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 요청
홋카이도.
신기와 박철은 잠깐 휴식하기로 했다. 현재 신기는 36레벨이고 박철은 A급 3레벨이다. 박철이 A급이 되고 3레벨이 오르는 사이에 신기는 무려 10레벨이나 올랐다. 박철은 불공평하다고 신에게 불평하다 신의 아들로부터 정의의 철퇴를 얻어맞았다. 신기가 바로 치료해 주었지만, 팔뚝에 맞은 딱밤은 마치 회초리 열 개를 묶어 후려치는 느낌이었다.
"팰러딘, 나 혼자 돌아왔어."
공우진과 김태풍은 결국 미국에 설득당해 미국 공민이 되었다. 특별 이민법이 아주 빠르게 발안 및 통과되었고, 두 사람은 현재 제이크와 같은 미국 공민이다.
"상관없어. 어차피 나랑 역할이 겹쳤으니까."
둘은 구울까지가 한계다. 범위 살상형이라 특별팀에 어울리지 않았다. 혹시나 제이크의 봉인 스킬이 시체 조종사에게 먹히는 것처럼 특정 괴물에게 바람 혹은 불의 마법이 효과를 보지 않을까 했는데, 지금까지는 아무 쓸모도 없었다.
기분 나쁘지 않은 건 아닌데, 어차피 떠나보내도 가장 상관없는 둘을 제이크와 함께 보냈다. 신기가 개의치 않자 제이크도 마음을 놓았다.
"영국이 아이슬란드의 화산을 전부 봉인했다는데."
소식은 늘 제이크가 훨씬 빨랐다. 신기는 제이크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럼 봉인 각성자가 한 명이 아니라는 뜻인데?"
"최소 세 명이야. 음탕한 놈들."
"음흉한 놈들이야. 그나저나 쿠바 쪽은 효과가 있어?"
"남미 쪽에서 일단 반응이 왔어."
제이크는 핸드폰의 동영상을 재생했다. 뱀이라고 부르면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거대한 뱀이 무수한 부하들을 거느리고 움직였다. 가장 끔찍한 건 화물트럭보다 더 큰 머리인데, 하나가 아니라 세 개나 달렸다.
"지금 뒤에 달고 있는 괴물이 3백만이 넘어."
리자드맨이라고 불리는 걸어 다니는 도마뱀, 몸통 길이가 1미터 정도밖에 안 되는 악어, 몸길이가 8미터 정도 되는 거대 악어, 그리고 소를 닮은 체형이지만 꼬리가 없고 악어처럼 비늘로 덮인 비늘소가 뱀의 뒤를 따랐다.
"이래서 공우진과 김태풍이 필요했던 거구나."
거대한 뱀은 모르지만, 부하 괴물은 예외 없이 불에 약하다. 물론 뭔가를 태워서 생긴 불이 아닌 각성자의 마법으로 불러낸 불에만 큰 약점을 보인다. 아무래도 합체기 풍화륜의 위력을 알고 무척 탐났던 것 같다.
"미국 정부에서 네가 도와주면 섭섭지 않게 대가를 치르겠다는데."
"일본 봉인 때문에 힘들다고 그래. 나올지 안 나올지 확실하지 않은 구슬을 준다면 글쎄."
최근 일본의 등대가 안정화되고 신기와 박철이 흑룡강과 사할린섬의 괴물을 처리하는 바람에 중국의 괴물들이 오히려 이쪽으로 몰려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규슈섬의 화산을 우선 봉인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고 실행 일정까지 다 짜놓은 상태다.
"그럼 우선 상대를 애태우고, 상대가 충분히 많은 칩을 배팅했을 때 거기에 구슬 하나 얹을게. 급한 건 우리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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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팅엄.
"맥, 팰러딘에게 지원 요청을 해야겠어."
"뭔 소리야? 갑자기 왜?"
"너 D를 오랜 시간 안 봤지?"
맥은 사할린섬에서 장식품을 통해 D의 모습을 보고 그 뒤로는 한 번도 보지 않았다. 에릭의 종용에 맥은 기린을 닮은 장식품에 손을 얹었다.
아름다운 빛깔로 가득 찬 바다에서 거대한 생물이 헤엄치고 있다. 산을 멀리서 바라보면 작아 보인다. 그러나 눈앞의 괴물은 아무리 먼 곳에서 바라보아도 거대하게 느껴질 것 같다. 무척 거대해 보이지만, 왠지 몸길이가 100미터 정도일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맥, 반가워. 이젠 내 말이 제대로 들리지?"
맥은 상대가 '웃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누구지 고민하다가 상대가 D임을 알았다. 장식품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상대니까 당연히 D여야 한다.
"음, 반가워."
"애석하게 되었어. 이젠 현신이 끝나 되돌릴 여지도 없어. 나는 이 세상을 멸망시키고 새로운 '저급 지성체'의 출현을 기다릴 거야."
"다른 길은 없어?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 세상에 협상의 여지가 없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어."
"내가 격을 낮춰 세상에 현신했기에 반드시 모든 지성체를 소멸해야 해. 세계의 법칙을 따라야지."
"우리를 다 죽일 거야?"
"내가 아닌 내 부하들이. 일주일 남았어."
다시 에릭의 사무실로 돌아온 맥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이성보다 감성이 우위인 맥은 D의 말을 듣고 절망했다. D의 말을 자꾸 의심하고 분석하려는 에릭과 달리, 맥은 D와의 대화에서 단순한 언어를 통한 전달 이상의 무언가를 느꼈다.
"팰러딘에게 모든 사실을 다 말할 거야?"
"아니. 그저 D가 세상을 멸망하려 한다고 말하면 다 알 거야. 팰러딘은 우리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갖고 있으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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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슈 후지산.
신기의 특별팀은 헬기로 출동했다. 제이크와 박철, 최영웅과 가가와, 효주와 아즈미, 그리고 박영광까지 동행했다. 이들을 태운 헬기 두 대가 먼저 출발했고, 조금 뒤에서 화물트럭 크기의 곰들과 곰보다 조금 호리호리한 개를 밧줄로 달아맨 헬기 세 대가 안간힘을 쓰며 힘겹게 따라왔다.
"듀라한의 구슬은 어떻게 처분할 거야?"
"미안하지만 내가 먹어야겠어. 내가 빨리 A급 다음에 뭐가 있는지 확인한 다음 버스 태워줄게."
"버스? 에어 버스 태워준다는 뜻이야? 내 큰 형이 몇 년 전에 하나 장만했었는데."
후지산에서 듀라한이 기어 나왔다는 소리에 바로 출발했다. 신기가 직접 처리한 시체 조종사가 열 마리 넘고 특별팀에는 김태풍과 공우진 그리고 요코를 제외하고 전부 흰 구슬을 복용했다. 김태풍과 공우진은 미국에서 돌아오지 않아 복용하지 못했고 요코는 복용시켜야 할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전번 것보다 덩치가 더 커 보이는데?"
"맞아. 키가 2미터 정도 더 커."
헬기가 착륙하기 전이지만, 감각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둘은 이번에 나타난 듀라한의 키가 지난번에 잡은 괴물보다 더 크다는 걸 발견했다. 헬기가 서둘러 평평한 곳을 찾아 착륙하자 곧바로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아즈미와 가가와 그리고 최영웅이 먼저 상대해. 적당히 상대하다가 박영광이 스킬을 사용하고. 가능하면 팰러딘의 도움 없이 넷이서 처리했으면 해."
아즈미는 키보다 조금 더 긴 검과 키보다 조금 작은 방패를 들고 앞장섰다. 흰 구슬을 먹고 육체의 방어가 더 뛰어나게 변했다. 듀라한이 휘두른 아즈미의 몸통보다 더 큰 주먹을 방패로 막아내자, 물리법칙으로는 절대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이 펼쳐졌다. 몸무게가 50킬로그램도 되지 않는 아즈미가 빠르고 강한 듀라한의 주먹질을 제자리에서 막아냈다.
최영웅은 육체 강화와 무기 강화의 특성을 얻게 되었다. 원래는 육체 강화뿐이었는데 새롭게 무기 강화를 얻으며 두 개의 특성으로 분화되었다. 철벽과 육체 강화와 불멸의 안개를 두르고 무기 강화로 손에 든 망치를 단단하게 만든 최영웅이 듀라한의 왼쪽 발목을 두드렸다.
듀라한의 왼쪽 주먹은 가가와가 막아내고 오른쪽 주먹은 아즈미가 막아냈다. 방어력은 방패를 든 아즈미가 더 강하지만, 최영웅이 왼쪽 발목을 두드리고 있기에 빠르게 반응해야 하는 왼쪽 주먹은 경험이 더 풍부한 가가와가 맡았다.
"왔어."
최영웅이 괴물의 왼쪽 발목과 발등을 난타하다가 느낌이 왔는지 소리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가가와와 아즈미도 슬금슬금 물러섰다. 듀라한은 한쪽 발목을 잃은 구울처럼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박영광."
제이크의 지시에 박영광이 앞으로 나섰다. 소환 스킬을 사용하자 키가 3미터에 달하고 무시무시한 기세를 뿜어내는 사내가 나타났다. 강인한 인상의 사내는 전신에 짙은 안개를 두르고 있었다. 흰 구슬을 먹고 얻은 스킬이 박영광이 아닌 소환체에게 귀속되었다.
허리춤의 검을 뽑아낸 사내가 괴물의 다리를 베었다. 박영광이 공략한 왼쪽이 아니라 오른 다리의 무릎 바로 아래를 검으로 연신 베었고, 괴물은 주먹으로 사내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사내는 전혀 수비할 생각도 없이 괴물의 주먹을 묵묵히 견뎌내며 도끼로 나무 찍듯 연신 괴물의 다리를 찍어댔다.
사내가 갑자기 뒤로 훌쩍 물러서더니 밖에 두른 안개가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덩치가 조금 커진 사내가 도움닫기를 하며 검을 크게 휘둘러 괴물의 다리를 힘껏 베었다. 괴물의 오른 다리가 베어지는 동시에, 괴물의 주먹에 얻어맞은 사내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사라졌다. 기력이 한꺼번에 소진된 박영광이 다리에 힘이 풀려 땅에 쓰러졌다.
"가가와."
제이크의 지시보다 한발 빠르게 가가와가 뛰쳐나갔다. 오른쪽 다리를 잃은 괴물이 바닥에 쓰러지며 머리가 나타났다. 처음과는 달리 최영웅과 아즈미가 괴물의 손뼉치기 공격을 막아주고 가가와가 듀라한의 말을 닮은 머리를 두드렸다. 긴장했는지 다급해서 잊었는지 낭아질풍권을 외치지 않았다.
괴물의 체구에 비해 다소 작지만, 가가와보다 더 큰 머리가 가가와의 권격에 갓 빚은 메주처럼 으깨졌다. 괴물이 이빨을 셋에게 연신 날렸지만, 셋 모두 통증을 참아내며 공격과 방어를 늦추지 않았다. 쏘아진 이빨에 입은 상처는 신기가 치유로 바로바로 치료해 주었다.
신기가 공격에 가담하지 않고 듀라한을 처리했지만, 일행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았다. 신기가 치료해주지 않았다면 2분이나 괴물의 이빨 공격을 버텨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가가와는 신기가 모든 기력을 한꺼번에 풀어버리는 방법을 그렇게 알려줬는데도 아직도 감을 잡지 못했다.
"내가 없을 때면 치유술 각성자 세 명을 대동해."
백두산의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모르는 신기는 괴물 밀도가 어느 정도 되면 다시 박철과 둘이서 순회를 시작할 계획이다. 레벨업의 목적도 있기에 효율을 위해서 괴물이 좀 쌓일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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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헬기로 다시 보급 기지로 돌아간 신기는 급하게 회색 구슬을 삼켰다. 빨리 강해지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치밀어오를 정도로 요즘 불안감이 심하다.
- 수동형 재주 거력을 익혔습니다.
검술과 간파를 제외하고 새로운 스킬이 생겼다. 거력은 단련하는 만큼 육체를 강하게 해주는 스킬인데, 생물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지금 웬만큼 단련해도 육체 능력이 그대로인 신기에게는 나쁘지 않은 스킬이다.
'다행이다. 이빨 쏘아내는 스킬을 얻을까 봐 걱정했는데.'
융합처럼 뭔가 특별한 일이 생기기를 기대했는데, 기대가 너무 컸다. 그래도 이빨을 탄알처럼 쏘아내는 스킬을 얻은 게 아니어서 최악은 면했다고 자신을 위로했다. 그때 신기가 깨어난 걸 안 것처럼, 제이크가 신기를 찾았다.
"마침 깨어났구나. 미국이 구슬을 내놓기로 했어. 그리고 영국에서 지원 요청이 왔고."
"영국? 그쪽은 아무 이상도 없지 않아?"
"D가 세상을 멸망시키려 하고 있으니 도와달라는데?"
"D는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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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노팅엄.
"맥, 팰러딘은 왜 우리 요청을 거절했을까?"
"그러니까 자초지종을 다 얘기하고 설득하자니까. 넌 팰러딘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어."
"아냐. 과대평가는커녕 지금도 과소평가하고 있을지도 몰라. 팰러딘이 우리 요청을 거절한 데는 꼭 무슨 이유가 있어. 그 이유를 알아내면 이번 일의 돌파구가 생길 거야. D의 정체와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이유, 팰러딘의 힘의 정체와 D를 방치하는 이유. 이 두 가지가 핵심이야."
"에릭, 내가 보기엔 넌 그저 자기가 판 함정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어. 이 일은 단순해. 그저 팰러딘에게 D에 대해 다 알려주고 다시 지원을 요청하는 거야."
과음으로 눈이 빨개진 에릭이 고개를 신경질적으로 저었다.
"맥, 그러면 너랑 나는 끝이야. 대영제국을 세계의 지배자로 만드는 꿈도 파멸이라고."
"적당히 꾸며서 알려주면 되지. 우린 셰익스피어의 후손이야."
"거짓말로 팰러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해? 그 자식은 우리 꼭대기에서 모든 걸 내려다보고 있다고. 우리가 모르는 사실도 알고 있는 놈인데 거짓으로 어떻게 속여."
"그럼 사실 그대로 얘기하면 되지. 우리 둘의 파멸이 세상이 멸망하는 것보다 낫지 않겠어?"
에릭은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장식품을 향해 힘껏 던졌다. 그러나 술기운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술잔은 형편없이 빗나갔다.
"아직 닷새 시간이 있어. 그 사이에 해결책을 반드시 찾아낼 거야."
성큼성큼 걸어간 에릭은 장식품에 손을 대고 크게 외쳤다. 맥은 에릭의 외침에서 수십 가지 종류의 강렬한 감정을 엿보았다.
"탐구!"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에릭이 바닥에 쓰러졌다. 절망에 찬 눈물을 줄줄 흘리며 에릭은 힘겹게 단어들을 뱉어냈다.
"끝이야. 팰러딘도 소용없어. 도망갈 곳도 없어. 인류가 멸망하는 운명은 누구도 바꿀 수 없어. D를 막는 건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해."
- 작가의말
슬슬 D의 정체가 밝혀질 겁니다. 물론 확실하게 밝히지는 않고 두루뭉술하게 할 겁니다. 대단한 존재인데 너무 명확하게 인지되면 없어 보이거든요.
축구 소설은 결말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결말이 정해져야 그 방향을 향해 글이 흐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임 소설은 현재 2개의 게임은 구상이 끝나고 세부 설정을 고민하고 있는데, 하나의 게임은 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상현실에 대해 좀 다뤄볼까 하는데, 시간 비율은 당연히 1:1로 할 겁니다. 4배속으로 하면 생방송도 안 되고, 대화를 나누는 데도 불편합니다. 아무리 육체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해도, 4배의 속도로 대화를 나눈다는 건 웬만한 천재도 힘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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