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억
울릉도 군사 기지.
정신 교육을 비롯한 필수 교육을 마친 각성자 팀은 울릉도에 도착하여 군사 훈련을 받았다. 줄사다리 타는 법부터 시작해서 긴급 상황에서의 행동 요령 그리고 무전기를 이용한 통신 방법까지 훈련받았다.
그리고 괴물이 몰려오는 시간에 군대가 괴물을 처리하는 장면을 구경했다. 오후 한 시쯤부터 몰려온 해골과 좀비를 군인들은 능숙하게 상대했다.
"자기 구역 해골만 노린다. 총알 함부로 낭비하는 놈은 이따 나랑 면담해야 할 거다."
해골과 좀비는 비슷한 속도로 해안가로 올라왔다. 방향을 정하고 우직하게 움직이는 좀비와 달리 일부 해골은 제자리에 멈춰서 어디로 향해야 할지 머뭇거렸다. 군인들은 멈춰있는 해골을 목표로 사격했다.
좀비와 해골이 진지와 가까워지자 군인들은 진지를 버리고 후퇴했다. 부채꼴로 흩어져서 질서정연하게 후퇴하며 해골과 좀비도 분산시켰다. 신기는 군대의 전략을 대충 눈치챘다. 머릿속에서 늘 좀비와 해골을 처리할 생각만 했기에 군 복무 경험은 없지만 그 의도를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먼저 해변에 군인들을 배치해서 괴물을 한곳에 모은다. 그 모은 숫자에 따라 다른 전략을 선택한다. 괴물이 적게 모인 진지들은 바로 탱크를 동원에 깔아뭉갰다. 그리고 지금처럼 많은 숫자가 모이고 좀비 비율이 높으면 뒤로 분산해서 유인한다.
바닥이 고르지 않고 장애물이 많은 지역에 좀비들을 유인한 다음 충분히 흩어놓고 둘에서 셋씩 협력해서 처리했다. 해골은 총으로 두개골을 맞춰서 처리하고 외곽에 혼자 떨어진 좀비는 도끼를 든 병사들이 조심스럽게 처리하며 한 시간이 훨씬 넘는 전투를 거쳐 괴물을 처리했다.
"각성자 솜씨 좀 봅시다."
군 지휘관의 말에 신기는 언월도를 닮은 무기를 들고 나섰다. 태운 정밀에서 신기의 설명과 괴물의 특징을 결합해서 디자인한 좀비 전용 무기다. 언월도는 원래 자루가 긴 칼 모양이지만 신기가 든 언월도는 양쪽에 다 날을 세웠다.
좀비 한 마리가 신기를 향해 돌진했다. 미리 두 팔의 동작을 확인한 신기는 적절한 타이밍에 옆으로 비키며 언월도를 휘둘렀다. 예전에 한 번 실패했던 돌진하는 좀비 목 베기는 그간의 훈련과 훌륭한 무기 덕분에 성공했다. 언월도의 좀 더 날카롭게 세운 날로 돌진하는 좀비의 목을 그대로 날렸다.
작은 감탄과 환호가 있었지만 신기는 다가오는 다른 좀비에게만 집중했다. 몸을 조금씩 움직여 장애물이 있는 곳으로 좀비를 유도하고 기회를 기다렸다. 두 팔이 뒤로 향한 후 아니나 다를까 돌진하던 좀비가 장애물에 걸려 앞으로 넘어졌다.
신기는 빠르게 달려가서 날을 좀 더 두껍게 세운 쪽으로 좀비의 목덜미를 내리찍었다. 자루가 긴 검처럼 쓸 수도 있고 도끼처럼 쓸 수도 있다. 그리고 언월도의 끝은 뾰족하게 세우지 않고 노처럼 둥그렇게 다듬은 후 역시 날을 세웠다. 좁은 계단에서 좀비가 넘어졌을 때 내려찍기 편하게 만들어졌다.
"태운 그룹에서 만든 회심작입니다. 좀비를 처리하는 데 무척 효율적입니다. 힘과 키 그리고 팔 길이에 따라 여섯 가지 사이즈가 있습니다. 무게 중심과 모양 그리고 사용된 재료들이 전부 다릅니다만, 좀비를 처리하는 데 무척 효율적이죠. 거기에 튼튼하기까지 해서 총알을 많이 아낄 수 있습니다."
신기는 언월도로 3분도 안 되는 사이에 좀비 여섯 마리를 혼자 처리했다. 사전에 충분한 수련을 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군 관계자도 이 물건이 만들어진 지 일주일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방금 무기는 임시로 언월도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지금 무기는 금강봉이라는 이름 지었습니다. 보시다시피 봉 한쪽 끝에 쇠공을 단 모습입니다. 물론 모습은 조금 우스꽝스럽지만 성능은 무척 좋습니다. 그리고 사용 방법도 무척 간단합니다."
신기는 쇠공을 위로 향하게 한 다음 봉의 밑동으로 해골의 갈비뼈를 노렸다. 해골이 손을 움직여 가슴을 방어하려 하자 곧 멈추고 봉을 회전했다. 해골을 내리찍을 때 신기의 머리 근처에 머무르던 쇠공이 회전하며 해골의 두개골을 정확히 가격했다. 해골의 키가 140밖에 안 되어 짧은 봉으로도 충분히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다.
"역시 키와 팔길이를 고려해서 여덟 가지 사이즈가 있습니다. 무게 중심을 잘 잡아서 쇠공이 있는 쪽이 훨씬 무겁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타격할 때 회전력으로만 해골의 두개골을 깰 수 있습니다. 좀비가 없는 해골뿐인 무리라면 총을 쓸 필요가 없이 금강봉으로만 처리할 수 있습니다. 무게도 가볍고 사용하는 데 힘도 많이 필요하지 않아 여자도 쓸 수 있고 무척 오래 싸울 수 있습니다."
신기는 거의 똑같은 동작으로 해골의 두개골을 손쉽게 부쉈다. 무게 중심이 잘 잡혀있어 사용하기 정말 편했다. 자신을 위해 특별히 제조한 검도 사용해보고 싶지만 오늘 이 자리는 회사의 신제품을 홍보하는 자리다. 신기의 검은 커스터마이징 제품으로 시장성이 없으므로 오늘 선보일 수 없다.
"총 열네 가지 제품을 백 자루씩 가져왔습니다. 사용해 보시고 좋은 평가 부탁드립니다."
그 후 신기는 오전에는 군인에게 훈련받고 오후에는 군인을 훈련한는 일정을 소화하게 되었다. 무기의 사용법 그리고 좀비와 해골의 특징을 군인들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해골은 움직임이 단순합니다. 만약 무기를 잃고 해골과 마주쳤을 때 허리띠도 좋고 방탄모도 좋습니다. 아니면 만년필 같은 것도 좋습니다. 머리를 때리든가 머리로 던지든가 하면 해골은 반드시 멈춰서 손으로 머리를 방어합니다. 그사이 빠르게 도망갈 수 있습니다."
"좀비는 반대로 공격하지 말고 두 팔을 관찰하세요. 두 팔이 뒤로 향하면 곧 가속합니다. 두 팔이 뒤로 향하는 순간 최대한 빠르게 그 경로를 이탈하십시오. 그리고 도망쳐야 합니다. 좀비를 피해 도망칠 때 장애물이 많거나 울퉁불퉁한 지형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계단을 만났을 때 방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해골은 몰라도 좀비는 계단을 잘 탑니다. 돌진할 때에도 계단에 잘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좀비는 근육이 고무처럼 탄성이 강하기에 발로 밟으면 안 됩니다. 넘어질 수 있습니다."
좀비가 넘어졌을 때 바로 다가가서 목을 칠지 아니면 다음 기회를 노릴지 판단하는 노하우도 전수했다. 거제도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구출 받은 후 시간이 좀 흐르니 좀비와 해골과 싸우는 법들이 자연스럽게 정리되었다. 시스템의 도움을 받은 게 아니라고 하니 신기는 타고난 싸움꾼일지도 모른다.
### DUAL SYSTEM ###
서울 태운 그룹 회장실.
"팀에 사람을 심었겠지?"
"네, 믿음직한 사람으로 심었습니다. 늘 주시하라고 했으니 각성하는 비밀을 최대한 알아낼 것입니다."
"차라리 거래로 깔끔하게 알아내는 건 어떤가? 나이 먹어서 그런지 조금 급한 마음이 드는구먼."
"막내 도련님이 굳이 캐묻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뭔가 더 있을 것 같습니다."
"막내야 시간이 넉넉하니까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지. 늙고 병든 나랑은 다르잖아. 둘의 인적사항은 다 조사해 봤겠지?"
"박철은 아버지가 감옥에서 몇 년 전에 죽었고 어머니는 해외로 이민 갔습니다. 친척들은 발길을 끊은 지 오랩니다. 신기는 삼 년 전에 교통사고로 가족을 다 잃고 역시 혼자입니다. 수상한 점은 몇 달 전에 계좌에 30억이라는 거금이 입금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룹의 힘을 다 동원해도 입금한 자를 추적할 수 없습니다."
강 회장은 작게 기침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거제도에서 막내 별장과 가까운 별장을 인수했다고 했지? 계획적으로 접근한 게 틀림없어. 지금 프로젝트도 그렇고 모든 게 그 청년이 발단된 거겠지?"
"그렇습니다. 영리하게 구체적인 실행에는 참여하지 않고 핵심적인 것들만 툭툭 짚어줬다고 합니다."
"그럼 막내도 같은 판단을 내린 것이겠군."
"예전에 처음 만났을 때 태운 정밀 비서실에 자리 하나 준다고 스카우트하면서 떠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때 거절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번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에 막내 도련님도 신중하게 대할 필요를 느낀 것 같습니다."
"하긴, 미국이나 중국도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는 자체가 신호겠지. 나도 느긋하게 기다려봄세."
### DUAL SYSTEM ###
서울 강남구 모 술집 지하.
"영광아, 뭐 알아낸 것 없어?"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초반에는 어떤 세력의 방해가 있었고 그 후에도 계속 감청했지만 일체 각성에 관련한 대화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괜찮아. 사실 벌써 알아냈다면 오히려 상대의 용의를 의심했어야지. 사실 나도 처음 만났을 때 깜빡 속았어. 너무 좋은 제안을 해와서 나도 모르게 마음을 열었지. 그런데 후에 다시 생각해보니 왜 이렇게 좋은 제안을 나한테 바로 했을까 의심 되더라. 태운 그룹이 강세라고 하지만 우리와 어깨를 겨룰 수 있는 기업이나 세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저울질하면서 자기 몸값을 올릴 만도 한데 너무 쉽게 나와 손잡았어."
"형님, 가끔 간단하게 생각하는 게 답입니다. 스물 갓 넘은 애송이라면서요. 자기가 가진 가치를 제대로 모르고 인상 좋고 안면이 있는 형님에게 마음이 기울었을 수도 있죠."
"하긴, 나도 조사자료를 보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지. 각성하는 루트나 파티 맺는 방법도 좀 더 친해지면 물어보려고 꾹 참았어. 그런데 몇 달 전, 거제도에서 별장을 인수하기 전에 계좌로 30억이 입금되었어. 그런데 입금한 계좌가 추적이 안 돼."
"해외 계좌는 원래 추적이 어렵습니다."
"아냐, 계좌주가 한국인이야. 이름이 이상해서 기억하고 있어. 이름이 용힘이야."
박영광은 술을 시원하게 넘긴 후 대답했다.
"입금자명이야 어차피 마음대로 입력할 수 있으니깐요. 계좌는 추적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계좌도 안돼. 존재하지 않는 계좌야. 은행도 존재하지 않는 은행이고."
"형님, 손 털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미끼가 향기로울수록 큰 고기를 낚으려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예전 세상이라면 손 털어야겠지. 그러나 지금은 딴 세상이야. 역수행주에 기호지세라 멈추는 순간 죽어. 쓸모없어지면 도태되는 세상이라고."
물을 거슬러 배를 몰 때 가만히 있으면 뒤로 간다. 호랑이를 탔을 때 등에서 내리기만 하면 호랑이 밥이 된다. 늘 대단하게 생각하던 태운 그룹과 강유성도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자 박영광은 신기와 박철에 대한 평가를 상향했다.
"애들 보고 더 조심하라고 해야겠네요."
둘은 술을 마시며 안주를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술도 강유성이 직접 준비해온 것이다. 이 술집은 이들에게 그저 장소만 제공하는 셈이다.
"그 김태풍이라는 각성자, 네 말 잘 들어?"
"그 자식 꽤 또라이라 내 말이 안 먹힙니다. 처음에는 겁도 많고 고분고분했는데 TV에 자주 나오고 유명인이 되니까 나 따위는 눈에 차지도 않나 봅니다."
"그런 놈에게는 나 같은 허우대가 더 먹히지. 언제 자리 한번 마련해줘."
"그놈 스카우트하려고요?"
"간판으로 쓸 놈이 그놈밖에 없어."
박영광은 술잔을 깨끗이 비운 후 새로 술을 따르며 말했다.
"형님이 직접 스카우트하면 안하무인이 되어 더 막 나갈지도 모릅니다. 그 새끼 또라이라니까요.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본 판단력이 결여된 놈입니다. 직접 나서시면 이후 다루는 데 애먹을 겁니다."
"그럼 인사과 직원들 고생 좀 시켜야겠구나. 지금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간판으로 쓰기엔 김태풍밖에 없어. 그나저나 통일은 어떻게 되었어? 이번에 땅을 잔뜩 사들여서 북한 사람들 데려다 싸게 부려먹어야 하는데 말이야."
"아직 협상하고 있대요."
버린 땅을 대가로 식량과 의복을 얻은 정부는 재미를 들였는지 태운 그룹이 정부와 군에 납품하는 물품의 대금을 땅으로 지급하려 했다. 태운 그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강유성은 싫은 척하면서 땅을 늘리고 있다.
곧 식량이 힘인 세상이 올 것이고 식량을 만드는 건 땅이다. 다른 세력들은 아직도 눈치를 보며 시기를 가늠하고 있을 때 태운 그룹이 먼저 손을 써서 땅을 사들였다. 등대 프로젝트를 믿고 크게 도박하고 있는 셈이다.
'의도적인 접근이건 우연이건 상관없다. 뭔가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세상이다. 다만 떼먹히는 것 없이 내 몫을 다 챙기면 된다.'
- 작가의말
신기에게 돈이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제가 효율을 중시하는 성격이라 재활용하기 좋아합니다. 하지만 사골처럼 똑같이 우리면 질릴 수 있어서 30억을 새로운 용도로 활용합니다. 리메이크 전에는 이런 걸 일부러 다 숨기느라 글이 조금 뜬 느낌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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