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악마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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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불길한 무언가가 날 옥죄여 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내 눈앞에서 발작을 일으키는 저 사내는 누구인가?
정말 내가 알던 태형이 맞는 걸까?
현재 버스의 승객 상태인 그가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이 된다면 난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전에 한 번만 확인하고'
난 여전히 긴장한 표정으로 태형을 지켜보고 있는 성희에게 말했다.
"숲에서 떨어져야 해"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성희는 운전석으로 뛰어가 앉더니 바로 버스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대 악어의 자취는 지금 우리에게 그저 비포장도로일 뿐이다.
우웅
버스는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지만 묵직하게 거친 풀밭을 가르며 나아갔다.
"끄아아아악!"
불길한 숲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지만, 태형의 발작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난 팔을 들어 액정의 승객 명단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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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차정원 [7/8]
차주 [한진우]
승객 [장성희] [추방]
승객 [최성운] [추방]
승객 [최성희] [추방]
승객 [나라] [추방]
승객 [김준배] [추방]
승객 [김태형] [추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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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많은 명단 중에 반 이상이 탑승해 있지 않다. 탑승객 자동 퇴출 같은 건 마지막 진화에도 생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직도 승객으로 남아있는 이름들을 바라봤다. 왜 난 그동안 [추방] 버튼을 누르지 않았을까?
마침표를 찍는 걸 그저 미루고 싶었던 걸까?
인연의 끈을 남겨 두고 싶었나?
하지만 그건 미련일 뿐이다.
"악어의 길로 들어섰어."
성희가 날 돌아보며 말했다.
"우선 길 따라 계속 가자, 저 섬뜩한 숲에서 가능한 한 멀리"
게다가 길이 향하는 방향은 지붕의 녀석들이 아까 가리킨 동굴 방향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크윽"
그때 태형의 눈이 다시 뒤집히기 시작했다. 그런데 좀 전과는 다르게 흰자위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으아!"
이건 성희의 비명이다. 그리고 난 비명도 채 지르지 못했다. 순식간에 엄청난 충격과 함께 버스가 옆으로 넘어졌기 때문이다.
"끄윽"
옆문 위로 떨어진 나는 여전히 침대에서 발버둥 치는 태형을 확인했다. 그의 처절한 몸부림이 연관이 있는 걸까?
"괜찮아?"
운전석에서 안전띠에 매달린 성희가 물었다.
"난 괜찮아 너는?"
"괜찮...."
그때 갑자기 버스에서 다시 급격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뭐···. 뭐야!"
버스가 어디론가 끌려가는 것 같이 심하게 요동쳤다. 하지만 버스는 여전히 옆으로 누워서 움직이고 있어서 창문으로는 하늘밖에 보이지 않았다. 중심을 잡기가 힘들어 일어나서 앞 유리를 확인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윽! 억!"
급격한 움직임에 난 버스 내부 가구에 계속 부딪혔다. 그 와중에 발작 중인 태형의 뒤집힌 붉은 눈이 내 얼굴 앞으로 여러 번 지나갔다. 하지만 침대의 단단한 고정 띠는 다행히 아직 풀리지 않고 있었다.
"으아아!"
버스 밖에서 두 남녀의 비명도 들려왔다. 그런데 난간과 테이블을 끈질기게 잘 붙잡고 있는지 비명은 버스 지붕 방향에서만 계속 들려왔다.
난 팔 액정의 상태를 확인했다. 분명 아직도 광역 방어막은 [ON] 상태다. 그리고 탐지 램프의 숫자도 0이다.
'대체 뭐지?'
쿵!
그때 강한 충격이 느껴지며 마침내 버스의 움직임이 멈췄다.
밖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아까 봤던 숲 초입의 거대한 나무에 충돌한 것 같다.
그그그그그그
숨돌릴 틈도 없이 버스에서 나무를 긁는 듯한 소음이 들리기 시작하더니 옆 창문 너머로 심하게 요동치는 거대 나무의 윗동이 보였다.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이다. 그 바람에 나뭇잎이 창문 위로 우수수 떨어졌다.
"끼이이악!"
그 순간 태형은 소름끼치는 괴성을 지르더니 눈이 완전히 시뻘겋게 변했다.
'아 씨!'
난 바로 액정의 [추방] 버튼을 누르려 팔을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아니지"
섬뜩한 음성이 내 귓바퀴를 돌아 내 청각 세포를 감전시키듯 자극했다. 그리고 그 이상한 에너지는 내 귀에서부터 머리로 그리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난 액정을 터치하지 못했다.
태형이 내 팔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알 수 없는 힘에 묘하게 압도당해 난 입을 열 수도 팔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뭐해!"
성희가 안전띠를 풀고 뒤쪽으로 기어 오는 게 보였다.
'오지 마!'
그렇게 외치고 싶었으나 내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허망한 작은 숨결만 간신히 흘러나올 뿐이었다.
마치 괴물 같은 모습의 태형이 온몸을 부르르 떨자, 버스가 더더욱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천 년은 되었음 직한 거대한 나무를 더욱 거세게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순간 버스가 다시 자세를 바로잡는 느낌이 들었다. 계속 강하게 거대 나무를 밀어대다 우연히 중심을 회복한 것 같다. 그런데 그 순간 버스에서 느껴지는 중력감이 바뀌었다.
'어?'
버스가 허공에 떠오르고 있었다.
난 바로 창밖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태형은 여전히 시뻘건 눈으로 날 노려보며 내 팔을 꽉 움켜쥐고 있었고 그 이상한 힘 때문에 나는 눈동자를 제외하곤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끄윽!"
운전석에서 일어나 침대로 간신히 기어 오던 성희가 버스의 휘청임에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눈알을 아무리 굴려봐도 내 시야에 그녀가 바로 들어오지 않아 제대로 상태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난 괜찮아"
내 마음을 읽었는지 성희가 알아서 먼저 대답했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무릎이 다가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찢어진 청바지 사이로 드러난 하얀 그녀의 무릎은 내 얼굴을 스치듯 지나가더니 그대로 태형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빡!
그리고 그녀의 나머지 무릎은 태형의 팔꿈치를 가격했다.
빠삭!
뭐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팔이 기이하게 꺾인 태형은 비명조차 치르지 않았다. 그의 눈은 무엇을 바라보는지 도무지 알 수 없게 검붉게 변해있었다.
크르르르르
그의 벌어진 입에서 흉측한 괴성이 흘러나왔다. 그때 그의 손힘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 들어, 난 강하게 그의 손을 뿌리치며 바로 액정을 터치했다.
김태형 [추방]
파아아아아악!
갑자기 버스 안에서 엄청나게 강한 빛이 휘몰아쳤다. 그 빛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흐름이 바뀐 중력이 느껴졌다.
쾅!
버스가 순식간에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헉!"
하지만 버스의 알 수 없는 보호 능력 덕분인지 우리는 바닥에 살짝 주저앉은 정도였을 뿐 큰 충격은 받지 않았다.
시야가 돌아오자마자 우리는 다급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침대는 비어있다.
그가 사라졌다.
창밖에서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버스 안에는 없어!"
성희가 버스 안 구석구석을 살피더니 말했다.
"그런데 어디로?"
녀석 때문에 위험하긴 했지만 그를 바로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저 순진한 동창 녀석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에게서 들을 게 아직 많이 남았다.
"아참 지붕에···."
성희가 순간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젠장, 깜박했다."
난 바로 지붕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가려고 일어서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빠지며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내가 가볼게, 잠깐 쉬어"
성희가 지붕 문을 열고 고개만 내밀었다.
"안 보이는데?"
그녀가 지붕으로 올라가고 나도 다리를 주무르며 다시 천천히 일어섰다. 빨리 회복이 되는 느낌이다.
그녀의 발소리가 지붕에서 들려왔다. 난 난간을 부여잡고 천천히 지붕으로 향하는 작은 간이 계단을 올랐다.
'분명 좀 전까지 비명이 들렸는데?'
지붕에 오르자 정말 아무도 없었다. 눈에 보이는 건 부러진 작은 나뭇가지와 나뭇잎들뿐이었다.
"엉망이네"
나는 지붕 끄트머리를 돌며 버스 아래와 주변을 살폈다. 젊은 남녀도 걱정이지만 그보다 태형을 찾아야 했다. 그의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그때 문득 인기척이 느껴졌다.
"멀리 날아간 거 아닐까?"
성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내려와라."
난 위를 바라보며 묵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우리 그냥 간다."
그때 무성한 나뭇잎 속에서 자그마한 음성이 들려왔다.
"저기···."
순간 나뭇가지가 마구 흔들리더니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으악!"
그리고 부러진 잔가지와 함께 두 남녀가 한 뭉치가 되어 버스 지붕 위로 떨어졌다.
"억!"
다행히 떨어진 높이가 그리 높지 않아 큰 부상은 없어 보였다.
"어떻게 그동안 살아남았나 했더니, 은신 스킬이라도 있나 봐"
녀석들은 쑥스러운 얼굴로 온몸에 묻은 흙먼지와 나뭇잎을 털어내며 일어났다.
"너희 태형이 못 봤어?"
내가 묻자, 준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그의 머리카락에는 잔가지들이 아직도 붙어있었다.
"네? 태형이 형요? 여기 있었어요?"
"그 오빠가 타고 있었다고요? 어머머 살아있었네!"
둘 다 그를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역시나 큰 도움이 안 되는 녀석들이다.
"젠장, 어디로 간 거지"
그때 성희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아까보다 더 어두워졌어."
그녀의 말에 난 점점 어두워지는 주변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광역 방어막이 켜져 있는 상태에서도 물과 공기는 그대로 방어막을 통과한다. 그런데 나뭇가지가 우리 지붕까지 그대로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보니 광역 방어막은 생각보다 많은 걸 통과시키는 것 같다.
"아까 숲에서 버스를 잡아당긴 게 대체 뭐야? 이건 봤겠지?"
내가 둘을 향해 다가가며 묻자, 그들은 서로를 잠시 바라보더니 역시나 특유의 어정쩡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가 당겨요? 그냥 이차 혼자 움직이던데?"
숲에서 어떤 존재가 우리 버스를 공격한 거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광역 방어막이 켜져 있는 상태에서 괴물 따위가 그 안으로 뭔가를 뻗어 버스를 당겼을 리가 없다고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분명 난 무언가가 버스를 잡아끄는 것 같은 느낌을 느꼈다.
"태형이가···?"
성희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나도 아까 그의 발작과 흐름이 비슷했던 버스의 요동이 짐작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허"
그때 젊은 남녀가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난 검을 빼 들고 그들이 바라보는 허공을 주시했다.
울창한 검은 숲은 주변이 어두워지니 더더욱 공포스러운 분위기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 깊은 숲속에 뭔가가 있었다.
"푸른색?"
괴물 따위가 저 숲에서 기어 나온다면 붉은 눈빛이 번뜩일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형광 파란색 같은 불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수는 점점 더 늘어났다.
"저거 뭐냐? 저게 악마라고?"
내가 바닥에 주저앉아 벌벌 떨고 있는 녀석들에게 묻자, 은정이 입을 열었다.
"저도 말로만 들어서···. 준수야 네가 본 게 저거 맞지?"
준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그대로 얼어붙은 듯 그의 온몸에 하얗게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무서워서 얼어붙은 게 아니라 정말로 그는 사시나무 떨듯 떨다가 이내 움직임이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숨소리마저 가늘어졌다.
그때 숲속에서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에는 처음 맡아보는 냄새가 실려있었다.
그 냄새에는 생각과 의도가 또한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의도는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하···."
준수의 마지막 입김이 그의 입에서 얼어붙듯 흘러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움직임이 완전히 멈췄다.
"꺄악!"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은정은 소스라치듯 놀라며 뒤로 나자빠지더니 벌벌 떨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성희가 난간으로 다가가 수백 개의 일렁이는 불빛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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