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강탈
후지산.
특별팀과 각국의 A급 각성자들을 태운 헬기들이 두 괴물의 전투 장소와 조금 떨어진 곳에 멈췄다. 좀비 드래곤은 그저 해골용의 뼈에 살을 붙인 모습이겠거니 했는데, 막연하게 상상하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배불뚝이 공룡처럼 생긴 좀비 드래곤은, 다리가 네 개이고 팔이 여섯 개다. 커다란 머리와 여섯 팔이 앞으로 향해 무게 중심이 너무 쏠릴 것을 걱정했는지, 기다란 꼬리가 있다. 그리고 꼬리와 몸통을 이은 부분으로 추정하는 곳에, 작은 동산을 방불케 하는 돌기들이 있었다.
몸에 난 돌기들을 작은 동산이라고 칭하는 것에서 알 수 있겠지만, 좀비 드래곤은 크기가 무척 컸다. 후지산의 화산구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궁금할 정도다. 그러나 위성으로 촬영한 영상을 볼 생각을 떠올릴 수조차 없을 정도로, D와 좀비 드래곤은 박진감 나는 싸움을 벌였다.
"D가 좀비 드래곤의 다리 하나 정도 크기밖에 안 되는군."
D는 각자 눈에 다른 모습으로 보이지만, 그 크기는 100미터 정도로 같다. 해골용을 보고 좀비 드래곤도 비슷한 크기겠거니 짐작했던 일행은 무척 놀랐다.
"어, 탐구 스킬 레벨 하나 올라갔습니다."
좀비를 향해 탐구 스킬을 사용한 에릭이 깜짝 놀랐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A급 정도 되면 레벨 경험치와 스킬 경험치에 대한 감각이 있다. 일부 예민한 자들은 더 낮은 등급에서도 구체적인 양은 아니지만, 많고 적음은 가늠할 수 있다.
"좀비 드래곤이 해골용보다 더 약하다고 하네요."
"혹시 그런 거 아닌가요? 저쪽 세상에서 더 강한 존재일수록, 이쪽으로 오면 더 약해지는 거."
신기의 대답에 에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에게 호의적인 마나가 가득 찬 곳에서 마나가 희박한 곳으로 왔다. 더군다나 그 희박한 마나가 좀비 드래곤에게는 적대적이다.
"에릭 씨, 그런데 D가 이곳에 못 온다고 하지 않았어요?"
탐구 스킬을 기력이 다할 때까지 사용한 에릭이 헐떡거리며 대답했다.
"해골용이 이곳을 영지화했습니다. 그런데 해골용의 구슬을 팰러딘이 삼켰고, 또 이곳을 떠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영지화가 깨졌고, 좀비 드래곤이 해골용보다 더 약해졌습니다. 만약 영지화가 깨지지 않았다면 좀비 드래곤이 지금보다 훨씬 강했을 겁니다."
D는 혼슈의 영지화가 깨진 것을 발견하고 마나까지 소모하며 달려왔다. 영지화가 그대로면 좀비 드래곤을 이길 자신이 없지만, 영지화가 깨지면 D가 역으로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장기에 비유하면, 좀비 드래곤은 차와 포를 뗀 상태로 되었는데 D는 레이저 포와 장갑차로 바꾼 셈이다.
"팰러딘,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신기는 현재 A급 99레벨이다. 붉은 구슬을 삼키고 딱히 얻은 스킬은 없다. 육체 능력도 변화가 없지만, 기력을 다루는 것이 입속의 혀를 굴리는 것처럼 편해졌다.
"각성자의 스킬은 D에게 제대로 먹히지 않습니다. 특히 적대적인 전투 스킬은 전혀 효과가 없죠. 그러니 우리는 좀비 드래곤을 도와 D를 해치우면서, D의 심장을 보존해야 하죠."
"방법이 있습니까?"
"있습니다만, 실패하면 돌이킬 방법이 없습니다."
붉은 구슬을 먹고 얻은 건 레벨 상승과 기력을 다루는 감각뿐이 아니다. 붉은 구슬을 삼킨 후 정보 단말은 무수한 정보를 토해냈고, 수많은 얼음 마법을 전승받았다. 가능성이 미약하지만, 시도해볼 만한 방법들이 꽤 생각났다. 신기는 그중에서 가장 괜찮다고 생각되는 방법을 시도할 예정이다.
"예전에 대면했던 D가 바로 심장입니다."
에릭과 맥 그리고 신기가 심장 조각을 통해 만난 것은 D의 심장이다. 심상(心狀)이 본체의 모습을 띠고 있었기에 둥그런 심장이 아닌 D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심장 조각을 보고 각자 다른 모습을 본 것 역시 마찬가지 이유다.
"나는 효천을 통해 D의 심장과 대면한 후, 심장만 보존하겠습니다. 그러면 밖에 계신 여러분이 좀비 드래곤과 D를 처단하시죠."
"저희가 할 수 있을까요?"
"좀비 드래곤의 약점은 꼬리 끝으로부터 세 번째 뼈입니다. 그리고 심장을 봉인 당하면 D가 힘을 잃고 좀비 드래곤에게 당할 겁니다. D의 심장이 드러나면 좀비 드래곤을 처단하십시오."
에릭은 물론, 곁에서 잠자코 듣고만 있던 제이크도 우려를 표했다.
"팰러딘, 좀 더 안정적인 방법은 없을까?"
"지금 좀비 드래곤이 공격을 더 많이 하고 있고, D는 수비적인 입장이야. 그러나 D는 마나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힘을 비축하고 있어. 내가 간파 스킬로 알아낸 좀비 드래곤의 약점을 D도 당연히 알고 있겠지. D는 그저 좀 더 쉽고 빠르게 소화하려고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야. 좀비 드래곤의 마나가 좀 더 흡수하기 편하게 말랑말랑해지기를 기다리지."
두 괴물은 일체의 으르렁거림도 없이 조용히 싸웠다. D의 날랜 움직임은 물론, 다리 하나가 100미터 길이인 좀비 드래곤의 둔중한 움직임 역시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았다.
"저들은 지금 우리 눈에 보이지만, 이 세상에서 싸우는 게 아닙니다. 물론 우리의 공격은 저들에게 닿고, 저들의 공격도 우리에게 닿을 겁니다."
신기는 에릭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만약 D가 좀비 드래곤을 이기고 그 마나를 흡수하면 심장이 완성됩니다. 지구는 D의 영지이기에, 웬만큼 적대적인 마나도 쉽게 소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해골용이 기어 나오기 전에 이곳을 먼저 영지화한 것입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말이군요."
"에릭이 D를 상대할 자들을 뽑아서 지휘하시죠. 제이크, 넌 좀비 드래곤을 상대할 자들을 뽑아. 둘 다 마력보다는 기력이 더 먹힐 거니까, 알아서 적당히 분배해."
말을 마친 신기는 효천의 곁으로 가서 턱을 간질이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 영리한 개는 아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하지 않으면, D에게 삼켜져 마나를 다 빨리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게 될 거라는 것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삼촌, 어디 가요?"
"아니."
"거짓말."
효주의 말에 신기는 대답이 궁했다.
"금방 돌아올 거야."
"돌아와서 나랑 결혼해야 해요."
"음. 그건 돌아와서 얘기하자."
신기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효주는 자신과 결혼하기로 약속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언제 그랬냐고 질문하니 효주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기는 다리가 길고 가슴이 크고 허리가 잘록하고 어깨가 적당히 넓은 여자가 이상형이다. 얼굴은 그저 이쁘면 된다. 효주는 이 중에 하나도 해당하지 않는 건 물론이다.
"형. 위험한 일 하려는 건 아니죠? 모험 안 해도 우리는 결국 승리할 거예요. 무모한 짓을 하려는 거면 그만둬요."
"위험하지 않아. 오히려 승산이 너무 커서 불안해."
박철이 뭐라고 더 말하려 했지만, 가가와와 최영웅이 잡아끌었다. 대화하면서도 눈을 좀비 드래곤과 D에게서 떼지 않던 신기는 때가 되었음을 알고 손을 효천의 머리에 올리고 기력을 끌어올렸다.
"왕이 가는 길에 영광만 가득하리라."
박영광이 소환한 소환체가 입을 열었다. 소환체가 의지가 있는 건 아니기에, 박영광이 하는 말이라고 보면 된다. 왕은 언제나 모두에게 든든한 등만 보여주는 자, 심장으로 피를 흘리더라도 눈물과 아픔을 참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
'나는 왕이다.'
### DUAL SYSTEM ###
D의 심상(心象).
"방해꾼, 여기 와도 나를 방해 못 해. 나는 멀티 플레이에 능하거든."
"D, 넌 별로 똑똑한 놈은 아닌 것 같아. 내가 왜 여기로 왔다고 생각해?"
"좀비 드래곤이 적당히 약해진 것 같으니 방해하러 왔겠지."
"네가 모르는 비밀이 있는데, 사실 나 듀얼 시스템 이용자야. 버그 같은 존재라고."
말을 하는 사이에 신기의 성휘가 D의 심상을 차지했다. 적대적인 기운이 심상에 휘몰아치자 D도 적잖게 당황했다.
"그랬군. 간섭자의 운명을 타고났구나."
"얼음 상자."
맑고 투명하며 커다란 상자가 D를 가뒀다. 성휘를 펼쳐 공간을 빼앗고, 정화를 펼쳐 D를 공격했다. 그러다 틈이 보이는 순간, 새롭게 전승받은 얼음 상자 마법을 사용했다. 공격력은 전혀 없어서 상대의 마법 저항력을 무시하는 아주 특별한 마법이다.
"소용없다. 내 모든 힘이 심장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네가 듀얼 시스템이면 나는 듀얼 하트다."
새로 나타난 D는 기린을 닮았다. 목 길이가 80미터에 가까운 기린은 푸른 비늘로 온몸이 덮여있었다.
"합!"
기력을 잔뜩 실은 검을 신기는 가장 약하게 생각되는 부분을 향해 휘둘렀다. D의 심상을 감싸고 있던 막이 신기의 기력에 갈라졌다.
"효천, 저걸 가지고 나가."
신기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효천이 얼음 상자에 갇힌 심장을 물고 갈라진 틈으로 나갔다. 100미터가 넘는 얼음덩이를 선키 60센티의 효천이 물고 움직이는 모습은 무척 우스꽝스러웠다. 신기는 계획한 일 단계가 성공적으로 끝나지 휘파람을 불며 자축했다.
"이로써 각성자 시스템의 동력은 해결. 남은 건 너를 죽이는 것이군."
"흐흐흑. 멍청한 놈."
기린 모양을 한 D가 입을 벌리고 웃었다.
"네놈은 간섭자의 운명을 타고났고, 내가 통로를 열면서 나에게 적대할 운명을 부여받았다. 이 운명은 DPP로도 어찌할 수 없다. 그러나 네가 내 심장 하나를 가져감으로써, 이젠 내가 너를 죽일 수 있다."
'젠장, 어쩐지 너무 쉽다 했어.'
"다 들린다. 멍청한 놈. 심장이야 또 만들면 되는 것이고. 자기 무덤을 직접 판 기분이 어떤지 궁금하군."
'얼음 상자. 성휘, 정화, 보호, 치유.'
얼음 상자로 본인을 감싼 후, 성휘를 펼치고 세 개의 특성을 전부 활성화했다. 정신 공격은 보호가 막아주고, 물리력은 얼음 상자가 막아주고, 원소 공격은 정화가 힘들게 수비했다. 그런데도 다 막아내지 못해 신기의 몸과 마음은 상처를 입었고, 치유가 빠르게 회복시켰다.
"네 기운으로 버텨낼 수 있을까?"
'버티면 내가 이기는 건가?'
어느새 기린 외에도 박쥐와 서양의 드래곤, 동양의 용, 지렁이, 미꾸라지 등 온갖 동물들이 모여왔다.
'아, 거짓말쟁이 극혐.'
듀얼 하트라고 했는데, 심장이 수백 개는 되었다. 신기는 자신도 시스템이 수백 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아차 싶었다. 어느새 정신 공격에 당해 엉뚱한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정신일도 하사불성.'
검도장에서 아르바이트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그때는 뭔 개소리냐 싶었고, 지금도 그다지 믿지 않는다. 그러나 위급한 상황이 되자 생각나는 말이 저것밖에 없었다.
'이래서 세뇌 교육이 무섭다는 거구나.'
"귀찮게 하는군. 그럼 네 동료와 좀비 드래곤이 오붓하게 싸우도록 남겨두고, 우리는 떠나자."
D의 말에 신기가 크게 흔들렸다. 좀비 드래곤을 이용해 D를 물리친 다음 구원을 받을 계획을 세웠는데, D가 도망간다는 선택은 아예 떠올리지 못했다.
"자, 보아라."
심상을 둘러싼 막 일부가 투명해지더니, 좀비 드래곤과 힘겹게 싸우는 각성자들이 보였다. 효천이 물고 나간 심장은 오히려 조각보다 더 작아서 주먹 두 개를 합친 것만큼밖에 되지 않았다.
"일부러 작은 심장을 희생한 건 아니야. 나한테서 두 번째로 큰 심장이다. 저 정도 희생이 있어야 너와 나의 운명을 마감시킬 수 있거든."
'내가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D의 정신 공격에 신기는 그만 버티지 못했다. 노래도 부르고 시도 낭송하고 상상으로 춤도 췄다. 시간의 흐름을 잊고 지내던 신기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정보 단말, 너 왜 아무 말도 없어?'
- 얼음 상자를 거두십시오. 성휘와 보호와 치유만 펼치십시오.
얼음 상자를 없애고, 정화 특성을 꺼버렸다. 자신의 손이 서서히 지워졌다가 다시 천천히 자라나는 모습에 신기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내가 말을 걸어줘야 대답할 수 있어?'
- 성휘의 범위를 최소한으로 줄이십시오. 반드시 구형으로 펼쳐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신기는 성휘의 범위를 줄였다. 그저 자신의 몸 하나를 감쌀 정도로 작게 펼쳤고, 구형이던 모양을 차츰 자신의 체형에 알맞게 바꿨다.
- 버티면 승리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심장을 강탈하며 바뀐 운명이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그때가 되면 D는 직접적인 적대 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 D의 공격이 멈출 때마다 심장 하나씩 부수십시오. 승리는 언젠가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 작가의말
글의 구성과 완급조절이 가장 힘듭니다. 필력이 부족한 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경험의 부족도 꽤 큰 비율을 차지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음 글은, 제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장르로 해보려 합니다. 원래는 일인칭 도전하려고 했는데, 삼인칭 하나 더 써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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