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일
한국.
자살, 폭주, 묻지마 살인 등 듣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졌고, 있는 재산을 다 털어 해외여행을 가거나 미국에 이민을 추진하는 사람도 무척 많았다. 전 세계적으로 대부분 경제 지표가 바닥이 어딘지 끊임없이 도전했고, 아직도 그 바닥을 확인하지 못했다.
"해골은 멍청합니다. 한 번에 한 가지 행동밖에 못 하죠. 이런 식으로 왼쪽 네 번째 갈비뼈를 찌르면."
매일 틀어주는 똑같은 영상인데, 시청률이 10%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다.
"두 손을 이렇게 내립니다. 이때 두개골을 때리면 됩니다. 손이 가슴 앞까지 가기 전에는 다른 동작을 하지 못하거든요. 두개골의 강도는 그렇게 강하지 않습니다. 송판 석 장을 주먹으로 깰 수 있다면, 맨주먹으로도 해골의 두개골을 깰 수 있습니다."
해골 역할을 맡은 사람이 뿅망치에 머리를 맞고 실감 나게 쓰러지는 장면을 끝으로, 해골 퇴치 교육 영상이 끝났다. 그리고 바로 좀비 퇴치 영상이 이어졌다.
"해골은 키 140센티에 몸무게 60킬로입니다. 그러나 좀비는 키 160센티에 몸무게는 40킬로로, 오히려 가볍습니다. 다만 상대하는 방법은 해골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좀비의 공격 방식은 돌진입니다. 그러니 좀비를 발견하면 늘 사이에 장애물을 두어야 합니다. 장애물이 많은 곳이라면 피하면서 도망치는 게 가장 좋습니다. 태운 그룹의 로고가 찍힌 건물을 보시면 안에 들어가 숨으십시오. 비밀번호는 0920, 바로 9월 20일입니다. 안에는 수도가 나오며, 식량도 어느 정도 비치할 예정입니다."
해골은 처리를 적극적으로 권장했지만, 좀비는 피하는 방법을 더 많이 알려줬다. 물론 영상의 끝에 좀비를 처리하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좀비는 돌진하기 전에, 두 팔을 뒤로 가져갑니다. 이 순간부터 정면으로밖에 돌진하지 못하니, 바로 옆으로 피하시면 됩니다. 무척 빠른 속도로 돌진한 좀비는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거나, 벽과 같은 데 부딪치고 3초 정도 경직 시간이 발생합니다. 이때 도끼처럼 무겁고도 날카로운 무기로 목덜미를 내리치면 됩니다. 너무 힘을 주면 오히려 역효과이고, 장작 팰 때처럼 원심력을 이용하여 가볍게 톡 치면 됩니다. 물론 한 번으로 끝내지 마시고, 최소 세 번은 내리치십시오. 주의할 점은, 좀비에게 물리면 현대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날씨가 덥다고 해도 두꺼운 천으로 된 바지를 입고, 장갑을 꼭 끼시기 바랍니다."
태운 그룹은 해골을 처리하기 좋은 무기를 만들어냈지만, 군대에만 보급했다. 사람의 두개골이 훨씬 든든하기는 하지만, 살상력이 강한 무기를 민간에 판매하는 데 많은 사람이 무척 회의적이었다.
좀비를 처리할 무기는, 신기의 말솜씨가 부족해 만들어내지 못했다. 대충 만들어낼 거면 차라리 벌목용 도끼를 이용하는 편이 낫기에, 그저 구상만 갖추고 좀비의 출현을 기다렸다.
### DUAL SYSTEM ###
제주도.
일본인 각성자 칠백 명이 모여있었다. 신기는 통역을 대동하고 이들의 앞에 섰다.
"안녕하십니까. 세계 최강의 각성자 신기라고 합니다. A급 99레벨이고 검술 스킬을 마스터했습니다."
검증기에는 검술과 간파 스킬만 나오고 남은 두 스킬은 표시되지 않았다. 그래서 신기는 네 가지 스킬을 갖추고 있다는 말은 생략했다. 영국이 공개한 A급 각성자 맥이 네 개의 마법 스킬을 갖춰 크게 화제가 되며, 신기가 살짝 밀리고 있는 형세다.
"태운 그룹은 직접, 그리고 한국 정부나 미국 정부를 통해 간접적으로 일본 정부에 이번 사태의 위험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너무 낙관적인 태도를 일관했습니다. 주권을 가진 국가에 함부로 개입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어쩔 수 없이 이런 방식밖에 취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제주도의 등대들을 지키며 괴물을 처리할 것입니다. 일본 정부의 허락을 얻어내는 순간, 태운 그룹은 일본 연해에 등대를 건설하고 여러분을 그곳으로 보낼 것입니다. 물론 비 전투형 각성자 분 중 일부는 대마도에서 지원 업무를 맡을 것입니다. 계약에 명시된 조항이고, 이 조항을 어기면 여러분은 얼마든지 계약 무효를 선포할 수 있습니다."
조용히 듣기만 하는 일본 각성자들은 여전히 적응되지 않았다.
"물론 우리도 여유가 생기면 일본을 도울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 때문에 한국은 너무 큰 불확실성을 안고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여러분은 스킬 등급을 빠르게 끌어올려 힘든 전투에 임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오늘부터 조교들이 등대에서 전투하는 법과 주의점을 반복 숙달시킬 겁니다. 그리고 스킬이 없는 각성자라고 해도, 총과 타격 무기를 다루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각성자가 모일수록 스킬 위력이 강해지기에, 비전투 각성자라고 해서 당장 전투에서 제외되지는 않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조용히 듣기만 하던 일본인 각성자들이, 신기의 연설이 끝나자 일제히 허리를 구십 도로 숙이고 힘차게 외쳤다. 일본에 대해 좋은 감정 혹은 나쁜 감정이 딱히 없지만, 이들의 진심이 느껴지는 것 같아 가슴이 살짝 뭉클했다.
'일본인이 나쁜 게 아니라, 강한 나라가 나쁜 게 아닐까? 한국도 아시아에서 적수가 없을 정도로 강했다면, 이리저리 침략하고 다니지 않았을까?'
가설은 의미가 없다. 그리고 위치상 강해지기 힘든 나라이기도 했다. 신기에게는 괴물 사태가 끝날 때, 강해진 한국이 나쁜 나라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생겼다.
### DUAL SYSTEM ###
한국.
"바다 밑으로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는다고요?"
괴물이 바다 밑으로 걸어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신기는, 어떤 수단으로도 괴물의 이동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괴물의 출현 시간이 바뀐 건가?'
"부대들을 움직여야 합니까?"
공식적인 자리라, 박영광은 신기에게 존대했다.
"움직여야죠. 차라리 욕 좀 먹는 게 낫죠."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수십만 부대를 움직이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으면, 반대파가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러면 이후 일을 진행하는 게 힘들어집니다."
"괜찮습니다. 몇 명이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옷을 벗으면 됩니다. 이제부터는 각성자를 적극적으로 늘릴 생각입니다. 지휘할 사람이 부족한데, 유능한 분이 많이 오시면 오히려 기쁩니다."
군을 떠나도 책임져 줄 테니 마음껏 지르라는 뜻이다. 강 회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박영광은 곧바로 전화를 걸어 군부대의 이동을 지시했다.
"제 예상이 맞는다면, 내일 오후 2시 즈음에 괴물이 상륙할 겁니다. 등대에 각성자들이 제대로 배치되었는지 확인하고, 지원조를 나를 헬기들도 제대로 점검하시고요. 각 부대는 상륙한 괴물의 숫자와 소비한 탄약을 꼼꼼히 기록하라고 하세요. 부상자는 어떻게든 목숨만 붙여서 의료 지점으로 모아주시고요. 치유 각성자는 의료 지점마다 배치해 주시고, 저와 함께 움직일 치유 각성자도 세 명 알선해 주세요."
"신 상무. 잘 막아낼 수 있을까?"
"상대적이죠. 한국에서 십만 명이 죽어도, 다른 국가에서 수백만씩 죽으면 잘 막아낸 것이 됩니다. 하여튼 희망적인 메시지들을 많이 전달하도록 하고, 최정예 부대와 특별팀이 참여한 전투 장면을 적절히 편집해서 방송하도록 하죠. 그리고 좀비 시체를 확보하여 빨리 좀비 전용 무기도 만들어내야 합니다. 해골과 좀비는 충분한 준비만 되면 일반인들도 처리할 수 있습니다. 석 달 뒤면 총 대신 칼을 들고 괴물을 처리할 수 있는 체제로 전환해야 합니다."
### DUAL SYSTEM ###
한국.
수십 년 동안, 해변이 이렇게 인적이 드문 적은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떠난 해변에는 갈매기들만 구슬피 울어댔다. 가장 격전지로 예상하는 남해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신기는, 해골의 등장을 무전으로 알았다.
"해골 출현. 등대 가동."
총 지휘부에서 명령을 내리면, 정보를 전달받은 지역 지휘부들이 자신이 맡은 등대들에 명령을 전달했다. 명령이 제대로 전달된 것을 확인한 후, 지휘부가 조용해졌다. 등대들이 결과를 보고해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051 등대입니다. 괴물 297마리 불러왔고 모두 처리했습니다. 기력 회복에 48분 걸립니다."
"기력 회복하는 대로 보고하도록."
마법 각성자가 없는 등대들은 직업군인의 도움으로 괴물을 처리했다. 물론 각성자들도 화기를 꽤 능숙하게 다루지만, 총기를 점검하고 탄약 재고를 헤아리는 등 부분에서는 전혀 문외한이다.
"205 등대입니다. 증원이 필요합니다."
"괴물 숫자와 기력 회복시간을 보고하도록."
효율을 극대화하려면, 미끼 각성자가 기력을 전부 회복하기 전에 불러온 괴물을 전부 소멸해야 한다. 근처에 괴물이 있을 때 미끼 스킬을 사용하면 효과가 무척 줄어들기에, 정해진 시간 안에 처리하기 힘들면 바로 지원조를 호출하도록 교육하였다.
"2398마리 불러왔습니다."
대기하고 있던 마법 각성자 둘이 헬기로 이동했다. 불러오는 괴물이 줄어들면 다른 곳으로 지원하러 가야 하고, 괴물 숫자가 시종 많다면 둘은 당분간 205 등대에 붙박이가 되어야 한다.
"군부대 상황은 어떻습니까?"
"탱크와 장갑차를 넉넉하게 동원해서 어렵지 않게 잘 막아내고 있습니다."
탱크와 장갑차는 해골을 깔아뭉갤 수도 있고, 후퇴하는 보병을 엄호하는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박영광의 제안으로 탱크와 장갑차를 최대한으로 동원했고,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울진 방향에서 방어선이 무너졌습니다."
"제이크를 보내죠."
제이크가 소환한 땅의 거인이 바닥을 한 번 뒹굴기만 해도 수십 마리 해골이 뼛조각으로 변한다. 좁은 지형에서는 움직임이 불편하지만, 넓은 지형에서는 가장 효율이 높은 스킬이다.
"부산에서 중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바로 갑니다."
신기는 치유 각성자들과 함께 헬기를 타고 이동했다. 의료 지점에 도착하니 수혈 팩 십여 개를 달고 있었다. 흡혈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하얗게 질린 청년이 경련하면 입술을 달싹이고 있었다.
"스킬."
조상필이 스킬을 사용하자, 청년의 상처가 빠르게 아물어갔다. 쏟아지다시피 하던 피가 멈추자 의사들이 수혈 팩을 하나씩 제거했다. 몇 분 안 되어 청년의 얼굴은 혈색을 회복했다. 상처는 다 나았으나 당한 고통이 너무 끔찍해 바로 일어나지는 못했다.
"심리적인 부분만 주의하시면 됩니다. 육체적인 부분은 완치되었습니다."
그때 카메라를 든 남자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방송에 내보내도 됩니까?"
"모자이크 해주십시오."
밖으로 나와 헬기에 오르니, 바로 출발했다.
"울산에서 부상자가 대량으로 발생했습니다. 좀비가 나타났는데 수량이 많아 돌파당했습니다."
"수습된 겁니까?"
"하 과장이 이미 도착했다고 합니다. 철강 각성자 두 명이 경호원으로 따라갔습니다."
"빨리 갑시다."
철벽 강화 각성자를 철강 각성자라고 줄여 부른다. 진흙 갑옷 마법이 있는 제이크나 넓은 면적의 불바다로 괴물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공우진과 달리, 천둥 마법은 첫 상대만 지정할 수 있고, 누구를 공격하고 누구를 공격하지 않을지 하현주가 결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하현주는 경호원이 필요하다.
"부산으로 다시 가야겠습니다."
의료지점은 전장과 조금 거리가 있다. 그래서 신기는 하현주와 만나지도 못했다. 치료가 끝나기 무섭게 부산으로 향해야 한다.
예상대로 일본과 가까운 쪽 해안선이 압박도 크고 부상자도 속출했다. 서해안은 오히려 여유가 있었고, 동해안은 가끔 수비선이 뚫리는 일이 있지만, 부상자는 적었다. 지휘관이 병사들의 목숨을 아끼는 타입인지, 수비선을 뒤로 물리는 한이 있더라도 모험하지 않았다.
"지휘부에서 서해안의 지원팀을 이쪽으로 돌릴지 문의했습니다."
"그쪽에 괴물이 갑자기 많아질수도 있습니다. 안정을 이루기 전까지, 미끼 스킬은 사용하면 사용할 수록 많은 괴물을 불러옵니다. 그러니 일단 계획대로 갑니다. 울릉도는 상황이 어떻습니까?"
"박철이 엄청 많은 해골을 뽑아냈다고 합니다. 화기를 넉넉하게 배치한 덕분에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각성자도 넉넉하고 등대도 무척 많고요."
"제주도는요?"
"각 화산구로 분산해서 나오는 바람에 별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 곳으로 몰려나왔으면 어려웠을 거라고 하더군요. 등대도 일본 각성자들이 무척 잘 대처하고 있습니다."
"좋네요."
좋다고 말했지만, 신기의 고뇌는 사라지지 않았다. 너무 많은 사람이 살아남아, 식량이 아주 큰 문제로 대두할 것이다.
'설마 D는 자중지란을 노리는 걸까?'
- 작가의말
이젠 비축분이 없습니다. 오늘 열심히 써야겠네요. 비축분이 없는 이유는 더워서입니다.
예전에는 더위에 약하고 추위에 강했는데, 지금은 더위에 약하고 추위에도 약합니다. 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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