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패
미술관 지하.
해가 바뀌면서 중국의 많은 지역이 독립했다. 티베트는 독립한 후 가장 먼저 인도와 외교 관계를 맺었고, 신강은 사타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하고 주변의 스탄들과 수교했다. 운남은 대리라는 이름으로 독립하고 베트남 및 태국과 친근하게 다가갔고, 해남과 광서는 독립하지 않았다. 감숙은 독립 후 이슬람 국가의 많은 원조를 받았다.
여기까지는 많은 사람의 이해 범위에 속했다. 중국 정부가 대오각성해서 민주주의로 나가나보다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길림성과 흑룡강성이 독립을 선포한 후, 한국에 귀속된 일은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많은 국가가 의심의 눈초리로 중국과 한국이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는지 살피고 있을 때, 사건의 진상은 영국에서 터졌다. 영국 정부가 전 세계를 상대로 괴물이 침공할 것임을 공표했다.
"올해 9월 20일, 전 세계는 동시에 외계 괴생물의 침입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일부 국가는 이미 준비를 시작했지만, 대부분 국가는 아직도 진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대로 흐르면 인류는 멸망에 이를 것이고, 운 좋게 승리한다고 해도 인류의 숫자가 10억 이하로 감소할 것입니다."
"이 괴물들은 화산 속에서 나올 겁니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화산에 방어체계를 갖춰야 합니다. 전 인류는 단합하여 곧 도래하게 될 재난에 대항해야 합니다. 가지고 있는 정보를 공개하고, 허심탄회하게 해결책을 상의해야 합니다."
중국이 이상한 행동만 하지 않았다면 영국 정부의 발표는 큰 파장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이 화산구 근처에 등대를 연상케 하는 건물을 지었지만, 그게 수비를 위한 건물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중국이 화산이 많은 지역을 한꺼번에 독립시키면서, 영국의 발표에 힘을 실어주었다.
영국 정부의 발표가 끝나고 두 시간 후, 미국 정부가 곧바로 성명을 발표했다.
"영국이 발표한 정보는 연방정부에서도 입수했습니다. 다만, 그 진위에 대해 영국처럼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영국에서 먼저 정보 출처를 밝히기 바랍니다. 그리고 미국은 힘이 닿는 데까지 모든 우방의 안전을 최선을 다해 도울 의사가 있습니다."
미국의 발표가 끝나자 중국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중국 정부는 영국이 발표한 정보에 관한 판단을 보류합니다. 만약 영국이 정보의 정확성을 증명할 수 있다면, 독립한 국가들이 다시 중국에 귀속하는 걸 환영합니다. 중국 정부는 국가의 영토 한 뼘과 풀 한 포기까지 수호할 확고한 의지를 갖추고 있음을 성명합니다."
영국이 급작스럽게 발표를 시작할 때 신기는 강 회장의 호출로 미술관으로 이동했고, 미술관에서 미국과 중국의 발표를 지켜보았다.
"신 상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영국의 의도, 정확히는 D의 의도가 무엇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일부러 혼란을 일으켜서 우리의 힘을 약화하려는 것인가? 그런데 잘 수습하면 오히려 D에게 불리할 텐데?'
풀리지 않는 고민은 던져버리는 게 답이다. 원인은 생각하지 않고 해결책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 오지랖이 아직 글로벌은 아니지.'
"우선 성명을 발표하도록 하죠. 길림성과 흑룡강에 남은 인구가 얼마나 됩니까?"
"대부분 중국 국적을 선택했고, 한국으로 국적을 바꾸려는 사람은 삼백만 정도라고 하네."
두 곳의 인구를 합치면 칠천만 정도다. 그중에서 삼백만 정도만 남았다고 하니, 씁쓸한 느낌도 들었다. 중국을 더럽고 미개하다 매도해도, 저들의 눈에는 중국이 훨씬 더 장래가 밝아 보이는 모양이다.
"강원도에 몰아넣죠. 어차피 흩어놔도 알아서 뭉칠 사람들이니, 아예 한곳에 몰아넣고 천천히 감화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면, 영국의 성명을 인정하는 셈이 아닌가?"
"영국의 정보를 신임한다고 성명을 발표하고,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고 전부 이주시킨다고 하죠. 굳이 영국을 적으로 상정하고 싸울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강 회장은 신기를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가끔 날카로운 면이 있지만, 시야까지 넓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물론 신기는 주적인 D가 배후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남다른 시야로 이번 일에 접근할 수 있었다.
"거기에 등대도 그렇고, 각성자 양성도 대놓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부정적인 면은 정부의 전문가들에게 고민하고 해결하게 하고, 저희는 일단 긍정적인 이득부터 취하도록 하죠."
### DUAL SYSTEM ###
서울.
"영국 정부의 성명을 듣고, 정부는 만일을 대비하여 안전 조치를 실행할 것입니다. 제주도와 울릉도 그리고 추가령의 화산구 주변에 방어 시설을 구축할 것이고, 해안선을 감싸는 방어선도 구축할 것입니다. 유사시에 대비하여 군사 훈련도 강화할 것이고, 해안과 가까운 지역들에 안전한 대피소를 대량으로 건설할 것입니다. 이 모든 비용은 정부와 태운 그룹 그리고 제운 그룹이 부담합니다."
발표가 끝나자, 기자들이 아우성을 쳤다. 그러나 기자회견은 따로 통보한다는 말만 남기고, 정부 대변인은 자리를 떴다. 전국 각지에서 사재기가 시작되고, 돈값이 똥값이 되었다. 주식이든 가상 화폐든 거래량이 바닥 쳤고, 유통기한이 긴 음식과 전투식량이 각광 받았다.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했다며 정부를 칭송하던 사람들이, 중국인을 한국 땅에 들이는 것을 반대한다고 시위를 거듭했다. 잔뜩 경쟁이 치열한 한국 사회에, 삼백만 외래종의 도래는 대부분 반기지 않았다. 물론, 그 대부분에 대기업은 포함되지 않았다.
"제주도 땅값이 폭락하고 있다네."
울릉도를 떠난 주민들은 이미 태운 그룹에 대한 칭송이 자자하다. 만약 태운 그룹이 아니었으면, 울릉도 주민들은 그저 찬 바닥에 나앉았을 것이다. 한국 최대의 화산섬이자 백 개가 넘는 화산구를 보유한 제주도의 땅값이 폭락한 것을 보고, 너나없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중이다.
"화산구를 군대로 지키고, 등대를 운영하면 제주도도 안전합니다. 모두 사들여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돈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올 것이니까요."
"자네가 여자였다면, 옷을 벗겨 꼬리가 몇 개인지 세어봤을 것이네. 자네 말을 따르다 살짝 삐끗하면 천 길 나락에 떨어지는 셈이니까."
여우 요괴로 주나라를 거덜 냈다 전해지는 달기에 비유해서 꼬리 아홉 달린 여우 아니냐는 질문이지만, 안타깝게도 신기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렇군요. 저야 확신이 있지만, 회장님은 확신할 수 없으니까요. 아차."
말을 하다 갑자기 입을 다물고 생각에 빠진 신기의 모습에, 강 회장은 바짝 긴장했다. 애송이답지 않게 늘 여유를 보이던 신기가 이렇게 긴장하는 건 처음이다.
"빨리 성명을 발표해야겠습니다. 우리가 해골 사냥하는 영상을 발표하여, 한국이 괴물을 상대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알려야겠습니다."
"이유가 궁금하네."
"영국은 다른 사람을 설득할 자신이 있는 겁니다. 아무래도 영국도 화산에서 괴물을 끄집어낼 수 있는 미끼 각성자를 보유한 것 같습니다. 영국이 발표하기 전에 저희가 먼저 발표하여, 스포트라이트를 빼앗아야겠습니다."
"한발 물러서서 이득만 챙기는 거 아니었나?"
'D가 하는 일은 이유 없이 훼방 놓고 싶거든요.'
신기는 생각을 빠르게 정리하여,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냈다.
"영국도 화산이 별로 없는 국가입니다. 아무래도 영국은 전 세계의 각성자를 빨아들이려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선수 치죠. 하현주와 공우진에게 태운 그룹 로고가 박힌 전투복을 입힌 후, 빨리 촬영에 들어가야겠습니다."
"생방송으로 하는 건 어떤가? 우리 그룹에서 후원하는 방송사가 하나 있거든."
"그게 좋겠습니다. 저는 얼굴을 비추지 않겠습니다."
### DUAL SYSTEM ###
한국.
시청률 77%. 너무 급히 진행하느라 광고주를 모집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되었다. 최근 괴물의 침입이 화제여서 한 시간 전에 공고했는데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20%로 시작했다. 그러다 해골이 모습을 드러낸 후 시청률이 수직으로 상승했다.
"방금 전투를 모두 보셨으리라 믿습니다. 저는 화면이 아니라 직접 육안으로 확인했는데도 믿기지 않네요. 그럼 태운 그룹 소속의 각성자 분들을 인터뷰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시청자분들에게 인사 해주시죠."
"안녕하십니까. 태운 그룹 등대 프로젝트팀 과장직을 맡은 공우진이라고 합니다."
"공우진 씨는 시청자들이 익숙히 아는 각성자로, 불의 마술사라는 이명을 얻으셨죠. 그때 위력이 형편없어 보였는데, 오늘 괴물을 상대하는 모습을 보니 위력이 어마어마합니다. 혹시 그때 살살 하신 건가요?"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각성자의 스킬은 일반인에게 아무 효력도 없습니다. 괴물에게만 효과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괴물의 침입을 위해 신께서 저희를 각성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어떤 각성자들이 있고, 이 각성자들이 어떤 능력이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각성자는 크게 전투형과 비 전투형으로 나뉩니다. 비 전투형 각성자 중에는 치유술을 얻은 각성자도 있습니다. 아쉽게도 일반인에게는 치료 효과가 없습니다. 탐구 스킬을 얻은 각성자는 괴물에 관한 정보와 각성자에 관한 정보를 얻어내는 역할을 합니다. 예측 스킬을 얻은 각성자는 어떤 괴물이 있고 언제 출현하는지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태운 그룹이 보유한 예측 각성자는 지금까지 괴물이 언제 출현하는지 정확한 시간을 예측해내지 못했습니다."
"전투형은 저희와 같은 원거리 타격 마법사와 근접 전투를 하는 전사들이 있습니다. 저희는 가족들에게 해외 출장이라 속이고 이곳에서 혹시 모를 재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만약 진짜 외계 괴물이 침입한다면, 저희는 일선에서 국가와 국민을 수호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싸울 것입니다."
"그렇군요. 만약 괴물이 침입하지 않는다면 헛고생을 한 셈이 되겠네요."
"저희 고생이 헛고생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공 과장님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다른 분의 생각도 들어보겠습니다."
리포터는 야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후 하현주에게로 다가갔다. 다소 긴장한 하현주가 자기소개했다.
"안녕하세요. 태운 그룹 등대 프로젝트팀 하현주 과장입니다."
"같은 여자인 저는 괴물을 보는 순간 무서워서 도망칠 엄두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하 과장님은 괴물이 두렵지 않으신가요?"
"각성자는 괴물의 천적입니다. 각성하는 순간 괴물에 대한 모든 공포가 사라집니다. 물론 혼자서 수천의 괴물을 마주하면 두렵겠죠."
"하 과장님의 스킬에 대해 설명 좀 해주실 수 있나요? 공 과장님과는 달리, 하 과장님은 시청자들에게 무척 생소할 수 있습니다."
"제가 얻은 천둥 스킬은 우레와 번개를 동반합니다. 우레는 괴물의 움직임을 느리게 만드는 효과가 있고, 번개는 괴물을 처리하는 수단입니다."
"아, 인터넷에 벌써 하 과장님의 이명이 만들어졌네요. 천둥의 여제라고 하는데, 마음에 드십니까?"
하현주는 얼굴을 붉히며 대답하지 못했다. 미리 준비했던 질문과 답변에 없는 내용이라, 머릿속이 하얘졌다.
"싫다고 하지 않으시니, 마음에 드는 걸로 알겠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럼, 다음으로 저기 보이는 외국 분을 인터뷰해 보겠습니다."
제이크에게 다가간 리포터는 마른침을 삼키고 긴장한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헬로우?"
"안녕하세요. 제이크 오너, 제이크라고 불러주세요."
"한국말 엄청나게 잘하시네요?"
"과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제이크 씨도 태운 그룹 소속입니까?"
"저는 태운 그룹 파트너입니다. 저희 집안과 태운 그룹이 파트너쉽을 맺었습니다."
"파트너쉽이요?"
"미국 최대의 유통 회사의 오너가 제 아버지입니다. 태운 그룹과 계약을 맺고 사업을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거든요. 저는 볼모로 여기 잡혀있는 겁니다. 계약을 어기면 저는 이곳에 뼈를 묻어야 합니다."
"농담이시죠?"
"마지막 말은 농담입니다."
"오너 가는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대부호인데요. 왜 이렇게 위험한 일에 뛰어든 겁니까? 혹시 모험심 때문인가요?"
"인연을 믿습니까?"
"네?"
"인연의 끈이 저를 이곳으로 이끌었습니다. 이 땅에 사업차 왔다가 각성자가 되었고, 강한 인연을 느끼고 이 땅에 남았습니다. 인연이 다할 때까지 이 땅에 남아서 전우들과 함께 어깨 나란히 싸울 것입니다."
"영국 정부의 발표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저희는 실제로 이곳에서 괴물을 상대하고 있으면서도, 괴물의 침입을 믿지도, 믿고 싶지도 않아 합니다. 영국이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가 무척 궁금합니다."
"만약 영국의 말대로 괴물이 대량으로 침입한다면, 막아낼 자신이 있습니까?"
"커다란 손해를 감수하고, 태운 그룹이 전국 곳곳에 수비 건물을 건설 중입니다. 저는 차라리 태운 그룹의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만약 정말 괴물의 침입이 현실이 된다면, 최선을 다해 막아보겠습니다."
- 작가의말
제목을 꼬장질로 하려고 했는데, 꼬장이 표준어가 아니어서 행패로 바꿨습니다. 대화를 제외하면 최대한 표준어만 쓰자는 생각입니다. 물론 가끔 분위기를 살리려고 초딩과 같은 비문을 사용하긴 했습니다.
영국 정부의 발표는 사실 D의 수작이 아닌데, 신기가 과하게 오해했습니다. D는 그저 코리아 팰러딘 킬만 주야장천 외치고 있습니다. 전과 달리 한국 때문에 영국이 뒤처지게 되었고, D가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에릭이 수를 쓴 겁니다. 예전에 파티 스킬을 알아내고 발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얘네 성향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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