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골용 레이드
후지산.
당연한 얘기지만, D의 부하는 계속 줄어들었다. 적당한 규모로 줄어들자 신기는 마법과 검술을 거두고 성휘와 정화 특성만 펼쳤다. 에릭은 기력이 회복되는 대로 해골용을 향해 탐구 스킬을 펼쳤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효천은 키가 60센티 정도까지 작아졌다. 사자처럼 갈기가 나기도 하고, 몸에 호랑이처럼 무늬가 나기도 하고, 표범처럼 점이 막 찍히기도 하다가, 뱀처럼 비늘이 돋기도 했다. 꼬리가 여러 개로 변하기도 하며 온갖 기괴한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평범한 개의 모습이 되었다.
효천은 더 무서운 모습으로 변하고 싶었는데, 효주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결국 개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크기와 모양이 결정되자 심장 조각을 소화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공룡이 얼마 남지 않자 해골용은 다시 신기 일행을 공격했다. 아까와 달리 효천이 아닌 특별팀을 우선으로 처리하려 했다. 아까는 갑자기 심장 조각이 존재를 드러내어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고 효천에게만 정신이 쏠렸지만, 이제는 조금 '이성'을 되찾았다.
박영광이 소환으로 해골용의 발톱 공격을 막은 후 그대로 쓰러졌다. 현재 박철과 박영광 그리고 효주 이렇게 세 명의 짐이 있다. 효천이 작아져서 효주를 태우지 못하기에 효주도 짐이 되었고, 박철과 박영광은 스킬 한 번 제대로 쓰고 나서 짐으로 변신했다.
박철도 철벽을 익혔지만, 스킬 등급이 낮아서 별 소용이 없다. 고급 정도는 되어야 불멸의 안개와 결합하여 해골용의 공격에 즉사하지 않을 정도가 된다. 그리고 에릭은 짐이라고까지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도움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다. 반응이 느린 효주나, 스킬 사용 후 탈진한 둘과 달리 에릭은 알아서 해골용의 공격을 피할 정도는 된다.
최영웅이 정면으로 해골용의 공격을 수비하고, 가가와와 아즈미가 보조하는 식으로 근근이 버텼다. 신기가 치유로 셋을 바로바로 치료해주기에 당장은 버틸 수 있지만, 기력의 소모가 엄청나다. 시간이 흐르면 특별팀이 불리해진다.
"효천이, 물어!"
요코의 훈련 덕분에 곰과 개들은 물어뜯는 방법과 앞발로 후려치기 그리고 몸통으로 부딪치는 전투법들을 익혔다. 물론 스킬이 된 게 아니어서 괴물보다는 사람에게 더 유용한 전투법이다. 그저 물어뜯는 것과 스킬로 물어뜯기를 얻은 것은, 괴물을 상대할 때 땅과 하늘만큼 차이가 크다.
효천은 효주가 겁먹은 것을 알고 화났다. 심장 조각의 소화가 채 끝나지 않았지만, 몸 안에서 넘실거리는 강대한 힘이 효천을 하룻강아지로 만들었다. 효천은 쏜살같이 달려 해골용의 여덟 발 중 하나에 올라가서 '발목'을 덥석 물었다.
크기가 작아지기 전의 효천이라면 비벼볼 정도가 되지만, 선키가 60센티 정도로 줄어든 효천의 주둥이로는 어마어마하게 굵은 뼈를 물 수가 없다. 효천은 문다고 생각했지만, 마치 아교로 붙인 것처럼 해골용의 뼈에 찰싹 붙었다.
공룡들도 곧바로 방향을 바꿔 해골용을 향해 뛰어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해골용의 다리에 붙은 효천이 목표이다. 효천이 죽으면 마나가 그대로 흩어지고, 해골용은 흩어진 마나를 수습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해골용은 효천은 그대로 두고 달려오는 공룡들을 향해 뿔과 발로 공격했다.
아주 잠깐 숨돌릴 기회를 얻은 신기는 성휘의 범위를 줄이고 치유에 기력을 퍼부었다. 치유 덕분에 기력의 회복이 빨라져서 박철과 박영광은 다시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정신은 여전히 멍해서 세 번째는 장담할 수 없다.
"맥, 마력을 다 소모해서 가장 강한 마법을 펼쳐줘. 박철, 한 번만 더 해골용을 멈춰. 나도 절반 정도의 힘을 쏟아 해골용을 공격할 거야. 우리 공격이 해골용에게 적중하면 에릭이 전력을 다해 탐구를 써줘. 제이크, 네가 신호를 줘. 거꾸로 하나까지 센 후에 구령을 내리면 동시에 스킬을 쓰는 거야. 에릭은 한 호흡 쉬고 스킬 사용하고."
신기가 한국어로 지시하고, 제이크가 맥과 에릭에게 전달했다. 몇 시간의 전투에 모두 제정신이 아니다. 도망칠 생각보다는 어떻게든 해골용을 해치울 생각만 가득했다. 모두 본능적으로 여기에서 물러서면 끝이라는 걸 직감한 듯하다.
"쓰리, 투, 원, 고!"
"멈춰!"
박철이 완전히 기절해서 정신을 놓고 쓰러졌다. 박영광이 박철을 등에 업은 후 끈으로 전투복의 매듭들을 연결했다. 두 손을 놓아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박철이 박영광의 등에 찰싹 달라붙었다.
맥의 엘리멘탈 드래곤은 해골용의 머리를 집요하게 노렸다. 괜히 다른 부위를 노리다가 뼈 사이로 공격이 빗나갈까 봐 걱정되어 머리만 노린 것이다. 마력을 다 쏟아부은 맥도 탈진했지만, 박철처럼 기절하지는 않았다. 엘리멘탈 드래곤이 빠르게 줄어들며 해골용의 머리를 향해 온갖 공격을 퍼부었다.
신기는 절반 정도의 기력을 해골용의 목뼈로 날렸다. 검술 스킬의 보정이 있어 명중률에 자신이 있기도 하고, 목뼈가 요해였던 삼두사가 생각나서 요행을 바란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목뼈를 공격받은 해골용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의외로 가가와도 합류했다. 가가와가 날린 기력 덩어리는 해골용의 척추에 붙은 날개를 두드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가가와는 신기가 백두산에서 했던 것처럼 모든 기력을 모으지 못했다. 기력이 남은 덕분에 짐이 되지는 않았지만, 위력 역시 기대할 정도가 아니어서 가가와에게 큰 역할을 바라기도 어렵다.
"탐구!"
에릭이 모든 기력을 짜낸다는 생각으로 탐구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나 의지가 부족한지 노력이 부족한지 모든 기력을 쏟지는 못했다. 그리고 긍정적인 정보보다는 부정적이지만 꼭 필요한 정보를 얻어냈다.
"스켈레톤 드래곤 다음에 좀비 드래곤이 나옵니다. 둘이 합체하면 막아낼 수 없습니다."
"그 뒤에 구울 드래곤도 있는 건 아니지?"
"둘이 합체하면 구울 드래곤이 되겠지."
맥과 최영웅이 에릭의 말을 받았다. 그러나 신기는 이들의 대화를 무시했다. 해골용의 가슴에 붉은빛이 생겨나서 신기의 주의력을 다 끌어갔다.
"해골용 가슴에 붉은빛이 보이는 사람?"
신기의 말에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유독 효주만 신기의 말에 호응했다.
"효천이도 봤대요."
"제이크, 해골용 가슴을 향해 봉인 스킬을 사용해 봐."
"구체적인 위치."
단순히 가슴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면적이 너무 컸다.
"해골용 기준 왼쪽에서 서른여섯 번째 갈비뼈부터 시작해서 마흔여덟 번째 갈비뼈 사이."
"아라비아 숫자."
"36부터 48 사이."
한국어를 마스터하다시피 한 제이크도 긴장했는지 아라비아 숫자로 위치를 다시 확인했다. 손을 앞으로 내밀던 제이크가 신기에게 말했다.
"좀 더 접근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공룡들은 일편단심으로 효천만 바라보기에 일행을 대담하게 앞으로 걸어갔다. 일행 기준으로는 꽤 멀지만, 해골용 기준으로는 가까운 거리에 멈춘 후 제이크가 봉인 스킬을 사용했다.
"봉인!"
짐이 하나 늘었다. 에릭이 제이크를 업고 맥이 끈으로 둘의 전투복을 연결하는 걸 도왔다. 유리 가공을 업으로 삼았던 맥이어서 그런지 손놀림이 무척 빠르고 정교해서 순식간에 끝냈다.
신기가 앞으로 성큼 다가가서 성휘를 최대로 펼치고 정화 특성을 활성화했다. 제이크의 봉인 스킬에 붉은빛이 흐릿해졌고, 해골용의 움직임이 삐걱대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서 공룡들이 효천을 덮쳤는데, 효천의 입은 해골용의 뼈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가가와, 아즈미, 최영웅. 공룡들을 처리하며 효천을 보호해."
셋이 효천 주위에 다가간 후 신기는 정화는 물론 성휘까지 멈췄다. 3/4 정도로 회복된 기력을 전부 짜내 검환을 만들어, 봉인 스킬에 정신을 못 차리는 해골용의 가슴을 향해 날렸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신기의 귀에는 픽 하고 불이 꺼지는 환청이 들렸다.
"박철이 깨워."
기절한 박철의 입으로 물을 부어 넣었다. 기도로 물이 들어갈 위험에 처하자 박철이 캑캑거리며 깨어났다.
"박철, 저놈이 죽었는지 확인해."
박철은 제정신이 아닌지 코에서 도로 흘러나오는 물을 혀끝으로 핥았다. 당분이 가득한 음료를 입에 부어주니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신기를 바라봤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해."
박철이 일주일 잠을 자지 못한 사람처럼 눈을 거슴츠레 뜨고 식별 스킬을 사용했다.
"살았어요."
말을 마친 박철이 바로 기절했다. 신기도 멀미하듯이 메스꺼운 속을 억지로 참고 버티고 있었는데, 뼈가 다 분리된 놈이 살아있다고 하니 기가 막혀 기절하고 싶었다.
'눈사람 병정.'
1분 사이에 많은 기력이 회복되어 눈사람 병정을 소환했다. 일부는 공룡들을 앙증맞은 주먹으로 두드렸고, 대부분은 해골용의 뼈를 공격했다.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은 전부 전투에 참여했다. 에릭과 박영광도 등에 업은 제이크와 박철을 내려놓고 등대 안에서 망치 혹은 도끼를 찾아들고 해골용의 뼈를 두드렸다. 심지어 효주마저도 자루가 무척 긴 공사장에서나 사용할 법한 해머를 들고 뼈를 부쉈다.
공룡이 전부 처리되자 최영웅과 가가와 그리고 아즈미도 합류했다. 가가와는 주먹에 검은 안개를 두르고 두드렸고, 최영웅은 계속 사용하던 자루가 짧고 머리가 큰 망치를 이용했다. 아즈미는 검과 방패를 바닥에 놓고 등대에서 자루가 짧은 망치를 찾아 양손에 들고 뼈를 두드렸다.
"스킬을 써서 공격할 수 있으면 최대한 스킬을 써."
적대적인 마나가 가득한 효천의 공격, 봉인 스킬 때문에 약해진 원래 세상과의 연결, 신기의 기력과 신성력 그리고 적대적인 마력까지 담긴 공격. 이 세 공격이 엎친 데 덮치는 바람에 해골용은 그만 거대한 덩치를 유지할 힘이 사라졌다. 그래서 '심장'은 육체를 포기하고 존재를 숨겼다.
"척추를 찾아서 먼저 부숴."
효주는 척추가 뭔지 몰라 그저 때리던 뼈를 계속 부쉈고, 다른 사람들은 신기의 지시에 따라 척추로 보이는 뼈들을 우선 공격했다.
- 육신을 많이 훼손하면 심장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정보 단말이 드물게 주동적으로 정보를 전해왔다. 정신을 차린 제이크도 적당한 무기를 찾아서 척추를 부수는 행렬에 참여했다. 유독 박철만이 깨어나지 못하고 쓰러져 있다.
"사람 부를까?"
해골용의 모습을 갖추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뼈가 너무 많았다. 삭은 뼈처럼 부수기 쉬운 것도 아니어서, 시간이 너무 걸린다. 그러나 신기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정신 차리면 빠르게 부술 수 있어. 아까 기력을 다 쏟아내고 힘들어서 그래."
과연 반 시간이 흐른 후 신기가 힘쓰기 시작했다. 검에 기력을 실어 척추뼈로 여겨지는 뼈들을 1분에 하나씩 부쉈다. 발가락뼈, 날개의 마디뼈도 척추뼈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어 구분이 어려웠다.
"다들 조심해. 해골용의 심장이 나타나면 공격보다는 회피를 먼저 하도록."
한 시간에 가까운 시간에 겨우 뼈 하나를 부순 효주를 구슬려서 기절해 누워있는 박철을 지키게 했다. 효천은 해골용의 뼈를 오독오독 씹다가 뱉어버렸다. 신기 다음으로 효천의 공헌이 가장 크고, 세 번째는 가가와다. 무기를 기력으로 강화할 수 있는 최영웅이 그나마 선전하고 있고, 남은 사람들은 효주보다 더 능숙하다뿐이다.
기력을 회복한 박영광이 소환체를 부르니 조금 도움이 되었다. 불멸의 안개를 두른 소환체가 뼈를 부수는 속도는 가가와보다 빨랐다. 그러나 기력 소모가 심해 몇 분 안 되어 소환체가 사라졌다.
"다들 물러나. 심장이 곧 나올 것 같아."
신기는 1초에 뼈를 2번에서 3번 정도 내리친다. 대충 1분에 140번에서 160번 정도 때려서 뼈 하나를 부수고 있다. 신기는 무척 느리게 느껴졌지만, 사실 엄청 빠른 편이다. 새로 만든 검과 마스터 등급에 이른 검술이 아니었다면 훨씬 오래 걸렸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신기와 효천만 남아 해골용의 뼈를 부쉈다. 가가와와 최영웅 그리고 아즈미가 남은 사람들을 가운데 두고 삼각형을 이루었다. 박영광도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기력을 짜내 소환 스킬을 사용하려고 정신을 집중했다.
"어, 저기다."
아까와는 달리 신기와 효천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도 붉은빛을 뿜는 심장을 보았다. 미처 신기가 반응하기도 전에 효천이 달려가서 자기 몸통보다 더 큰 심장을 물어뜯었다. 말만 심장이지, 차라리 커다란 루비의 모습에 더 가깝다.
신기는 다시 성휘를 펼치고 정화와 치유 특성을 활성화했다. 사정을 모르고 보면 그저 효천이 커다란 물건을 물고 장난치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신기는 거대한 힘의 충돌을 여실히 느꼈다. 괜히 끼어들었다가는 거대한 반탄력에 신기가 다칠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관망하기만 했다.
반 시간에 걸린 '사투' 끝에 효천의 승리로 끝났다. 효천은 빛이 사라진 심장에 흥미를 잃고 효주 곁으로 달려가 머리를 비비며 아양을 부렸다. 신기는 성휘를 넓게 펼치고, 해골용의 뼈와 심장이 사라지고 구슬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 DUAL SYSTEM ###
아프리카 동해안.
엘프는 생육 능력이 없다. 엘프가 대를 이어 번식할 수 있는 이유는 걷는 나무집에 있다. 걷는 나무집은 육체가 노화에 접어든 엘프를 먹고, 어린 엘프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화산구에서 기어 나온 나무집은 할 일 없이 걷기만 했다. 예상보다 빠르게 나와서 늙은 엘프가 없다.
D는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는 나무집을 덥석 물고 바다로 들어갔다. 하늘을 나는 게 가장 힘들고 땅에서 걷는 게 다음으로 힘들다. 하늘과 땅보다 바다에 마나가 더 많기에, 바다가 가장 편하다. 물론 바다의 마나는 D에게 친숙한 지구의 마나로, 괴물들에게는 적대적이다. 저등급 괴물은 괜찮지만, 고등급 괴물은 최대한 바다를 피하려고 한다.
바다의 도움으로 적은 마나를 소모하여 걷는 나무집의 마나를 전부 강탈했다. 적대적인 마나지만, D 정도 되면 포용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아이슬란드로 돌아갈까 아니면 마나를 좀 더 회복할까 고민할 때 갑자기 해골용의 기운이 사라졌다.
짧은 고민을 끝으로 D는 우선 남미로 향했다. 그곳에서 새로 나타난 고등급 괴물을 처리한 다음 다시 일본으로 가도 시간이 넉넉하다. 시체용 혹은 좀비 드래곤으로 불릴 불사족의 마지막 초월자가 사흘 뒤면 후지산에서 기어 나온다. 방해꾼과 좀비 드래곤의 싸움 결과를 보고 다음 행보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
- 작가의말
글이 며칠 막히다가 갑자기 잘 써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날에는 많이 쓰고 싶은데, 꼭 그런 날에 외출할 일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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