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형 요새
미국 보스턴.
프로메테우스는 회사를 규슈섬에 설립하기로 했다. 괴물을 향한 반격의 시작을 알린 규슈섬이라 그 상징적 의미가 작지 않다. 물론 회사의 등록 지역만 규슈섬이고 실질적인 업무는 모두 미국 본토에서 진행된다.
"미스터 신에게 제공할 가장 큰 혜택입니다."
접이식 프로펠러를 접은 헬기는 자동차처럼 육지에서 질주했다. 그러다 물을 만나자 요트처럼 물에서 달렸다. 다시 육지로 올라간 다용도 헬기는 꼬리와 프로펠러를 펼치더니 공중으로 떠올랐다.
"비행 고도는 200미터밖에 안 됩니다. 고농축 연료를 사용하여 이동 거리가 멀고 비행할 때와 물에서 연료의 소모가 조금 큽니다. 철벽 스킬 각성자들의 노력으로 200미터 고도에서 바닥에 떨어져도 부서지지 않고 내진 설계 덕분에 생명 안전을 보장합니다."
신기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트랜스포머에 비교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버튼 하나만 누르면 꼬리를 빠르게 폈다 접었다 할 수 있어 무척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헬기 조종사로 낙점된 최영웅은 싱글벙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자동 운행 프로그램이 설치되었고 운행 과정에는 변형 버튼을 눌러도 먹히지 않습니다. 안전을 위한 조치는 완벽하니 헬기를 몰다가 피곤하시면 잠깐 눈을 붙여도 됩니다."
미국식 유머가 마음에 들었는지 최영웅은 배를 부여잡았다.
"미사일 공격을 감지할 수 있고 자동 회피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만약 스릴을 느끼고 싶다면 수동으로 전환해서 직접 미사일과 숨바꼭질을 해도 됩니다. 웬만한 미사일로는 이 다용도 헬기에 생채기도 내기 힘듭니다."
뒤이어 화면에서는 다용도 헬기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훨씬 육중한 헬기가 등장했다.
"지원 헬기입니다. 지원을 요청하면 어디든 날아가서 연료를 포함한 지원 물품을 보급해 드립니다. 비행속도가 무척 빠르고 육지와 물에서 이동하지 못하지만 착륙할 수는 있으니 지옥에서 콜해도 바로 달려갈 겁니다."
새치가 희끗희끗한 라틴계로 보이는 박사는 신기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
"그럼 세계 초첨단 기술을 한몸에 담은 이 귀염둥이의 이름을 소유주인 미스터 신이 지어주기 바랍니다."
모두가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자 갑자기 부담감이 몰려왔다. 동양인이나 서양인의 정서에 모두 알맞은 이름이 뭘까 고민하다가 다용도 헬기를 설계한 박사에게 질문했다.
"원래 이름은 무엇이었나요?"
"제우스 프로젝트입니다. 물론 프로젝트의 이름이고 귀염둥이는 아직 이름이 없습니다."
"삼촌, 푸 어때요?"
하의실종의 원조인 변태 곰돌이라, 차라리 그 갑자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19금 곰돌이가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이 태티였던가?
"형, 진돗개 어때요?"
의외의 애국 청년 박철의 의견이었다.
"부사장님, 저는 부사장님 의견에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그 와중에 사회생활을 잊지 않은 최영웅도 있다. 그리고 태운 그룹에 남은 하현주를 대신해 프로메테우스 특별팀에 합류한 제이크도 자신의 존재감을 뽐냈다.
"적토마 어때요? 나 동양 공부 많이 했어요."
적토마는 그 주인이 자주 바뀌어서 불길한 이름이다. 딱히 떠오르는 생각이 없자 신기는 쉽게 가기로 했다.
"프로메테우스."
열렬한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신기는 깊이 생각하고 지은 이름이 아니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내가 곧 프로메테우스의 전부라는 패기가 줄줄 흐르는 선언으로 보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자부심이 무척 강한 오만한 천재들이라 신기의 이런 패기를 무척 좋게 평가했다.
다용도 헬기 프로메테우스의 마스터키가 신기에게 전달되었고 신기는 곧바로 최영웅에게 건네주었다. 최영웅은 함을 열어 15센티 길이의 열쇠를 꺼내 번쩍 들었다.
또 한 번 환호와 박수가 터졌다. 현재 제이크의 레벨업 때문에 특별팀은 다섯 명으로 제한했다. 제이크가 B급이 되면 필요한 구성원을 더 받기로 했다. 특별팀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특별팀이 키워줘야 할 각성자가 팀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바로 출발하실 겁니까?"
"그럼요. 한시도 지체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 특별팀뿐 아니라 전 세계의 모두가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다용도 헬기 프로메테우스는 사실 조종사가 필요하지 않다. 목적지 혹은 방향을 입력하면 위성과 연동해서 알아서 움직인다. 조종사가 하는 일은 간혹 프로그램 오류로 엉뚱한 방향으로 이동하거나, 위성과의 연결이 끊겼을 때 수동으로 방향을 정하는 것, 그리고 연료의 잔량을 체크하고 지원을 요청하는 것밖에 없다.
"우선 미국의 소각장을 안정화한 후 아시아로 움직여 러시아와 중국의 소각장을 안정화하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계획에 따라 화산 봉인을 시작하죠."
하현주와는 달리 제이크는 중급부터 화산을 봉인할 수 있다. 그러나 마력의 양이나 위력은 하현주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의외로 잔류를 선택한 하현주 덕분에 프로메테우스의 첫 번째 파트너 계약의 체결 상대는 당연히 태운 그룹이 되었다.
곧 옥상으로 이동하여 프로메테우스에 탑승했다. 평소에 볼 수 있는 작은 헬기들과 달리 사람만 실으라면 오십 명도 태울 수 있는 크기다. 물론 무게 때문에 삼십 명 정도가 적당하다. 식량이나 물 그리고 연료도 실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별팀의 다섯과 효천 그리고 곰 두 마리가 탑승했다. 전투 스킬인 박치기와 물어뜯기를 얻은 불곰과 반달곰이 효주의 선택을 받았다. 덩치와 무게도 문제지만 하도 먹어대서 다 실으면 식량이 부족하다. 남은 개와 곰들은 사육사들이 잠시 돌보기로 했다.
프로메테우스가 출발하자 적지 않은 방송국 헬기들이 뒤를 따랐다. 보스턴 항에서 2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등대에 멈춘 프로메테우스는 선루프를 열었다. 박철과 효주가 신기와 함께 헬기 위로 올라섰다.
"스페셜 루어."
몸에 딱 맞는 정장을 차려입고 선글라스를 쓴 박철이 서투른 영어로 외쳤다. 며칠 동안 수많은 연습을 거쳐서 꽤 능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실전이 되니 발음이 뭉개지고 목소리도 떨렸다.
효주는 SF 영화에서 입을 법한 옷을 입고 역시 선글라스를 썼다. 박철과 달리 효주가 입은 옷에는 회사의 로고가 새겨졌다. 하체보다 상체가 무척 발달한 거인이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있고 손 위에는 일렁이는 불꽃을 형상화한 문양이 조금 짙은 색으로 띄워져 있다.
'오늘 서비스를 제대로 해주지.'
신기 역시 정장을 차려입었으나 등에 회사 로고가 찍힌 가방을 멨다. 이번 홍보 대상은 선글라스와 신기가 멘 가방이다. 굳이 가방에 매단 검을 뽑아 든 신기는 속으로 조용히 외쳤다.
'눈사람 병정.'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는 마법이라 신기도 그 위력을 짐작하지 못했고 자신의 마력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도 정확히 모른다. 그저 기력보다 더 많은 것 같아 적은 양은 아니겠거니 짐작할 뿐이다.
박철의 미끼 스킬에 폭주하며 달려온 금속 로봇들이 성휘의 범위에 들면서 속도가 느려졌다. 무릎 높이의 하얀 눈사람 수백이 나타나서 금속 로봇을 덮쳐갔다.
'특성 보호.'
보호는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아군의 정신을 지켜주는 특성이나 로봇에게는 공격으로 작용했다. 리모컨과의 연결이 끊어진 원격조종 장난감처럼 로봇들은 제자리에 멈추거나 우왕좌왕했다. 오합지졸이 된 로봇들은 눈사람의 발차기와 앞지르기에 속절없이 당했다.
로봇 몇을 쓰러뜨린 눈사람도 힘이 다했는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렇게 수백의 눈사람은 수천의 로봇을 쓰러뜨리고 장렬히 산화했다. 아직도 넉넉한 마력에 신기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굳이 새로 얻은 검술 스킬을 선보일 필요가 없어졌다.
성휘의 범위에 들면 멍청해지는 로봇들은 뒤에서 밀고 들어오는 다른 로봇에 의해 강제로 전진하거나 바닥에 쓰러졌다. 등대를 만들 때 로봇의 움직임이 어렵게 높낮이가 계속 변하는 불규칙 계단형으로 만들었다. 원래는 여럿이 협동해서 다른 로봇을 계단 위에 들어 올리는 방식으로 전진했는데 신기가 보호 특성을 사용하자 로봇들은 협동심을 잃어버렸다.
'눈사람 병정.'
눈사람 병정은 마력을 소모해서 로봇의 제어 칩을 공격한다. 눈사람의 형상을 유지할 마력까지 소모하면 미련 없이 사라져버렸다. 요해가 겉으로 드러난 좀비나 해골 그리고 구울과 달리 칩을 금속 덩어리 속에 감춘 로봇들을 신기가 어찌 대처하는지 궁금해하던 사람들은 신기가 보여준 마법과 같은 검술에 열광했다.
'마력의 회복이 신성력보다 더 빠르구나. 그리고 기력의 회복이 20분으로 가장 느리다.'
회복은 마력이 더 빠르지만 양은 신성력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소모되는 게 느껴지지 않는다. 신기는 마력의 소모와 회복을 계산하며 스킬을 사용할 간격을 정했다. 신기는 나름 여유를 두며 스킬을 전개하고 있지만, 구경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쉬지 않고 스킬을 펼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원래 우리가 데리고 있을 만한 물건이 아니었어."
강 회장이 새벽에 자지 않고 TV를 보면서 신기의 퍼포먼스에 평가했다.
"내가 비벼볼 만한 상대는 아니었네."
김태풍 역시 신기가 보여준 아득한 모습에 풀이 죽었다.
"D가 진짜 유일한지 다음에 꼭 확인해야지. A급 0레벨이 보일 위력이 절대 아니야."
에릭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위스키를 입에 들이부었다. 그러고 기력이 차기만 하면 신기를 강하게 떠올리며 탐구 스킬을 사용했다. 파티 정보를 미리 알아낸 것처럼 뭔가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랐지만, 자주 일어나면 기적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만약 장군님이 환생했다면 전무님으로 태어났을 거야. 나 같은 또라이는 아니고."
울릉도에서 스킬 수련에 몰두하는 박영광의 중얼거림이다. 10분 자고 알람으로 깨어난 후 스킬을 수련한다. 20분 수련하고 다시 잠을 자고 10분 뒤에 또 깨어나서 20분간 수련한다. 각성자들 대부분 얼굴에 빛이 나는데 박영광만은 눈밑이 항상 거뭇하다. 한 시간에 20분씩 자면서 12시간 수련하고 남은 시간에는 업무도 보고 레벨업을 위해 화산구에서 전투에 참여하기도 한다. 업무를 보는 와중에도 기력이 회복되는 대로 스킬을 수련했다.
"당신은 악마인가 천사인가."
강유성은 가끔 화면에 비치는 딸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한때 신기 덕분에 행복한 꿈을 꿀 수 있었다. 그러다 꿈이라는 걸 깨닫고 깨어나서 현실을 아파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랑하는 딸은 아빠를 예전과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꿈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사이에 세상이 변했고 사람이 변했다.
"천사라면 내 딸을 잘 지켜주고 악마라면 나부터 잡아가시오."
양주를 병째로 입에 부어 넣으면서도 강유성은 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프로메테우스의 주주들이 소유한 방송사들이 회사 로고를 적절히 노출하도록 효주의 모습을 가끔 비췄다. 딸의 모습이 화면에 보일 때마다 그립고 아련한 마음을 다독이며 자신이 원하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깊이 고민했다.
"완벽하군. 모든 게 계획대로 진행하고 있어."
부총리가 말한 계획은 소각장 계획이 아니다. 몰래 진행 중인 계획이고 실제로 그 계획에 참여하는 자들 대부분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5천 년 역사의 대국, 세계의 중심이자 문명의 발원지인 중화에서 인재가 하나도 없다는 게 말이 안 되지. 하현주를 능가하는 봉인 각성자를 얻은 건 하늘이 굽어살피심이리라.'
허리의 통증 때문에 매일 포도주를 조금씩 마신다. 진통제는 판단력에 영향을 준다고 믿는 부총리이기에 효과가 덜하지만 통증 완화를 돕는 포도주로 약을 대체했다. 그러나 지금 손에 들린 포도주는 통증을 완화하기 위한 약이 아니라 승리를 미리 자축하는 축하주이다.
'그래, 열심히 해라. 네가 열심히 할수록 네 손으로 네 목줄을 죄는 것이다. 네게 잘못이 하나 있다면 중화의 땅에서 중화의 아들딸로 태어나지 않은 것이리라. 왜 하필 수천 년 움츠려 살던 소국의 백성으로 태어났느냐.'
잠깐이지만 한국이 아시아의 중심이 되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불쾌했다. 중국에 사대하던 작은 소국이 중국을 능가했다는 사실이 치욕으로 다가왔다.
'신기(申基), 이름부터 불길한 아이야, 네 손으로 네 목을 조르거라.'
신(神)에서 볼 시(示)를 없애면 신(申)이 된다. 보지 않는 신을 성으로 삼은 신기의 존재는 부총리에게 무척 불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부총리는 오랑캐의 영웅을 지워버리기로 했다. 수천 년 동안 그래왔듯이.
- 작가의말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글이 잘 안 써집니다. 그래서 느낌이 좋을 때면 막 써 내려가고 올리기 전에 오타 수정하고 문장을 다듬습니다. 그리고 이 방법이 정말 좋은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특히 뒤 내용을 쓰고나서 앞 편을 올릴 때, 뒤 내용을 생각하며 진행을 더 매끄럽게 다듬을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글을 완결 내고 전체 수정해서 올리고, 댓글 의견을 보며 수정하는 방식을 시도해야겠습니다.
Commen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