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과 D의 담판
아프리카.
엘프 여왕과 나눈 대화는 빠르게 지휘부로 보고되었다. 지휘부의 지시를 기다리는 이들을 엘프 여왕이 비웃었다.
"힘의 기준이 통일되지 않아 아직도 원시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군. D라는 작자는 정말 무능하군."
"당신들을 보면 개개인의 자유의지를 무시하는데, 그거야말로 미개하고 원시적인 게 아닙니까?"
"개개인의 자유의지라. 너희는 힘이 없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힘을 갖춘 게 틀림없겠구나. 종족이 생존하는 데 가장 유리한 체제를 버리고 비효율적이고 위험하고 불안한 체제를 선택한 걸 보면 말이다."
"강함이란 단순한 파괴력이 아니지 않습니까?"
"진리에 근접한 지혜와 그 지혜를 현실화할 힘. 그런 자의 의지에 따르는 계급 체계가 가장 훌륭한 체제다. 진리는 무한대이기에 모든 진리를 엿볼 수 있는 자는 없다. 그리고 지혜만 갖춰봤자 힘이 없으면 무의미하다. 지혜와 힘을 동시에 갖춘 자가 종족을 통합하여 이끌어야 한다."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는 당신들 세상에는 종족이 너무 많군요."
"수천의 종족 중에서 살아남아 그 우수함을 증명한 종족들이다. 그리고 D와 손잡으면 유일한 종족으로 남을 수 있다."
"결국 당신과 D가 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난 지금 매우 멍청한 상태다. 그래서 머리가 돌아가지 않고 있지. 방금에야 D와 손잡고 남은 종족을 다 제거한 후, 나의 세상으로 돌아갈 방법을 알아냈다. 아마 D도 아주 기쁘게 내 제안을 동의할 것이다."
지휘부에서 고민이 깊은지 지시를 내리지 않았지만, 엘프 여왕은 느긋했다. 시간의 흐름이 아닌 사건의 진행만 의미 있게 생각하는 초월자여서, 초조함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느긋하게 기다리지 못하고 급진적인 선택을 한 D가 이상한 것이다.
"왜 D가 D인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네가 말한 두 이름이 나에게는 서로 다르게 들리는구나. 나는 D의 이름을 정확하게 불렀는데 너에게는 D로 들린 모양이구나."
"D가 당신과 손을 잡으리라고 확신합니까?"
"내 제안은 둘에게 모두 이득이다. 그리고 나는 공격 능력이 없어 D를 죽이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D 역시 내 생명의 막을 뚫을 수단이 없다. 그러니 손잡을 수 있다."
"당신과 D가 손잡고, 나중에 당신이 돌아가면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D의 권속이 되어 불행을 모르는 삶을 살게 되겠지. 이 세상의 법칙이 너희에게 호의적으로 돌아가서 아무 근심걱정도 없을 것이다. 물론 특별한 자들은 늘 나타나지만, D가 미리 제거하여 분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만들 것이다. 법칙을 최소한으로 거스르며 세상을 유지하다 보면 세상의 격이 높아지고, 너희도 더 고등한 종족으로 진화할 수 있다."
둘의 대화는 바로바로 지휘부로 전달되었다. 격렬한 토론을 거쳐 결국 엘프 여왕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 다른 초월자들까지 오면 답이 없다. 담판이 깨지면 엘프 여왕의 영지가 3달 후부터 확장을 시작하고, 그 확장에 자극받은 초월자들이 예상보다 더 빠르게 이 세상으로 넘어올 것이다.
"그런데 왜 약한 자들부터 넘어온 겁니까? 당신 같은 자들이 먼저 넘어오면 우리는 저항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겁니다."
"구멍이 뚫리며 법칙이 변했고, 저쪽 세상은 우리에게 적대적으로 변했다. 우리는 우선 약한 자들을 이쪽으로 보내야 했다. 저쪽 세상에 남아봤자 적대적인 환경에 오래 살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힘을 갖춘 자들이 법칙에 저항하며 힘이 약한 자들을 보호했고, 힘이 허락하는 만큼 이쪽으로 보냈다. 그러다 조건을 채워서 내가 건너오게 된 것이다."
그때 지휘부의 지시가 현장으로 전달되었다. 곧바로 제주도에 있는 심장 조각을 가장 빠른 비행기에 실어서 아프리카로 보냈다. 그 과정에 각성자들은 엘프 여왕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분쇄' 스킬을 얻은 각성자가 심장을 꼭 잡고 엘프 여왕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엘프 여왕이 수작을 부리면 바로 조각을 부숴버릴 계획이다. 물론, 부술 수 있을지 시도는 해보지 않았다.
"D, 반갑다."
그리고 침묵이 지속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엘프 여왕이 질문했다.
"D가 자신의 의뢰를 완성하면 협력한다고 했다. 두 세상 모두 사는 방법이다. 그런데 신기란 자는 누구냐? D에게 위협이 될 정도면 초월 대기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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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프리카의 일 때문에 많은 국가의 수뇌들이 모였다. 엘프 여왕과의 협력은 이미 정해졌다. 협력하지 않으면 석 달 후부터 다른 초월자들이 연이어 건너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인류는 생존할 가망조차 없다.
그러나 엘프 여왕은 신기를 죽이는 것을 협력 조건으로 내걸었다. D가 내건 조건이라고 하는데, 신기 본인은 혼절해서 사연을 묻기도 어렵다.
"대화 내용으로부터 쉽게 알아낼 수 있습니다. 초월자의 종족에 편입되면 자유의지가 모두 사라집니다. 그저 초월자의 뜻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될 뿐이죠."
"그 얘기는 이미 끝난 거 아닙니까. 자유의지를 외치다가 전 인류를 멸망하게 할 작정입니까? 그리고 자유의지가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자유의지를 발산하지 못할 뿐이죠. 그저 훨씬 엄격한 법률이 100% 집행되는 세상으로 바뀐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게 사육된다는 말이 아니면 뭡니까. 그리고 왜 굳이 신과 대면한 적이 있는 신의 사자를 죽이라고 하는 겁니까. 그건 저들이 악마의 종자라는 의심할 나위 없는 증거입니다."
"미스터 신이 신과 만났다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신과의 대화 내용도 전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 미스터 신이고, 신이 미스터 신을 불러다 경고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당신도 자기 말이 억지라는 걸 잘 알고 있겠죠?"
"제길. 그래요. 죽는 게 두렵습니다. 그런데 그건 다들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리고 탐구 스킬 각성자가 말했습니다. 초월자끼리의 대화이기에 거짓이 섞이지 않을 거라고 말입니다. 저들은 세상의 안녕과 우리의 생존을 이미 보장했습니다. 그리고 D가 이 세상을 차지한 후에도 반란을 통해 뒤집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종족으로 편입되면 역심을 품는 즉시 알아차릴 겁니다."
"많이 죽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30억이 넘습니다. 그 많은 사람의 생각을 어떻게 다 알아낸다는 말입니까. 그 정도면 초월자가 아닌 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습니까?"
두 사람이 점점 언성은 높였지만, 누구도 둘을 제지하지 않았다. 조용한 것보다 이렇게 누군가 떠들어주는 게 낫다. 침묵이 조금이라도 지속하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느낌이다.
"제가 한마디 하겠습니다. 지금 종교의 대통합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교리를 통일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신의 사자를 죽인다는 건, 굳이 괴물이 아니라도 우리 사회가 붕괴할 일입니다. 저들의 말을 들어보니 다른 괴물을 전부 소멸하고 엘프 여왕이 떠난 후에야 D의 종족으로 편입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시간이 오기 전에 인류가 멸망할 것 같습니다."
"비슷한 자를 내세워서 정기적으로 모습을 비추면 됩니다."
"각성자를 만드는 능력은 어떻게 해결할 겁니까? 다른 거야 눈속임할 수 있다 해도, 각성자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금방 들통날 겁니다."
"어차피 신의 사자가 모든 능력을 잃은 건 다들 들었을 겁니다. 의심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제가 확실하게 말해드리죠. 신의 사자는 이미 모든 능력을 잃었고, 현재 혼수상태에 빠져 겨우 연명하고 있습니다."
"소문이 사실입니까?"
"어린아이를 성추행했다는 소문은 사실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다른 건 전부 확인했습니다."
"신의 사자는 혼수상태가 된 이후 한번도 깨어난 적이 없습니까?"
"그렇습니다."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다들 같은 생각을 했지만, 누구도 입을 선뜻 열지 못했다.
"아무래도 제가 총대를 메야겠군요. 제 제안을 듣고 반대하는 사람은 손을 드십시오. 미스터 신의 몸을 아프리카로 옮겨갑니다. 그리고 엘프 여왕에게 죽이라고 합니다. 공격 능력이 없다지만, 혼수상태의 일반인 하나 죽이지 못하는 건 아니겠죠. 그리고 우리는 미스터 신이 아프리카에서 순교했다고 하면 됩니다. 숭고한 죽음으로 초월자를 감동하게 하여 인류와 손잡고 다른 괴물들을 처리한다고 하죠. 엘프 여왕의 외모는 충분히 인류의 편에 선 회개한 악당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침묵이 지속했다.
"열 세겠습니다. 반대하는 분은 손을 드십시오."
카운트가 끝날 때까지 손이 어깨 이상으로 올라간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미스터 신의 숭고한 희생에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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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강 회장이 세상 다 산 사람처럼 의자에 퍼더버렸다. 김 비서 역시 축 늘어진 어깨를 드리운 채 침묵을 지켰다.
"김 비서. 우리 신 상무를 지켜낼 수 있을까?"
"당분간은 지켜낼 수 있겠죠. 그러나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대한민국을 왕국으로 바꾸도록 도와주겠다니. 신 상무의 목숨이 참 값싸군그래."
한 나라의 왕으로 만들어주는 대가도 싸다. 김 비서 역시 강 회장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강 회장은 거절할 힘이 없다.
"신 상무 얼굴 보러 감세. 가서 내 무릎 꿇고 죄를 빌어야겠네."
"회장님, 신 상무 남은 가족들을 우리가 잘 돌보면 됩니다."
"아니야. 그걸로는 내 마음이 차지 않네."
강 회장과 김 비서는 천천히 걸어갔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걸음이 느렸다.
"처음 신 상무를 만났을 때 많이 어이없었네. 믿음도 가지 않았고. 그러나 나는 모든 이성을 던져버리고 신 상무에게 내 남은 인생과 태운 그룹을 걸기로 했네. 아마 이게 운명이겠지."
김 비서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신 상무가 내 아들 혹은 손자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수없이 생각했네. 몰래 신 상무 머리카락을 가져다가 DNA 검사도 해 보았지. 태운 그룹과 내 자식들이 잘되는 것도 무척 기뻤지만, 신 상무가 점점 큰 인물이 되는 걸 보고 훨씬 기뻤네."
별장의 의료실에 도착한 강 회장은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내보냈다.
"미안하네. 그러나 힘이 없어서 어쩔 수 없네. 오늘 오후 비행기가 도착할 것이고, 자네는 내일이면 아프리카에 도착할 거네. 그리고 거기에서 죽겠지. 자네가 들을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날 용서하지 말게. 나도 평생 날 원망하며 살 걸세."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효주가 들어왔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강 회장은 급히 눈물을 닦았다.
"우리 효주 왔구나."
"작은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아기씨 안녕하세요."
"삼촌 세수할 시간이에요."
효주는 흰 수건으로 신기의 얼굴을 꼼꼼히 닦아주었다. 귓등과 목 뒤까지 깨끗이 닦은 후 수건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강 회장은 눈물을 다 닦은 후 김 비서와 함께 의료실을 떠났다.
### DUAL SYSTEM ###
아프리카.
비행기 한 대가 콩고의 수도 브라자빌에 착륙했다. 민간인은 사용할 수 없는 군용 비행장으로, 언뜻 봐도 수천 명은 되는 군인들이 지켰다. 조금 의아한 점은 군인들의 피부색이 거의 흰색이라는 것이다.
비행기의 문이 크게 열리고 안에서 차 한 대가 내려왔다. 캠핑카로 추정되는 차는 꽤 심한 경사에도 큰 흔들림 없이 평온하게 비행기에서 내렸다.
곧 군용 지프와 오토바이들이 앞에서 길을 내고, 캠핑카가 뒤에서 따랐다. 캠핑카 안에 동승한 의사 한 명을 제외하고, 이번 '운송'에 참여한 누구도 캠핑카에 실린 사람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심지어 캠핑카를 운전하는 사람도 격리된 뒷부분에 누가 타고 있는지 모른다.
어느 정도 달린 후, 앞에서 길을 내고 뒤에서 호위하던 차량과 오토바이들이 전부 철수했다. 캠핑카 운전자마저 바뀌었다. 캠핑카는 고독하게 도로를 달렸다.
드디어 캠핑카가 니아무라기라에 도착했다. 각성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캠핑카에 올라가 들것을 들고 내렸다. 들것은 두꺼운 천으로 덮어서 누가 실렸는지 알 수 없다.
엘프 여왕이 있는 곳에 도착한 후 들것을 바닥에 내렸다. 그리고 들것을 옮긴 각성자들도 바로 떠났다. 정상에는 에릭을 비롯한 몇 명의 각성자만 있었다.
"이 자가 바로 D가 의뢰한 존재인가? 목숨이 간당간당 붙어있는데 왜 죽이라고 하는 것이지?"
"이 자를 죽여 계약의 성립을 알리십시오."
엘프 여왕은 고개를 저었다.
"D와 좀 더 대화하고 싶다. 이자가 맞는지 확인도 해야 하고, 뭔가 숨긴 게 없는지 알아봐야겠다. 얼마 전의 나는 여전히 멍청했다."
- 작가의말
극적인 연출을 위해 스토리를 갑자기 비틀지 않습니다. 이 모든 건 처음부터 예정된 순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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