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 프로젝트
태운 정밀 회의실.
"건물을 지을 때 해골은 무시해도 괜찮습니다. 이리저리 걸어 다니지 않으면 제자리에 멈춰서 멍청하게 있거든요. 그리고 좀비는 장애물을 무시하고 직선으로 달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미로 형태로 하고 발목 높이의 장애물을 많이 만들면 좀비의 전진 속도를 확연히 늦출 수 있습니다."
건축 전문가들이 신기의 요구 사항을 기록했다.
"좀비는 계단을 꽤 잘 오릅니다. 계단에서 잘 넘어지지 않습니다. 계단을 걷는 프로그램을 장착한 로봇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발목 높이의 장애물에는 잘 걸려 넘어지지만 더 높은 계단은 잘 오릅니다. 그래서 아래층과 위층을 연결할 때 무척 가파른 계단이 필요합니다."
"잠시만요. 좀비 몸무게가 40킬로 정도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돌진할 때 속도는 시속 40에서 50 사이라고 합니다. 계단에 자주 부딪히면 계단이 박살 날 겁니다. 차라리 계단을 만들지 말고 줄사다리로 아래위를 연결하는 건 어떻습니까. 사용하지 않을 때면 줄사다리를 걷어버리면 되니깐요."
각성하면 일반인보다 신체 능력이 훨씬 좋아진다. 줄사다리를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 거기에 괴물에 대한 공포도 없기에 긴장해서 실수할 가능성도 작다. 신기는 전문가의 의견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게 좋겠군요. 문도 이중으로 만들어서 아래위를 격리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문제가 생기더라도 꽤 오래 버텨서 증원이나 구원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으니까요."
신기는 현재 태운 정밀 미래기획부의 차장을 맡고 있다. 젊은 나이에 차장 자리에 앉은 신기를 처음에 다들 어려워했지만, 회의 내내 일관되게 겸손한 태도를 보이고 의견을 잘 받아들이자 점점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건물은 원통형이 제일 좋습니다. 외부에서 안으로 주는 충격에 가장 견디거든요. 그래서 등대 모양의 건물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층은 많이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층마다 다른 인테리어를 해서 정신적 피로를 줄이고 집중력을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장애물을 설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 지형을 걷기 힘들 게 울퉁불퉁하게 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시멘트를 부어서 쉽게 만들 수 있거든요. 장애물보다 속도를 늦추는 데 더 효과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건물 주변에 미로를 간단하게 설치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은 쉽게 길을 찾을 수 있지만 괴물은 헤맬 수 있게 원형 미로를 하는 게 어떨까 생각합니다."
"원형 미로는 이후 고려해야 합니다. 그것까지 하려면 기일을 맞출 수 없습니다. 사람 목숨 걸린 일이라 대충 할 수도 없으니 다음에 고려하죠."
### DUAL SYSTEM ###
태운 정밀 회의실.
"해골은 두개골과 왼쪽 네 번째 갈비뼈가 약점입니다. 다른 곳을 공격하면 무시하지만 이 두 곳은 꼭 방어하거든요. 이렇게 찌르면 해골이 갈비뼈를 보호하려고 손을 움직일 겁니다. 그때 다시 두개골을 내리쳐도 해골은 손이 가슴 앞에 다 갈 때까지 다른 동작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강한 공격이 아니어도 수비합니까?"
"그렇습니다. 대걸레로 찔러도 수비합니다."
무기 전문가는 골똘히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길이 140에서 160 사이의 봉이 좋겠습니다. 한쪽은 동그란 쇠공을 달아서 조금 더 무겁게 하죠. 중간을 잡고 가벼운 쪽으로 갈비뼈를 찌른 다음, 해골이 수비할 때 봉을 돌리는 겁니다. 그러면 쇠공이 있는 부분으로 해골 머리를 부술 수 있죠."
신기는 전문가의 말에 상상해봤다. 한쪽은 뭉툭하고 다른 쪽은 단단한 쇠공이 있다. 깃대 드는 것처럼 쇠공을 위로 향하게 두 손으로 봉의 중간을 잡는다. 밑으로 향한 뭉툭한 부분으로 해골의 갈비뼈를 내리찍는다. 해골이 수비할 때 찌르기를 멈추고 두 손을 중심으로 뭉툭한 부분이 밑으로 내려오고 쇠공이 위로 향하게 돌린다. 그대로 회전하면 쇠공이 해골의 머리를 위에서 아래로 가격한다.
"혼자일 때는 괜찮습니다만 여럿이면 서로 방해가 될 것 같습니다."
"여럿일 때는 둘이 팀을 짜서 한 명이 찌르고 한 명이 내려치면 되죠. 길이와 무게 그리고 강도를 최대한 조절해서 서로 방해가 안 되게끔 해볼게요."
"그럼 좀비 말씀드리겠습니다. 해골보다 키가 더 큽니다. 하지만 몸무게는 더 가벼워요. 그리고 돌진을 하는데 준비 자세가 있어서 미리 알 수 있습니다. 좀비를 처리하는 상황은 보통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좀비가 돌진해서 벽에 부딪혔을 때 목덜미를 베는 것입니다. 좀비는 벽에 충돌한 후 넘어지지 않고 계속 서 있습니다."
"또 하나는 좀비가 장애물에 걸려 넘어졌을 때 역시 목덜미를 찍는 것입니다. 도끼가 무척 효율적이긴 하지만 자루까지 쇠로 만들면 너무 무겁습니다. 그리고 간혹 좀비가 내 정면에 엎드렸을 때가 있는데 이럴 때는 호미와 같은 무기가 필요합니다. 도끼는 반드시 측면에 가서 찍어야 하고 검은 검 끝으로 내리찍을 수밖에 없습니다."
"좀비 상대한 경험이 많으신가 봐요. 우선 벽에 부딪혔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언월도와 같은 장병기네요. 무겁기는 하지만 제대로 휘두르기만 하면 원심력으로 좀비의 목 정도는 묵사발을 냅니다. 힘이 약한 사람도 정확하게만 휘두르면 됩니다."
"그리고 바닥에 넘어진 좀비는 도끼 말씀하셨는데 여포가 썼던 방천화극 같은 무기가 가장 적합합니다. 창처럼 찌를 수 있고 칼처럼 벨 수 있으면 도끼처럼 찍을 수도 있죠. 각성자 분들은 힘이 다 세다고 들었으니 방천화극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힘이 센 분들은 벽에 부딪힌 좀비를 처리할 때도 방천화극에 힘 좀 더 주면 됩니다."
"그리고 호미 말씀하셨는데 아마 곡괭이가 더 적합할 겁니다. 날을 든든하게 세우고 무게 중심이 흔들리지 않게 잘 잡아줘야겠죠. 서유기에서 저팔계가 쓰는 무기를 좀 다듬으면 될 것 같습니다."
현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도검장 직업을 가진 중년 남자는 신기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듣고 감을 잡았다. 물론 좀비의 근육 강도와 해골의 두개골 강도 수치를 통해 정밀한 조절이 필요하다.
"그럼 제 검도 잘 부탁드립니다. 좋은 디자인 기대하겠습니다."
형태와 크기 그리고 무게를 전문가가 디자인하면 무기는 기계가 찍어낸다. 장인의 손길을 머금은 검이 더 튼튼하지 않냐고 하는 사람은 로맨티시스트다. 사람 손으로 백 개 만들어서 좋은 물건 하나 나오는 사이 기계로 수십만 찍어내면 좋은 물건 수백 수천이 나온다. 효율이 다르고 속도가 다르다. 그리고 사람 손보다 기계가 더 정확하고 힘 조절을 잘한다.
"좋은 합금으로 튼튼하고 날카롭게 만들 테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검날이 망가져도 반나절이면 새것처럼 다시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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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운 그룹 회장실.
"등대 프로젝트?"
"그렇습니다. 여러모로 알아본 결과 꽤 그럴듯해 보입니다. 팀을 결성하고 한 사람만 괴물을 잡으면 다른 팀원도 레벨을 올릴 수 있습니다."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강 회장과 김 비서는 파티 대신 팀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런 팀은 아무나 못 만드나?"
"만들 줄 아는 청년을 막내 도련님이 부서 하나 새로 만들어서 차장 자리를 줬습니다."
"막내가 좀 정신 차렸나 보군. 그래 박영광과는 무슨 얘기를 나눴다는가?"
"각성자 정보를 달라고 했답니다. 아무래도 지금 소외당하는 각성자들을 데려다가 키워볼 생각인 것 같습니다. 등급을 올리면 스킬이 새로 생긴다고 합니다. 군에 자원이 부족해 각성자들을 전부 챙겨주지 못하니 지원에서 제외된 자들을 끌어모아 키워볼 생각인 것 같습니다."
"각성 어떻게 하는지는 알아낸 게 없고?"
"저희뿐 아니라 박영광의 사람들도 감청하면서 서로 방해만 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 철수시켜. 박영광이 정보를 알아내면 바로 빼내."
김 비서는 잠깐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막내 도련님이 이혼 수속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말 정신 제대로 차렸나 보군. 재작년에 간 내 친구가 죽기 전에 나한테 그러더군. 죽기 전에 지금까지 감히 못 했던 조언 한마디 하고 간다면서. 내가 성격이 너무 세고 집안에 여자가 없어서 내 아들들이 다 불알이 쪼그라들었다는 거야. 애들 성격이 무른 게 다 내 탓이라 그거지. 그때는 별로 와닿지 않았는데 괴물이 나타나고 세상이 변하면서 자식들 하는 꼬락서니 살펴보니 정말 말이 맞았어. 뭔 일을 해도 내 눈치부터 살피더라고. 그러니 이혼도 그렇고 등대 프로젝트도 그렇고 필요한 지원은 다 해주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보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다만 큰 실수를 하지 않도록 애들에게 단단히 보조하라고 일러."
말을 길게 한 강 회장은 목이 간지러워 콜록거렸다. 김 비서는 강 회장의 기침 소리가 맥없이 들려 가슴이 아팠다. 예전에 자신을 대신해 폐를 찔리지 않았어도 지금보다 훨씬 건강했을 텐데.
"회장님, 제가 회장님 마음에 꼭 들게 다 처리해 놓을 테니 염려 놓으십시오."
### DUAL SYSTEM ###
태운 정밀 미래기획부 회의실.
"여러분, 반갑습니다. 미래기획부 차장직과 등대 프로젝트 현장 팀장을 맡은 신기라고 합니다. 엄격한 서류와 면접을 통해 등대 프로젝트 첫 현장팀으로 여러분을 선발했습니다. 프로젝트의 제반 사항은 김 비서가 여러분에게 설명할 것입니다."
강유성이 배정해 준 비서가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신기도 프로젝트 준비 과정에 참여했지만 진행 상황은 제대로 모르기에 좋아하는 과목을 듣는 학생처럼 집중했다.
"등대 프로젝트는 인류를 구원할 방향을 제시할 등대가 되라는 의미에서 프로젝트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현장의 건물이 등대와 무척 닮은 점도 있지요."
미모의 김 비서의 강연에 남자들이 무척 집중했다.
"프로토타입의 등대 설치 지역은 독도입니다. 현재 독도는 사람들이 전부 철수해서 누구도 살지 않습니다. 전기 시설과 상하수도 시설이 갖춰져 있고 유사시 울릉도에 있는 군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제 새롭게 발부한 토지 정책에 의해 독도는 현재 태운 그룹의 사유지가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태운 그룹은 방어선 밖에 있는 수많은 토지를 사들였고 그 대금으로 엄청 많은 식량과 의복 등 물자를 내놓았습니다. 금이나 은보다 더 귀중한 것들을 내놓은 셈이죠. 지금 사태가 더 악화하지 않고 이대로 진행되어도 태운 그룹이 내놓은 식량과 의복이 얼마나 가치가 뛸지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김 비서는 방긋 웃고 말을 이었다.
"물론 여러분은 이 일로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여러분이 얼마나 중요한 프로젝트에 임하고 있는지 알려주려는 것뿐입니다. 그룹의 미래와 대한민국의 미래, 나아가서 세계의 미래가 여러분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성공할 경우 부와 명예 그리고 훨씬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고 역사책에 실릴 수도 있습니다."
'피라미드 하는 데서 데려온 여자인가? 막 던지는데.'
"여러분은 무척 튼튼하게 지어진 건물에서 생활하며 괴물을 처리하고 레벨을 올리면 됩니다. 그 과정에 데이터를 수집할 것이고 이러한 데이터들은 프로젝트를 이끌어나갈 중요한 근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비밀 하나 알려드립니다. 레벨이 100이 되면 등급이 상승합니다. 그리고 등급이 상승하면 새로운 스킬을 얻을 수 있습니다."
김 비서의 말에 각성자들이 웅성거렸다. 등급이 낮거나 스킬이 별로 거나 둘 다거나 혹은 아예 스킬이 없는 각성자들이다. 대기업 정식 사원으로 받아주고 기회까지 준다니 감격에 목이 멜 지경이다.
"박철 씨와 문현 씨와 강성철 씨는 D급 각성자로 대리 직함을 받았습니다. 다른 분들도 D급을 달기만 하면 바로 대리로 승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회의의 내용은 전부 대외비이기에 미리 여러분의 핸드폰을 비롯한 연락 수단을 몰수했습니다. 그리고 이 회의가 끝난 후 여러분은 외부와의 접촉이 제한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족에게는 미리 회사에서 통보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상큼한 미소로 니들은 감금 되었습니다를 통보한 김 비서는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를 계속했다. 목숨이 걸렸고 미래가 걸렸기에 다들 김 비서의 말을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집중했다.
- 작가의말
기존 분량을 서서히 따라잡기 시작합니다. 설명충 저도 싫어하지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자연스럽게 노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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