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거제도 슈퍼 화장실 복도.
신기는 사람들에게 먹을 걸 구하러 함께 가자고 요청했다. 그러나 누구도 신기와 함께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 시야가 닿는 곳에는 해골이 보이지 않았지만, 핸드폰이 터지지 않기 시작하며 대부분 사람은 패닉에 빠졌다.
먹을 걸 구하고 무기를 구한 후 함께 탈출하자고 말했지만, 이들은 경찰이나 군대가 곧 구하러 올 것이라며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신기는 떨어지기 싫어하는 효주를 힘들게 달래고 혼자 밖으로 나갔다.
쇼핑 카트에 아령을 담은 후 끌고 다녔다. 고막도 없고 눈동자도 없는 해골이 사람을 어떻게 찾아낼까 생각하며 천천히 움직였다. 딱딱 소리가 들려왔다. 해골이 이빨을 부딪쳐 내는 소리가 분명하다.
앞에 해골 셋이 보였다. 돌아갈까 고민하다 해골을 처리하기로 했다. 지금처럼 벽을 타고 움직이는 게 훨씬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신기는 카트를 밀어 해골을 둘로 나눴다. 혼자 떨어진 해골을 향해 달렸다.
신기를 향해 걷던 해골은 가슴을 찔러오는 아령봉에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모았다. 신기는 곧바로 왼손의 아령봉으로 해골의 머리를 내리쳤다. 해골은 먼저 하려던 동작을 다 완성해야 다음 동작을 할 수 있다. 능숙해진 신기의 빠른 연환 동작에 해골은 손으로 가슴을 부둥켜안고 쓰러졌다.
카트 너머에 나란히 선 두 해골을 순서대로 처리했다. 해골은 다 처리했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아령봉 하나가 휘어버렸다. 많이 휘지는 않았지만 무게중심이 변하면서 정확한 타격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카트를 밀고 조금 더 가니 남자 여섯이 보였다. 해골 하나를 두고 둘이 앞에서 유인하고 하나가 뒤에서 머리를 내리쳤다. 신기와 마주친 여섯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신기도 어떻게 말을 떼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혼자세요?"
"아닙니다. 저쪽 화장실에 스무 명 정도 모여 있습니다. 저는 음식 구하러 나온 거고요."
남자들은 꽤 굵은 쇠파이프를 들고 있었다. 무게도 아령봉보다 무겁고 쉽게 휘지 않을 것 같다. 서로 눈치로 상의하던 여섯은 신기에게 합류를 요청했다.
"저희도 받아주시겠어요?"
"서로 돕고 살아야죠. 환영합니다."
신기는 아령봉을 버리고 쇠파이프 두 개 얻었다. 일곱은 음식 코너로 가서 카트 세 대를 꽉 채웠다. 해골이 나타나면 신기는 오른손으로 찌르고 왼손으로 내리쳤다. 오른손잡이라서 찌르기는 오른손이 더 정확하다.
"혹시 무술 익혔나요?"
"아닙니다.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상대하다 보니 익숙해진 겁니다."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니 이동도 빨라졌다. 셋은 소극적으로 움직였지만 셋은 해골과 싸우는 데 적극적이다. 소극적인 셋이 카트를 밀고 신기를 비롯한 넷은 해골을 처리했다.
"팔다리를 두꺼운 천으로 감싸면 방어력이 올라가죠. 최대한 챙깁시다."
돌아가는 길에 좀 유용하다 싶으면 챙겼다. 청바지와 면티를 챙겼고 청테이프도 가득 챙겼다. 실로 기울 수 없으니 청테이프로 감을 생각이다. 신기도 챙길까 하다 움직임에 방해될 것 같아 포기했다.
먹을 걸 가지고 돌아가자 작은 탄성이 터졌다. 건장한 청년 여섯이 합류하니 분위기가 훌쩍 밝아졌다. 그러나 새로 합류한 남자들의 얼굴은 그렇게 밝지 않았다. 큰 무리인 줄 알고 합류했는데 여자가 대부분이고 남자들도 풀 죽어 있다.
"서남쪽으로 6킬로 정도 가면 요트 대여하는 데가 있습니다. 요트로 탈출할 생각인데 합류하겠습니까?"
신기는 고민해보겠다고 대답했다. 남자는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출발할 생각이니 그전까지 결정하라고 했다. 지금 출발하면 바다 위에서 밤을 보내야 한다. 해골들이 바다에서 기어 나왔다고 하니 지금 출발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효주는 신기의 품에 꼭 안겼다. 살짝 미열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은 원래 체온이 조금 높다고 하는데 몇 살까지 아이이고 얼마까지 조금인지 모르는 신기는 그저 걱정만 했다.
신기는 음식을 꼭꼭 씹어서 천천히 삼켰다. 이렇게 먹어야 더 많이 먹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위에 부담이 덜해 자주 먹을 수 있다. 운동하며 하루에 다섯 끼씩 먹으려니 먹는 게 운동보다 힘들 때가 있다. 이젠 조금 능숙해진 검색으로 이 방법을 알아냈다. 물론 정보 단말을 통해 확신을 얻었다.
'정보 단말, 뭐해?'
- 분석 중입니다. 늦어도 내일까지 정보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
아마 원시 정보 단말이 활동하기 시작한 것 같다. 검술 스킬은 어떤 스킬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빨리 알고 싶다. 검술 스킬은 입문 7레벨밖에 되지 않는다. 시작이 3레벨이었던 걸 생각하면 스킬 레벨이 오르는 속도가 느리다고 봐야 한다.
스물이 넘는 사람이 모여있는데 무척 조용하다. 새로 온 여섯 남자는 자기들끼리 뭉쳐 수군거리기만 했다. 사람들은 가끔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하고 통화가 회복되었는지 체크했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정적이 깨진 건 오후 5시 정도였다. 소란은 몇 분 동안 지속했다. 누군가가 창고 방향이라고 말했다. 신기는 카트에 이불을 깔아놓고 효주를 안에 눕혔다. 바닥이 찬 것도 있지만, 바닥에 눕혔다가 사람들 발에 밟힐 것 같았다.
남자들도 대화를 멈추고 긴장했다. 신기는 쇠파이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평소 악력을 단련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러나 해골을 처리하며 힘을 과하게 써서 손아귀가 은근히 저렸다.
해골과 함께 세 마리의 푸른색 괴물이 나타났을 때 모두 똑같은 이름을 떠올렸다. 비록 영화에서 본 좀비와는 달랐지만 키가 160 정도 되고 죽은 물고기와 비슷한 눈을 가진 푸른 괴물을 모두 좀비라고 생각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좀비 한 마리가 쓰러졌다. 스물에 가까운 사람이 여자 화장실에 숨어서 비명을 질렀다. 복도에 있던 남자들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뭐냐를 남발했다.
"좀비로 보이는 괴물이 갑자기 가속했습니다. 그리고 제풀에 쓰러졌죠."
신기는 억지로 침착함을 가장했다. 말을 할 때 목과 가슴에 엄청 힘을 주어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했다. 넘어진 좀비가 느리게 몸을 일으킬 때 다른 좀비 한 마리가 두 팔을 살짝 뒤로 들었다.
쾅 소리와 함께 바닥에 눕힌 진열대가 조금 찌그러졌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는 좀비의 몸 위에 엎어졌다. 화장실 안에서는 또 한 번 비명이 터졌다. 후에 합류한 남자가 여자 화장실의 문을 닫아버렸다.
신기가 고개를 돌려보니 효주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신기는 효주에게 다가가 웃는 얼굴을 보인 후 꼭 안고 등을 쓸어주었다. 너무 놀라 호흡곤란이 왔던 효주의 숨소리가 다시 안정되었다. 늦게 발견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해골과 마찬가지로 머리가 약점일까요?"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해골의 뼈는 무척 단단하다. 쉽게 부술 수 있는 건 두개골과 하나의 갈비뼈밖에 없다. 좀비도 약점이 있을 거라고 남자는 믿고 싶었다.
"세 마리가 동시에 들어오면 처리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저랑 함께 나가실 분 없나요?"
신기와 세 남자가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겨우 몸을 일으킨 좀비가 사람이 다가오자 방향을 정하고 돌진했다. 무릎이 진열장에 걸려 앞으로 심하게 넘어졌다. 신기는 쇠파이프로 좀비의 뒤통수를 강하게 내리쳤다.
"시발, 머리가 엄청 단단해요."
신기는 손아귀로 느껴지는 반탄력에 욕설을 참지 못했다. 좀비는 움직임이 해골보다 더 느려 보였다. 신기가 뒤로 물러서자 다른 남자 하나가 아령을 좀비의 뒤통수로 던졌다. 좀비는 별 타격이 없다는 듯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마치 고무공을 때린 느낌입니다."
검도장에서 아르바이트하며 고무공을 좀 때려본 신기다. 힘 조절을 익힐 때 고무공 때리는 수련을 한다. 세게 때리면 반탄력에 본인 손이 아프고 너무 약하게 때리면 횟수가 적립되지 않는다. 좀비의 머리는 그 탄력이 고무공과 비슷했다.
넘어진 좀비가 채 일어서기도 전에 다른 좀비가 돌진했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는 좀비를 데리고 함께 넘어졌다. 무척 우스꽝스러운 장면이지만 누구도 웃지 못했다. 미리 장애물을 설치하지 않고 저 돌진을 마주했다면 좀비와 부딪혀서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신기는 힘을 좀 빼고 좀비의 목덜미를 쳤다. 뒤통수보다 확실히 반발력이 적다. 신기는 뒤로 훌쩍 물러서며 말했다.
"목이 약점 같아요. 머리보다 훨씬 만만합니다."
좀비들의 돌진에 진열대가 조금씩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안쪽은 진열대보다 훨씬 단단한 것들로 길을 막아서 딱히 두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괴물이 수십 마리씩 몰려오면 손쓸 겨를도 없을 것 같다.
세 좀비는 몸을 일으키자마자 돌진을 거듭하며 서로 엉켜서 쓰러졌다. 그래서 딱히 위협은 되지 않았다. 쇠파이프로 좀비의 목덜미를 몇 분간 내려치니 결국 목의 근육이 찢어지며 머리가 덜렁댔다.
"해골은 뼈뿐이고 이놈은 근육뿐인 거 같네요."
좀비에게 뼈가 없지는 않았다. 회색의 목뼈가 보이긴 보였다. 생선 가시에 비유하는 건 좀 과했지만 뼈가 무척이나 가늘었다.
몇 분의 시간이 더 지나서야 세 좀비의 목을 완전히 몸에서 분리했다. 몸과 머리가 분리되자 좀비들은 움직임을 멈췄다. 쇠파이프로 좀비의 몸과 머리를 건드리던 신기는 아무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기자 사체를 옆으로 치웠다.
"몸무게가 40킬로 정도 나옵니다. 해골보다 오히려 더 가볍군요."
신기는 저리는 손아귀를 쥐었다 폈다 하면서 풀어주려고 노력했다. 좀비의 목을 내려치면서 쇠파이프가 약간 휘었다. 실수로 머리나 등 혹은 진열대를 때리면서 조금씩 휜 것 같다.
"이대로는 새벽까지 버티기 힘듭니다. 지하에 가면 철물점 비슷한 데가 있는데 거기 가서 도끼나 톱 같은 거 구해보죠."
"누군가는 남아서 이곳을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몇 명이 가는 게 좋을까요?"
상의 끝에 신기를 포함해서 세 명이 좀비를 대처할 무기를 구하러 가기로 했다. 더 많은 좀비가 몰려오면 그 끝이 짐작 간다. 그러니 안전을 위해 모험할 시간이다.
### DUAL SYSTEM ###
인천 강화도.
박영광은 자신의 계획을 세 번이나 반복하여 설명하고 질문에 일일이 대답한 후 다시 강화도로 복귀했다. 작전 계획의 입안자이지만, 겨우 대위에 불과한 박영광은 자신의 담당 구역인 강화도로 돌아가야 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으니 박영광은 오늘 눈도장을 제대로 찍은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첫 무리를 다 막아내니 그 뒤로 상륙하는 해골의 규모가 작아졌다고 한다. 박영광의 지시가 필요 없이 알아서 잘 해내고 있다. 그때 해골보다 키가 조금 더 큰 푸른색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태풍, 해골은 무시하고 저 좀비만 타격해."
김태풍은 바람집을 소환한 후 좀비를 적으로 상정했다. 바람집에서 나간 바람의 칼날이 좀비의 목을 스쳤다. 두 개 혹은 세 개의 칼날로 좀비 한 마리를 처리했다. 수백이나 되는 좀비를 김태풍 혼자서 전부 처리했다.
"레벨 확인해 봐."
김태풍은 레벨을 확인했지만 그대로였다. 김태풍이 머리를 젓자 박영광의 머리는 복잡해졌다. 꽤 많이 처리한 것 같은데 레벨이 변하지 않는다. B급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이 레벨이라는 게 고정된 것인지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좀비는 목이 약점이다. 목을 겨냥해서 사격해라."
병사들에게 정보를 전한 후 박영광은 다른 부대와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모든 지역에 안배한 각성자는 레벨업을 하지 못했다. 박영광은 F급이나 E급의 각성자를 배치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최소 C등급으로 배치했기에 등급이 높아서 레벨업을 못했는지 레벨업이 아예 불가능한지 판단할 수 없다.
"가장 가까운 F급 각성자를 수배해온다. 군대 나와서 총기 다룰 줄 아는 사람으로 데려와. 레벨업이 가능한 건지 오늘 확실히 알아내야겠다."
각성자를 제외한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머릿속의 망상이 점점 현실로 구현될수록 박영광은 오히려 불안해졌다. 상상만 할 때는 무척 재밌고 통쾌했지만, 자신의 계획이 현실이 되어갈수록 두려움이 커졌다.
가끔 자신이 미친놈이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박영광은 빠르게 부정했다. 세상을 보면 미친놈이 참 많다. 그런 놈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에서 자신 정도면 정상인 범주에 속한다고 자위했다.
- 작가의말
술에 취한 사람은 안 취했다고 합니다. 제대로 미친놈은 다른 사람을 미친놈이라 매도해서 자신이 미치지 않았음을 증명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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