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메테우스
규슈섬.
저녁 식사가 갓 끝난 시점에 때아닌 재판이 열렸다. 태운 영지 육군에 소속된 헌병대 재판관들이 위성 전화로 법률 조언까지 받은 후 판결을 내렸다.
"피고 김성무의 예비 각성자 자격을 박탈하고 육군 예비대에서 축출합니다. 우선 대마도로 이송하고 한국에 들어가면 정식 재판을 받게 될 겁니다."
이십 대 초반의 어린 청년이 눈물을 줄줄 짜며 애원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육군 헌병대 강화 각성자들이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번쩍 들어서 임시로 지어진 감옥에 가뒀다. 육군 대부분은 스킬이 없는 각성자지만 헌병대는 전원 강화 스킬 보유자로 구성되었다.
"영국이 이상하게 방해를 하네요."
예비 각성자였던 청년은 검은 구슬을 몰래 숨겼다가 효주의 곰돌이에게 들켰다. 심문 과정에 검은 구슬이 요새 수십만 원씩 거래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규슈섬에 온 이후 다들 바쁘게 지내다 보니 외부의 소식에 어두워서 대부분 사람이 모르고 있던 사실이다.
자세히 알아보니 영국에서 최근 검은 구슬을 비싼 가격으로 사들이고고 있다. 구슬을 많이 가진 자들은 어떻게든 한국으로 찾아와서 각성하려고 하지만, 몇 개 없는 자들은 차라리 팔아서 돈이라도 벌자는 심정이다. 이미 서른 개가 넘는 국가에 검은 구슬을 사는 구매처를 만들었다.
"그니까요. 지금 같은 하 수상한 세월에 돈보다 안전이 더 중요한데, 저 사람도 참 딱하네요. 고작 수십만 원 때문에 각성자가 될 기회를 놓쳤다니."
"그리고 유럽 연맹에서 구슬을 통한 각성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한다고 합니다. 몰래 각성하려다가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아 아예 금지하려고 한다는데요."
"이해가 되지 않네요. 유럽에 각성자가 넉넉한 것도 아닐 텐데."
재판을 구경하던 두 사람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유신이 정보 단말에 질문했다.
'구슬로 각성자를 만드는 거, 혹시 자제해야 해?'
-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응원합니다.
정보 단말이 말할 수 없다면서 사실상 대답은 해주었다.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이라는 뜻이다. 신기는 좋은 일을 많이 하는 훌륭한 어른이 되기로 결심 내리고 곧 행동에 옮겼다.
"오늘은 서른 명을 각성시키겠습니다. 그리고 모두에게 확실하게 전해주세요. 구슬 숨기다가 들키면 영지에서 쫓겨날 거니까 절대 소탐대실하지 말라고요."
하긴 일 년 정도 기간은 사람의 가치관을 바꾸기에 너무 짧다. 돈은 언제든 휴짓조각이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건만, 아직도 돈을 탐내는 사람이 많다. 아마 저 예비 각성자는 들켜도 별일 있겠나 싶어 구슬을 몰래 숨겼을 것이다.
태운 그룹의 한계가 여기에서 드러났다. 아직은 대기업 이미지가 강해서 기껏해야 해고하겠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있다. 엄연히 헌법을 제외한 기타 법의 제정과 집행을 할 수 있는 자치 세력인데 사람들에게는 실제 위상보다 만만하게 보인다.
예비 각성자 서른 명의 각성을 도운 후 파티에 편입했다. 스킬을 각성한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걸 확인하고 바로 파티에서 내보냈다. 현재 특별팀이 한 개 파티, 전투형 각성자들과 일부 각성자가 같은 파티, 육군에 소속된 각성자들이 한 개 파티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육군 파티에 당분간 소속될 예정이다.
공식적으로 하루의 업무를 끝낸 신기는 동맹국들의 요청으로 각성을 도우러 출발했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의 부호나 정치가들이 규슈섬을 찾았다. 신기도 굳이 구슬을 받지 않고 공짜로 도와주었다.
"용병 회사의 이름은 프로메테우스로 정했습니다. 등대를 밝힐 불은 우리가 인류에게 전하죠."
태운 그룹의 등대 프로젝트가 이미 인류를 수호하는 이미지를 선점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용병 회사는 프로메테우스라는 이름을 짓고 인류를 구원하는 이미지를 만들기로 했다.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거인족의 신 프로메테우스는 신기도 대충 알고 있다. 정화 특성을 깨우려고 신화를 공부하면서 몇 번 접했던 이름이다.
"정말 멋진 이름입니다."
신기는 지금 거의 용병 회사로 마음이 기울었다. 지분 따위는 아무래도 좋고 용병 회사에서 신기에게 100% 자율권을 약속했다. 신기 마음대로 한다는 뜻은 아니고, 회사가 안배한 일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아직 확답을 주지 않은 건 우선 A급을 달성하고 자기 몸값을 정확히 가늠한 후 최종으로 결정할 생각이다. 그리고 해골이나 좀비가 아닌 다른 괴물에게 정화가 먹힐지, 먹히더라도 어느 정도 위력을 보일지 아직 모른다. 지금까지 검술 스킬이라고 속여왔기에 다른 괴물을 상대로 위력을 보이지 못하면 난감해진다.
'93레벨. 레벨업이 빨라졌다 느려졌다 종잡을 수 없구나.'
예전에 등급이 낮을 때는 확실하게 느끼지 못했지만 C급이 되고서부터 레벨 하나 올리는 데 필요한 경험치가 들쑥날쑥함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30에서 31까지 괴물을 20만 마리 처리했다면, 31에서 32가 되는 데 단 10만 마리만 필요할 때가 있다.
덕분에 신기는 레벨과 등급에 대해 자주 고민했고 레벨을 높이는 건 호환성을 높이는 과정이고 등급을 높이는 건 호환성이 확실히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갔다는 징표임을 유추해서 정보 단말의 확인까지 받았다.
백두산에서 눈사람 병정 마법을 얻고 마력 스텟을 얻은 후, 상호 작용으로 기력 스텟이 변화했다. 그 뒤로 레벨이 오르는 데 필요한 경험치가 확 줄어들었다. 두 배의 경험치라고 해도 레벨이 오르는 속도가 같은 B급인 효주와 천양지차다.
"위에서 새로운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하현주, 박철 그리고 강효주를 끌어들이면 총 10%의 지분을 드린다고 합니다. 하현주가 3%이고 박철과 강효주는 각각 1%입니다."
하현주의 중요성은 말하면 입 아프고 박철 역시 비슷한 효과를 가진 스킬 보유자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스킬의 범위나 위력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약간 우스운 얘기지만, 현재 박철은 한 번 펼친 스킬로 10만 마리 이상의 괴물을 모아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효주는 미국에서 인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어린이들의 우상 1위가 효주고 2위가 신기다. 프로메테우스의 본질은 수익을 추구하는 기업이기에 효주의 영입은 회사 이미지 제고에 무척 큰 영향을 끼친다.
"강효주는 태운 그룹 직계입니다."
"저희는 지분 구조를 복잡하게 만들 생각이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10%는 미스터 신에게 드리는 겁니다. 이 세 사람을 설득하는 것 역시 미스터 신 몫이죠. 우리는 조건을 제시할 뿐 미스터 신에게 무엇도 강요할 생각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대화하는 사이 마지막 사람까지 각성을 끝냈다. 신기는 치유로 빠르게 치료해 주었다. 그저 특성을 사용하는 것보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확실히 경험치가 더 많다. 그러나 각성자는 쉽게 아프지 않아 갓 각성했을 때가 가장 경험치를 많이 준다.
"오호, 강화 스킬을 얻었어."
일반 각성자들과는 달리 이 부르주아 각성자들은 강화 스킬을 가장 선호했다.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힘이 넘쳐나고 몸이 튼튼해진다. 마치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어 괴물을 상대할 일이 없는 이들에게는 가장 탐나는 스킬이다.
"주님의 보살핌에 감사드리고 미스터 신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신기는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몇몇 부호가 다가와서 레벨업을 해달라고 요청했고 신기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길지 않은 사회생활을 통해 적당히 튕길 줄 알아야 더 매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이크 덕분에 미스터 신이 스킬을 얻는 걸 도와준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설마 진실인가요?"
"진실이었으면 좋겠지만, 저도 모릅니다."
대화 몇 마디 더 나눈 후 휴식을 핑계로 신기는 특별팀에 배정된 방으로 돌아갔다. 효주가 개와 곰들을 데리고 방 하나를 차지하고 세 남자가 남은 방을 차지했다. 신기가 도착하니 최영웅과 박철이 맞고를 치고 있었다.
"팀장님, 와서 한 게임 어때요?"
"저는 됐어요. 룰도 제대로 모릅니다."
둘도 맞고에 싫증 났는지 화투를 거뒀다. 박철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누가 핸드폰 게임을 만들면 대박을 터뜨릴 텐데. 한국만 해도 최소 백만 명이 할 거예요. 돈만 있으면 게임 회사 하나 만들어 떼돈 벌겠다."
"돈 벌어 어디에 쓰려고. 어린놈이 돈독이 올라서는. 쯔쯧."
"형처럼 여자에 환장한 것보다는 나아요."
"어허, 이놈이 막 기어오르네."
"힘은 내가 더 세요."
박철은 갓 B급이 되었다. 효주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박철은 C급에서 B급이 되는 데 효주보다 반 배 정도 더 많은 경험치가 필요했다. D급까지는 어찌어찌 비슷한 경험치가 필요해서 나름 공식도 만들고 했지만 C급부터 개인의 편차가 심하다.
입씨름하던 최영웅과 박철은 곧 몸 씨름으로 넘어갔다. 힘이 약한 최영웅이 기술 전수를 명목으로 박철을 괴롭혔다. 외로움을 잘 타는 박철은 최영웅의 괴롭힘을 은근히 반기며 자주 성질을 긁어댔다.
둘이 하는 짓에 동생이 생각나서 마음이 울적해진 신기는 수건을 들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분해하는 데 한 시간, 조립하는 데 두 시간 걸리는 이 집은 특별팀만을 위한 호화 주택이다. 다른 각성자나 기술자들은 여덟이나 열둘씩 방 하나를 함께 사용한다.
### DUAL SYSTEM ###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의 지휘관들이 망원경을 들고 태운 그룹 육군의 전투를 지켜보았다. 지금까지는 특별팀이 괴물을 처리하고 남은 각성자들은 뒷정리를 하는 데에만 동원되었다. 처음 공개적인 장소에서 각성자로 이루어진 군대의 전투가 벌어진 셈이다.
신기의 특별팀은 헬기로 규슈섬 가장 큰 화산구로 새벽에 출발했다. 철벽 스킬을 사용하는 각성자 두 명까지 대동했다. 식량도 넉넉히 챙겨서 보름 정도 화산구에서 괴물을 처리할 계획이다. 규슈섬의 수복은 태운 그룹 육군이 맡게 되었다.
"오, 저 무기는 우리 중국의 언월도와 극히 흡사하군요. 그리고 금강봉이라는 무기는 수나라와 당나라 때에 사용하다가 사장된 무기입니다."
미끼 스킬 각성자 네 명이 지휘관의 신호에 맞춰 동시에 미끼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을 사용한 지 몇 분이 안 되어 구울들이 혀를 빼문 미친개처럼 달려왔다. 박철이 스킬을 사용했을 때는 이의 절반도 안 되는 시간에 괴물이 도착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미끼 스킬 사용자 중에서 박철을 능가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미끼 스킬을 여럿이 함께 사용하면 고등급의 괴물 비율이 높아집니다. 둘일 때는 좀비 비율이 높고 넷일 때는 구울 비율이 높습니다. 셋일 때는 조금 애매합니다."
태운 그룹 육군 소속의 장교가 유창한 영어로 해석을 곁들였다.
"저 전투복의 디자인을 혹시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로열티를 드리지요."
구울의 팔에 얻어맞고 쓰러진 각성자를 갈고리로 어깨의 매듭을 걸어 쭉 끌어당겼다. 그리고 치유 각성자가 달라붙어 급히 치료했다. 상처가 오래될수록 치유에 드는 기운이 많아지기에 최대한 빨리 치료하는 게 핵심이다.
치료가 끝나자 벌떡 일어선 각성자가 새로운 무기를 받아들고 다시 전장에 뛰어들었다. 끝내 한쪽 발목을 못 쓰게 만든 후 각성자들은 바로 뒤로 물러섰다. 소음기를 단 총을 든 각성자가 일정한 거리에서 무릎쏴 자세로 세 발을 갈겼다. 머리를 맞은 구울이 곧바로 쓰러지자 각성자들이 구울의 시체를 끌어다 한쪽에 쌓았다.
"물론 가능합니다. 제가 돌아가는 대로 영지에 보고하도록 하죠. 그리고 보시다시피 구울을 상대하는 팀은 다양한 구성이 있습니다. 저기 혼자서 구울을 상대하는 각성자는 격투 스킬을 얻은 각성자입니다. 임무는 구울을 최대한 오래 붙잡고 있는 것이죠. 혼자서 구울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은 특별팀 팀장을 비롯해 열 명도 되지 않습니다."
"세 명이 팀을 짠 것은 각각 철벽 스킬과 강화 스킬 그리고 일반 각성자입니다. 철벽 스킬이 유인하고 강화 스킬이 발목을 찍습니다. 일반 각성자는 상황을 봐가며 둘을 돕죠. 가장 많이 사용되는 조합입니다."
과연 혼자서 구울을 상대하는 각성자보다 셋이 팀을 이룬 조가 훨씬 많았다.
"그리고 여섯 명이 한 팀을 이룬 건 스킬이 없는 각성자입니다. 우선순위는 삼인조이고 구울이 많으면 단독조가 일부 구울을 잡아둡니다. 그러고도 구울이 남으면 육인조가 출동합니다. 저들은 구울을 잡아 둬도 좋고 처리해도 좋습니다. 전투복이 있어 머리만 조심하면 안전합니다."
용병 회사 프로메테우스의 지분을 위해 태운 그룹이 홍보에 나섰다.
- 작가의말
사실 정상적인 루트는 주인공이 회귀하자마자 프로메테우스 같은 회사 혹은 길드를 세우고 다른 길드에서 쫓겨나거나 아예 문턱도 밟지 못한 멍청한 각성자들을 데려다가 키웁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보잘것없는 각성자들이 하나같이 뛰어난 각성자로 변모하죠. 그러면 예전에 쫓아내거나 모욕을 주며 거절했던 길드들이 다시 집적거리고 각성자 본인이 통쾌하게 받아치거나 주인공이 나서서 멋있게 거절하며 사이다를 만듭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사이다를 주인공이 PPL 용도로 소모하면서 어쩔 수 없이 48화에 이르러서야 회사가 생기고 이름을 얻습니다. 그것도 미국 자본가들이 만들고 주인공은 겨우 5-10% 지분만 보유합니다. 언젠가는 정상적인 루트도 한번 밟아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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