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 현상
멕시코.
"아무것도 찍히지 않았습니다."
100미터 정도 크기의 괴물은 물론, 삼두사도 그저 갑자기 사라진 것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각성자만 삼두사를 물어 간 괴물을 보았다. 군인을 비롯한 일반인들은 그저 삼두사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으로밖에 보지 못했다.
문제는 괴물을 본 각성자들의 증언이 제각각이다. 크기는 모두 입을 모아 비슷하게 100미터 정도라고 하는데, 생김새는 입이 백 개면 백 가지 모양이 나왔다. 푸른 비늘이 온몸에 덮였다는 점과 크기 외에는 똑같은 모습을 본 각성자가 한 명도 없다.
"영국이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국에 연락해 보시죠."
신기의 말에 사람들이 반색했다. 보고가 층층 위로 올라갔고 핫라인을 통해 영국으로 연락하고 있을 때, 신기의 위성 전화가 울렸다. 중요한 일이 아니면 연락하지 말라고 했기에 신기는 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팰러딘, 여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 빨리 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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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향하는 전용기 안.
"제이크."
"우선 보내준 영상은 봤어?"
"그래."
지구에 침공한 여덟 종류의 괴물을 여덟 종족이라고 불렀다. 동남아와 중국 서부에 나타난 괴물은 동혈족, 남미에 나타난 악어 따위들은 늪지족, 그리고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 일부에서 나타난 불사족. 그러나 사람들은 언데드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한국과 일본, 러시아의 극소수 지역과 중국의 절반 정도 되는 지역에 넓게 퍼진 이 언데드들이 미친놈처럼 후지산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물론 영상으로는 같은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지만, 이미 영상을 다 본 신기는 이들의 목적지가 후지산임을 알 수 있다.
"미끼 스킬도 안 먹힌다고?"
미끼 스킬을 사용해도 일체 반응도 보이지 않고 후지산으로 달려가고 있고, 후지산에 도착한 언데드들은 화산구 안으로 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사할린에서 새로운 괴물이 나왔어. 박철 말로는 시체 지휘관이라고 하는데."
몇 분 후 새로운 영상이 도착했다. 갑옷을 차려입고 손에 검인지 지휘봉인지 구분이 안 가는 무기를 든 30미터 크기의 괴물이 바다 위를 걷고 있었다. 미친 듯이 달리는 다른 괴물들과 달리, 이 괴물은 물론 몇몇 시체 조종사도 느리게 움직였다. 신기는 이들이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리한 소들은 도살장 방향으로 가면 버티면서 안 끌려가려고 애쓴다.
"영국에서 연락이 왔어. 언데드 최종 보스가 나올 거라고 말하던데."
신기는 자신의 정보를 불러와서 확인했다. 이제 40레벨, 최종 보스를 마주할 때 어깨를 당당하게 펼 수 있는 레벨은 아닌 것 같다.
"비행기 좀 더 빨리 몰아줄 수 없어요?"
다행히 아직 제정신이어서 따블은 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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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산.
후지산 화산구와 꽤 가까운 곳에 지어진 등대가 있다. 꽤 넓은 이 건물은 옥상에 헬기가 착륙할 수 있다. 신기는 등대 안에서 성휘를 최대로 넓은 범위로 펼치고 후지산 화산구로 향하는 괴물을 처리했다. 가끔 신기의 성휘를 가로지르고도 쓰러지지 않고 화산구로 뛰어드는 구울이 보였다.
'신성력이 있었으면 살아남지 못했을 텐데.'
하지만 융합되기 전이였다면 지금쯤 신성력이 이미 다 말라버렸을 것이다. 지름 300미터 범위의 괴물들이 픽픽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신기는 성휘의 레벨을 확인했다. 여전히 고급 4레벨인 걸 확인한 신기는 암울함을 느꼈다.
"시체 조종사 한 마리가 5킬로미터 밖에 왔습니다. 위치는 조종사에게 이미 알렸습니다."
신기는 곧바로 2층 옥상에 가서 헬기에 탑승했다. 2층이라고 하지만 실제 높이는 10미터에 가까워서 구울도 건물을 뛰어넘는 게 아니라 피해 다녔다. 하지만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 조종사는 이미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갑시다."
굳이 각성자가 아닌 조종사를 택한 건, 이 조종사의 운전 경험과 기술이 가장 뛰어나기 때문이다. 30미터 높이로 이동하는 헬기 밑으로 괴물이 픽픽 쓰러졌다. 성휘가 원구형으로 발동되기에 이동 중에도 괴물을 처리할 수 있다. 원구형이기 때문에 범위가 커질 때 기운의 소모가 그렇게 늘어났고, 허공과 땅 밑에서 헛되이 낭비되는 신성력이 무척 많았다.
"고도 50미터로 조절합니다."
조종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신기에게 통보했다. 시체 조종사가 가까워지자 50미터 높이로 올라간 헬기는 시체 조종사의 머리 위에서 작은 원을 그리며 선회했다. 얼마 안 지나 시체 조종사가 쓰러지고 조금 더 기다리니 시체가 사라졌다.
흰 구슬이 통통거리며 위로 떠 올랐다. 수백 개의 촉수가 합쳐져서 벌이는 짓이다. 조종사는 조심스럽게 헬기의 고도를 낮췄다. 흰 구슬이 헬기 높이로 오르자 특별히 만든 작은 문을 열고 구슬을 잡았다.
"등대로 돌아갑니다."
조종사는 등대에 착륙한 후 신기가 내리자 문을 꼭 닫았다. 철벽 각성자들이 강화한 이 헬기는 웬만한 충격은 다 견뎌내기에 등대보다 오히려 더 안전하다. 하지만 머리로 안다고 해서 두렵지 않은 건 아니어서, 조종사는 단맛이 강한 사탕을 세 개나 입에 넣었다.
"제이크, 얼마 남은 것 같아?"
사흘을 자지 못한 신기는 무척 피곤하다. 정화를 고정해놓고 잠을 자도 되지만, 온갖 잡념이 괴롭혀서 도저히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세 시간 정도면 끝날 것 같아. 시체 조종사는 이젠 더 없고, 시체 지휘관만 남았어. 이놈은 아직도 바다 위를 걷고 있지만, 곧 상륙할 거야."
통화를 마친 신기는 심호흡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곧 끝나간다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졸음이 몰려왔다. 억지로 졸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정신이 번쩍 들게 할 소식이 전해졌다.
"팰러딘, 큰일이야. 아이슬란드 화산의 봉인이 모두 깨졌어."
정수리에 얼음물을 세 동이 부어도 이 정도로 정신을 차리기 힘들 것 같다. 졸음이 순식간에 달아났고, 불안감을 강하게 느낀 신기가 다그쳐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그리고 모두라고?"
"그뿐이 아니야. 아이슬란드에서 새로운 괴물이 쏟아져나오고 있어. 기존 괴물들과 달리 이들은 유럽, 정확히는 영국을 향해 움직이고 있어. 그리고 비행하는 괴물도 무척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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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팅엄.
"에릭, 빨리 대피해야 해."
새로 나타난 괴물은 기력에 약하지만, 마력에 저항력이 강하다. 영국은 넓은 해안선에 등대를 운영하기 위해 범위 살상형 마력 사용자를 키워주는 데 주력했다. 기력만 먹히는 시체 조종사 덕분에 기력 사용자도 키우기 시작했지만, 그 시일이 아직 짧아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맥, 나는 위기에 강한 남자야. 내 긴장감이 조금만 더 높아지면 뭔가 얻어내는 게 있어."
복고 열풍이 불고 있다지만, 쥐라기 시대까지 복고하는 건 좀 과했다. 아이슬란드의 화산들에서 동시에 쥐라기 주민들이 뛰쳐나와 하늘을 날고 바다를 헤엄쳐서 영국으로 달리고 있다.
"탐구!"
몇 초의 시간이 흐른 뒤 에릭이 급하게 소리 질렀다.
"봉인 각성자 불러. 이 장식품 D의 심장 조각이야. 이 조각을 빼앗기면 D를 절대 막을 수 없어."
급히 달려온 봉인 각성자가 장식품에 봉인 스킬을 사용했다. 혼자로는 부족해서 또 한 명 부르고 나서야 봉인이 끝났다.
"한국으로 가자. 팰러딘에게 이 심장 조각을 맡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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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신기가 헬기를 타고 출발했다는 소식이 특별팀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이들은 현재 혼슈 동북쪽에 있는 화산에서 신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헬기가 착륙할 수 있고 비상식량이 구비 된 등대가 세워져 있어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형, 화산이 이상해요."
신기를 기다리며 심심한 나머지 박철은 화산 안에 괴물이 얼마나 있을까 측정하다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자 바로 제이크를 불렀다.
"아우, 뭐가 이상해?"
제이크는 동생이라는 말보다 아우라는 말이 더 입에 붙었다. 책으로 한국어를 접한 폐해가 이렇게 가끔 드러난다.
"화산 안에 괴물이 없어요. 그런데 느낌이 예전이랑 달라요. 뭔가 말라버린 것 같은 느낌?"
제이크가 화산에 대고 봉인 스킬을 살짝 사용하더니 역시 깜짝 놀랐다.
"화산이 봉인되었는데? 확실하지는 않지만, 내가 봉인한 것보다 더 단단한 것 같아."
이상 현상이 발생하고부터 화산에서 괴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설마 봉인되었으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않았다.
제이크는 곧바로 위성 전화를 걸어 신기에게 연락한 다음, 미국에도 알렸다. 태운 그룹은 역량에 한계가 있어, 미국이 현재 신기를 중심으로 한 동맹의 수뇌부 역할을 하고 있다. 아마 반 시간 안에 지구의 대부분 국가와 세력이 이 사실을 전해 들을 것이다.
'대가리 잘 굴리는 놈들이 많으니까 알아서 각성자 보내주겠지.'
생각도 한국말로 하는 미국 공민 제이크는 화산이 봉인된 일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현실적인 일은 제이크가 고민하고 괴물과 관련한 일은 신기가 고민하기로 이미 합의가 되었다.
특별팀의 다른 사람들은 화산이 저절로 봉인되었다는 말에 기뻐해야 할지 두려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효주는 자기 팔보다 더 긴 빗을 들고 효천의 털을 빗겨주면서 시간을 보냈고 최영웅과 가가와는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토론했다. 다만, 이들이 하는 추론의 근거가 전부 만화책 내용이라 신빙성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없다. 의문을 가질 필요조차 없는 헛소리기 때문이다. 물론 둘의 토론을 진지하게 듣는 박영광 같은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아즈미는 가끔 효주를 목말 태워주며 효천이 털을 빗기는 걸 도왔다. 효주의 키가 140센티에 육박하면서 아즈미와 비슷해졌지만, 힘은 효주 열 명과 줄다리기해도 이길 정도로 아즈미가 세다.
박철은 갑자기 미끼 스킬이 먹히지 않는 데 대해 겁을 먹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미끼 스킬을 제외하면 식별과 철벽밖에 없는데, 철벽 스킬을 수련해 괴물과 싸울 때 앞에 나가 몸빵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싸우는 데 재능이 없고, 싸우는 걸 두려워하는 박철에게는 최악의 상황이다.
"형, 미끼 스킬의 원리가 뭘까요?"
"인류가 사냥을 시작하며 수많은 방식으로 사냥감을 유인해 왔어. 그중에 하나쯤은 미끼 스킬의 원리와 닿아있지 않을까?"
박철은 돌아가는 대로 사냥에 관련된 책을 찾아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미끼 스킬의 원리를 알고 사용하면 더 많은 응용이 있을 수 있다. 그저 신기에게만 의지하기에는 사태의 흐름이 범상치 않다.
"왔다."
신기를 태운 헬기가 착륙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눈이 흐릿한 신기가 헬기에서 내렸다. 치유를 사용해도 졸리는 걸 안 졸리게 만들 수는 없어, 몸 상태는 정상이지만 정신적으로 무척 피곤을 느끼고 있다.
"후딱 해치우고 잠 좀 자자."
대부분 사람이 야외용 지프 두 대에 나눠 타고 효주는 효천의 등에 타고 움직였다. 어느덧 효천이 종의 한계를 뛰어넘어 곰보다 더 강해졌다. 효주의 강화 스킬을 가장 많이 받은 이유도 있고, 등급이 불불이나 반달이보다 하나 더 높은 이유도 있다. 불불이와 반달이는 효주의 지휘에 즉각 반응하지 않기에 효천만 데리고 왔다.
지휘관의 약점은 심장이었다. 그러나 누구의 무기로 가슴을 찔러도 심장에 닿지 않을 것이다. 몸통 두께가 6미터에 가까운 두툼한 체형이어서 가장 긴 아즈미의 검으로 찔러도 심장에 닿는다는 보장이 없다. 더구나 아즈미의 검은 날도 끝도 세우지 않아 찌르기에 적합하지도 않다.
그리고 느릿느릿 움직이던 지휘관은 공격을 받자 엄청 날렵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동 속도도 빠르고 공격도 무척 빨라서 회피가 어려웠다. 다행히 모두 방어력이 강해 한 방에 즉사하지 않아 신기의 치료를 받을 기회가 있었다.
효주는 효천에게 임시 스킬로 불멸의 안개를 부여했다. 시체 조종사의 구슬을 먹은 효주는 본인에게 별다른 변화가 없고 교감할 수 있는 동물에게 불멸의 안개 스킬을 임시 부여할 수 있다. 효주를 태운 효천은 지휘관의 검인지 몽둥이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 무기에 얻어맞고 깽깽거리며 도망쳤다.
지금까지 꽤 빠르지만 일행이 반응 못 할 정도는 아닌 속도로 움직이던 지휘관이 갑자기 돌진하는 좀비처럼 빠르게 효천을 덮쳐갔다. 신기가 치유로 효천의 상처를 다 회복시켰지만, 겁에 질렸는지 아픔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효천의 동작이 조금 굼떴다.
"소환."
가끔 본인 혹은 누군가가 위험에 처하면 박영광이 소환 스킬을 사용했다. 구슬을 먹고 얻은 불멸의 안개 스킬이 소환체에게 부여되어 박영광 역시 효주와 마찬가지로 방어력이 부족하다. 그러나 소환체를 계속 유지하는 것도 박영광의 기력으로 부담되기에 소환과 역소환을 반복했다.
"나 끝났다."
박영광의 소환체가 막아서자 지휘관이 무기로 후려쳤다. 아까와는 달리 지휘관의 무기에 검은 안개가 넘실거렸고, 지휘관과 무기를 부딪친 소환체가 조각나며 사라졌다. 한꺼번에 기력이 다 사라지자 박영광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효천을 쫓던 지휘관이 목표를 바꿔서 박영광에게로 향했다. 박영광을 향해 내리치는 첫 공격을 아즈미가 막아내고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두 번째 공격은 가가와가 검은 안개로 감싼 주먹으로 막아낸 후 날려났으며, 세 번째 공격은 최영웅이 맨몸으로 막아내고 박영광의 곁에 쓰러졌다.
네 번째 공격을 하려고 지휘관이 검을 추켜들었을 때, 박철이 외쳤다.
"멈춰!"
- 작가의말
“멈춰!”
박철의 반말에 화가 난 지휘관이 검인 줄 알았던 돌기가 잔뜩 난 몽둥이를 박철의 **에 찔러넣었다. 이 글은 순식간에 19금 딱지가 붙었고, 동심이 충만하여 이 글을 읽던 새싹과 꽃봉오리들이 튕겨 나갔다. 선호작은 마이너스 수치를 기록하여 글쇠는 어쩔 수 없이 1천 편으로 글을 조기 종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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