽을 알 수 없고 다만 사람의 형태는 아니라는 것만 확신할 수 있다.
'이유, 이유를 알아야 정확한 조치를 할 수 있다.'
"가속. 봉인 가속. 준비 불충분. 봉인 제지."
'화산을 봉인하면 뭔가 가속된다. 준비가 불충분하다. 봉인하지 못하게 해라?'
"봉인 제지."
'내 말이 맞아 틀려?'
"봉인 제지."
'엿이나 먹어.'
눈이 번쩍 떠지자 에릭은 급하게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괴발개발 그려놓고 보니, 이 그림으로 위치를 찾으라고 하기에 너무 미안했다.
"호수를 알아봐 줘. 깊이는 백 미터 이상이 되고 물이 흐린 호수만. 잠수하여 찍은 사진이 있다면 그것도 찾아서 함께 올려줘."
바다가 아닌 담수인 건 확실하다. 비서에게 지시를 내린 에릭은 코를 얕게 골며 숙면에 빠졌다. 꿈에서 에릭은 D를 굴복시키고 아서왕이 되었다.
- 작가의말
전 세계의 시체 조종사 등급 이상의 괴물이 백만 단위의 수하를 이끌고 일본으로 달려오는 스토리와, 종류가 다른 괴물들이 너는 너 나는 나를 외치며 만나면 서로 막 싸우는 스토리 중에서 어느 것이 나은지 의견 부탁드립니다. 글 초반에는 두 번째 설정으로 밀고 나가려 했는데 글을 쓰면서 첫 번째도 괜찮다는 느낌이 듭니다. 댓글 의견을 보고, 제 마음대로 결정하겠습니다. 소중한 의견 부탁드립니다.
Comment '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