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반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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뀌아아아아악!
이건 마시울의 비명이다.
그리고 엄청난 고통으로 날 조여오던 힘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뀌악! 너 이 새끼!"
마시울의 고통스러운 괴성이 내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뒤이어 강력한 기운이 그 뒤를 따라가는 게 느껴졌다.
누군가가 있다.
그게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마시울의 적은 확실해 보인다.
난 다시 일어서려 했으나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나마 시야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어 주변의 모습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반쯤 피떡이 된 상태에서도 여전히 번쩍거리며 도망을 다니고 있는 마시울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희끗희끗한 머리칼이 흩날리는 한 사내가 그 뒤를 바짝 뒤쫓고 있었다.
그가 나에게 호의적일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마시울의 숨통을 끊기 전까지 그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난 강물로 급히 고개를 돌렸다. 성운이가 물에 빠지는 걸 직접 본 건 아니지만 분명 물에 빠지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어두운 강에는 폭포수의 물보라만 무심하게 수면에서 흩날리고 있을 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난 당장 강물 쪽으로 뛰어가 녀석을 찾고 싶었지만 스스로 일어나기조차 힘에 부쳤다.
'제길'
난 온몸을 비틀며 버스 방향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버스는 여전히 투명 상태였지만 지붕에 돌무더기가 잔뜩 떨어져 있어 멀리서도 버스의 위치를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쾅!
큰 소음과 함께 마시울이 내 옆으로 곤두박질쳤다.
"끄으"
순간 그의 하나 남은 시뻘건 눈과 마주쳤다. 찌그러진 얼굴에서 비릿한 웃음이 스쳤다.
나는 그의 시선을 무시하고 기어가는 걸 멈추지 않았다.
파팍!
돌바닥이 부서지며 작은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 소리와 함께 마시울은 다시 번쩍거리며 사라졌다.
숲으로 피했는지 나뭇가지와 수풀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난 돌아볼 겨를은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버스로 들어가야 한다.
'조금만 더'
버스와의 거리는 이제 10여 미터, 그런데 팔다리의 움직임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근육에 저장된 에너지가 거의 바닥이 난 것 같았다.
그때 내 옆으로 사내의 발이 나타났다. 굳은살이 가득한 맨발이었다.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확인하려 했으나 낡은 가죽옷이 펄럭이는 바람에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숲으로 내달렸다. 그의 뒷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뀌이이이이이!
그때 숲속에서 엄청난 괴성이 울려 퍼졌다. 꺽다리의 그 괴성과 비슷하면서도 소름끼치는 소리였다.
'뭐지?'
그리고 연이어 강한 붉은 빛이 숲에서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빛과 동시에 엄청난 바람이 불어왔다.
"윽!"
그 바람에 땅에 엎드려 있는 나도 제대로 기어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숲으로 달려가던 정체불명의 사내도 뒤로 밀려 나뒹구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난 안간힘을 쓰며 기어가면서도 고개를 돌려 숲 쪽을 확인했다.
쾅!
뒤로 밀려 넘어진 사내 위로 무언가가 번쩍거리며 나타났다.
괴물이다.
나는 순간 기어가는 걸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얼굴과 온몸이 찌그러졌어도 좀 전까지 놈은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저 사내를 짓밟고 있는 생명체는 괴물이다.
'역시 괴물 맞다니까'
난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온몸 세포 하나하나에 남은 에너지를 전부 쥐어짜며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듯 버스를 향해 기어갔다. 이제 5미터 정도
"끄응"
괴물에게 깔린 채 버둥거리는 중년의 사내는 어떤 이유에선지 제대로 저항조차 못 하고 있었다.
순간 내 귀에 서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너도 이리 와"
마시울의 목소리에 꺽다리의 괴성이 섞인 기괴한 음성이다. 그와 동시에 내 몸에서 강한 중력감이 느껴졌다. 버스까지의 거리는 이제 2미터도 되지 않는다.
'거의 다 왔는데'
내 몸이 조금씩 그에게 끌려가기 시작했다. 엎드린 채 허우적댔으나 돌바닥에서 손으로 잡을 건 없었다.
나는 팔에 대충 끼워놓았던 활의 끄트머리를 잡았다. 그리고 놈의 얼굴을 노려보며 활을 집어던졌다.
화살이 없으니, 활이라도 집어 던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팔에 힘이 없어 얼마 가지도 못하고 허망하게 바닥에 떨어졌다.
'젠장'
그런데 그 순간 바닥에 힘없이 떨어지던 단단한 각궁은 갑자기 놈의 끌어당기는 힘에 올라타더니 강하게 회전하며 그의 대가리로 정통으로 돌진했다.
뀌익!
놈에게 큰 타격은 주지는 못했겠지만, 그 덕에 아주 잠깐 그의 당기는 힘이 줄어들었다.
다시 그가 나를 노려봤을 때 나는 이미 버스 안에 들어간 상태였다.
놈의 붉은 눈빛이 나를 죽일 듯 노려봤다. 난 버스 문을 바로 닫았다. 투명 상태라 이제 놈은 날 보지 못한다. 내가 버스를 타고 있다는 것만 알 뿐 노려볼 대상은 사라진 거다.
난 버스 안에서 가까스로 가구를 붙잡으며 일어났다. 당장 침대에 누워 체력을 회복하고 싶었지만, 창밖에서 괴물에게 깔려 죽기 직전인 사내를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 날 구해준 이다.
게다가 저 마시울 놈도 저대로 둘 수는 없었다.
블루건을 저놈의 대가리에 쏟아붓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지금, 이 몸 상태로 블루건까지 빨리 이동할 수가 없다. 그 시간 동안 저 사내는 무사하지 못할 거다.
파지지지직!
괴물로 완전히 변이한 마시울의 두 눈에서 시뻘건 번개가 수십 개 튀어나와 사내의 온몸을 뒤덮었다.
"끄아아아아악!"
저 사내는 저대로 두면 죽는다. 빨리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사람 한 명과 괴물 한 마리라···.'
문득 저 둘과 버스 사이의 거리가 묘하게 익숙했다. 대략 5미터 정도의 거리, 버스 방어막의 반지름
난 꺼져있던 광역 방어막 버튼을 눌렀다.
꾸륵
"응?"
갑자기 비명이 사라졌다. 괴성도 또한 사라졌다.
여전히 무심하게 들려오는 폭포수 소리만이 허망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고 창밖으로 보이는 둘의 자세는 마치 그대로 시간이 멈춰버린 듯 미동이 없었다.
나는 침대로 기어가 비스듬하게 누우며 침실의 작은 창문으로 밖을 계속 살폈다.
침실로 옮겨 밖을 바라보니 바라보는 각도가 조금 바뀌어 저 괴물 마시울 놈의 몸뚱이 상태가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놈의 몸이 사선으로 반으로 잘려 조금 비틀어진 채 방어막에 달라붙어 있었다.
난 황급히 그 아래 누워있는 사내를 확인했다. 그의 몸은 잘리지 않고 그대로였다. 가슴이 조금씩 들썩이는 게 숨도 쉬는 것 같다. 단지 의식을 잃은 듯 큰 움직임이 없었다.
"휴"
일단 됐다. 반으로 쪼개진 놈이 다시 달라붙긴 힘들 거다. 혹여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해도 둘로 갈라진 저놈의 몸뚱이가 광역 방어막을 통과할 수는 없다. 난 당분간 광역 방어막을 끄지 않을 거니까
지금 버스에 내려 저 사내에게 뛰어가 그의 상태와 정체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의 상태가 위중하다 하더라도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없다.
지금은 성운이를 찾는 게 우선이다.
나는 버스의 사방 조명을 다 켠 후 반대편 침대로 옮겨 강물 쪽을 확인했다.
녀석은 아까 마시울의 급습에 당해 강물로 빠졌다. 아직 하지 못한 말들이 많은데, 대화도 얼마 나누지 못하고 그렇게 또 사라졌다.
'제발 살아만 있어라.'
침대에 있으니, 몸이 조금씩 회복되는 게 느껴졌다. 아직 완전해지지는 않았지만 계속 이렇게 누워있을 수는 없었다.
침대에서 일어나려 몸을 돌리다 문득 베개에서 친숙한 냄새가 올라왔다.
성희의 채취가 여전히 베개에 남아있었다.
잠시 멈칫했던 나는 운전석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가 앉았다.
핸들을 강 쪽으로 돌리고 악셀을 살짝 밟으며 창밖을 살폈다.
반으로 쪼개진 마시울의 몸통이 푸줏간에 매달렸다 떨어지는 고기처럼 힘없이 바닥으로 나뒹구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 바로 강물로 들어갔다. 그러자 버스는 곧바로 보트 모드로 바뀌었다.
난 잠시 사이드미러를 바라봤다.
광역 방어막 안쪽에 있던 마시울의 몸통 반쪽은 움직이는 방어막에 걸려 바닥을 구르다 강물에 그대로 빠졌다.
수면에 둥둥 떠 있는 마시울의 몸뚱어리 반쪽은 정말 징그러웠다. 그때 갑자기 수면으로 시커먼 게 살짝 떠오르는 게 보였다.
'장어?'
몇 개의 머리가 살짝 떠오르더니 다시 물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곧이어 수면에 둥둥 떠 있던 마시울의 몸통 반쪽이 물속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수면에서 작은 거품이 일었다.
'허망한 새끼'
난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위치]와 [수평] 버튼을 누르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성운아!"
버스의 조명에 폭포수의 물보라가 비쳤다. 하지만 강에서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물에 빠져서 떠내려갔다면 거대 장어의 영역과 실뱀, 그리고 톱니 이빨 피라냐 같은 물고기의 영역까지 갈 텐데, 거대 장어는 그렇더라도 다른 놈들의 영역까지 갔다면 정말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젠장'
난 고개를 돌려 여전히 쓰러져 있는 사내를 바라봤다.
'괜찮겠지?'
난 서둘러 다시 버스 아래로 내려가려 했다. 지금이라도 하류로 빠르게 내려가면 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그거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핑 돌더니 지붕 테이블이 나에게 다가왔다. 아니 내가 쓰러지는 거였다.
"끅"
테이블 자리에 주저앉은 나는 얼굴을 비비며 빨리 정신을 차리려 했다. 하지만 여전히 어지러웠다.
'내가 안 괜찮네'
그때 버스 옆 수면으로 천천히 무언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미?'
거대 장어 어미다. 그런데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건 어미의 머리 위에 누워있는 중년의 사내였다.
"성운아!"
어미가 버스 지붕 난간 너머로 성운이를 밀어주었다. 난 간신히 그를 잡아당겨 지붕 바닥에 눕혔다.
바닥에 앉아 황급히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미약하게 숨을 쉬고 있다.
난 그의 옆에서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은 녀석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어릴 때의 얼굴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아이는 이제 나보다 더 긴 세월을 살았다.
그동안 어떤 일들을 겪었을까,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가치관을 가지며 살아왔을까?
평범한 지구에서의 삶을 살지 못하고 오직 생존 따위만 생각하며 치열하게 살았을 거다.
그의 눈가에 진 주름을 바라보고 있으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동시에 분노가 치밀었다.
"시발! 왜! 대체 왜?"
참고 참았던 분노가 뜬금없이, 대상조차 불분명하게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 올라왔다. 마시울 따위에게 향하는 분노가 아니다.
"으아아아아아!"
제대로 걷기조차 힘든 몸 상태에서 이런 소리가 쏟아져나올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외침은 폭포수의 소음에 묻혀 허망하게 흩어졌고 대상이 없는 나의 분노 또한 무심하게 흩날리는 물보라처럼 공기 중으로 번져 사라졌다.
뜬금없는 분노의 발악을 하고 나니 속이 좀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옆에서 아직 날 바라보고 있는 어미 거대 장어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어 보이자 이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어미는 물속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그때 문득 강변에서 움직임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사내가 깨어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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