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J1. 분식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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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도 1차선 시골길을 달렸다. 도로 폭이 좁아 속도를 올릴 수는 없었다.
길옆으로 흙탕물에 엉망이 된 논이 보였다. 수확도 하지 못한 벼들이 쓰레기 진흙과 함께 엉켜있었다.
"아깝다"
조금 더 달리니 앞에서 반짝이는 돌이 날아오는 게 보였다. 버스의 코르카 흡수 사정거리 안에 들어간 모양이다.
"고작 2개"
난 근처를 살폈으나 다른 괴물은 보이지 않았다. 아까 총탄에 맞았던 날괴물 근처에 있던 놈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날아간 모양이다.
난 다시 버스를 출발시켰다. 좁은 논길을 조금 달리니 액정의 탐지 숫자가 변한 게 눈에 띄었다.
[ 0 < 17 < 0 ]
그런데 시야에 보이는 건 없었다.
"날괴물인가?"
성희가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하늘을 살폈다.
"안 보이는데"
룸미러로 나라의 상태를 살펴보니 정상이다. 그러면 날괴물은 아니다.
조금 더 달리니 왼쪽 산골짜기 쪽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보였다. 작은 하천이다.
우측의 논 너머에도 큰 하천이 흐르고 있는데 여기도 작은 물길이 있는 걸 보니 산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이 넘치지 않게 인공으로 조성한 곳인 듯싶었다.
"저거 뭐지?"
나라가 테이블 자리에서 창밖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작은 하천에서 뭔가가 잔뜩 헤엄치고 있다.
"연어가 물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하는 것 같은데?"
성희도 고개를 내밀고 하천을 바라보며 말한다.
"연어는 아니고 괴물이야."
탐지 숫자가 바뀌었다.
[ 15 < 2 < 0 ]
큰 물고기 같아 보이지만 놈들은 괴물이다. 수면으로 튀어 올라올 때 모습을 눈여겨보니 정말 거대한 연어같이 보이기도 했다.
"근처에 양식장이 있었나?"
양식장이 홍수에 범람하고 놈들이 탈출했을 수 있다. 하지만 저놈들은 괴물인데? 괴물로 변이한 연어인가?
그때 물 위로 튀어 올랐던 한 놈의 눈을 제대로 봤다. 괴물의 붉은 눈이다.
"멧돼지 괴물도 원래는 정말 멧돼지였겠지?"
성희가 연어 괴물을 보며 말했다.
"못난이나 꺽다리는 원래 괴물이었던 거고"
내가 중얼거렸다.
"검은 눈은···."
나라가 말을 하다가 멈췄다.
"어쨌든 저놈들은 괴물이다."
난 짧게 말하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눈에 총탑이 보였다. 저걸 뭐라 불러야 할까? 기관총도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고···. 마력 총? 그냥 총탑?
파란색의 총탄이 날아갔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블루건'
이제 넌 블루건이다. 뭔가 이름을 지어줘야 마음이 편한 건 병일까?
난 블루건에 앉아 물속에서 알 수 없는 몸부림으로 잔뜩 모여있는 놈들을 겨누고 버튼을 눌렀다. 달리 조준도 필요 없었다.
퉁 퉁 퉁 퉁 퉁
포탄 날아가는 소리도, 총 쏘는 소리도, 그렇다고 레이저 건의 소리도 아닌 이상한 소리가 나면서 푸른색의 불빛이 날아갔다. 예전의 포탄보다는 크기가 작았다.
파직! 파직!
서너 발 맞은 연어 괴물은 그대로 터져나갔다. 놈들이 물속에 있어도 조금은 피해가 있어 보였다. 이건 포탄과 좀 다른 것 같다. 포탄은 비 올 때 아예 작동도 하지 않았었다.
"오?"
물속에서도 거품처럼 연기가 피어오르며 마리당 한 개의 코르카가 생성되어 버스로 날아왔다.
퉁 퉁 퉁 파직
옆의 동족이 계속 터져나가는데도 놈들은 도망도 가지 않은 채 계속 어디론가 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마치 어디에 중독이라도 된 듯 한 가지에만 매달리는 모습이 애처롭게 보이기도 했다.
원래 양식장이 있던 곳으로 가려는 건가? 이것도 회귀본능인가?
괴물로 변이했는데도 특별한 공격성은 보이지 않는 놈들이라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아니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괴물로 변이하지 않았어도 잡았을 거다.
연어다. 회도 좋고 구이도 좋다. 저건 식재료다. 그러려고 강원도에서 어렵게 양식까지 한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또 아까운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급 허기가 몰려왔다.
코르카 [24/10000]
연어 괴물을 다 잡았다. 양식장에서 탈출한 놈들 치고는 생각보다 많진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코르카 걱정을 덜게 되어 다행이었다.
난 버스를 출발시켰다. 이제 논길을 벗어날 때다.
국도변으로 접어들어 적당한 곳을 찾았다.
꼬르륵
이건 내 배에서 들린 소리다.
'아참! 그러고 보니 진화하고 냉장고를 못 봤네?'
"성희야 냉장고 확인했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곁눈질로 슬쩍 그녀의 얼굴을 살피니 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때 전방에 작은 주차장이 보여서 버스를 세웠다.
"밥 먹고 가죠"
난 벌떡 일어나 뒤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이전에도 기본 물품이 많아서 특별히 기대하는 건 없었다.
"음···. 삼겹살이나 소시지···. 한우는 원래 있던 거고"
난 아래 칸을 살폈다.
"오! 훈제오리?"
그리고 그 외에도 몇 가지 식재료가 추가되어 있었다. 고다 치즈, 표고버섯, 느타리버섯
냉장고 문에는 탄산수와 막걸리가 추가되어 있었다.
"오···. 막걸리다! 쿨럭"
할아버지도 이제야 발견했는지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어? 떡볶이! 순대도 있어!"
나라도 설레는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난 군침을 흘리며 냉동실 문을 열었다.
"오..마이···."
"왜 그래?"
나라가 다가오며 물었다.
"만두다."
잠시 캠핑카 내부에 정적이 흘렀다. 예전에 성희와 여명을 바라보면서 군만두를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한동안 만두는 구경하기 어려운 음식이었다. 아니 버스에서 리필되는 음식 말고는 외부에서 구할 수 있는 건 건식품이나 캔, 즉석 국 정도가 다였다.
버스는 음식은 많았지만, 사람의 입맛이라는 게 금방 질리는 법이라 먹지 못하는 것에 대한 갈망은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짐승과 인간이 다르지 않은 건 먹는 거 앞에서 흔들린다는 거다. 인간은 좀 더 안 그런 척하고 살아갈 뿐이다.
길거리에 흔한 비둘기는 온종일 두 가지의 생각만 한다.
"먹을 건가? 아니네, 먹을 건가? 아니네"
인간이라고 뭐 다를까 싶다.
내가 상념에서 빠져나오자 이미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있는 성희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찐만두"
나라의 음성이다.
"나는 둘 다"
그리고 떡볶이와 순대도 꺼냈다.
우리는 정신없이 상을 차렸다. 그리고 막걸리를 꺼내 할아버지 잔을 채워드렸다.
"이거···. 정말 얼마 만이야 쿨럭"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생기가 돌았다. 정말 감염되신 거 맞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냥 감기 아닐까?
점심상은 완전히 분식집이다. 훈제오리와 버섯까지 볶아놨더니 진수성찬이다.
내가 아쉬운 표정으로 막걸리를 바라보고 있으니 성희가 말한다.
"한 잔 마셔, 내가 운전할게."
이쁜 줄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녀의 모습이 천사로 보였다.
'그래 어릴 때도 저 모습이었어! 항상 먹을 것도 양보하고 잘 챙겨줬었는데'
다시 만난 그녀는 무릎식신이 되어있었지만 그건 그녀의 각성 능력 때문에 과도한 에너지가 필요해서 바뀐 거일 수도 있었다.
난 잔을 들고 고개를 돌린 후 한 모금 마셨다.
"아···."
달콤 쌉싸름한 막걸리가 입안을 한 바퀴 돌아 목으로 넘어가자 문득 오래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동네잔치가 있었다. 행사 이름은 전혀 기억나질 않는다. 할아버지는 원래부터 행사 따위는 참여하지 않으셨지만 나는 이장님의 부탁으로 행사용 짐을 옮겨야 했다.
행사장에서 일을 마치고 나니 어른들이 수고했다며 날 불렀다. 그때 앉아서 편육에 막걸리를 처음 먹었다.
편한 자리는 아니었고 시끄러운 트로트가 계속 크게 울려서 정신이 혼미했지만, 그때 처음 마셨던 그 막걸리의 맛은 잊을 수가 없었다.
'아 맞다 태형이···.'
자리를 돌며 부족한 음식과 술을 채워주던 청년이 태형이었다. 그때도 얼굴은 알고 있었지만 아는 척은 하지 않았었던 거 같다.
'태형이도 희성이도 그 이상한 숲속에 있었는데···. 아! 그 숲은?'
버스가 진화하고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잠시 진화 때 꿨던 꿈을 깜박했다. 그건 정말 꿈이었을까?
"넌 꿈에서 숲은 못 봤어? 이상한 나무나"
갑작스러운 질문에 떡볶이 국물에 순대를 찍어 먹던 성희가 입가에 소스를 묻히고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본다.
"나무?"
"응, 나뭇잎을 만졌던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 감촉이 정말 이상했거든."
성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가 누워계시던 바닥이 나뭇잎으로 잔뜩 깔려있었어, 무슨 둥지 같은 느낌으로"
"나뭇잎 모양은 기억나?"
나는 문득 그때 황급히 주머니에 넣었던 나뭇잎이 떠올라 주머니에 손을 넣어봤다.
물컹한 뭔가가 손에 잡혔다.
그건 꿈이 아니었다.
일전에 유민이네 집 앞에서 버스가 진화할 때 어디론가 사라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자리에서 버스가 진화한 게 아니라 어디로 사라졌다가 진화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번 진화에서는 어떤 오류로 다른 장소에 잠시 다녀온 건 아닐까? 그리고 잠들었어야 할 의식이 잠시 깨어났던 건 아닐까?
내가 손에서 천천히 나뭇잎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성희의 동공이 커지는 게 느껴졌다.
"그 나뭇잎이 혹시 이렇게 생겼어?"
"이···. 이게?"
성희는 당황한 눈빛으로 테이블 위의 나뭇잎을 바라보다 시선을 나에게로 옮겼다.
"이거 맞아, 끝이 동그란 게 옆면은 굴곡이 심하고 앞뒤로 물결이 치듯 하는 모양,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나뭇잎이었어"
난 손으로 집어 들며 그녀에게 건넸다.
"만져봐, 감촉은 더 이상해"
그녀는 나뭇잎을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말했다.
"무슨 젤리 같은 느낌이야···. 그런데 어떻게 이게 여기"
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꿈이 아니었던 거 같아"
성희도 이미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는지 크게 놀라진 않았다. 그저 정말 나뭇잎이 눈앞에 있는 게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이다.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던 나라가 입을 열었다.
"괴물이 거기서 온 걸까?"
"거기가 어딘데? 쿨럭"
나는 접시의 군만두를 하나 집어 한입에 넣고는 입안 가득 우물거리며 육즙을 음미했다.
그리고 잔에 남아있던 막걸리도 단숨에 마신 후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와 친구가 있는 곳"
그곳에 할아버지와 삼총사의 일원인 희성이, 그리고 편의점 태형이가 있다. 게다가 마트에서 사라졌던 사람도 일부 생존해 있던 걸로 보인다.
"그 이상한 벽을 다시 찾을 수만 있다면"
내가 말하자 성희가 입을 열었다.
"그 벽이 어디에서 생길지 알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때 나라가 말을 이었다.
"혹시 생성하는 방법이 있지는 않을까?"
갑자기 문득 그날, 거대한 붉은 덩어리가 하늘을 뒤덮은 날이 떠올랐다.
그게 혹시 놈들이 몰려오는 어떤 문을 여는 건 아니었을까? 놈들이 안전하게 몰려오기 위해 인간들을 잠시 기절시켰던 걸까?
"아! 그날 봤던 거미만 찾으면!"
성희가 갑자기 떠오른 듯 말하자 나라가 덤덤하게 말했다.
"거미 괴물은 방벽 너머로 도망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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