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 원정대
거제도 C 호텔 주차장.
신기는 박철이 든 도끼를 건네받아 골프카의 짐칸을 잠근 자물쇠를 사정없이 가격했다. 호텔 주차장까지 신기가 검을 들고 박철은 도끼를 들고 걸어왔다. 신기가 앞에서 유인하고 박철이 뒤통수를 때리는 방식으로 오는 길에 보이는 해골을 전부 처리했다. 효주만큼은 아니지만 박철도 점점 담대해졌다.
"잘 찾아봐.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내 스킬 때문에 해골이 느려진 거야. 해골을 너무 무시하다 큰코다칠 수도 있어."
별로 든든해 보이지 않는 자물쇠는 몇 번 내려치자 곧 박살 났다. 짐칸을 열어 박철이 열쇠 꾸러미 하나 찾아냈다. 하나하나 꽂다가 결국 시동이 걸리자 박철은 무척 기뻐했다. 운전을 몇 번 했지만 사실 자신감이 없었는데 생각 밖으로 일이 잘 풀렸다.
근처의 주유소에 가서 휘발유를 채웠다. 원래부터 꽤 많은 양이 주유되어 있어서 통에 담긴 휘발유를 수동 주유하자 기름통이 거의 꽉 찼다. 박철은 조심스럽게 골프카를 운전해서 슈퍼로 향했다.
신기와 박철은 골프카에서 내려 슈퍼로 들어갔다. 쇠파이프와 쇠줄 그리고 망치와 톱을 비롯한 많은 물건을 챙겼다. 옷과 신발도 넉넉히 챙겼다. 빨래하는 물을 아끼기 위해 이불도 여러 개 챙겼다.
"가지고 싶은 게 많은데 참 안타깝네요."
공짜라는 생각 때문인지 박철은 골프카에 가득 싣고도 아쉬움을 토로했다. 신기는 시간 날 때 또 오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다시 오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노선을 잘 택해서 박철은 보지 못했지만 화장실과 창고 쪽에 많은 시체가 있음을 알고 있기에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았다.
오후에는 골프카를 몰고 등대로 가려 했지만 하늘이 훼방 놓았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시야도 문제고 가벼운 골프카가 미끄러져 뒤집힐까 걱정되기도 했다. 그래서 신기는 박철에게 운동하는 법을 가르치며 시간을 보냈다.
신기는 몇 달 동안 힘도 그렇고 몸의 유연성도 많이 발달했다. 훌륭한 훈련 방법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각성하여 시간이 지나면서 육체 능력이 좋아진 것이었다. 박철은 각성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인지 힘이 무척 약했다.
몸이 좋아지고 힘이 세져봤자 그 좋아진 몸과 힘을 사용할 줄 모르면 소용없다. 택배 아저씨가 소개해 준 은둔 고수 덕분에 실전에 많이 사용하는 근육 위주로 단련하면서 신기는 몸 쓰는 법과 무기를 다루는 법을 더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돌발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박철도 몸 쓰고 무기 다루는 법을 연습할 필요가 있다.
효주도 심심했는지 1킬로짜리 미용 아령을 들고 운동에 참여했다. 볼이 빨개서 씩씩거리며 아령을 들어 올리는 모습은 귀엽기만 했다. 성휘의 치유는 체력을 빠르게 회복시켜주기에 셋은 비 오는 내내 운동 삼매경에 빠졌다.
### DUAL SYSTEM ###
태운 정밀 사장실.
"누군가 내 위성 전화로 내 핸드폰에 전화했다고요?"
강유성은 눈 밑이 거뭇했다. 며칠 전 거제도에서 아내와 둘만 구조받았다. 그리고 이튿날 아내가 정신병을 일으켜 병원에 입원했다. 핸드폰을 부순 지 며칠이 되지만 다시 개통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친딸인 효주를 잃었다. 그날 보낸 경호원들은 슈퍼에 갔지만 효주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때마침 핸드폰이 먹통이 되기도 해서 찾다가 결국 철수했다고 보고 받았다. 그 보고를 전화로 받다 화를 참지 못해 핸드폰을 벽에 던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가 정신병으로 입원했다. 강유성은 우울증약을 처방해 먹으려다 아버지의 귀에 들어갈까 봐 걱정되어 포기했다. 회사의 일은 거의 비서진이 처리하고 강유성은 그저 사인만 했다. 어차피 비서진 절반 정도가 아버지인 강 회장의 사람이니 믿고 맡겨도 된다.
"맞습니다. 이틀 연속 저녁 시간에 전화한 기록이 있습니다."
"내가 직접 알아서 처리할 테니 나가 보세요."
강유성은 조금 정신을 차렸다. 한참 고민하다 경호 회사의 박 사장을 불렀다. 태운 그룹 직계의 경호만 책임지는 내부 경호 회사가 아니라 대외적으로 사업하는 회사다. 박 사장은 시키는 일에 아무 의문도 갖지 않고 열심히 한다. 능력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박 사장을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회사에 노는 헬기가 있지 않습니까. 그냥 놀리는 것보다 봉쇄선 밖으로 가서 사람을 구해오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군부와 경찰에 비행 허가를 받아내고 태운 그룹의 이름으로 구조 활동을 펼치세요."
"사장님 분부에 따르겠습니다."
당장 전화해서 효주가 살아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강유성은 꾹 참았다. 거제도의 일은 누군가의 개입이 분명 있다. 그러니 꾹 참았다가 단숨에 터뜨려야 한다. 그래야 방해받지 않고 딸을 구할 수 있다.
### DUAL SYSTEM ###
거제도 신기네 요새.
이틀 동안 몰아치던 비바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해가 쨍쨍 내리비췄다. 을씨년스럽던 하늘이 한순간 화창해졌다. 머리에 꽃을 꽂고 다니는 여자보다 더 변덕스러운 하늘을 원망하며 평소에는 믿지도 않던 일기예보가 갑자기 그리워졌다.
"삼촌, 오늘 우리 악당 무찌르러 가는 거예요?"
'각성하면 성격도 달라지는가?'
각성한 후 효주는 겁이 사라진 듯 행동했다. 박철도 처음에는 무척 조심스러웠지만 두개골 좀 부수더니 간덩이가 부었다. 처음에 신기의 검을 욕심 내던 박철은 몇 번 휘둘러보고 자기 길이 아님을 직감했는지 도끼로 선회했다. 혼자 도끼를 들고 허공을 향해 휘두르는 모습은 조금 무섭기도 하다.
원래 둘만 가서 장애물을 설치하고 돌아오려 했지만, 효주 혼자 집에 두는 것도 걱정되기는 마찬가지라 함께 가기로 했다. 괴물이 아닌 사람이 걱정되었다. 톱과 망치 그리고 쇠파이프와 쇠줄을 비롯한 잡동사니를 가득 실은 골프카는 30킬로 정도의 시속으로 해안 도로를 달렸다.
가는 길에 해골 몇을 봤지만 무시했다. 딱히 길을 막지도 않았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기만 했다. 신기는 해골을 보고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효주에게 질문했다.
"효주는 악당이 무섭지 않아요?"
"원래 무서웠는데 이젠 안 무서워요. 왜냐면 효주는 초인이거든요."
"박철 너는?"
"머리로는 무서운 거라고 생각되는데 정작 무섭지는 않아요. TV에서 사자 보는 느낌이랄까요?"
신기는 며칠 전 슈퍼에서의 일을 회상했다. 처음에 갈팡질팡했던 건 해골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효주가 걱정되어서였다. 해골을 상대하며 떨렸던 건 목숨을 건 싸움이라서였지 해골이 흉측하거나 두려워서는 아니었다.
'시스템이나 원시 정보 단말의 수작이야?'
- 무의식에 작용해 괴물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을 통제했습니다. 쥐나 뱀, 그리고 바퀴벌레에 느끼는 혐오감 따위를 없앤 것과 같은 효과입니다.
'설마 각성자를 통제해 이상한 짓은 하지 않겠지?'
- 무의식에만 작용할 수 있고 표면 의식에는 전혀 간섭하지 못합니다. 무의식과 표면 의식의 경계가 허물어진 미친 사람이라면 일정 확률로 통제할 수 있습니다.
걸으면 멀지만 골프카로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더구나 차 한 대 없이 깨끗한 길이어서 막힘이 없었다. 무척이나 다행스럽게 원래부터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길에는 사람 시체가 보이지 않았다.
등대 주변은 대부분 암석이지만 무른 땅이 없는 건 아니었다. 둘은 땅을 파고 쇠파이프를 박은 다음 쇠줄을 묶어서 발목을 거는 함정을 만들었다. 등대 대문을 열고 쇠파이프를 가로로 대서 고정하는 것으로 좀비나 해골이 쉽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가져온 재료를 다 소모해서 장애물을 만들고 보니 어설프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신기와 박철은 자신들의 작품에 만족했다. 지식, 재료, 경험 모든 게 부족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
"넌 효주 데리고 등대 꼭대기로 가. 무전기로 괴물이 대충 얼마나 몰려오는지 알려주고. 그리고 내가 문 열어달라고 무전을 하면 미리 문 열어놓고 기다려."
원래 장애물만 설치하고 다음 날 다시 오기로 계획했다. 그러나 장애물 설치할만한 곳이 적어서 아주 빠르게 끝났다. 장애물의 숫자가 적은 데 반해 재료를 넉넉하게 쓰다 보니 정작 가져온 재료는 전부 소모했다.
박철은 벌목용 도끼보다 가벼운 장작용 도끼를 들고 무전기를 가슴에 꽂은 후 효주를 데리고 위로 올라갔다. 효주는 바둥거리는 강아지를 품에 안고 계단을 뛰어올랐다. 박철이 멘 가방에는 물과 에너지 바 그리고 약방에서 구해온 지혈제 몇 종류가 있다.
"형, 스킬 5초만 쓰고 멈출게요."
미끼 스킬을 오래 유지하면 더 많은 괴물이 몰려온다. 그래서 스킬을 짧게 쓰고 멈추기로 했다. 경험이 쌓이면 스킬의 사용 시간을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안전한 상황에서 최대한 많은 괴물을 불러다 빠르게 처리해야 최고의 효율로 레벨을 올릴 수 있다.
### DUAL SYSTEM ###
영국 노팅엄.
에릭은 동료들을 불러놓고 새로 얻은 중요한 정보를 말했다.
"우리가 기력, 마력과 같은 미지의 힘을 품고 있잖아. 이 힘은 스킬을 발동할 때와 유지할 때 소모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 우리의 몸이 힘의 흐름에 익숙해지며 스킬 경험치가 쌓이는 것이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몇몇을 보며 에릭은 이마를 찌푸렸다.
"결론부터 얘기할게. 스킬을 발동하고 멈추고를 자주 하면 경험치를 더 많이 얻는다."
대부분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정이나 원리 따위는 궁금하지 않다. 그래도 원리가 궁금한 사람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난 그 이유가 무척 궁금한데."
"기계를 가동할 때도 그렇고, 차가 시동을 걸 때도 그렇고, 기계가 이미 가동되었거나 차가 달리는 상황보다 더 많은 전기와 기름을 소모하지. 스킬도 마찬가지야. 우리가 스킬을 발동할 때 가장 처음에 많은 기운을 소모해. 발동되고 나서 유지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적은 기운을 소모하고."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어?"
"그러니까 경험치라는 게 솔직히 말하면 경험이잖아. 똑같은 경험을 늘 하면 어때? 지루하고 재미없지? 마찬가지야. 스킬이 발동되고 나서 유지할 때에는 뭔가 새로운 게 없어. 기력의 소모에 비교해서 경험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는 뜻이지. 즉 기력이 소모되는 양에 비교해 얻는 경험치가 적다는 말이야."
"그런데 스킬 발동도 자주 하면 경험치를 덜 얻지 않을까?"
"훌륭한 가설이야. 아직 확인하지 못했지만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 새로운 경험을 해야 경험치가 더 많다는 것에서, 스킬 사용 도중 본인이 직접 컨트롤 할 수 있다면 더 많은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
"그건 헌터도 할 수 있는 거잖아."
모두의 눈이 최초의 각성자로 알려진 헌터에게 몰렸다.
"아니야. 나는 스킬이 허락한 범위 안에서만 컨트롤 가능해. 스킬을 벗어나는 컨트롤은 할 수 없어."
에릭은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지금이 무척 흡족했다.
"스킬 레벨이 고급 정도로 높아지면 가능할 거라고 가정하고 있어. 그 전에는 그저 자주 펼치면서 경험치를 얻어야 해."
그때 누군가가 질문했다.
"내 탐지 스킬 말이야. 특성이 두 개 있거든. 하나는 시각 특성이고 하나는 청각 특성이야. 만약 이 특성을 번갈아 사용해도 경험치를 많이 얻을까?"
"맞아. 스킬 아래 특성이 여러 개일 때, 특성을 교체하는 순간 대량의 경험치가 발생해. 그래서 스킬 경험치는 빠르게 얻을 수 있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야."
잠시 숨을 고른 에릭이 말을 이었다.
"스킬 자체의 경험치는 빨리 오르지만, 특성의 경험치는 느리게 올라. 특성은 스킬과 달리 오래 유지할수록 경험치가 빨리 쌓이거든. 스킬 경험치뿐 아니라 특성의 경험치도 고려하면 딱히 이득이라고 할 것도 없어."
그때 덩치가 무척 큰 흑인이 입을 열었다.
"에릭, 간단하게 결론만 말해주면 안 돼?"
"스킬을 자주 발동하고 멈추고를 반복하면 스킬 레벨이 빠르게 올라. 그러나 스킬 밑에 특성이 있으면 그 특성을 오래 유지하는 게 특성 레벨을 올리는 데 좋아. 즉 스킬 레벨을 빨리 올리고 싶으면 짧게 사용하고 멈추고 특성 레벨을 올리고 싶으면 최대한 오래 유지해."
스킬 밑에 특성을 가진 몇몇이 에릭에게 다가가서 더 자세한 조언을 구했다. 사람들의 관심을 듬뿍 받은 에릭은 무척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 작가의말
글로 제 의도를 다 표현하지 못하는 때가 있고 의도하지 않은 것이 표현되는 때도 있습니다. 무협에 비교해 어려운 현대물을 굳이 쓰는 이유는 제 수준을 조금 더 높일까 해서입니다. 아직 비판을 다 감수할 정도로 흉금이 넓지는 않지만, 소중한 의견 주시면 최대한 고민하겠습니다.
물론 바로 고친다는 장담은 못 드립니다. 마음먹은 대로 노력하는 대로 모든 게 이루어진다면 인생이 고달프진 않겠죠.
Comment '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