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6-J1. 남매
'피뢰침이 없었나? 어디로 떨어진 거지?'
바로 눈앞에 벼락이 떨어지는 모습은 정말 오랜만에 본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딱 한 번 나무에 떨어지는 걸 본 기억이 있다.
그 순간 갑자기 옆 건물의 창문이 모두 동시에 깨지는 굉음이 들렸다. 마치 안에서 엄청난 압력의 폭발이 발생한 것처럼
"헉!"
그리고 그 깨진 창문 사이로 시커먼 살점들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수백 개의 살점 조각들이다.
"설마 사람인가?"
내가 걱정스러운 음성으로 말하자 머리 하나가 우리 쪽으로 날아오더니 유민이 발아래 떨어졌다.
"괴물이네요."
그때 유민이네 빌라로 접근하던 놈들이 버스에 스치면서 몇 마리가 그대로 피떡이 되며 터져나갔다.
"윽!"
괴물의 초록 피가 얼굴에 조금 튀자 마치 불에 덴 것 같은 뜨거움이 느껴졌다.
"왜 검으로 벨 때와 다르지?"
괴물 피가 몸에 튄 적은 처음이 아니다. 그런데 버스에 접촉 파괴로 터져나가는 놈에게서 튄 액체는 평소와 좀 다른 것 같다. 마치 연한 염산 같은 느낌이다.
"입구를 아예 막을게."
난 다시 버스로 들어가 빌라 입구 쪽으로 거의 붙이듯 버스를 이동했다. 그 순간 근처에 있던 몇 마리의 인간형 괴물이 버스에 스치면서 모두 터져나갔다.
"지금이야! 옆 건물로 이동해!"
움직일 틈이 생기자 유민이와 반장은 바로 옆의 빌라 건물로 뛰어갔다. 저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었는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유민이 형은 입구 옆에 서서 빌라 1층 방범창으로 접근하는 놈들을 뜯어냈고 나와 성희가 그를 지원했다.
"너무 많아!"
성희도 안간힘을 쓰며 무릎과 손으로 괴물을 막아내고 있었으나 아직도 밀려드는 괴물의 수는 줄지 않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더 늘어나는 느낌이다.
인간형 괴물 놈들은 입구를 거의 막아버린 버스를 피해 빌라 옆의 외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1층에서 막고는 있었지만 빌라 전체를 커버할 수는 없었다.
"2층 계단 창문이 뚫렸어!"
성희의 외침에 위를 보니 외벽을 지나 2층 계단에 나 있는 창문이 모두 깨져있었다. 그리고 괴물 몇 마리가 이미 그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뒤쪽은?"
일전에 거실에서 창밖으로 유민이 형을 처음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뒤편의 열린 창문이었다. 생각해보니 1층인데도 그쪽만 방범창이 없었다.
쨍그랑!
하필 그때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빌라 뒤쪽에서 들려왔다. 난 검을 단단히 부여잡고 건물 뒤쪽으로 뛰었다.
모퉁이를 돌자 눈앞에 깨진 창문이 보였다. 그런데 그건 유민이네 창이 아니라 성운이네 집이었다.
깨진 창문 안으로 인간형 괴물 두 마리가 사라졌다.
"아 씨!"
난 온 힘을 다해 뛰었다. 그런데 그때
"저리가아아아아!!!"
작은 성희의 분노가 서린 외침이 들려왔다. 일전에 들어봤던 소리다.
'젠장, 위험한데'
작은 성희가 발작을 일으키면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주변의 건물과 괴물을 모두 사라지게 하는 괴능력이다.
사거리에서 악마쥐를 날려버릴 땐 버스에 있던 우리만 피해가 없었다.
'그런데 버스 밖에 있으면 어떻게 될까?'
그때 성운이네 집에서 엄청나게 밝은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뀌이이이이이
그와 동시에 괴물의 고통스러운 괴성이 들려왔다.
난 성운이네 집 깨진 창문 쪽으로 다가가려 했으나 갑자기 엄청난 힘의 파동이 집 안쪽에서 폭발적으로 퍼져 나와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묵직한 음파 같기도 한 엄청난 에너지의 힘은 오히려 나를 밖으로 더 밀어내고 있었다.
뀌이이이
그 순간 시커먼 형체가 창문 밖으로 튕겨 나왔다. 두 마리의 인간형 괴물이다.
놈들은 엄청난 고통을 느끼는 듯 몸을 사정없이 비틀면서 바닥을 나뒹굴다 다시 안간힘을 쓰며 일어서려고 했다.
하지만 균형을 유지하지 못한 채 그대로 다시 쓰러졌다. 그러고는 점점 건물 바깥으로 밀려났다.
나도 그 괴물들과 다르지 않았다. 중심을 겨우 잡고 있었으나 내 의지와는 다르게 건물에서 계속 멀어지고 있었다.
'젠장, 다시 버스 쪽으로 가야겠어.'
난 간신히 건물의 구조물을 붙잡고 모퉁이를 돌아 다시 건물 앞쪽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그 엄청난 에너지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듯 건물 입구로 들어가려던 수십 마리 괴물들이 전부 건물에서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성희야! 괜찮아?"
입구에서 힘겹게 괴물을 막아내던 성희도 그 에너지에 밀려 버스 벽에 붙은 채 멍하니 서 있었고 유민이 형은 보이지 않았다.
난 입구 계단 난간을 부여잡고 간신히 걸어가 안쪽을 살폈다. 엄청나게 밝은 빛이 안쪽에서 새어 나와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실눈을 뜨고 안간힘을 쓰며 안쪽을 확인하니 작은 성희가 현관에서 걸어 나오고 있는 게 살짝 보였다.
그 뒤로 성운이와 민희 누나도 있는 것 같았지만 그들도 마찬가지로 그 에너지에 의해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성희야!"
민희 누나가 아이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눈이 아플 정도로 밝았던 빛이 갑자기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그 때문에 앞이 캄캄해져 눈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다들 괜찮아?"
눈으로 확인할 수 없으니 정말 답답했다.
"여기"
내가 팔을 휘두르며 주변을 더듬자 성희가 버스 벽에서 날 불렀다. 난 바로 그녀 옆으로 간신히 이동해 버스에 기댔다.
강한 에너지파는 여전히 몰아치고 있어서 먼지와 잡동사니가 얼굴로 마구 날아들어 눈도 뜨기 힘들었다.
난 계속 눈을 깜박이며 버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달라진 조도에 조금씩 적응되자 아이의 모습이 시야에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빌라 입구까지 걸어 나온 작은 성희 눈에서는 흰자위만 보였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져있었다. 아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소름끼치는 표정이다.
아이에게서 흘러나온 빛은 사그라들었지만, 여전히 강한 에너지의 기운은 우리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주변의 괴물들은 대부분 빌라 건물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었고 옆 빌라 건물 2층 창문으로 유민이의 얼굴이 보였다.
"형! 무슨 일이에요!"
유민이의 질문에 내가 소리쳤다.
"거기 사람들은 괜찮아?"
"네! 모두 무사하세요! 여기 반장 엄마가···."
뀌이이이이이이이!
그때 사방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괴물들의 괴성에 유민이의 다음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밖으로 밀려나던 괴물들이 서로의 그 흉측한 손을 부여잡기 시작하더니 동시에 다시 안쪽으로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괴물이 협동을?"
난 버스 지붕으로 올라가 놈들의 진형을 살폈다. 몇 마리의 괴물들이 유민이와 반장이 있는 옆 건물로 밀려나 안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지만 이내 유민이에게 뜯긴 조각이 창문으로 튀어나왔다.
"유민이 형은?"
난 성희에게 물었다.
"건물 뒤편으로 갔어."
"오케이"
방범창이 없던 건물 뒤를 유민이 형이 지키고 있다면 그나마 안심이다. 건물 뒤편으로 가는 괴물은 아직 많지 않았다.
"놈들이 다시 오는데?"
끈질긴 놈들이다. 그런데 작은 성희의 발작 능력이 오늘은 좀 다른 것 같아서 다행이다. 예전처럼 주변을 깡그리 증발시켜버리는 능력이 발현되었다면 이 정도로 끝나진 않았을 거다.
'밖에 생존자가 많아서 그런가?'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난 버스 아래에서 여전히 눈을 까뒤집고 부들부들 떠는 작은 성희를 바라봤다. 가까이 가서 집 안으로 피신시키고 싶었지만,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다.
"들어가!"
괴물 수십 마리가 서로의 몸을 잡고 균형을 유지하며 다가오고 있어서 작은 성희도 위험했다. 하지만 아이는 빌라 입구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몸만 여전히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때 대략 열 마리 정도의 괴물이 건물 외벽까지 다시 접근했다. 난 버스 창고에서 화살통을 들고나와 바로 놈들을 겨누고 쐈다.
"제기랄"
그런데 화살도 강력한 에너지파의 폭풍을 뚫고 날아가지는 못했다. 힘없이 바깥쪽 어둠 속으로 날려가는 화살을 난 허망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빌라 입구 쪽을 버스가 아예 막고 있어서 틈이 거의 없긴 했지만, 문제는 깨진 2층 계단 창으로 들어가서 1층으로 내려오는 놈들이다.
그리고 그건 지금 내 눈앞에서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놈들은 방범창을 부여잡고 깨진 창문 쪽으로 이미 들어가고 있었다. 화살을 계속 쐈지만, 여전히 힘없이 바깥쪽으로 날아가 버렸고 내 검은 그쪽까지 닿지 않았다.
다섯 마리가 넘게 계단 쪽으로 들어갔고 놈들은 계단 난간을 부여잡고 엄청난 에너지의 기운을 뚫으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뀌이이이이
그리고 이내 건물 안쪽에서 괴물의 괴성이 들렸다. 난 버스로 들어가 옆문의 손잡이를 잡고 아이들 불렀다.
"안으로 들어와!"
간신히 손을 뻗어 작은 성희를 잡으려는데 순간 아이가 조금씩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뭐지?"
아니 작은 성희가 멀어지는 게 아니라 버스가 조금씩 반대편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안돼!"
빌라 1층 입구가 뚫리면 안 된다. 아이가 여전히 밖에 노출되어 있고 지금 입구를 지키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버스는 그렇게 바깥쪽으로 조금씩 밀려났고 이내 빌라 입구가 완전히 드러났다. 그리고 그 입구에는 보기에도 가냘픈 작은 여자아이가 눈이 뒤집힌 채 입으로는 마치 저주에 걸린 듯한 저음의 괴성을 지르며 서 있었다.
알 수 없는 에너지의 힘 때문에 여전히 괴물들은 개별적으로는 접근하진 못했지만 열 마리 정도씩 서로를 강하게 붙잡으며 접근하는 괴물들까지는 밀어내지 못했다.
"위험해!"
성희도 아이에게 계속 소리를 질렀지만, 우리의 애타는 음성은 여전히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때 빌라 안쪽에서 난간을 부여잡은 채 접근하는 괴물 몇 마리가 보였다. 2층에서 내려온 괴물이다.
작은 성희의 강력한 에너지의 힘에 밀려 쉽게 접근하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간신히 조금씩 접근하고 있었다.
"젠장!"
나와 성희도 안간힘을 쓰며 작은 성희를 잡으려고 애를 썼지만, 그 힘을 뚫고 나아가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아아아아아악!"
갑자기 성운이의 처절한 외침이 귀가 아플 정도로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작은 성희에게 날카로운 발톱을 휘두르려던 놈들이 갑자기 공중으로 던져지듯 솟구치더니 강하게 벽과 난간을 들이받으며 계단 위쪽으로 날아올랐다.
"어?"
그런데 내 시선이 조금 이상했다.
"왜 2층이 잘 보이지?"
성희가 당황한 음성으로 말했다. 약간의 어지러움이 느껴져 주변을 살피니 바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버스가 조금씩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창밖 어둠 속에 있던 시커먼 수십의 괴물도 우리처럼 전부 공중에 떠올라 있었다.
계단 2층으로 밀려난 괴물들은 강하게 사방의 벽에 부딪히며 3층까지 밀려나더니 깨진 창문 밖으로 튀어나왔다.
뀌이이이
놈들은 괴성을 지르며 점점 더 높은 곳으로 떠올랐다.
그때 버스 창밖 아래로 작은 성희가 바닥에 쓰러지는 게 보였다.
난 아래로 뛰어내리려고 옆문으로 뛰쳐나갔으나 바닥에 닿지 못한 채 공중에 그대로 떠올랐다.
"어?"
하마터면 버스에서 떨어져 더 높은 곳까지 떠오를 뻔했다. 그 순간 성희가 버스에서 손을 내밀었다.
"잡아!"
그녀의 손에 이끌려 겨우 버스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때 아래쪽에서 성운이가 천천히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뒤로 민희 누나도 보였다. 성운이와 누나는 신기하게도 그 에너지파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누나의 행동도 조금 이상했다.
그녀는 전혀 급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태연하게 걸어 나오더니 작은 성희를 안고 성운이만 그대로 남겨놓은 채 빌라 안쪽으로 사라졌다.
"성운아!"
내가 아이를 불렀지만,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난 빌라 옆 건물의 2층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유민이와 반장을 발견했다.
그들도 반쯤 몸이 떠 있는지 창문을 꽉 붙잡고 있는 게 느껴졌다.
"형! 괜찮아요?"
그 순간 버스에서 묵직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형!"
주변의 괴물들이 빠르게 더 높이 더 멀리 날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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