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의 등대
독도 등대.
날씨가 허락하지 않아 괴로운 군사훈련을 이틀 더 받았다. 각성자들은 헬기로 울릉도를 떠나는 순간 위험한 곳으로 향한다는 것도 잊고 작게 환호했다. 육체적으로는 힘든 게 전혀 없지만 정신적으로 너무 심하게 몰렸다.
군용 헬기로 독도에 도착한 후 줄사다리를 통해 옥상이라고 불러야 할 등대의 꼭대기에 내렸다. 시간이 긴박하다더니 무슨 여유가 있었는지 등대의 외벽은 여러 가지 색칠로 화려하게 단장했다.
해변이라 하기에 무엇하지만 독도의 등대는 바다와 가까운 곳에 지어졌다. 그리고 발전소와 물탱크는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 설치되어 있다. 샘물을 전기로 물탱크까지 끌어올린 다음 다시 등대로 공급하는 형식이다.
전기 공급량이 백 명 이상이 살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다. 전화나 인터넷은 당연히 안 된다. 기술적 가능 여부를 제치고 어느 정도 성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비밀에 부쳐야 하기에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을 아예 제공하지 않았다.
이번 독도 팀은 총 여덟 명으로 구성되었다. E급인 신기와 D급인 박철이 당연히 소속되어있고 남은 여섯은 네 남자와 두 여자다.
가장 나이가 많은 김연교는 삼십 대 초반으로 다른 회사에 근무하다가 태운 정밀의 모집 공고를 보고 응시해서 합격했다. 해병대를 나온 김연교는 가장 믿음직한 각성자다. F급에 아무 스킬도 없지만, 전투 능력은 신기 다음으로 강하고 사람 자체가 차분하다.
대학교 재학 중에 입사한 강성철은 D급 미끼 스킬 보유자이다. 미끼 스킬은 기력을 소모하는데 박철의 기력은 회복이 느리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핵심 중 하나가 미끼 스킬이기에 경험도 쌓고 레벨도 올리기를 바라는 것이다.
문현은 D급 철벽 스킬인데 특이하게 본인의 육체가 아닌 건물을 강화한다. 일정 규칙에 부합하여 건물로 인정되는 대상에게만 작용하며 건물의 내구도를 높여준다. 미끼 스킬과 든든한 건물 그리고 괴물을 처리할 무력이 등대 프로젝트의 기본 삼 요소다. 문현은 든든한 건물 요소를 위해 팀에 넣었다.
공우진은 20대의 젊은 자영업자다. 생계를 위해 대학도 포기하고 가업을 이은 공우진에게 늘 미안해하는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태운 정밀의 모집에 응했고 합격뿐 아니라 독도 팀에도 뽑히게 되었다.
E급이고 화염 마법을 스킬로 각성한 공우진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 D급부터 기력이나 마력 등 특수 스텟이 생긴다. 물론 특이하게 D급이 되지 않아도 스킬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공우진은 아니었다.
김연교는 스킬이 없는 각성자가 등급이 오를 때 스킬이 생기는지 확인하려는 목적으로 팀에 포함했고 공우진은 D급으로 올라가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팀에 넣었다.
여자인 하현주는 E급 각성자로 스킬은 단순히 마법이라고만 되어 있다. 공우진과 마찬가지로 D급이 되었을 때 어떻게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팀에 넣었다. 그리고 또 다른 여자인 차현영은 E급에 예측 스킬을 가지고 있다.
예측 스킬처럼 발동형 스킬은 D급이 되기 전에 사용하지 못한다. 그러나 차현영은 일정 범위 안의 괴물 숫자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대부분 각성자들과 달리 차현영은 협회에서 꽤 인기가 있던 각성자였다. 더 정확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 무척 좋은 대우로 차현영을 빼 왔다.
총 다섯 층으로 나뉜 등대는 1층을 제외한 남은 네 층이 거주공간이다. 5층은 이미 주인이 정해졌기에 여덟은 남은 곳에 짐을 풀었다. 짐에 넣었던 소주를 전부 울릉도에서 몰수당한 남자들의 짐은 무척이나 단출했다.
신기와 박철은 원래 가지고 있는 게 별로 없어서 짐이 간단했다. 박철의 짐은 옷이 별로 많지 않지만 신발을 무척 많이 넣었다. 비서실에서 준 카드를 처음에는 감히 쓰지 못했는데 효주를 따라 한 번 쇼핑하러 다녀온 후 사치에 눈을 뜨고 메이커 신발을 한꺼번에 여섯 켤레나 샀다.
거제 촌놈과 다르게 서울 남자 신기는 전투화와 전투복 위주로 구매했다. 전투복은 태운 그룹의 제품도 괜찮지만 전투화는 그래도 미제가 나았다. 해골의 유난히 강한 악력과 좀비의 돌진이 주는 충격을 최대한 견뎌낼 수 있는 전투복을 구했고 옷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평소에도 전투복만 입고 다녔다.
"방은 일주일 단위로 바꿔 쓰도록 하겠습니다. 정신 건강에 좋다고 하니 방을 깨끗하게 써주시기 바랍니다."
자기 마음에 드는 방을 각자 잡은 다음 일주일 단위로 층을 바꾸고 방을 바꾸기로 했다. 좀 불편한 점이 있다면 계단이 없어서 위층으로 올라가려면 누군가가 문을 열고 줄사다리를 내려줘야 한다.
"평소에는 문 열어놓고 줄사다리 드리우고 삽시다."
김연교의 제안에 다들 동의했다. 등대의 1층은 5미터 높이이고 2층부터 5층은 3미터 높이다. 여러 가지 제한으로 크게 짓지 못해서 옥상에 헬기가 내릴 수 없다. 그래서 군사훈련을 받을 때 줄사다리로 헬기 오르내리는 훈련을 질리게 받았다.
"점심까지 쉬고 오후에 훈련하겠습니다. 목숨이 달린 일이니 다들 정신 차리고 훈련에 임하기 바랍니다. 모든 게 순조롭다면 당연히 아무 위험도 없습니다. 훈련은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허둥대지 않고 정확한 조치를 적시적으로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훈련에서 실수 없이 잘 따라와 주기 바랍니다."
미래기획부는 백 명에 가까운 각성자를 모집했다. 이들에게 신기와 박철은 거제도에서 수만 마리의 좀비를 학살하고 구출 받은 각성자로 알려졌다. 그래서 나이가 어리다고 신기의 말을 가볍게 흘리는 사람은 없다. 더군다나 울릉도에서 좀비를 상대하며 보여준 모습은 믿음직함 그 자체였다.
### DUAL SYSTEM ###
독도 등대.
"박철 씨. 스킬 사용을 10초로 해보세요."
3초, 5초, 7초 그리고 10초로 차츰 사용시간을 늘렸다. 10초 동안 스킬을 사용하니 만 마리가 넘는 괴물이 몰려왔다. 스킬을 사용하고 5분 정도 지나자 차현영이 정확한 숫자를 통계해냈다.
"박사님, 좀비 439마리에 해골 12392마리입니다."
차현영의 목소리는 조금 차가웠다. 어제 오후에 등대에 도착한 연구팀은 김연희 박사와 남녀 경호원 둘로 구성되었다. 그중 남자 경호원은 신기 일행을 구출했던 최영웅이다. 독도 프로젝트에 자원했다고 한다.
그리고 첫 대면에 김연희 박사는 신기와 하현주가 예전에 심리치료를 받은 적이 있음을 대놓고 밝혀 사람들의 빈축을 샀다.
다행히 최영웅이 제때에 나서서 김연희를 사과하게 했지만, 대부분 사람은 김연희에 대한 인상이 무척 나빠졌다. 그래서 팀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처져있다.
"신 팀장님, 무전기 잠깐 끌까요?"
처음에 성휘만 펼친 채 괴물들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리며 검으로 좀비만 처리했다. 전문가가 신기의 신체 조건을 측정해서 디자인한 검은 진짜 자기 팔처럼 느껴질 정도로 편했다. 검 자루마저 신기의 손에 딱 맞춰서 자꾸 휘두르고 싶어진다.
그러다 좀비가 많아지면 등대 1층으로 후퇴해서 정화 특성을 사용했다. 괴물이 우수수 쓰러진 후 다시 정화 특성을 끄고 해골과 좀비가 어느 정도 모여든 다음 다시 정화 특성을 사용한다. 그렇게 두 번이면 신성력이 10% 정도 남는다.
그러면 줄사다리로 2층으로 올라간 다음 사다리를 걷고 문을 닫는다. 신성력이 회복되면 남은 괴물은 정화 스킬로 처리한다. 방금 정화 스킬로 괴물을 두 무더기 처리한 후 2층으로 올라와서 쉬고 있는데 김연교가 단둘이 대화하자고 요청했다.
"지금 팀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군 생활할 때 가장 크게 느낀 건데, 전체적인 분위기가 너무 들뜨거나 너무 가라앉으면 늘 사고가 납니다. 특히 긴박한 상황에서는 작은 망설임으로 사고가 커지거든요. 팀장님이 나서서 수습하셔야 합니다."
"제가 어려서 경험이 없습니다. 조언 부탁드립니다."
"차장이나 팀장이나 같은 호칭 같겠지만, 차장은 그저 상사, 팀장은 내 상사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니 이후 다들 팀장이라고 부르게 하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저는 물론입니다만 공 사원을 비롯해 다들 대기업 정직원이 되었다는 데 무척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니 되도록 대리나 사원으로 불러주시면 단합에 도움이 될 겁니다."
"잘 알겠습니다. 김 사원."
원래 회사에서 대리를 달았던 김연교지만 태운 정밀로 옮기면서 사원이 되었다. 그러나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박철이 세 번 미끼 스킬을 사용하며 부른 괴물을 처리하며 이미 레벨이 잔뜩 올랐다. 늦어도 모레면 E급으로 올라갈 것 같다. 미리 언질 받은 대로 E급에 스킬이 생기면 바로 대리 직함을 달 수 있다.
"그리고 김 박사와도 사이를 돈독하게 하셔야 합니다. 여기에서 유일하게 위성 전화로 외부와 통신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에 대한 평가도 직접 내립니다. 저 여자는 무조건 튼튼한 줄을 잡고 있을 게 분명하니 팀장님이 저 여자랑 사이가 나빠지면 저희 팀 전체가 손해 봅니다."
완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신기는 우선 김연교의 조언을 전부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기 일을 잘하는 것 외에도 신경 써야 할 일이 무척 많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신기의 연륜과 경험 모두 부족하다.
"주제넘게 나섰는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신 팀장님을 싱싱한 동아줄로 알고 꽉 잡고 갈 생각이니 제발 튼튼하게 버텨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저 부장 정도로 만족하는 작은 그릇이니 부디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김연교의 장난과 아부가 섞인 마무리에 신기는 웃음으로 답했다. 신기는 괜찮은 팀원들을 만나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 DUAL SYSTEM ###
"박 대리, 자요?"
"형, 편하게 해요. 저보다 한참 형인데 저 불편해요."
"알았어. 다행히 나도 대리라서 반말해도 팀장님이 뭐라 하지 않겠지."
"신기 형 그런 사람 아니에요."
신기와 박철 그리고 강성철이 같은 3층에서 자게 되었다. 방이 두 개인데 신기가 독방을 쓰고 박철과 강성철이 방 하나를 함께 썼다.
"박 대리, 근데 신 팀장님 스킬 도대체 뭐야? 겨우 E급인데 위력이 너무 어마어마하잖아."
"검증기에 다 나왔잖아요. 검술 초입 6레벨이라고."
"정말 검기로 막 괴물 죽이고 그러는 거야?"
검증기에는 신기의 각성자 정보가 하나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다들 신기에 대해 궁금해했다.
"저는 처음부터 당연하게 봐와서 솔직히 지금도 별로 궁금하지 않아요."
"나도 등급이 올라갈 때 팀장님과 같은 스킬을 얻었으면 좋겠다."
"저, 강 대리님은 형이랑 동갑이거든요. 그냥 팀장이라고 편하게 불러요. 자꾸 님자를 붙이니 이상해요."
"너 아직 어려서 그래. 너 팀장님 고졸로 알고 있지? 나 인사팀에서 들었는데 명문대 수석으로 입학했는데 휴학했대."
박철은 처음 듣는 소리에 귀가 솔깃해졌다.
"다들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나랑 비슷한 생각일걸. 삼 년 전부터 이미 이 사태를 예상하고 준비해왔던 거야. 그래서 등급도 낮고 검술 스킬 레벨도 낮은데 위력이 이렇게 강한 거지. 분명 스킬을 더 잘 활용하는 어떤 방법을 알고 있어."
박철은 그제야 의문들이 확 풀렸다. 신기의 별장 지하 창고의 수많은 전투 식량과 통조림과 에너지 바에 대한 의문이 풀렸고, 옥상의 반과 남쪽 담벼락에 붙어있던 태양광 패널, 거기에 정수시설까지 갖춘 데 대한 궁금증도 해소되었다.
'그래서 날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렇게 멋진 모습을 보였던 거겠지. 지나가는 좀비의 목을 날리고 느긋하게 해골들을 노려볼 수 있었던 건 출발점부터 우리랑 달랐던 거야.'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박철은 효주에게까지 생각이 이르렀다.
'설마 효주를 구해준 것도 태운 그룹의 상속녀인 걸 알고 구해준 건가?'
상속녀가 무슨 뜻인지 제대로 모르는 박철은 아무 단어나 가져다 붙였다. 박철이 골몰히 뭔가 생각하자 강성철은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박 대리, 뭐 생각난 거 있어?"
"형이 별장에 몇 년 먹을 식량을 장만해두고 있었거든요. 아무래도 미리 이런 사태를 짐작했던 것 같아요."
강성철은 박철에게서 얻어낸 정보를 은밀히 다른 팀원들에게 풀었고 결국 경호원들과 김연희 박사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등대 안에서 신기는 졸지에 아주 특별한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물론 신기가 특별한 건 맞지만 그 핀트가 한참이나 어긋나 있었다.
- 작가의말
댓글 조언을 잊지 않고 주인공의 특별함을 가끔 언급하고 있습니다. 물론 30억이나 3년 전부터 예측했다는 것이나 다 오해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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