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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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정글로 들어서자 열린 창문으로 비릿한 냄새가 훅하고 들어왔다.
'어디선가 맡아본 냄새 같은데?'
강폭이 일정하지는 않았지만 대략 십여 미터 정도 되어 보인다. 그리고 일부 나무는 기다란 나뭇가지가 건너편까지 뻗어있었고 그 가지를 따라 두꺼운 덩굴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 아래를 지나갈 때는 마치 동굴 같은 느낌도 들었다.
광역 방어막을 통과하는 생명체라면 충분히 버스로 쉽게 넘어올 수 있는 자연조건이다.
냄새에 익숙해질 때쯤 문득 빌라촌 교회에서 봤던 거대 식물이 떠올랐다. 그때 그 냄새와 완전 똑같지는 않지만 역겨운 이 느낌은 정말 비슷했다.
난 핸들의 통신 버튼을 누르고 말했다. 지붕에서는 테이블 자리의 간이 액정에서 내 음성이 들릴 거다.
"여기 식충 식물 같은 것도 있나?"
잠시 후 준수의 음성이 통신으로 들려왔다.
- 여기서는 못 봤어요.
"냄새가 좀 독한데?"
- 아···. 이 냄새는 꽃 때문이에요. 초록 꽃인데 이게 향이 좀 지독해요. 어? 저기 있네요? 오른쪽에
난 우측 창 너머를 확인했다.
"엄청 큰데?"
크기가 사람 머리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꽃들이 두꺼운 줄기에 한 송이씩 피어 있었다.
"독 같은 건 없지?"
- 그렇긴 한데 가까이서 냄새 맡으면 좀 몽롱해져요. 기분이 차분해진다고 해야 하나. 아 맞다, 그 꺽···. 뭐죠? 그 꺽쟁이?
"꺽다리"
- 아 네 꺽다리 무리가 이 꽃을 싫어했어요. 그래서 탐색 나갈 때 이거 가방에 붙이고 다니곤 했죠.
"무리라면 못난이도?"
- 아 네 맞아요. 정말 못생긴 괴물
난 주변을 살피다 왼쪽 너머에도 그 초록 꽃이 있는 걸 발견했다. 그런데 이상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왼쪽에 저거 보여? 줄기만 있는데?"
잠시 통신에서 말이 없더니 이내 준수의 음성이 들려왔다.
- 어? 누가 뜯어낸 거 같은데요?
"예전에 탐색 조가 그런 건 아니고?"
- 저거 꽃 뜯어내면 금방 줄기가 시들해지거든요. 하루 정도밖에 안 된 거 같아요.
"그래?"
어딘가 생존자가 있다는 뜻이다.
"동굴에서 누가 나온 건 아닐까?"
- 그건 아닐 거예요. 여기까지 걸어서 올 수 있는 사람은 동굴에 없어요.
"그러면···."
잠시 침묵이 흐르다 이내 통신에서 성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 사라졌다는 희성이네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또 다른 생존자겠지
희성이였으면 좋겠다. 물어볼 것도 많고 무엇보다 그를 꼭 다시 만나고 싶었다.
"주변 잘 살펴봐"
액정의 탐지 숫자는 0이다. 이 탐지가 사람이나 다른 생명체도 탐지했으면 좋았으련만 마지막 진화에서도 추가되지는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직 폭포 소리가 들리지 않아 통신으로 물었다.
"아직 멀었어?"
잠시 후 준수의 음성이 들려왔다.
- 네 좀 더 가야 해요. 가까워지면 폭포수 쏟아지는 소리 들려요.
강의 상류는 심하게 구불구불해서 핸들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자동 주행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러고 보니 여기선 네비도 안 나오네'
이쪽으로 넘어오기 전에는 액정 중앙에 대략적인 길과 지형이 계속 표시되고 있었다.
넘어오고 나니 액정의 그 부분이 그냥 까만 화면이라 별생각이 없었는데 지금은 좀 아쉬웠다. 도로가 익숙한 지구보다는 지금 여기서 더 유용할 텐데
급격한 커브를 돌아 조금 더 가니 멀리서 물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다 와 가는군'
항상 이럴 때 순탄하게 지나가는 법이 없어 조금 긴장하고 있을 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 버스 아래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구르릉 끼익 턱
그러더니 마치 그물에라도 걸린 듯 갑자기 버스가 뒤쪽으로 밀렸다.
우우우웅
난 악셀을 강하게 밟으며 핸들을 좌우로 돌렸으나 버스는 전혀 전진하지 못하고 양쪽으로 기우뚱거리기만 했다.
- 어디 걸린 거야?
통신으로 성희의 음성이 들려왔다. 난 [위치] 버튼을 누르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뒷바퀴 쪽에 뭐가 걸린 거 같은데? 괴물은 아니고"
그러자 준수가 버스 뒤쪽으로 가서 물을 살피더니 말했다.
"이거 수초 같은 거예요. 질긴 물풀"
난 수초 따위에 바퀴가 걸린 게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여긴 우리의 지구가 아니다. 내 황당한 표정을 보던 준수가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이거 머리카락같이 얇은데 길어요. 평소에는 수면 바로 아래에서 파래처럼 흐느적거리기만 해서 딱히 위험하진 않거든요. 그런데 좀 질겨요."
난 등의 검집을 확인하고 버스 뒤쪽 사다리로 향했다.
"자르고 올게."
그런데 사다리에 한 발을 걸치자마자 난 다시 올라왔다.
흐리고 어두워서 물속이 보이진 않았지만, 수면으로 지느러미 같은 게 지나가는 걸 봤기 때문이다.
"왜 그래? 뭐가 있어?"
성희가 다가오며 물었다.
"수룡 같기도 한데"
그러자 준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수면을 살피며 말했다.
"여기에 그런 게 있다고요? 여기는 놈들이 못 올 텐데···. 피라냐 지역도 지나야 하고···."
그때 내 팔의 액정에 탐지 숫자가 0인 게 눈에 들어왔다. 수룡 괴물이라면 탐지가 되었을 거다. 그리고 내가 방금 본 정체불명의 생명체는 버스의 광역 방어막 안쪽에서 지나갔다.
"괴물은 아닌 거 같고, 우리를 먹잇감으로 생각하는 놈도 아닌 거 같은데···."
문제는 모두 추측이라는 거다. 내가 뒷바퀴에 엉킨 수초를 잘라내려면 사다리에 매달리는 거 정도로는 힘들다. 물에 잠시라도 들어가야 한다.
난 어두운 물을 잠시 바라봤다. 그러자 성희가 내 활을 손으로 툭 치더니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어? 뭐해!"
풍덩!
그리고 그녀는 뒷바퀴 쪽으로 가서 수초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난 황급히 활에 화살을 걸고 그녀 주변을 주시했다.
그녀의 근처로 기다란 지느러미가 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에게 다가가진 않고 주변만 맴돌더니 갑자기 물속으로 사라졌다.
'놈이 내가 조준하고 있는 걸 눈치를 챈 건가?'
저 물속에서 머리도 내밀지 않고 날 관찰하고 판단까지 내릴 수 있을까? 희박하지만 모든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저게 뭔지 모르겠어?"
난 눈을 수면에서 때지 않은 채 둘에게 물었다. 그러자 언제 다가왔는지 은정이 옆에서 입을 열었다.
"비슷한 거 다른 강에서 본 적이 있어요. 그때 그거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래? 어떤 놈인데?"
은정은 잠시 수면을 응시하다 대답했다.
"뱀장어 비슷하게 생겼는데 먼저 공격하지는 않아요."
순간 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활시위를 잡은 손가락에 조금 긴장을 풀었다. 그녀의 다음 말이 들리기 전까지는
"제 둥지를 건드리지만 않으면"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초를 뜯어내던 성희가 물속으로 사라졌다. 찰나의 순간이었고 괴성이나 물소리, 비명도 들리지 않았다.
"젠장! 왜 진작 말하지 않은 거야!"
난 화살을 물로 겨누고 고민에 빠졌다. 그녀를 구하러 물로 뛰어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그녀를 구할 수 있을까?
그러면 빈 버스와 버스에 탑승할 수 없는 생존자 두 명만 이곳에 남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이대로 끝난다.
물속으로 사라진 그녀를 두고 난 그렇게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고민에 빠졌다.
"저 수초가 둥지는 아니라서요···. 그런데 그 둥지가 근처에 있었나 봐요."
별 도움도 안 되는 은정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녀 없이 나 혼자 살아남는다면 난 어떻게 될까?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푸아아아!
그 순간 물 위로 성희가 튀어 올라왔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다. 그녀의 몸을 긴 뱀장어 같은 생명체가 휘감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수면 위로 떠오른 그녀의 당황한 눈과 마주쳤다. 하지만 두려움의 눈빛은 아니었다.
그녀의 떡진 머리카락에서 튀어 오른 물방울이 내 얼굴로 튀었다. 그 물방울에 익숙한 그녀의 냄새가 묻어있었다.
난 바로 놈의 대가리를 조준하고 화살을 쐈다. 그리고 동시에 활을 지붕에 던져버리고 등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찍!
그런 허망한 괴성을 지르며 화살에 뱀장어의 목이 뚫렸다. 하지만 그녀의 몸을 강하게 감고 있던 긴 몸뚱이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었다.
난 사다리를 한 손으로 움켜쥐고 그녀에게 몸을 날렸다. 내 검은 그녀와 뱀장어의 작은 틈 사이를 파고들었다.
서걱
뱀장어의 몸뚱이가 반으로 잘려 나갔다. 하지만 둘로 나뉜 몸통은 떨어지지 않고 여전히 성희를 강하게 옥죄고 있었고 그녀는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풍덩!
거센 물보라가 일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물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그 순간 옆에서 또 다른 놈의 지느러미가 보였다. 난 그대로 물로 뛰어들어 새로 나타난 놈의 몸통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물속에서 놈의 짧은 괴성이 탁하게 들려왔다. 배를 뚫린 놈은 바로 죽지 않고 심하게 버둥거렸고 놈의 몸에서 철철 흘러나오는 하얀 핏물이 사방으로 마구 퍼졌다.
그때 어두운 물속에서 그녀의 하얀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이미 반으로 잘려 죽어버린 뱀장어의 굳어버린 사체를 안간힘을 쓰며 뜯어내고 있었다.
난 다른 뱀장어에 박혀있던 검을 다시 뽑았다. 놈은 여전히 숨통이 끊기지 않은 채 강하게 몸부림치더니 깊은 물 속으로 사라졌다. 난 바로 뒤쪽 수면 아래에서 아득하게 보이는 성희에게 헤엄쳐 들어갔다.
그녀의 손이 내 손에 잡혔다. 난 그녀를 있는 힘껏 끌어당기며 동시에 수면을 향해 헤엄쳤다.
다시 수면 근처에 다다랐을 때 버스 우측 뒷바퀴에 심하게 엉켜있는 수초가 눈에 들어왔다.
한 손에는 성희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검을 움직이는 건 쉽지 않았다. 게다가 물의 저항 때문에 더더욱 더디게 움직였다.
하지만 달리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난 젖 먹던 힘까지 모두 짜내어 왼손으로 그녀를 버스 뒤쪽 사다리 쪽으로 밀었다. 그리고 바로 버스 뒷바퀴의 휠을 붙잡았다.
'됐다.'
난 검으로 엉켜있는 수초를 모두 잘라낸 후 다시 사다리 쪽으로 가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때 버스 뒤편 멀지 않은 곳에서 여러 개의 지느러미가 나에게 일직선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대략 다섯 마리는 넘어 보인다.
하필 버스 뒤쪽 사다리 방향이다. 난 바로 몸을 틀어 반대편으로 헤엄쳤다.
쉬이이익
놈들의 무소음 움직임이 바로 뒤에서 느껴졌다. 그때 내 손에 버스 옆문이 닿았다. 난 바로 온 힘을 다해 상반신을 들어 올려 옆문 손잡이를 잡았다.
문은 순식간에 열렸고 난 다급히 버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으헉"
그리고 동시에 두 마리의 뱀장어가 열린 버스 옆문으로 튀어 올랐다.
퉁 퉁
하지만 바로 모두 튕겨 나갔다.
광역 방어막을 통과하는 놈들이라도 버스 안에는 못 들어온다.
난 버스 옆문 바로 앞에서 마치 코브라처럼 대가리를 쳐들고 있는 놈들을 잠시 바라봤다.
머리가 강물로 범벅이 되어 머리카락에 남아있던 물기가 얼굴로 흘러내렸다.
난 손으로 얼굴을 한번 쓸어내린 후 검을 집어 들고 다시 일어섰다.
"우리 쪽 장어 무한 리필이면 이거 코르카 대박인데"
서겅 서겅
난 뻣뻣하게 쳐들고 있는 놈들의 대가리를 모두 잘라냈다. 그때 성희가 버스 안쪽 계단으로 내려왔다.
"괜찮아?"
나와 성희가 동시에 서로에게 물었다. 그녀의 꼴도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은정이가 그러는데, 자기가 본 건 이것보다 열 배는 더 큰 놈이었데, 다른 강에서 봤다던 거"
"응?"
그러면 우리가 뭘 건드린 거지?
둥지에 있던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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