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수천 명 사람이 모여들었다. 각자 든 피켓에 적힌 내용은 달랐지만, 한 마디로 개괄하자면 공산주의 반대라는 말이다. 괴물 사태에 대비하여 대부분 상품의 유통과 판매를 정부에서 독점해버렸다.
독점은 자본주의의 산물이 아니냐고 말하겠지만, 개인의 독점이 가져온 폐해 때문에 국가가 독점하는 게 바로 공산주의 국가다. 개인이 아닌 국가가 독점하여 적절하게 가격을 정하는 것으로 물가와 경제를 안정시키는 방식을 중국이 수십 년 사용해왔다.
그것도 90년대에 들어서서 경제 발전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자유경제 체제로의 전환을 꾀했다. 국가의 기간이 되는 일부 사업을 제외하고 대부분 시장경제의 논리를 따르게 한 것이다. 그런데, 공산주의를 표방하지만 자본주의로 변해가는 중국과 반대로,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한국이 갑자기 옛 중국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육류와 곡물을 비롯한 생필품의 유통과 판매를 국가가 독점했다. 휘발유 판매를 제한하며 유통망을 국가가 독점하였고, 자연스럽게 판매도 국가 독점이 되었다. 사재기 때문에 돈값이 바닥에 떨어졌는데, 국가가 생필품 가격을 낮추면서 한화가 서서히 그 가치를 되찾아가고 있다.
세상에 밝기만 한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빛과 열을 내는 태양도 상대적으로 덜 밝은 부분이 있다. 국가의 이러한 행위는 일부 사람들의 이익을 날카롭게 침해했다.
미리 내막을 일부 얻어듣고 현금과 부동산을 금 혹은 달러로 바꿔둔 사람들이 큰 손해를 보았다. 한화의 가치가 점점 올라가서 괴물 사태 이전보다 더 높아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 속도가 금값이 올라가는 속도보다 더 빨라 손해 볼 게 뻔하다. 부동산도 하락은커녕 오히려 더 비싸지고 있다. 대량의 외국 자금이 한국으로 흘렀다.
한우를 비롯한 일부 특수 상품의 유통을 통해 폭리를 취하던 자들이 화났다. 모자란 휘발유를 웃돈을 주고 얻어서 뛰어봤자 남는 게 없다. 하나는 휘발유가 고급 레스토랑에서 쓰는 식용유보다 더 비싸진 것이 원인이고, 다른 하나는 육류 가격이 괴물 사태 이전의 절반 이하로 폭락했기 때문이다.
양계장 사업을 독점하다시피 했던 모 기업도 망하기 일보 직전이 되었다. 유통망이 생필품 운반에 집중되며 닭 사료를 공급하기도 힘들어졌고, 키워봤자 판로도 제한되었다. 가격이 싸진 소고기나 돼지고기가 있는데 굳이 닭을 먹으려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누구나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양표와 유표 그리고 육표가 있다. 마치 중국과 소련이 수십 년 전에 그랬듯이, 성인에게는 술을 살 수 있는 표도 발급했다. 양표는 쌀을 살 수 있는 권리고, 유표는 식용유를 비롯한 소금과 간장 등을 살 수 있고, 육표는 고기를 살 수 있다.
성인당 한 달에 소주 2병, 육표는 고기 종류에 따라 다르다. 소고기만이면 10근 살 수 있고 돼지고기라면 16근 살 수 있다. 닭고기는 모 기업의 로비로 마음껏 사 먹을 수 있도록 했지만, 그 소비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생선은 바다로 나갈 수 있는 큰 배가 부족하여 값이 비싼 편이다.
휘발유는 소재지 등록 지역 동사무소에서 표를 발급하고, 그 표를 가지고 주유할 수 있다. 표가 없으면 돈이 있어도 주유해주지 않는다. 물론 웃돈을 주고 주유하는 일도 가끔 있지만, 대부분 주유소 직원은 일자리를 잃기 싫어서 돈의 유혹을 뿌리쳤다.
다른 국가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해주기에 대부분 사람은 현재 상황에 만족하고 있다. 일본을 비롯해 서른이 넘는 국가가 망명을 신청했고, 스물이 넘는 국가는 이미 한국에 조차지를 임대하고 임시정부를 세웠다.
거기에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관한 공식 사과를 발표하고 배상금을 일시금으로 지급했다. 독도 문제도 확실히 한국 땅이라고 발표했고, 대마도를 한국과 일본 공동소유로 돌렸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대마도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바뀐 것이다.
이런 정황만 보면, 딱히 불만이 있어도 표출하지 못할 것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늘 완벽할 수는 없다. 이들이 시위 피켓을 들게 만든 원흉은 바로 태운 그룹이다.
"여러분, 지금 국가가 취한 조치는 모두 국민을 위한 겁니다. 공산주의라니 말도 안 됩니다. 후년에 다가오는 대선도 정상적으로 치를 것이고, 대통령 임기는 50년 이내에 바꿀 수 없도록 이미 헌법에 적어넣었습니다."
"그럼 태운 그룹은 뭐요? 왜 태운 그룹만 특혜를 주는 것이오?"
태운 유통이 전국의 유통망을 장악했다. 국가의 생필품 가격 안정을 돕는 역할을 주로 하지만, 따로 이익을 챙기지 않는 건 아니다. 그리고 국가가 판매하는 생필품의 절반 이상이 태운 그룹의 제품이다. 쌀과 기름과 육류 포장지에 태운 그룹의 로고가 떡하니 박혀있다.
"특혜요? 태운 유통은 정부에서 돈 한 푼도 받지 않고 무료로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휘발유도 태운 자원에서 직접 대고 있고, 국가에서 휘발유 한 방울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그게 다 자기들 상품 팔아먹기 위한 수작이 아니요? 당신 혹시 태운 그룹 돈 받아먹은 거 아니요?"
정부를 대표하여 나온 의원은 갓 마흔에 접어들어 젊은 축에 속한다. 새로 의원이 된 여섯 명의 태운 그룹 장학생 중 하나이며, 태운 그룹이 하는 일은 전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시민분 의견을 수렴하여 내일부터 태운 그룹의 상품은 팔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하루에 두 끼 먹는 걸 한 끼로 줄이면 될 일이죠. 그리고 태운 유통의 차들도 전부 길에 오르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직접 걷거나 버스를 타고 목장에 가서 고기를 사십시오. 여러 기자분, 저분 얼굴 잘 찍어두세요. 저분의 항의를 정부에서 받아들여 태운 그룹을 제재한다고 기사 크게 내주세요."
"아니, 의원 양반이 이렇게 막 나가도 되는 거요?"
황급히 손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입은 여전히 쉬지 않았다. 그에 동조하여 소리 지르는 사람도 많았다.
"저기요. 해달라는 대로 해주는 게 막 나가는 겁니까? 그럼 어떻게 할까요? 태운 그룹에 돈 받을까요? 국민을 위해 정부 일을 공짜로 해주고 휘발유도 자체 조달하지만, 그래도 국민이 불만 많으니까 돈도 내십시오 할까요?"
"내 말이 그런 뜻이 아니잖소. 왜 사람 말을 곡해하고 그러시오?"
"그럼 뭡니까? 다른 기업이나 단체 혹은 개인이 국가를 위해 무료로 봉사하겠다면 저희는 대환영입니다. 그런데 하겠다고 나서는 데가 없네요. 혹시 여러분은 여기까지 걸어오셨습니까? 아니면 자전거 타고 오셨습니까? 지금 운영되는 모든 버스의 휘발유가 태운 그룹이 무료로 제공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까?"
손해를 보고 시위 현장을 찾아온 사람이 있고, 정의감에 시위하러 온 사람도 있고, 사주를 받고 여론을 일으키려고 온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의원의 철벽 방어에 대꾸가 궁했다.
"그래도 민주주의 국가인데, 평등을 기본으로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태운 그룹의 공헌은 저희도 아는 바지만, 이대로 가면 태운 그룹이 국가를 독점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지금 많은 분은 공산주의를 반대한다고 피켓에 적었습니다. 공산주의가 뭡니까? 각자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만큼 가져간다가 공산주의의 골자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공산주의를 반대한다면서 주장하는 게 뭡니까? 태운 그룹은 능력 있으니까 능력 만큼 공헌해야 하지만, 공헌한 만큼 가져가지 말라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이 주장하는 게 바로 공산주의입니다."
의원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붉게 달아올랐다.
"태운 그룹이 매일 소모하는 휘발유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그걸 모두 공짜로 태우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어음을 받아간 것도 아닙니다. 그저 공짜로 국가와 사회와 국민을 위해 내놓은 겁니다. 태운 그룹의 생필품을 많이 판다고요? 생필품 가격을 낮추기 위해 태운 그룹이 일정 부분 금액을 부담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태운 그룹의 로고가 붙지 않은 상품의 가격 일부는 태운 그룹이 구매자를 위해 대신 지급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태운 그룹이 비싸게 사서 시장에 싸게 풀어놓은 겁니다. 기업도 살리고 국민도 살리고 국가도 살리기 위한 용단입니다."
"의원님의 말을 믿을 수 없습니다."
"제 말에 거짓이 하나라도 있다면, 이 금배지를 떼겠습니다. 여러분은 임진왜란의 선조가 되고 싶은 겁니까?"
피켓을 거두거나 버리고 슬그머니 물러나는 사람이 속출했다. 그러나 결코 물러날 수 없는 자들은 계속 버텼다.
"당신의 말을 증명하시오."
"태운 그룹이 자발적으로 하는 일인데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공짜로 해준다는 계약이라도 작성했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정 그러시면 청와대 게시판에 청원을 올리십시오. 태운 그룹을 제재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태운 유통의 차들이 길에 오르지 못하게 하고, 버스에 공짜로 휘발유를 제공하는 걸 멈추고, 생필품 가격을 싸게 조작하는 행위도 당장 멈추게 하라고 말입니다. 군에 공짜로 제공하는 총과 탄약도 이젠 못하게 멈춰주고, 해변에 지은 방어 건물들도 전부 허물라고 하세요. 국토를 수호하려고 작은 수비 건물에 갇혀서 괴물과 싸우는 2만 명 각성자들을 전부 철수시키고, 태운 그룹을 한국에서 쫓아내자고 해보십시오."
"하라면 못할줄 아시오?"
"태운 그룹이 모든 일을 멈추고, 괴물이 상륙해서 일본 꼴이 나게 해달라고 청원해 주십시오. 일본은 이미 1억 이상의 사망자를 냈고, 중국 역시 사망자가 2억에 육박합니다. 인도는 6억이 죽었고요. 제발 한국도 그 꼴이 나도록 태운 그룹을 쫓아내라고 국민에게 호소해보십시오."
"내 말이 그 말이 아니잖소."
의원이 손에 든 마이크를 손바닥에 탁탁 쳤다.
"그럼 하고 싶은 말이 도대체 뭡니까? 다른 대기업들도 '공평'하게 태운 그룹처럼 무상으로 국민을 위해 봉사하게 하라는 말입니까? 정부가 기업 행위에 과하게 간섭하는 게 바로 공산주의 국가들의 행태가 아닙니까? 당신들은 도대체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겁니까 아니면 공산주의를 바라는 겁니까?"
"아니, 왜 자꾸 공산주의로 말을 돌리는 거요? 나를 빨갱이로 몰아가자는 수작이오?"
"고개를 돌려 뒤를 보십시오."
억지를 부리던 사내가 고개를 돌리니, 같은 복장을 한 자들이 공산주의 운운한 피켓을 황급히 거두고 있었다. 준비 부족과 정보 부족, 거기에 논리의 부족으로 시위자들의 사기가 급락했다.
### DUAL SYSTEM ###
미술관 지하.
강 회장은 신기와 김 회장 그리고 아들들과 함께 시위현장을 생방송으로 지켜보았다. 여전히 남아있는 천여 명의 시위자를 보며 강 회장은 신기에게 질문했다.
"신 상무. 배후에 누군가 있는 것 같지?"
"그런 것 같습니다."
"그 배후를 찾아서 응징해야 하지 않겠는가?"
김 회장은 표정이 그대로였지만, 동작이 살짝 경직되었다. 강유성 역시 굳은 채로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신기의 대답을 기다렸다.
"저 의원이 잘 해결한 것 같습니다."
신기가 질문과 상관없는 딴소리를 했지만, 강 회장은 호통치지 않고 신기의 말에 따라 화제를 전환했다.
"저 의원은 누가 관리하지?"
"제가 하고 있습니다."
강유성의 말에 강 회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 상무, 어떻게 할까?"
"지금 세상은 세찬 홍수와 같습니다. 가로막거나 걸리적거리는 건 그대로 쓸려가죠. 그리고 지금 태운 그룹은 그 홍수 앞에서 달리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앞을 막으려 하면 태운 그룹이 아니더라도 홍수에 쓸릴 겁니다. 괜히 쓸데없는 일에 시간 낭비할 필요 있습니까."
"젊은 신 상무가 나보다 낫군. 이 나이에 아직도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네."
"이젠 슬슬 미국이나 중국 각성자도 늘려주고, 동남아 쪽에도 힘을 실어줘야겠습니다. 소각장을 건설하고 운영할 것을 승낙한 국가들만 해줄 겁니다."
"그 안정화인가 뭔가 하는 게 끝났는가?"
"서해안과 동해안은 끝났고, 남해안은 지원팀이 버티고 있어 별문제 없습니다. 슬슬 일본을 압박해서 연해에 등대를 세우도록 해야겠습니다. 일본에 해주는 건 대가를 톡톡히 받아내야죠. 일본이 살아날 틈을 만들어주지 말아야 합니다."
"일본 다음은 북한이겠지?"
"통일하고 새로 얻은 땅도 안정시키고, 다음에는 세계에 진출해야죠. 강 회장님, 잘 버텨주시기 바랍니다."
둘의 대화 스케일에 김 회장과 강유성은 간이 콩알처럼 줄어들었다.
- 작가의말
이런 내용이 혹시 지루하지 않은지 궁금합니다.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이고 태운 그룹의 위상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제가 글을 구성하고 표현하는 방식에 확신이 없습니다. 조언 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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